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히어로
그러니까 이문세는 내 마음속 히어로다. 그런 그의 공연을 창피하지만 2013년 6월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마주했다. 잠실 주경기장 5만 석의 공연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문세는 가사가 들리지도 않는 요상한 아이돌의 세계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선배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2년 <빨간 내복> 이후 정규 앨범이 십수 년간 나오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텅텅 빌 줄 알았다. 웬걸. 세상 그 어떤 핫한 밴드도 쉽사리 채우지 못할 잠실 주경기장이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그래 그게 이문세였다.
가히 한국 가요 역사에서 발라드 레전드라 칭할 만한 그였지만, 단지 내 마음속에 품은 영웅일 뿐이었다. 그렇게 잊히고 있었다. 2015년께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한 그와 마주했다.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라고 했다. 조금은 슬펐다. 저러다 노래를 못하게 되면 어쩌지? 새삼 그의 멋진 공연을, 아니 그의 끝내주는 노래들을 라이브로 한 번이라도 들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이문세는 2015년에 보란 듯이 15집을 발매했고, 여전히 그의 음악 인생은 진행 중이다.
이문세라는 극장
누구나 그러하듯이 가슴 깊이 묻어둔 영웅을 직면할 때면 두근거리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이문세를 바라보며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졌다. 중학생 시절부터 팬이었으나 내 나이 불혹을 훌쩍 넘겨서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나의 영웅 역시 내년이면 예순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래서일까? 스튜디오로 그가 들어서자 일종의 경외감으로 인해 말문이 턱 막혔다. 정신을 차리자며 살짝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편안해졌다. 잘 알고 있는 형님을 만난 것처럼 맥박이 정상으로 자리 잡았다. 아마도 그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청춘의 향기를 풍겼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었다. 내 앞에 선 나의 히어로, 이문세는 그냥 아직도 ‘소녀’를 부르는 젊은 뮤지션이었다.
오늘 이문세를 만난 건, 그가 5월부터 아주 바빠지기 때문이었다. 뮤지션이 바빠진다는 건 공연이 목전이거나, 새로운 앨범 발표 시점이 다가왔다는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이문세에게 시계 초침이 빨라진 이유는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그리고 해외 공연까지 1년 가까이 빠듯하게 잡힌 투어 공연 때문이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그 첫 포문을 연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정기 공연과 비정기 공연 2가지 콘셉트가 생겨났어요. 모든 공연을 비슷한 레퍼토리로 진행하지만 이번에는 정기 공연이자 테마가 있는 무대예요. 공연명이 ‘시어터 이문세’인 거죠. 그러니까 이문세가 그냥 극장이 되어보자라는 것이에요.” 이러면서 “기대하셔도 좋아요. 제 작품 발표회니까요. 신곡도 있고 감춰져 있던 노래들도 있어요”라고 기대감을 높인다.
아빠가 아들에게
언론에 가끔씩 나오는 이야기지만 그는 가족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인물이다. 이번 인터뷰에도 홍보팀은 아내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묻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요청을 해왔다. 그러겠노라 했지만 딱 하나 궁금한 게 있었다. 이 의문은 그가 1993년에 부른 ‘종원에게(눈물 흘리지 말아요)’라는 노래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 아이가 네 살 때 발표한 노래예요.” 이문세의 말이다. 그런 아이가 이제 스물여덟 살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고 했다. “사실 언론에서 저희 가족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편이에요. 나는 막 자랑하고 싶어요. 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그들로선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스러울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피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딱 한 가지만 묻겠다고 했다. 종원이는 이문세라는 아버지에게 어떤 아들인가요? ‘눈물 흘리지 말아요’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곡이기에 단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이종원은 반듯하게 잘 자란 청년이 됐어요. 공부도 아빠보다 훨씬 잘하고. 지금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건축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죠. 건축가가 그 친구의 희망이거든요.” 어떤 부모라도 그러하듯 그 역시 어여 며느리도 보고, 손주도 안을 꿈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제 욕심이죠. 근데 뭐 다그치거나 서두르지는 않아요. 그런다고 되는 일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보채지 않아야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 같더라고요.” 종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문세의 눈빛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반짝였고 행복해 보였다.
