카레이서 유경욱입니다. 그가 사람을 만날 때마다 건네는 첫마디다. 그렇다. 그는 카레이서다. 팀 아우디 코리아 선수다. 한국 선수만 출전하는 한국 대회가 아닌 더 넓은 곳을 바라본다. 그는 최근 2016~2017 아시안 르망 시리즈 최종전에서 우승했다. 오랜만에 승리를 만끽했다. 그는 시작이라고 말한다. 슬럼프가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 달려보겠다고 웃는다. 반복되는 트랙을 달리지만 그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하나는 어떤 대회에 참가하더라도 최고로 빠르게 달리는 것. 또 하나는 카레이서라고 소개할 때마다 낯설어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 둘 다 쉽지 않다. 하지만 차돌 같은 표정으로 답하는 그는 절대 완주를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레이서의 하루는 어떨까?
평상시엔 아침 대신 물과 샐러드, 과일을 먹고 바로 운동하러 간다. 일반인이 운동하는 방식과 다르다. 우리는 근육을 많이 키우면 안 된다. 잔 근육을 키우고 지구력 위주로 운동해야 한다. 일반인이 바벨 50kg을 3세트씩 든다면 난 10kg을 10세트로 나눠서 든다. 1세트도 12회가 아니라 15~30회씩 길게. 운동하고 나선 경기 및 연습 드라이빙 영상을 계속 본다. 20번 넘게 보면 안 보이던 것도 눈에 들어온다. 다른 사람은 왜 나보다 0.1초 빠를까 따지다 보면 하루가 거의 다 간다.
모터‘스포츠’ 선수라는 걸 잠시 잊었다. 역시 스포츠 선수 일정이다.
훈련과 연습, 분석이라는 삼박자를 계속 이어나간다. 잠잘 때도 영상 틀어놓고 자니까. 소리만 들어도 몇 번째 코너를 지나는지 알 정도다.
레이서가 천직이라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좀 타다 보면 스스로 느끼거나 결심하잖나.
그건 처음부터 알았다.(웃음) 데뷔하자마자 1등 했으니까. 재능이 있구나, 생각했다. 하다 보니까 무섭게 빠져들더라. 너무 재밌어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다. 그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는데 한길만 쭉 팠더니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클래스에서 차를 타고 대우받는다. 모든 분이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차를 좋아하면 대부분 날 좋아해주시더라. 그래서 내가 한길을 참 잘 왔다고 생각한다. 다른 생각을 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다.
재능 중 특히 어떤 면이 남달랐나?
반사 신경이 좋았다. 어릴 때 육상 선수였다. 단거리에서 스타트 신호에 엄청 빠르게 반응하거나 물체를 피하는 반사 신경이 좋았다. 반사 신경이 좋으면 차 뒤쪽이 미끄러져 오버스티어가 일어날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반응이 늦으면 차가 도니까. 난 차의 움직임이 조금만 변해도 바로 반응했다. 그래서 처음엔 드리프트를 못했다. 난 조금만 흘러도 다 잡아버렸으니까. 또 랠리 출신이라 상황을 잘 파악한다는 장점도 있다.
반사 신경을 통해 레이서로 발화했다면, 선수로 성장하면서 어떤 부분을 노력했나?
레이싱을 하다 보면 과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걸 줄이고 겸손해지도록 노력했다. 레이서인데 도로에서 미친 듯이 질주하다 밝혀지면 그냥 끝나는 거다. 음주운전 하면 또 끝나는 거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운동하며 노력했다. 내가 지금 만 36세인데 여전히 차 운전석 헤드레스트에 고무 밴드를 묶어놨다. 운전할 때 머리에 걸고 다니며 목을 훈련한다. 트랙에서 계속 달리면 목이 힘들어서 롤케이지 같은 데 머리를 기댈 때도 있다. 그러면 선이 다 틀어져 힘이 빠지고 정확하게 운전할 수 없다. 일상에서도 레이싱에 유용한 훈련법을 응용해서 뭐든 하려고 한다. 젊은 선수보다 3~4배 더 운동했기에 살아남지 않았나 싶다.
팀 아우디 코리아를 만나면서 해외 선수들과 대결하는 대회로 영역이 넓어졌다. 떨렸겠다.
