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이동건에 대해 오해하는 게 있을까?
‘별로 성실한 배우는 아니다, 많이 논다, 작품 하나 하고 나면 오래 쉬려고 한다’ 같은 것들. 그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를 꼽자면 이렇다. 그런데 이건 정말 오해다. 나는 일단 시작하고 보는 성격이 못 된다. 뭐든 자신 있고, 준비됐을 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받은 대본에 비해 선택한 작품은 굉장히 적었다. 다른 오해는 사실 잘 모르겠다. 기사에 대한 댓글이나 SNS 등을 전혀 보지 않거든. 그런 소통은 하지 않는다.
SNS는 아예 해본 적 없나?
없다. 요즘 그렇게 소통하는 사람들을 보면,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자랑 혹은 숨기려다 들키는 것들. 누가 진짜 일상을 공개하나. 특별한 걸 먹고 멋있는 것을 소유하고 근사한 곳에 가니까 자랑하는 거지. 나는 그런 일에 취미가 없다. 자랑할 만한 일이 별로 없기도 하고, 나름 빛나는 순간이 있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안 든다. 인터뷰에서 내 이야길 많이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작품에 대한 피드백이 궁금할 때도 있지 않나?
칭찬 들으면 기분 좋겠지. 그런데 상처받을 말들도 분명 있다. 상처 주는 것이 목적인 말들이 꼭 있다. 그런 건 안 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고 객관적인 반응을 알아야 할 땐 어떻게 하나?
정 궁금하면 주변에 묻는데, 보통은 굳이 듣지 않고 스스로 느낀다. 자기 객관화가 잘되는 편이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대번 느낀다. 잘못에 대한 인정도 잘하고, 빨리 다른 답을 찾으려 하고, 자숙한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하 <월계수>)은 꼬박 8개월 동안 촬영한, 호흡이 긴 연속극이었다. 가장 그리운 순간이 있나?
매주 목요일 아침 9시. 그때 모든 출연진이 모여 대본 연습을 했다. 연속극은 필요한 세트를 모두 설치해두고, 카메라 서너 대를 놓고, 연극 하듯 촬영한다. 배우는 연극 무대에서 하듯 한 호흡에 연기해야 한다. 어떤 배우를 위해 특별한 조명을 설치하지 않는다. 배우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따로 찍어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신을 하루에 평균 50개 정도 촬영했고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매주 한 번씩은 다 함께 모여 대본 리딩과 리허설을 했다. 그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시간 같아서.
<월계수>의 동진은 이동건에게 익숙한 옷이었다. ‘배우가 대본에 있는 대로 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 부류라면,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맞다. 배역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는 없었다. 차가운, 워커홀릭의 화이트칼라 피플. 수트 입고 자동차 뒷자리에 타고 다니고… 그런 건 익숙하니까. 이번 드라마가 주는 공포는 다른 데 있었다. 동진이라는 캐릭터를 6개월 동안 끌고 갈 힘이 나에게 있느냐. 보통 3개월 정도 방송되는 드라마를 늘 했고, 성공한 적도 있지만 실패한 작품이 훨씬 많았다. 막연하더라.
답은 어떻게 구했나?
주어진 캐릭터와는 조금 다르게 연기하기로 했다. 동진이는 초반부 내내 절대 웃지 않는다. 나는 촬영 시작하고 한 달 동안 웃어본 적이 없다. 후반부로 가면서 얼마든 웃을 날이 있을 테니까. 작가나 감독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감정을 눌러서 연기한 거다. 분명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신도 있었을 텐데, 내 고집대로 했다. 나에게 이런 확신은 있거든. 적어도 내가 맡은 캐릭터에 대해서는 작가보다 더 잘 알 거라는, 알아야 한다는 확신.
그랬기에 나중에 동진이가 사랑에 빠져 어울리지 않게 ‘헤헤’ 웃고, 오글거리게 표현한 게 사람들에게 쾌감을 준 것 같다.
나는 그게 동진이라는 캐릭터의 힘이라고 믿었다. 현장에서도 감독님이나 다른 동료들과 부딪히지 않았다. 그들도 나를 믿어준 거라 생각한다. 감사한 일이다.
