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ighter
볼프강 틸만스의 사진집. 흑백 복사기로 출력한, 어느 청년의 모습이 커버다. 고백하건대 소유욕과 과시욕으로 샀다. 그의 사진 하나쯤 가지고 싶었거든. 볼프강 틸만스는 늘 경계 없이 작업했다. 일상을 기록한 사진, 촬영을 거치지 않고 현상과 인화 과정만을 거친 추상 작업 사이를 넘나들었다. 그는 사진 이상의 것을 만든다. 아니, 사진이라는 경계가 그의 세계에선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책에는 볼프강 틸만스가 추상 작업으로 서서히 영역을 넓히던 시기의 작업이 실렸다. 이수혁(문화 기획자)
2 Less and More
디터 람스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하얗고 하얀 책이다. 디터 람스와 브라운의 직원이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기준을 세우고 상품을 디자인하고 제조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디터 람스가 직접 쓴 글은 그의 디자인 철학을 심도 있게 전달한다. 이 책은 베를린 출판사 게슈탈텐에서 개정판으로 출간했다. 심혈을 기울인 자취가 곳곳에 역력하다. 군더더기 없이 단단하다. 박한솔(회사원)
3 Super Normal
무인양품에서 만든 스테인리스 벽장에 뻔히
<슈퍼 노말>을 꽂아뒀다. 무인양품 디자이너인 나오토 후카사와와 영국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이 평범해 보이는 물건들을 평범하지 않은 시각으로 눈앞에 펼쳐내는 책이다. 페이지마다 돋보이는 여백에선 순결한 기백마저 느껴진다. 윤민혁(마케터)
4 Los Angeles Apartments
에드 루샤가 로스앤젤레스의 건물들을 찍었다. 책에는 그 연작을 실었다. 커버를 장악한 에드 루샤의 캘리포니아 미학은 매혹적이다. 그는 색조와 활자에 골몰했다. 그가 그린 아름다움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언제나 자랑스럽게, 벽장 위에 전시용으로 둔다. 보여주고 싶어서. 김범철(비주얼 아티스트)
5 1984
펭귄클래식이 펴낸 <1984>를 나는 그 어떤 <1984>보다 더 자세히 읽었다. 커버에 음각으로 새긴 제목을 손가락으로 훑으면서. 펭귄클래식은 제목 ‘1984’를 아예 검은 네모로 가려놓았다. 책을 비스듬히 뉘어야만 음각으로 새긴 제목이 보인다. 펭귄클래식의 오리지널 컬러인 오렌지 커버도 좋았다. 이 멋진 표지에 대한 견해는 전 세계인이 비슷한 것 같다. 구글링을 하다 보면 ‘Most Brilliant Book Cover’란 찬사를 곧잘 볼 수 있다. 김재석(소프트웨어 엔지니어)
6 The Monocle Guide To Better Living
단단한 개나리색 커버는 지금 내 책장에서 제일 밝게 빛난다. 이 두툼하고 묵직한 책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면, 아마 그럴싸한 까닭을 대지 못할 것이다. 당장 읽어야 할 책은 아니었다. 꼭 읽어야 할 책도 아니었다. 반드시 소유해야 하는 인생의 콘텐츠가 실린 것도 아니었다. 이 책은 시의성과 유행에서 비껴나 있다. 마치 문학 작품처럼 말이다. 다만 언제나 가치 있을 주제를 탐구한다. 더 나은 삶을 사는 법 말이다. 김승민(회사원)
7 Umbra
피비아너 사선이 그린 그림자를 보며 자주 사색에 잠긴다. 그가 이 사진집의 이름으로 쓴 ‘Umbra’는 절대적 그림자라는 뜻이다. 빛을 전혀 받지 못해 아주 깜깜하게 나타나는 그림자. 모든 페이지의 장면에는 극적인 긴장감이 도사린다. 빛, 그림자, 색을 극적으로 쓰고 능숙하게 편집해 만든 이미지가 드라마틱하게 이어진다. 그 속에는 피비아너 사선이 평생 주제로 삼는 불안과 갈망,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억이 숨어 있다. 박현기(마케터)
8 Lubalin
허브 루발린은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디자이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타이포그래퍼이자 아트 디렉터였던 그는 광고, 편집 디자인, 심벌, 서체, 포스터, 패키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막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작업과 생을 모두 고찰할 수 있는 이 책을 나는 ‘내 인생의 바이블’이라 부른다. 감각적인 컬러와 재질, 디자인은 허브 루발린을 쏙 빼닮았다. 김형준(그래픽 디자이너)
9 생전 유고 / 어리석음에 대하여
어느 날 운명처럼 이 책을 만났다. 워크룸프레스가 문학 총서 ‘제안들’로 펴낸 로베르트 무질의 <생전 유고 / 어리석음에 대하여>. 적막처럼 검은 옷을 입고 나를 구원하러 온 이 책을 기점으로 두 권의 ‘제안들’을 더 들였다. 앙리 보스코의 <이아생트>와 조르주 바타유의 <불가능>을 검은 책 옆에 어울리도록 두었다. 볼 때마다 좋다. 고중훈(대학원생)
10 세계와 바지 / 장애의 화가들
워크룸프레스와 사뮈엘 베케트라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워크룸프레스는 지난해부터 사뮈엘 베케트의 시와 평론, 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사뮈엘 베케트를 드러내기 위한 작은 힌트를 찾던 중 그의 소설 <몰로이>에 등장하는 ‘입에 넣고 빠는 돌’에 주목했다. 돌의 이미지로는 EH(김경태)가 촬영한 사진을 사용했다. 커버에 표현된 문자적 정보는 사뮈엘 베케트의 이니셜 S와 B뿐이다. 조범수(데이터 분석가)
11 Survey
매일 아침, 플로리다에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침대맡 벽장에 둔, 이 스테판 쇼어의 사진집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책 커버로 쓰인 플로리다의 어느 수영장 사진 때문이다. 1977년에 촬영된 사진이니 아마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햇빛을 받아내며 투명하게 일렁이는 수영장에 반쯤 몸을 담근 채 서 있는 여자의 뒷모습은 언제 봐도 여운이 길다. 스테판 쇼어의 색감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사진집에는 그가 1969년부터 2013년까지 찍은 대표작들이 실렸다. 문재원(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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