기분 좋은 날
그와 처음 마주한 날. 유독 특별한 날이었다. 이문세의 노래에서 ‘광화문’이라는 공간이 의미하는 상징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몇십 년이 지난 요즘 광화문은 정치적이지만 축제와 같은 촛불이 피어오른 곳이었다. 이문세를 만난 날 오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이 있었고, 이런 정치적 상황이 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했다. “전 국민이 좋아하니 저도 좋아요. 오늘 같은 날은 ‘그女의 웃음소리뿐’을 신청하고 싶네요. 저는 광화문이라는 공간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곳에 다시 무궁화가 흐드러지게 피었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어떤 답변이 필요할까.
그리고 그는 <아레나>에도 특별한 감회를 전했다. “1회 ‘에이 어워즈’였던가요? 그때 상을 받았어요. 남다른 애정을 느끼는 매거진이에요. 갓 돌이 되었을 때인데, 이 험난한 시장에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고, 잘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저는 <아레나>의 모던하고 깔끔한 편집이 마음에 들었어요. 서운하다 싶을 정도로 축약시켜버리는 매력이 있었죠. 그러니 지금 저와의 인터뷰 기사가 단 열 줄로 끝나도 서운하지 않을 거예요.” 맞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날에, 그는 과거의 인연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특별한 만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문세의 사인에는 ‘기분 좋은 날’이라는 문구가 꼭 적힌다. 오늘은 광화문도 웃었고, 우리도 웃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오늘 하루
지극히 개인적으로 나는 그의 수많은 히트곡 중에서 13집 앨범에 수록된 ‘오늘 하루’를 유독 좋아한다. 이 노래는 “밥 한 그릇 시켜놓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늘 하루 내 모습이 어땠었는지…”라고 시작한다. 이상하다. 이걸 듣고 있으면 저 깊은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뜨거운 뭔가가 솟구친다. 이 말을 하는 순간 그는 “그거 너무 슬프지 않아요?”라고 내게 반문한다. 이 노래를 빌려 그의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묻기로 했다. “오늘 하루는 순전히 화보 촬영을 위해 컨디션 조절을 했죠. 메이크업 잘되라고 어젯밤에 팩도 하고 잤고요. 저는 그런 사람이에요. 갑자기 딴짓 하다 오늘 할 일을 하려 조율하지 않아요. TV 출연이 있다면 며칠 전부터 워밍업을 하고 그래요.”
옛날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니다. 이런 성향 때문에 그는 시장에서 결코 도태되지 않았고, 수많은 이에게 아티스트로서 대접받고 있지 않나 싶다.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해, 요즘은 한 번에 하나의 일을 하면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쉬이 패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문세는 고집쟁이다. “죽을 때까지 아마 그렇게 할 거예요. 바쁘게 날아다니는 새가 먹이를 많이 취하겠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어요. 물론 문화 트렌드가 많이 변했기 때문에 짧게 치고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수용되긴 하겠죠. 그러나 이문세는 그렇게 내 눈앞에 주어진 하나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거예요. 오늘 하루처럼요.”
광화문 연가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이문세의 1988년 5집 앨범에 실린 ‘광화문 연가’ 노랫말이다. 그때는 그냥 이영훈의 멜로디가 훌륭하고, 가사가 훌륭하고, 이문세의 노래 실력이 훌륭해서 좋아했을 뿐이었다. 노랫말 속 ‘세월’이라는 단어를 체감하기에는 아직 성숙하지 못해, 앞으로의 나날이 주야장천 지겨우리만큼 널려 있다 믿었다. 어느 출근길, 차 안에서 이 노래를 다시 듣고 있었다. ‘세월을 따라 떠나간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붓다처럼 무릎을 탁 내리쳤다.
