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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지구종말 시계가 2분 더 당겨졌다. 핵무기도 테러도 아닌,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더운 지구는 이미 이상 기후를 통해 충분히 경고를 하고 있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신과 내가 바로 죄인이다. 얼마나 큰 죄를 졌는지 `계산`해봤다.<br><br>[2007년 3월호]

UpdatedOn February 20, 2007

Editor 정석헌 illustration 차민수 자료 출처 www.airkorea.or.kr, safeclimate.greenkorea.org

약속한 시간보다 몇 분 늦게 나타났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이 한 아이의 탄생이나 부모의 임종 순간처럼, 생사에 관계된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늦고 나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으니까. 만약 그것이 수백만 명의 목숨이 달린 2분에 관한 문제라면 어떨까?
지구종말 시계(Doomsday Clock)는 지난 1947년 과학자들이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자정을 인류 파멸의 시간으로 가정한 것이다. 시계는 자정 7분 전인 11시 53분에서 출발했다. 지난 60년간 11시 43분(냉전 종식)과 11시 58분(수소폭탄 실험 성공) 사이를 오갔다. 그러니 2분 당겨진 게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처음으로 지구온난화가 지구종말 시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실제로 그동안 이 시곗바늘을 움직인 건 전쟁과 평화, 군비 경쟁과 테러 등이었다. “테러는 수백, 수천 명을 죽이지만 지구온난화는 수백만 명을 죽인다. 우리는 테러보다 지구온난화와 전쟁을 해야 한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AP통신과 인터뷰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뜻을 곱씹어볼 때다.
비슷한 시기에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1백30개국 2천5백 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작성한 ‘기후 변화 보고서’를 6년 만에 발표했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21세기 말 북극의 얼음은 모두 녹고 지표 온도가 20세기 말보다 1.8~4℃ 오르며 해수면은 18~59cm까지 올라간다. 광속으로 발전하는 현대 과학과 기술이 적절한 처방을 내릴 것이고, 그러니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닌 줄로 아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당장 온실가스 농도를 2000년 수준으로 동결해도 이미 자연은 그 조절 능력이 한계에 달해 10년마다 0.1℃씩 올라가는 걸 막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바꿔 말하면, 아시아에서만 1억 명 이상이 식량난을 겪고, 지구인의 절반인 10억~40억 명이 물 부족에 시달리며 저지대 국가들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등 1억5천만~2억 명의 환경 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중 당신과 나는 용케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자식, 내 후손이 포함될 가능성마저 피할 순 없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거다.
이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우선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 연료 사용을 줄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떨어뜨리는 게 관건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이내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다.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따라 세계 각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할당받았다. 그 이상으로 배출하려면 다른 나라로부터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돈 주고 사야 한다. EU 국가 간 배출권 거래를 기준으로 이산화탄소 1t 배출권의 가격은 15~18달러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0.7t.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14만~17만원 정도. 결국 그 돈은 이산화탄소를 뿜어내고 있는 우리의 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12년까지 교토의정서 상의 감축 의무가 면제돼 있어 사회 전반의 위기의식이 매우 부족한 편이다. 서울시에서 실행 중인 승용차 요일제만 해도 그렇다. 부서 안에서 제일 먼저 요일제에 참여한 나조차 지킬지 말지를 고민할 정도로 허술하고 미흡하다. 거국적으로 참여했지만, 주위에는 일을 핑계로 못 들은 척 외면하는 인사들이 더 많다. 서울시에서만 65만 대 이상이 부착한 전자 태그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다. 잘 지키면 자동차세 및 보험료 감면, 공영 주차장 할인 등의 혜택을 준다지만, 피부로 느껴본 적은 없다. 공영 주차장에서 요금을 할인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자동차세 10% 감면도 결국 물 건너갔다. 보험료는 메리츠화재 상품에 가입하지 않으면 하나마나한 이야기. 약속한 요일에 운행하다 3회 이상 적발되면 ‘삼진 아웃’ 당한다는 사실도 구청에 물어보고 겨우 알았다. 용케 카메라를 피해 다니는 얌체 운전자도 많다. 난 세 번 정도 약속을 어겼지만, 이제껏 금호터널에서 찍힌 게 전부다. 더 엄히 적용하되, 참여의 대가로 더 크고 맛있는 당근을 줘야 한다. 마음먹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보기도 하지만, 내 마음 같지만은 않은 일부 몰지각한 승객과 기사 때문에 기분이 상하기 일쑤다.