성공한 적도 실패한 적도 많다고 하지 않았나?
실패를 훨씬 많이 했지.
그런데 이동건은 잘되고, 안 되는 것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안 된다고 크게 무너지지 않고, 잘된다고 해서 고양되지도 않았다.
무척 노력하는 부분이다. 나는 너무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를 때 큰 성공을 해봤다. 앞으로 더 큰 성공을 할 수도, 실패를 할 수도 있지만 이제 그런 것에는 정말 많이 무뎌졌다. 나름 이런저런 일들을 일찍 겪어봤기에, 그쪽으로는 거의 득도한 것 같다. 이거 하나는 자신한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사실 이동건은 배우로 데뷔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가수로 데뷔했지 않았나?
참 이상하게 데뷔하게 됐다. 소속사에 가야 한다는 친한 형들을 덩달아 따라 갔다가 데뷔한 격이니까. 유명인이 되는 꿈은 꿔본 적도 없었다. 가수에서 연기자로 전환한 것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졌다. 음악이야 원래 좋아했다 치자. 연기는 생각 밖의 일이었다. 그런데 한두 작품 하다 보니 연기 잘하는 사람들이 부럽더라. 그런 사람들을 동경하게 됐다. 잘하고 싶었다. 내가 못하는 게 죽도록 싫었다. 그렇게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결국 그렇게 하게 되는 일이 자신의 업인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연기자가 내 천직이라고. 필연적이었던 것 같다고.
어린 나이에 유명세를 치른 것이 이동건의 천성과는 잘 맞았나?
인격이 형성되기도 전에 이런 일을 하게 돼서 잘 모르겠다. 그런 판단을 할 겨를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 좋을 때도, 지겹게 싫을 때도 있었다. 늘 공존했다. 지금은 감사한 마음만 있다. 나이를 먹다 보니 그렇게 됐다.
사람들은 대개 이동건을 젠틀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 여긴다.
그렇다면 작전 성공이다. 나는 젠틀한 사람이고 싶다. 신사라는 거, 이름표 달고 태어나지 않는 것이니까.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신사적인 면이다.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한가?
노력은 한다. 하하. 젠틀하기보다 어려운 게 재미있는 사람이 되는 거다. 나는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이 못 되지만, 나에게도 나름 유머는 있다. 알아봐주면 고마운 정도의 유머. 나랑 가까운 사람들은 알 거다. 가끔은 웃기다고 해준다.
혹시 이제껏 못 보여줬거나, 보여주고 싶어 노력했는데 사람들이 봐주지 않은 면이 있는가?
왜 화이트칼라 캐릭터만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도 양아치나 삼류 건달이 되어본 적이 있다. 대역 없이 자동차 스턴트를 하다 사고가 난 적도 있다. 모르는 이들이 꽤 있는데, 그들이 나의 그런 모습을 봐주지 않았고 관심이 없었고 좋아하지 않았을 뿐이다.
왜일까? 이동건이 다른 면을 보여줬을 때 왜 사람들은 무심했을까?
내가 부족했기 때문일 거다. 알고 있던 이동건이 아닌 다른 모습을 본다는 것이, 그저 싫었을 수도 있다. 내가 그 간극을 메우거나 압도할 만큼 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연기자는 철저히 평가받고 선택받는 위치에 놓이는 직업이다. 배우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막연한 바람을 안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운이 좋은 어떤 날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게 봐줄 수도 있겠지. 그럼 그 모습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새롭게 기억될 거다.
이동건이 보여줄 수 있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에는 뭐가 있을까? 열렬히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보통은 그런 질문에 대답을 잘 못하는데, 지금 딱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영화 <드라이브>의 라이언 고슬링이 했던 역할. 라이언 고슬링도 따지고 보면 거칠게 생긴 남자는 아니지 않나. 곱고 왜소하다. 대단한 ‘머슬 맨’도 아니고 키가 크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정말 터프했다. 사실 동경하는 작품이나 역할은 많다. 그런데 그중 99%는 시켜줘도 못할 것들이다. 나에겐 그런 눈빛이 없고, 그런 숨소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드라이브>는, 그런 영화가 나에게 온다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뭘 좋아하는 사람인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의외로 정보가 없더라. 연애 상대 외에, 사적인 부분은 알려진 게 많지 않다. 골프를 즐겼다는 것 정도?