불혹에 들어서야 깨닫게 되는 세월에 대한 철학적 사유. 그 노래를 부를 당시 이 의미를 이해했을까? “내가 스물다섯 살 때 불렀을 거예요. 그때만 해도 어른의 노래라고 생각하고 불렀어요.” 그렇다면 이문세는 세월을 어떻게 이해하고 체감하고 있을까? “진짜 세월과 얼마나 싸우는지 모르겠어요.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고 또 받아들이고 수없이 반복하는 것 같아요. 이미 지나간 세월은 모르겠지만, 지금 당면하고 있는 내 세월에 대한 이야기예요. 이걸 허투루 써도 되나 하는 경계심이 들다가도, 이제 뭐 할 만큼 했는데 받아들이자. 아냐, 세월이 가고 있는 걸 인정해야 하나? 아니야. 나한테는 아직 멀었어. 이렇게 스스로 마음속에서 계속 갈등하고 싸우는 나날의 연속인 것 같아요.”
이에 대한 그의 말에서 꼬투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 싸움에서 이겨야만 하는 게 정답일까 하는 거였다.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어차피 영원하지 못할 텐데 영원할 것처럼 발버둥치는 나의 모습도 봤어요. 또 순응하자며 관조적 시선을 가지기도 했죠. 나쁜 놈, 못난 놈, 사기치는 놈들이랑 착하게 살아온 사람이랑 어떻게 똑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 분노도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아니야 하고 다스려요. 하나님이 다 이유가 있으신 거죠.” 그러면서 그는 우리 앞에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강조했다. “세월이라는 게 이런 듯해요.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며 앉아 있는 의자가 존재해요. 아마 계속 이렇게 있을 거예요. 누가 부수기 전까지는요. 그런데 결국 나만 사라지는 거예요. 누구다 다 그래요. 그런 게 세월인데, 뭐 하나 조금이라도 더 쥐어보겠다는 욕심이 무의미한 거죠.”
옛사랑
이문세와 고(故) 이영훈의 작업은 대한민국 20세기를 관통하는 가요 역사에 길이 남을 발라드 명곡들로 가득하다. 많은 가요들이 그랬듯, 두 사람 역시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 인생사를 논한다. 그래서 어떨 땐 이문세는 ‘사랑 타령’ 전문가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에서는 앞서 말한 세월의 사유에 의거한 정서가 그윽하게 배어난다. 이런 이유로 유독 이영훈이 쓰고 이문세가 부른 ‘사랑 타령’은 서정시 같다. “그냥 내 삶의 슬픔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그녀예요. 그녀가 직접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렇다면 이문세 노래 속 그녀는 마치 상징적 기표처럼 아스라히 존재하지만 결코 잡을 수 없는 그 어떤 타자인 셈이다.
“만일 그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면 괴롭고 힘들 거예요. 그러니 만나고 싶지 않고, 외면하고 싶은 존재인 거예요. 단지 떠올렸을 때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잘 살고 있는데 기억 속 그녀가 나 이제 다 정리하고 당신에게 다시 돌아왔어, 이렇게 말한다면 무섭지 않아요?” 사랑이라는 건 세월 따라 그리도 무심하게 잊히고, 문득 떠오르는 인간 본연의 어떤 정서이니 말이다. 이에 대해 그는 “그냥 한번 탁 웃어서 넘겨야 해요. 그걸 집요하게 되찾으려 하면 마음이 궁색해지거나 덧없어지는 거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2집 앨범 속 ‘그해 겨울’의 가사가 떠올랐다. “슬프게 살다 보면 슬픈 것도 모르게 되는지…”라는 노랫말이다. 이렇게 그의 노래 속에는 세월, 사랑, 시간의 키워드로 삶을 관통하는 아련함이 묻어 있다.
