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좋아해요?
봄이 제일 좋아요.
우리 지난겨울에 만났어요. 지난해 1월이에요.
벌써 1년이 넘은 거예요? 시간 정말 빨라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영화를 여러 편 찍었죠?
지난해에는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를 찍었죠. 촬영한 영화가 두 편 더 있어요. <마리오네트>랑 <원더풀 라이프>. 올해 개봉할 예정이고요. 지금은 드라마 찍고 있어요. 곧 방송될 거예요. <터널>이라는 드라마예요.
머리는 새 드라마 때문에 짧게 자른 건가요?
새로 맡은 역할이 일만 하는 여자거든요. 웃지도 않고, 서늘하기만 한. 자르길 잘한 거 같아요. 거추장스러운 걸 걷어낸 기분이에요.
드라마를 하고 싶었나요? 드라마 출연은 처음이잖아요.
그냥 딱 이런 게 하고 싶은 시기에 만난 작품이에요. 영화랑 드라마가 다르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괜찮네요. 적응하는 중이에요. 너무 어려운 역할을 맡았어요. 좀 고민이에요.
어둡고 서늘하고 속을 알기 어려운, 뭔가를 보여주기 어려운 캐릭터이더라고요.
무감각해 보이는, 정상적이지 않은, 이상해 보이는 캐릭터이기도 해요. 처음부터 자신 있는 캐릭터는 전혀 아니었어요. 나랑은 안 맞을 것 같기도 했고요. 역시나 어려워요.
시놉시스에 뭐라고 쓰여 있었는데요?
‘예쁘다’요. 하하. 어둡지만 예쁘고, 냉철하지만 예쁘고, 이지적이고 묘하면서 예쁜 캐릭터래요. 큰일 났어요. 예쁘다는 말이 제일 부담스럽더라고요. 아, 어떻게 해야 예쁜 여자를 연기할 수 있는 걸까요? 그리고 무감각해 보인다는 말도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무감각함’을 연기해야 한다니, 묘하네요.
그래서 잘해보고 싶어 도전했거든요. 어려워요. 감정 없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잖아요. 사람들이 좀체 공감하기 어려울 테고요. 어쩌면 이 여자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감정을 느끼지만 드러내지 않으려 계속 버티는 것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해보고 있어요. 저는 모든 작품이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예요.
쉬운 거 선택해본 적 없죠?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니, 수월해 보이는 역할은 하나도 없더라고요. 스펙트럼도 넓고요. <봄>의 민경은 백짓장 같았죠. <간신>의 설중매는 ‘파격’ ‘도발’이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고요. <그놈이다>에서는 죽음을 보는 소녀가 되었다가,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선 속을 알기 힘든 여자를 연기했어요.
쉬운 거 너무 하고 싶어요. 하하. 쉬운 역할이 안 들어와요. 쉽다고 하면 좀 그렇고요.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느낄 만한 것들이 절대 안 들어오더라고요. 아, 그런데 제가 늘 새로운 걸 좇나 봐요. 평소에도 그런 편이에요. 이미 해본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하고 싶고, 자꾸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고요. 작품 선택할 때도 그런 편이에요.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서, 익숙하지 않은 것에 손을 뻗죠.
평소 말투와 행동은 참 여리여리한데, 일에는 강단이 있나 봐요. 가장 편하게 한 역할은 뭐였어요?
<봄>의 민경이요.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됐어요. 존재 자체로 말하는 인물이었죠. <터널> 전에는 <간신>의 설중매가 제일 어려웠는데 <터널>의 신재이가 기록을 갱신했어요.
1년 전에 만났을 때보다 부쩍 차분한 느낌이에요. 신재이에 빠져 있는 상태라 그럴까요?
제가 어떨 때는 되게 차분해요. ‘조울’의 간극이 커요. 어쨌든 우울한 건 별로 안 좋아해서 벗어나려고 애쓰기는 하는데요.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우울하게 있고는 해요. 방법을 모르겠어요. 그럴 때 가끔 ‘미드’를 보기도 하는데….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다고 했어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개봉할 때 한 인터뷰에서요.
