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추운 날에는 배우가 참 극한 직업이구나 싶다. 아직 겨울 칼바람이 가시지 않은 2월의 어느 날, 이동욱은 얇은 재킷을 걸치고 ‘여기는 지금 LA야’라는 포토그래퍼의 주문에 맞춰 마치 캘리포니아에 온 것 같은 평안한 표정으로 촬영하고 있다. 지나가던 젊은 여성들이 이 광경을 보고 발길을 멈췄다. 이동욱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키는 훤칠하고 피부는 새하얗고 무엇보다 시커먼 패딩 군단 사이에서 혼자서만 발랄한 색 봄옷을 입고 있으니까.
‘어머, 저승사자다!’ 짧은 감탄과 함께 스마트폰을 꺼내지만 워낙 많은 스태프들에 둘러싸여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곤 아쉬워한다. 따뜻한 히터가 나오는 실내에서도 이동욱을 향한 호기심 어린 시선은 많았다. 촬영이 끝나길 기다렸다 사인을 받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하지만 설렘이 가득 묻어나는 얼굴로 사진 촬영을 요청하기도 했다. 1999년에 데뷔했으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회자되는 인기 드라마에 주인공 역을 많이 맡았으니까, 이런 일들은 이제 그에게 일상이 됐을 거다.
오랫동안 봐와서 아는 사이처럼 친근하다가도 막상 홀로 낭창낭창하게 걷는 모습을 보니 너무 연예인 같아 섣불리 아는 척을 못했다. 그의 날렵한 체형과 날카로운 턱선을 보고 있자니 올해는 반드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각오도 샘솟는다. 먼 발치에서 바라보다 용기를 내 가볍게 인사를 건네자 그 큰 키를 반으로 접으며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미소를 짓는다. 보는 사람이 괜히 수줍어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게 되는 그런 미소다. 키 크고 잘생긴 이 배우는 끝날 거 같지 않게 지루하던 겨울, 우리 모두를 TV 앞으로 집합시킨 드라마 <도깨비>를 통해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귀여웠다가 설레었다가, 쓸쓸했다가 슬펐다가. 자꾸 호기심이 생기고, 보고 싶어지는 이동욱의 새로운 매력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드라마가 끝나버렸다. ‘쫑파티’까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던 화제의 드라마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이동욱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랑을 만끽하면서도 크게 흔들리는 법이 없다. ‘대중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느냐’보다 ‘내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게 연기를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지난 19년간 수많은 부침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헤매다 현실로 돌아온 그가 엄청나게 뜨거운 요즘의 하루하루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야기한다.
덕분에 올겨울을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보냈다. 금요일과 토요일에 <도깨비>를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 열심히 살았다. 나처럼 드라마가 끝나서 좀 섭섭하지 않나? 중요한 일과가 끝나버렸으니 말이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마음 놓고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근데 그게 또 나쁘진 않다. 드라마가 잘된 만큼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요즘 너무 바빠서, 한가할 때가 그립겠다.
작품에 출연하지 않을 땐 진짜 단조롭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다. 매니저가 10시쯤 와서 깨우면 아침 먹고 같이 운동하러 간다. 돌아와서 늦은 점심이나 이른 저녁을 먹고 약속이 있으면 외출하는 정도다.
<나 혼자 산다>에는 출연 못할 거 같은데? 재미없어서.
아마 방송 분량이 안 나올 거다. 염려되는 점도 있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룸메이트>를 해봤기 때문에 스태프들이 우리 집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안다. 거치 카메라를 설치하는 순간 끝이라고 보면 된다. <룸메이트> 촬영한 집 수리비가 얼마나 나왔는지 알고 있어서 절대 나를 그 프로그램에서 볼 일은 없을 거다. 하하.
이 작품을 하는 동안, 또 마친 후에도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은숙 작가에게 ‘저승사자’ 역을 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기사로 접했는데, 사실인가?