게임도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위닝 일레븐>을 매해 새 버전으로 즐긴다. <위닝 일레븐>을 진짜 잘한다고 해서 권상우 씨와 붙었는데, 내가 이겼다. 함께 군 생활을 한 친구들 중에는 최자가 제일 잘했는데, 내가 이겼다. 내 주변이나 연예계에서 잘한다는 사람들은 내가 다 이긴 것 같다. 하하. 게임 말고는 커피. 워낙 좋아해서 이번 드라마 끝나고는 전자동 커피 머신을 반자동으로 바꿨다. 이제 직접 압력을 조절해서 커피를 추출한다. 누구에게 만들어줄 실력은 못 되고, 그냥 재미있어서 한다.
사적인 생활과 그 주변은 굉장히 잘 정돈되어 있을 것 같다.
정확하게 맞췄다. 주어진 하루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나의 하루 일상에 제약을 많이 둔다. 무조건 운동해야 하고, 8시간은 자야 한다. 먹는 걸 좋아하지만 식단도 철저히 컨트롤한다. 또래가 보면 이해 못할 정도다. 질 좋은 단백질 식품과 적당량의 채소를 매 끼 꼭 먹으려고 노력하거든. 식단을 지키지 못할 때에는 아예 안 먹는다.
방탕하게 보내버리고 싶은 날에는 어떻게 하나?
있지. 그럴 땐 단단하게 만들어둔 생활의 사이클을 무너트린다. 우선 전날 밤에 술을 많이 먹겠지. ‘혼술’을 즐기는데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신다. 당연히 늦은 시간에 시작해 끝까지 마신다. 그럼 일단 다음 날의 사이클이 무너진다. 술 먹고 늦잠 자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거다. 그런 날에는 햄버거도 시켜 먹고 짜장면도 먹는다. 운동도 안 하고, 씻지도 않는다거나. 그러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이상하게 집착하거나 수집하는 대상이 있기도 한가?
딱히 없다. 잔정이 없다. 좋아하는 것은 많지만, 좋아하는 걸 수집하기보다 주변 사람들과 나눠 가지거나 선물하는 걸 즐긴다. 운동화를 좋아하거든. 하지만 신발장의 용량을 넘어설 만큼은 결코 갖고 있지 않다. 개수가 지나치게 늘어나면, 버리거나 갖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준다. 오래된 친구들은 그런 습관을 너무 잘 알아서, 말하지 않아도 챙겨 간다.
예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멋있을 때까지만 하고 싶다”고.
그때 아주 잘못 대답한 것 같다. 멋이라는 단어를 잘못 쓴 것 같다. 그때 말한 멋은 ‘내 생각에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했다. 나 스스로 멋있다고 느끼는 순간까지만 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어쩌면 당연한 말인데 그때 쓴 ‘멋’이라는 단어가 계속 다른 질문을 유발한다. 나이를 먹다 보니 멋보다 중요한 것도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 대답은 이번 기회에 취소하고 싶다. 하하. 언젠가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은 멋있다고 생각하세요?’ 같은 질문을 받으면 난감할 것 같거든.
멋있는 배우라는 건 뭘까?
성실한 배우. 두 시간쯤 늦게 와서 대본 보고 멋있는 연기를 하는 거? 그런 거 별로 안 멋있다. 성실한 배우가 늘 멋지고 존경스럽다.
이제 서른여덟, 만으로 서른일곱이다. 그런데 이게 의미가 있나?
아직 너무 건강하기에 별 의미가 없다. 서른여덟이라는 숫자가 나에게 어떤 압박이나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다만 사회적으로 혹은 부모님의 아들로서 인식하는 상대적인 위치는 있지. 아버지가 올해 일흔이시다. 아버지에게 나는 ‘아직 장가 안 간 아들’이고. 쓸데없는 실수, 흔들림 같은 건 없어야 하는 나이인 것 같다. 마흔은 불혹이니까. 이제 곧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아야 하는데, 미리 좀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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