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유영국은 1970년대 중반, 예순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조형 실험에 몰두했다. “60세까지는 기초 공부를 좀 하고 그 이후에는 자연으로 좀 더 부드럽게 돌아가리라”고 생각하면서. ‘반백세’를 훌쩍 넘기까지 “기초 공부를 좀 한다”는 마음으로 화폭 앞에 앉은 것이다.
유영국은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었고, 이 땅의 자연과 교감했다. 수행자와 같은 태도로 아름답고 고요한 산수를 그렸다. 그의 캔버스 위에서 이 나라는 붉고 퍼렇다. 깊은 계곡과 붉은 노을이 있으며 바다가 있고 산맥이 있다. 어느 하나 사실적이지 않으면서도, 모두 분명하게 보인다. 유영국은 산, 둔덕, 계곡, 노을 등 마주하던 자연의 요소들을 추상화해나갔다. 형태는 단순하게, 색채는 절묘하게, 표면의 질감을 살려나갔다.
노랑, 빨강, 파랑을 기조로 보라, 초록 등을 변주하며 캔버스를 채웠다. 그의 작품에서 빨강은 밝은 빨강, 진한 빨강, 깊이 있는 빨강을 오가며 미묘한 차이를 품는다. 그 변주는 탄탄하고 조화롭다. 강렬한 색채의 선과 면에는 깊은 어둠이 서렸다. 유영국의 화폭이 지닌 특유의 장엄함은 이것으로부터 온다.
유영국의 고향은 울진의 울울한 산골이다. 그는 1930년대에 ‘모던’과 ‘코즈모폴리턴’의 도시였던 도쿄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추상’은 그 당시 도쿄에서 가장 전위적인 미술 운동이었다. 도쿄에서 추상 미술이 움트던 그때에 유영국의 추상 작업도 시작됐다. 유영국은 한때 어부였고 양조장 주인이기도 했다. 또 평생을 화가로 살았다. 생계를 유지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는 동시에, 매일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꾸준하고도 규칙적이었다. 노동의 결과물로 유화를 4백여 점 완성했다.
삶에 대한 감각 역시 고고하고 탁월했던 유영국은 미술계에서 수많은 존경을 받아왔다. 대중에게는 상대적으로 관심받지 못한 그를 국립현대미술관이 다시금 조명한다. 그의 탄생 1백 주년을 기념해 전시 <절대와 자유>를 개최했다. 그의 생전과 사후를 통틀어 가장 큰 전시다. “자연으로 좀 더 부드럽게 돌아간” 그의 최절정기인 1960년대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유영국이 완결한, 묵직한 아름다움과 에너지를 목격할 수 있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관을 활용하여 개최된다. 3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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