혼자 있는 밤
가끔 헷갈리는 노래가 하나 있다. 똑같이 밤 이야기고 비에 대한 노랫말이다. 이문세의 3집 앨범에 들어 있는 ‘혼자있는 밤 비는 내리고’와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가 그 혼란의 주인공이다. 나는 지금 이문세를 만나고 있다. ‘이렇게 비 오는 밤에 누군가 날 찾아줄까’라는 가사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만큼 더 살아가야 하는 인생의 무게감을 떠올린다면, 이는 굉장히 중요한 맥락이다. 과연 우리네 인생의 문을 훗날 노크해줄 누군가가 있을까라는, 굉장히 슬프면서도 기대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
“이제는 여자가 오는 것보다는 나와 소원해진 친구가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비 오는 밤에 아련한 옛사랑이 찾아오면 섬뜩하잖아요. 그냥 이 새끼가 삐쳤지. 몇 년 동안 이 새끼가 이유도 없이 삐쳐 있네. 그런데 그 친구가 소주 한 병에 마른 오징어 한 마리 싸가지고 비 오는 밤에 느닷없이 초인종을 눌러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사람이 이문세의 인생에 있는지 꽤나 궁금해졌다.
“물론이죠. 방송 쪽에도 있고 개인적인 친구도 있고. 살다 보면 주변에 사람이 더욱 풍성해지는 이가 있고, 점차 줄어드는 이가 있어요. 이해관계 없이 참 좋은 친구였는데 어쩌다 우리가 연락도 하지 않게 되었을까 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해요. 사실 내 책임이 더 큰 거죠.” 인생이란 굉장히 찰나와 같은 순간이기에 많은 것을 해결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걸 안다. 이문세 역시 이에 동감했다.
“사람들은 선고를 받잖아요. 그게 얼마가 되었든 우리는 다 인생의 끝을 선고받고 살아가는 거니까요. 그 시간 안에 틀어진 관계를 바로잡으려는 건 사실 ‘나를 기억해줘’라는 추억의 명분밖에 되지 않아요. 그러니 찾아오길 기다리기보다는 가끔 내가 찾아가는 게 어떨까 싶어요.”
나는 행복한 사람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포근해진 날씨 덕에 아스팔트 길마저 폭신한 느낌이 드는 날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이제 스물여섯이 됐다는 후배에게 물었다. “넌 이문세를 아니?” 안다고 했다. “<응답하라 1988>의 ‘소녀’를 노래하신 분”이 아니냐고 했다. ‘소녀’는 이문세가 1985년 3집 앨범에 실은 노래다. 아마 그 후배가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이었을 테다. 하지만 좋은 노래는 시대를 거슬러 좋은 노래로 돌아온다.
아마 이문세의 음악이 그렇지 않나 싶다. 물론 이런 역행은 빅뱅처럼 끗발 날리는 아이돌이 ‘붉은 노을’을 불러주었기 때문일 수도, 우연치 않게 우리 세대가 공감하는 드라마가 흥행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문세가 여전히 스스로 청춘이라 주장하고, 그들과 호흡할 수 있을 만큼 가슴을 열어두었다는 점이다. 아니, 이것이 우리 곁에 이문세가 아직도 이문세일 수 있는 핵심적 이유다.
그는 최근 케냐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곳에서 해발 5,190m의 산을 올랐다고 했다. 물론 예순을 바라보는 육체는 그에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상관없어요.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거든요. 비록 끝까지 오르지 못했지만, 4,300m라는 제 한계까진 완수했어요. 제 삶이 그래요. 지금 삼시 세끼 굶지 않고, 사회적으로 저를 멋있는 사람이라고 추어올려준다 해서 거기에 안주할 생각이 없거든요.”
어제는 1분 스트레칭으로 몸이 풀렸는데, 오늘은 2분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문세의 눈은 나를 비롯해 훨씬 더 젊은 청춘과 함께 세월을 보내고 싶다는 갈망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의 영웅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가수 이문세는 언제까지나 저희 앞에서 노래해줄 거죠?”라고. 그렇게 해주겠다는 답변을 기원하는 물음이었다. “그건 제가 물어봐야죠. 언제까지 제가 노래해도 될까요? 이제 그만하고 내려갈까요?”라고. 아니, 우리는 그의 귓전에 흥겨운 ‘휘파람’을 불 것이다. 그게 우리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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