약간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어서 그 기사를 읽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일단 내가 먼저 작가님에게 ‘저승사자’를 연기하고 싶다고 말씀드린 건 맞다. 하지만 ‘이미 김은숙 작가가 정해놓은, 마음에 둔 배우가 있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해당 기사가 나가고 난 뒤 작가님이 몹시 미안해하면서 전화를 하셨다. 나는 <도깨비>의 시놉시스가 나오기도 전, 공유 형이 ‘도깨비’ 역에 캐스팅되기도 전에 트리트먼트만 나온 상태에서 ‘이건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찾아간 거다. ‘저승사자’가 참 매력 있는 캐릭터인데, 내가 하면 잘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스토리 라인도, 판타지라는 장르도, 그리고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한 집에서 살고 있다는 설정도 다 좋았다. 꼭 이 배역을 맡아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저승사자’의 어떤 점에 강렬하게 끌렸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
<도깨비>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어떤 드라마의 주인공 역할을 제안받았다. 결과적으로 그 드라마가 꽤 잘됐다. ‘아, 그 작품을 할 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약 20분 정도 들었다. 하하. 하지만 <도깨비>에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게 더 많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최소 1인 2역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전생 이야기, 그로 인한 도깨비와의 갈등 같은 극적인 요소가 13회 정도쯤에 나오니까 그때까지 차곡차곡 쌓아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마음껏 보여준 것 같다. 마지막 회에 5~6분간 나온 환생한 ‘이혁’ 형사 캐릭터까지 1인 3역을 해낸 것도 뿌듯하다.
이번 역할을 통해 이동욱을 다시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허우대는 멀쩡하게 잘생겨서, 순진하고 귀여운 저승사자를 너무도 잘 연기한 덕이다. 이런 귀여운 캐릭터를 연기한 건 처음이지 않나?
드라마를 통해 나의 새로운 면을 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어리바리한, 순수한 모습을 연기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번 작품은 정말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새삼 해주시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대중의 반응과는 별개로 나 스스로는 아쉬운 점이 있다. 전작에서 연기한 캐릭터들 역시 열심히 연구하고 애썼다. 내가 데뷔한 지 올해로 만 18년이 됐고 이제 19년 차인데 ‘재발견’이라고 해주시니 ‘지금까지 내가 한 노력이 모자랐나?’ 싶기도 하다. 물론 드라마 시청률은 내가 좌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깊게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쨌건 지금의 사랑에 굉장히 만족하고 감사한다.
촬영 현장을 보니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하는 것 같더라. 대부분의 촬영 현장에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 편인가?
항상 전제는 감독님과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 내가 독단적으로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는다는 건 어찌 보면 월권일 수 있다. 이번 드라마는 이응복 감독님께서 굉장히 열린 마음으로 나를 믿어주셨다. 예를 들면 어린 ‘왕여’가 보석함을 집어던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이응복 감독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나라면 어떻게 던질 것 같은지, 직접 보여달라고 하시면서. 내가 시범을 보였고, 그게 실제 장면에 반영됐다. 그 정도로 나를 믿고 의지해주셔서 감사했다.
배우들끼리 합이 정말 좋던데? 찬란하고 쓸쓸한 도깨비의 이야기인데도, 웃기는 장면이 많았다.
극 후반부에는 공유 형과 애드리브가 난무하는 촬영을 했던 것 같다. 하하. 배우들 모두 즐겁게, 마음껏 놀았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는 김은숙이라는 ‘창조주’가 만든 세계관 안에서 정말 신나게 잘 놀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공유와의 ‘브로맨스’도 신선했다. 서로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게 화면에서도 묻어났다.
공유 형이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결정했을 때 내가 먼저 형에게 이야기했다. ‘형과 경쟁하려고 이 작품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이다. 사실 뭐 내가 경쟁하고 싶다 해도 그럴 만한 깜냥도 안 되고. 하하. 드라마 하는 동안 형을 잘 돕고 또 우리 둘이 호흡이 잘 맞아서 시청자가 즐겁게 봐주길 바랐다. 형은 역시나 형답게 ‘동욱이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나는 어떤 것이든 받아줄 수 있으니까 마음 놓고 연기하라’고 격려해줬고. 그래서 첫 촬영부터 마음이 너무 편했다. 우리 둘 다 이미 예전부터 잘 아는 사이고, 군 생활도 같이 했지만 한 작품에서 같이 연기하는 건 또 다른 문제 아닌가. 초반에 서로 속내를 털어놓고 시작해서인지 정말 즐거운 촬영이었다.
후반부에는 애드리브도 난무했지만, 눈물도 정말 많이 흘리지 않았나?