지구를 살리는 데에는 너와 내가 없다. 국가와 정부, 지자체는 물론, 최종 소비자인 우리의 몫도 크다. 승용차 요일제는 미봉책 - 적어도 아직까지는 - 이지만,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속수무책에 가깝다. 우리는 아침에 집을 나서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다음 날 다시 집을 나설 때까지 24시간 내내 CO₂를 쉼 없이 배출해 지구를 괴롭히고 있다. 그게 어느 정도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곳이 있다. 환경관리공단(www.emc.or.kr)이나 ‘대기오염도 실시간 공개’ 사이트(www.airkorea.or.kr)에 접속하면,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 미세먼지, 오존, 이산화질소, 일산화탄소, 아황산가스 등으로 얼마나 오염돼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거나 오염 물질별 지수 구간에 따른 행동 요령을 구할 수 있다.
우리 집이 있는 서울시 중구는 2월 9일 17시 10분 기준으로 미세먼지가 80㎍/㎥, 이산화질소가 0.032ppm, 일산화탄소가 0.867ppm으로 거의 같은 시각 제주도 제주시가 52㎍/㎥, 0.019ppm, 0.4ppm인 것에 비해 월등히 높다.
지역 오염도에 나는 대체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이럴 때 녹색연합의 CO₂배출량 계산기(safeclimate.greenkorea.org)가 필요하다. 우리가 집에서 만들어내는 온실가스(주로 CO₂)의 총량을 알아보는 것으로 일명 ‘탄소 발자국(CO₂ Footprint)’이라 불리기도 한다. WRI(세계자원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해 녹색연합에서 만든 것으로 배출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집에서 쓰는 전기와 난방, 자가용, 대중교통 등으로 계산한다.
먼저 집. 사용한 전기와 난방, 취사는 개인이 만드는 CO₂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전기와 난방비를 아끼는 게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기본적인 방법이다. 나의 경우 동거인은 1명, 지난달 전기 사용량은 223kW였다. 난방비는 관리비 내역을 살펴보니 126,760원. 이것을 가스 사용량으로 환산하면 대략 180㎥ 정도다. 이미 지난달 CO₂배출량이 470kg에 달한다. 다음은 교통에 관한 문제. 하루에 몇 킬로미터를 이동하는지 혹은
몇 리터의 연료를 쓰는지를 알면 자가용을 이용할 때 배출하는 양을 계산할 수 있다. 나의 한 달 자가용 의존도는 휘발유 29ℓ에 불과하다. 주로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버스 아니면 택시. 단, 대중교통의 경우 변수가 많은 만큼 평균값을 이용해 정확한 값이라고 보긴 힘들다. 하루 탑승 시간과 한 달 사용 횟수를 기입하면 한 달간의 배출량을 구할 수 있다. 택시는 서울시의 시간거리동시병산체계를 통해 거리를 구했고, 연비와 배출 계수 모두 LPG 택시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한 달에 쓴 금액을 기입하면 된다. 버스는 하루 30분씩, 한 달에 스무 번 정도 타고, 택시는 10만원 정도 나오는 것으로 기입했다. 그랬더니 109kg가 더해진다.
결국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배출한 CO₂는 579kg이다. 이대로 12회, 그러니까 1년이 반복되면 서울~부산을 차로 다섯 번 왕복할 때 발생하는 CO₂량과 같은 엄청난 양을 배출하는 죄인이 된다. 그게 무슨 큰 죄냐고? 이걸 1년 동안 배출한 대신 심어야 하는 나무의 수로 환산하면 무려 ‘217,125그루’다.
이 정도면 중죄인에 가깝다.
다행히 여기서 끝은 아니다. CO₂를 줄이는 방법을 체크하면 할수록 수치는 떨어진다. 겨울 실내 온도를 지금보다 1℃ 낮추고, 냉장고를 벽에서 적당히 띄워놓으며, 세탁기는 한꺼번에 모아서 돌리고 청소기는 먼저 방 청소를 한 뒤에 돌리며, 공회전을 하지 않고, 승용차 요일제에 참가하는 등 모든 항목에 V자를 표시했더니 배출량이 502kg으로 떨어졌다. 교통에서 74kg, 집에서 그 6배에 가까운 427kg의 CO₂를 배출한 셈. 동거인 혹은 동승자가 적고, 중앙난방시스템이라는 핸디캡을 감안해도 생각보다 심했다. 난 ‘지구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셔야 돼요(378~757kg)’라는 진단을 받은 죄인이었다. 그 위의 단계인 ‘CO₂를 많이 배출하시는군요. 노력하세요(757~946kg)’나 ‘지금같이 생활하시면 절대 안 돼요(946kg~)’를 겨우 면하긴 했지만.
집에서 이 정도니, 하물며 사무실에서 저지르는 만행은 말해 무엇할까? 1천 개들이 종이컵 한 박스가 빠르면 열흘 안에 동이 나고 사람은 없어도 컴퓨터는 늘 불을 밝히고 있으며, 이면이 텅 빈 A4 용지는 수백, 수천 장씩 휴지통으로 직행하고, 두루마리 화장지는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이곳 신사동의 다른 사무실, 강남구의 다른 사무실, 서울시의 다른 사무실 중 지구의 미래를 염려하는 곳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잔소리를 듣는 가족과 동료는 얼굴을 찡그린다. 하지만 그들에게 점잖게 묻고 싶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저 하늘이 언제까지고 나와 당신을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는가? 언젠가 당신과 나를 향해 맹공을 퍼부을 심판의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이미 느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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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정석헌
illustration 차민수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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