맞아요. 그 영화 촬영하면서 실제로 술 마시고 연기를 했어요. 술 마시면 막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래요. 술 좋아해요. 이태원에서 단짝 친구가 바를 운영해 요즘은 그곳에 자주 가요. 분위기 되게 좋아요. 오늘 거기에서 인터뷰해도 좋았겠다. 그곳에서는 맥주 마시면서 친구들이랑 이야기하고, 안쪽 방에서 영화도 봐요. 보통 그렇게 놀아요. 노래방도 가고요.
노래방도 가요?
진짜 자주 가요. 랩도 하고요. 드렁큰 타이거 노래부터 힙합, 발라드, 댄스곡… 있는 노래 없는 노래 다 불러요. 일행이 너무 많으면 잘 못 부르고요. 부끄럼을 엄청 많이 타서요.
“연애는 좀 해봤거든요”라는 말도 했더라고요. 연애하면 어떤 사람이 돼요?
애교 많아요. 정말 많아요. 연애 시작하면 상대에게 많이 의지하고, 푹 빠지는 편이에요. 상대에게 영향도 많이 받고요. 그 사람을 닮아가요. 상대편이 내게 흡수되기보다, 항상 내가 상대에게 흡수되는 편이더라고요. 내 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런 걸까요? 친구를 만나도 그래요. 저는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져요. 그러니까 혼자 있을 때의 내 모습이 진짜 나인 것 같아요. 상대에게 애교를 부리면, 그 사람이 나를 귀여워하잖아요. 그럼 이렇게 말해요. “이건 원래 내 모습이 아니다. 원래 나는 이렇지 않다”고요. 하하.
홍상수의 영화 속 여자들은 일단 의뭉스럽잖아요. 각각 다른 의뭉스러움이 있죠. 그중 이유영이 보여준 소민정의 의뭉스러움은 뭐랄까, 개인적으로는 조금 통쾌했어요.
촬영하는 동안은 이 여자가 그래서 결국 어떤 여자인지 결론지을 수 없었어요. 순간적인 상황만 보고 연기했죠. 도대체 이 여자는 뭘까? 싶어서 감독님께 계속 물었어요. 원래 궁금하면, 잘 묻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일단 찍어보자고 하셔서 물어보는 걸 포기했죠. 나중에 완성된 영화를 봤는데, 초반부의 민정이를 보고는 막 눈살이 찌푸려지더라고요. ‘왜 저래?’ 하면서요. 아무튼 독특한 캐릭터였어요. 전엔 생각도 못해본 캐릭터요.
실제 이유영은 그런 의뭉스러움과 거리가 먼가요?
속을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해요. 4차원이라고도 하고요.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어떤 것 같아요?
속이 잘 안 보이긴 해요. 그런데 일부러 숨기려는 것 같지는 않아요.
생각해봤거든요. 저는 살면서 제 의도와는 달리 흘러간 상황이 많아요. 제 안에 있는 것을 명확히 표현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정말 말 한마디도 못했어요. 낯가림이 너무 심해서요.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기절할 정도로요. 그런데 연기를 시작하고는 많이 변했어요. 180도 변한 것 같아요.
단편 영화를 포함하면 그래도 3년 동안 꽤 많은 영화에 참여했잖아요. 카메라 앞에 서면 달라지나요?
얼굴에 철판이 깔려요. 하하. 연기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감정 기복이 생긴 것 같아요. 이전의 저는 화라는 걸 몰랐거든요. 사람들이 화내는 걸 보면, 왜 화를 내지? 싶었거든요. 욕심도 없었고요. 지금은 아니에요. 감정의 문이 죄다 열린 것 같아요.
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 드는 건가요?
맞아요. 그런데 배우는 사람들이 어떻게 봐주느냐가 중요한 직업이잖아요. 눈치도 좀 생겼어요. 저는 원래 눈치 보며 사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본연의 성격과 ‘눈치를 봐야 하는’ 상태가 부딪히면서 좀 힘들긴 해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실제 제 모습은 그렇지 않으니까. 제가 원하는 대로 보였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보이고 싶은데요?
아, 그건… 사실 비밀이에요. 아무도 몰라요. 친구들도 몰라요. 저만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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