‘저승사자’보다 ‘왕여’ 분량을 먼저 촬영했기 때문에 대강 이런 흐름으로 가겠다고 예상은 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울 줄은 몰랐다. 하하. 내가 지금까지 한 작품 중에서 제일 많이 울었다. 그건 정말 확실하다. 그래서 작가님께도 여쭤봤다. ‘너무 많이 우는 거 같은데, 이렇게까지 울어야 하나요?’라고. 그런데 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시더라. 막상 대본을 보면 또 눈물이 나기도 했고. 그래서 눈물에 대한 변주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내 똑같은 표정으로 울 수는 없으니까. 눈에 머금었다 흘리기도 하고,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슬픔에 빠진 왕의 모습을 연기했다. 사극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말이 많더라. 차기작으로 사극을 적극 추천하고 싶은데, 어떤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가 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가 시켜줘야 하는 거다. 사극 분량을 찍을 때 스태프들이 전부 ‘다음 작품은 무조건 사극이다’라고 얘기해줬다. 카메라 감독님도 꽤 잘 어울리고 멋지다고 말씀해주셨고. 사실 나는 현장에서 모니터를 하지 않는 편이다. 모니터해봐야 내 눈엔 부족한 것만 보여서 감독님이 오케이라면 나도 오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왕여’로 분한 내 모습을 방송을 통해 처음 봤다. 예상외로 잘 어울린다는 칭찬에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편집의 힘도 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아주 짧게 등장해서 임팩트를 줬으니까. 물론 차기작으로 사극 제의가 온다면 적극 고려할 거다.
모든 드라마는 극 중 인물이 어떤 사건을 겪고 성장하면서 끝을 맺는다. ‘저승사자’는 무엇을 깨닫고 어떻게 성장했을까?
‘왕여’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모두에게 사랑받은 존재였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도 깨닫지 않았을까? 나는 ‘왕여’의 캐릭터를 보면서 기형도 시인이 쓴 ‘질투는 나의 힘’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대본을 보면서 이 시를 읽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극 중 배역을 떠나 나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배우는 꽤 냉정한 직업이다. 늘 누군가에게 보이고, 그 모습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항상 나도 모르게 위축되고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만 내 눈에 들어오고 그랬다. 이제는 좀 더 자신 있게, 나를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평소엔 굉장히 솔직하고 담백한 성격 같다. 그런데 이 드라마처럼 극도로 낭만적인 작품을 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이전보다 좀 말랑말랑하게 되지 않나?
나는 언제나 낭만적이었다. 하하. 개인적으로도 그랬고, 작품 안에서도 늘 낭만을 추구해왔다. 그렇게 서로 마음을 주고받고 사랑하는 것이 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계속 연애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30대 후반에 가까워지다 보니 자꾸 신중해지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 나이에 등 떠밀리고 싶진 않다.
사실 매번 모든 작품에 최선을 다했을 텐데, 반응이나 평가는 엇갈리기 마련이다. 모든 게 다 좋을 순 없으니까. 그런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이나?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이번 작품처럼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면 오히려 떠나보내기가 편하다. 왜냐하면 내가 아니라도 많은 분들이 계속해서 이 드라마와 내 캐릭터를 기억해주고 사랑해줄 테니까. 그런데 그렇지 못한 드라마나 캐릭터는 더 안쓰럽고 미안하고 그렇다. 더 많은 분들이 봐주셨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하고. 한 번도 허투루 한 적은 없는데 결과는 매번 좋을 순 없더라. 그럴 때는 시간이 약이고 술이 답이다. 하하. 될 수 있으면 드라마 끝나고 관련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렸을 때는 헤어 나오기가 너무 힘들더라고. 그 자체가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 같아서 그냥 ‘나’로 돌아가려고 한다. 친구들 만나면 즐겁게 웃고 놀면서 잊는 거지.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스스로 ‘침체기’라고 부를 만한 때가 있었나?
군 제대를 하고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 출연했는데,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나름 성공적인 복귀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작품 <난폭한 로맨스>는 내가 정말 신나서 도전한 캐릭터였는데, 더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해 아쉬웠다. 그때부터 한 3, 4년 정도는 침체기였던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 <룸메이트>에 출연하면서 조금 환기하는 계기로 삼자는 생각이 컸다. 대중의 반응은 차후 문제였다.
일단은 나 스스로 뭔가를 털어내고 편해지고 싶다는 마음에 연기가 아닌 다른 분야에 도전해보자고 생각했던 거다. 2015년에 드라마 <풍선껌>을 하기 전까지 늘 마음을 졸였다. ‘또 시청률이 안 나오면 어떡하지? 또 외면받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예전에 <룸메이트>에서도 얘기한 적 있는데 드라마 첫 방송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는 늘 같은 악몽을 꿨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웃으면서 손가락질하는 꿈을 꾸고 일어나면 등골이 서늘하다. 3, 4년 정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다가 <풍선껌>을 통해 회복했다.