국내에서 레이스를 하다 ‘아우디 코리아’를 만나서 뛰기 시작했는데, 부담감이 상당히 있었다. 정말로 한국 사람은 나 혼자 나와서 시합하니까. 외국 경기에 나가니 뉴스에도 나온다. 그 말은 얘가 얼마나 잘하나 다들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부담감이 처음엔 상당히 컸다. 그리고 좋은 성적도 나오지 않았고. 2년 차까지는 괜찮았는데 3년 차부터 슬럼프에 빠져서 이후 3년을 저조하게 보내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다.
그래도 최근에 좋은 소식이 들렸다. ‘아우디 R8 LMS 컵’보다 더 큰 경기인 ‘아시안 르망 시리즈’ 2016~2017 시즌 최종전에서 우승도 했다.
팀 아우디 코리아에 고맙다. 솔직히 프로 드라이버가 성적이 안 나면 잘리는 게 당연하다. 다른 애로 교체해, 이러면 끝이잖나. 돈 주는 입장에서 그런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팀에서 그렇게 하지 않고, 뭐가 문제냐고 물어봤다. 이런 팀은 없다. 그래서 내 상황을 얘기했다. 솔직히 레이싱하는 시간이 너무 적었다. 축구 선수나 야구 선수도 겨울 내내 쉬다 20분 공 만지고 시합하라고 하면 힘들잖나. 나도 5개월 쉬다 20분 타고 바로 결승전을 치르니 감이 오는가 싶으면 시합이 끝나버렸다. 시합이 아우디 R8 LMS 컵만 있었으니까. 그래서 다른 경기에도 나가고 싶다고, 더 많이 연습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아시안 르망 시리즈에 참가하게 된 거다.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더 큰 승부수를 던졌다.
주변에서 이랬다. 네가 그렇게 주장해서 ‘아시안 르망 시리즈’에 나가니 진짜 부담되겠다고. 하지만 난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무대지만 자신 있었다. 솔직히 나도 스스로 선을 그었다. 성적이 저조한 이 시기에 팀이 돈을 더 투자하게 해 큰 무대에 나갔는데 성적이 안 나온다? 그러면 진짜 은퇴할 생각이었다. 한 3년 동안 자존심이 너무 구겨졌다.
이렇게 웃고 있었지만.
항상 웃어야지 어쩔 수 없잖나. 시합이 망해도 웃어야 하는 게 레이서다. 아시안 르망 시리즈는 그렇게 허락받고 나간 거다. 똑같은 차에, 똑같은 트랙이니 데이터가 엄청 많잖나. 그래서 해볼 만했다. 예전에 랩타임이 1분 20초였다면 이번에는 차를 많이 타고 연습했더니 1분 18초가 나오는 거다. 한 바퀴에 2초를 확 당긴 거다. 다른 선수와도 0.2초 차로 같이 들어오기도 하고. 어마어마하게 발전한 거다. 그래서 자신감도 생겼다. 심지어 같은 팀 세 명 중에 내가 제일 빨리 달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우승이란 것도 했다. 날 믿고 밀어달라고 했는데, 팀은 그렇게 해줬고 난 답을 보여줬다.
레이서로서 방송에도 자주 출연한다.
솔직히 방송은 재미없고 힘들다. 이젠 적응할 만도 한데 힘들다. 그게 당연하다. 방송하는 연예인에게 차 타고 시합하라고 하면 엄청 힘들다고 할 테니까. 난 반대로 차 타는 게 너무 쉽거든. 되게 힘들고 어렵지만 내가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도 카레이서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서다. 일상에서 내가 카레이서라고 소개하면 네? 하는 반응이다. 방송에서 내 모습도, 내 시합도 보여주다 보니까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구나, 하고 찾아보는 거다.
방송에 출연하느라 바쁘면 연습 시간이 부족한 건 아닌가? 그런 점은 잘 조율하나?
그 부분은 잘 조율하고 있다. 아우디 R8 LMS 컵은 연습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 일정은 무조건 고정해놓고 1년 내내 간다. 나머지 시간에 촬영하는 거지 그 시간을 미루면서 촬영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주업이 레이싱인데, 그걸 소홀히 하고 다른 걸 할 수는 없다. 내게 경기는 특급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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