이 작품 역시 시청률이 잘 나온 건 아니었지만 만드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했다. 내일도 <풍선껌> 팀을 만나기로 했다. 배우들과 감독님, 작가님 포함해 18명이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쉬지 않고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행복하고 마음 편하게 작업하니까 그때부터 좀 풀리는 것 같더라. 물론 결과가 좋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즐거운 과정을 겪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1년 후에 <도깨비>로 많이 사랑받게 됐으니까, 정말 다행이다.
사실 19년 차 배우라 이런 과정을 담담하게 느낄 줄 알았다. 굳은살처럼 딱딱해지지 않았을까 했는데, 전혀 아니었네.
제일 굳은살 많이 박힌 건 ‘쫑파티’다. 늘 같은 패턴이다. 같은 시간에 다 함께 모여 고기와 술을 먹고, 같은 대화를 하니까 이제는 쫑파티가 진짜 재미없다. 뭐가 됐던 술 먹고 누구 하나 싸우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오늘 이동욱을 만난다고 하니까 오랜 팬을 자처하는 이가 이런 말을 전했다. 그녀가 말하길 ‘이동욱 오빠는 얼굴값을 못한다. 나 같으면 그 외모로 훨씬 재미있고 즐겁게 놀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족을 먼저 챙기고 일에 대한 고민만 하는 것 같다. 이제는 좀 더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제는 동생도 결혼했고 부모님도 안정적으로 잘 계시니까 지금이라도 내 것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한다. 재미있게 놀고 싶다고 생각한 지는 1, 2년 정도 됐다. 아무래도 지금보다 더 나이 먹어서 놀면 주접 떠는 게 될까봐. 하하. 이제는 편하게 생각하고 놀아보려고 했는데 <도깨비> 덕분에 갑자기 또 불편해졌다. 전에는 사람들이 내가 어딜 가도 이렇게까지는 신경을 안 썼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어딜 가도 사진을 많이 찍힌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몇 달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사이클이 항상 있더라고. 드라마가 잘되면 당연한 수순이니까, 일단 지금은 얌전히 있어야 할 거 같다. 또 바빠서 놀 시간도 없고. 하지만 편하게, 즐겁게 살자는 생각은 분명히 있다.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작품에서 보는 것과 너무나 다른 배우가 있다. 반면에 항상 자기처럼 연기하는 배우도 있고. 내가 느끼기에 이동욱은 항상 본인의 모습에서 조금씩 변주하는 배우 같은데, 어떤가?
기본적으로 모든 캐릭터에 인간 이동욱의 모습이 조금씩은 깔려 있다. 내 우물은 한정되어 있는데 자꾸 퍼 쓰면 다 말라버리니까 어떻게든 새로운 걸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4차 산업혁명을 찾고 있다. 같은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하는 걸 피하려고 하는 이유도 내 안에 매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성격과 극명하게 반대되는 캐릭터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영화도 한 서너 편 출연한 경험이 있다. 요즘 ‘사나이’들 나오는 한국 영화가 많이 개봉하는데, 한번 출연할 때도 됐지 않나?
열린 마음이다. 드라마 제작 환경도 영화와 다를 것이 없어서 적응하는 데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영화를 필름으로 찍던 시절부터 해왔다. 롤 갈고 이러는 것도 안다. 하하. 영화야말로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되는, 한 20~30분만 나와도 좋을 것 같다. 그 짧은 순간 안에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쏟아부을 수 있으니까. 단편 영화나 작은 규모의 독립 영화도 관심이 많은데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는다. 하하. 이번 드라마 끝나고 나서 설 연휴 때 우리 회사 상무님이 검토해보라고 시나리오를 산더미만큼 가져다주셨는데 아직 눈에 들어오는 걸 찾지 못했다. 아직까지 <도깨비>의 여운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작년 말과 올해 초는 <도깨비>로 이미 다 이룬 셈이다. 아직 남은 2017년은 어떻게 해야 잘 보내는 걸까?
원래 나는 한 해 계획 같은 거 세우지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방학 생활 계획표를 짰는데,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았을 때부터 부질없는 일이라고 느꼈다. 이건 참 무의미하구나, 깨달았다. 결국 지키지도 않을 거, 나와의 약속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싶더라. 다만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회사에서 알아서 계획을 다 세워놓더라고. 6월까지는 팬들을 만나는 아시아 투어가 잡혀 있다. 시키는 대로 묵묵히 하려고 한다. 물론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차기작 선정이다. 그게 언제나 내 마음속 1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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