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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기억

1980년대생 아파트 키드들이 작은 출판물을 내기 시작했다. 재건축 대열에 들어 사라질 운명에 놓인 고향에 관한 기록이다.

UpdatedOn January 26, 2017

아파트 시대의 막이 오른 건 대규모 주공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다. 윤수일이 “쓸쓸한 너의 아파트”를 외치며 도시 젊은이들의 사랑과 고독을 노래한 ‘아파트’도 그 무렵 발표됐다.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일이다. 사람들의 주거지는 주택에서 아파트로 대거 옮겨갔다. 사는 모양도 바뀌었다. 아파트 시대의 태동기였다. 이제 그 시절 지은 주공아파트의 평균 나이는 서른을 훌쩍 넘었다. 성냥갑 같은 집의 군락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30대가 됐다. 이들에게 아파트란 변하는 계절의 속살을 가장 먼저 본 작은 자연이며, 갖은 색채의 장면을 남긴 자리였다. 그들이 말하는,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거나 사라질 주공아파트에 관한 기억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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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 주공아파트

Interview with 이인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시리즈 저자

이 아파트에 얼마간 살았나?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한동안 떠났다가 2014년에 돌아왔다. 도합 20년 정도를 이 아파트에서 보냈다. 그런데 이 정도는 이곳에서 양반이다. 둔촌주공아파트가 1979년에 지어졌으니까. 30년 넘게 산 사람들도 많다. 이곳이 그런 동네다. 재건축 이야기를 17년째 하고 있다.

어떻게 살았고, 어떤 기억이 있는가?

어릴 적에는 할머니, 부모님, 오빠까지 함께 살았다. 언제나 창밖으로는 하얀색 탑상형 아파트가 보였다. 봄이면 막 피어난 형광 초록색 나뭇잎이 맞은편 아파트 벽에 수북이 피었다. 종일 새소리가 들리고 햇빛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족과 살던 집에 이모가 이어서 살았고, 이모가 집을 비운 뒤 내가 들어왔다. 태어난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1인 가정이다. 고양이 3마리와 함께 산다. 이 모든, 내가 정말 좋아하던 경험을 지금 다시 하고 있다.

둔촌주공아파트는 어떤 곳이었나?

단지 전체가 하나의 동네 같았다. 실제로 둔촌1동의 면적 대부분을 둔촌주공아파트가 차지하니까. 동네라고 해도 무방하다. 단지 사이의 길, 상가, 놀이터, 체육센터 등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단지 안에는 둥글고 부드러운 선들이 곳곳에 형성됐다. 구릉도 있고, 길 하나도 오솔길처럼 곡선으로 이루어졌다. 대로에서 멀어지면 조용한 점이라든지 충분한 녹지 등 서민 혹은 중산층을 위해 공공 분양된 단지임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서는 굉장히 잘 만들었다.

아파트 안팎으로 군더더기가 없었다. 작위적인 부분 없이 담백하게 아름다웠다. 건축과 학생들이 공부하는 단지 계획의 교과서 같은 서적이 있는데 그 책에 둔촌주공아파트를 단지 계획이 굉장히 잘된 경우로 소개했더라. 동과 동 사이 공간도 넓어서 밀도가 낮다. 사람 사는 데 필요한 여유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이 시대에는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인드가 이후로는 사라진 것 같고.

이 아파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처음 이 책을 내면서 말했다. “둔촌주공아파트는 내 고향”이라고. 그 이야길 들은 어르신들은 놀랐다. 이 아파트를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다. 좋아서 이곳에 살고, 오래 살고, 아파트에서 못 살면 낙오되는 것으로 여겼음에도, 그들은 아파트를 회색 도시를 만드는 주범이라 했다. 나는 반문했다. “내가 본 아파트는 이렇게 푸른데, 왜?” 나는 아파트가 고향이고, 재건축이 진행되면 고향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것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꼭 아파트가 아니어도 자신이 살던 동네가 사라진 사람들은 많이 공감한다.

재건축은 현재 어떤 단계에 와 있는가?
아직 이주 공고가 안 났다. 재건축에 대한 주민 전체 협의안이 이제 통과되었다. 이제는 정말 시기의 문제다. 재건축은 될 것이다.

이곳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통해 그리울 때 찾아볼 수 있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사랑하는 조부모님의 영정 사진을 만드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 가장 화사한 모습을 아름답게 담고 싶었다. 이곳에 대한 책을 4권 냈고 프로젝트를 계속해나갈 테다.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는 모습까지만 담을 예정이다. 아파트가 점차 비어가는 모습까지만. 둔촌주공아파트는 건물과 건물 사이 대부분이 녹지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랬다. 다음에는 이곳의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려고 한다. 제목은 아파트 숲이다. 아파트가 빽빽한 숲이 아니라, 아파트에 바로 숲이 있다는 이야기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둔촌주공아파트가 지나온 삶의 모습을 기록하는 저널리즘 프로젝트. 최근에는 네 번째 에디션 <안녕, 둔촌주공아파트×가정방문>이 발간됐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만들어 온 이인규와 ‘가정방문’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주택의 외관과 내부를 영상으로 담아온 라야가 만나 둔촌주공아파트의 가정을 방문한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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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주공아파트

Interview with 이한진
<과천주공아파트 101동 102호> 저자

이 아파트에 얼마간 살았나?
과천주공아파트 1단지 101동 102호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았다. <과천주공아파트 101동 102호>는 그때 살았던 나의 집에 관한 기억과 과천주공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엮어낸 책이다. 과천주공아파트는 단지별로 시공사가 달랐다. 11단지까지 있었는데, 3단지와 11단지를 같은 유형으로 지었다. 1층을 짓고 2층에는 건축한 건물을 올려 쌓는 식으로 완성했다. 블록 형태로 만든 최초의 아파트였다고 하더라. 최초여서 실패했다. 층간 틈새가 약하다고 하더라. 3단지와 11단지는 이미 2008년에 재건축됐다.

어떻게 살았고, 어떤 기억이 있는가?
부모님, 누나와 함께 살았다. 1층에 살아 아파트 뒤에 기다랗게 조성된 잔디밭을 마당처럼 썼다. 날씨 좋은 날에는 그곳에 텐트를 쳤다. 텐트 안에서 누나는 책을 보고, 나는 주변을 뛰놀았다. 과천 시내는 읍내라고 부를 정도로 작았다. 면적은 넓지만 실제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은 얼마 안 된다. 과천은 그린벨트가 87%를 차지한다. 인구 7만에 마을 같은 도시이고 도시 같은 마을이었다.

박정희 정권 때 도시 계획을 세우고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 만든 동네다. 도시 계획에 반영한 두 가지 축은 전원도시와 근린주구. 근린주구의 핵심은 어린이가 길을 건너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생활권을 만드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이곳에서 길을 건너지 않고 살았다. 대신 굴다리를 지나다녔다. 길 밑으로 난, 차가 다니지 않는, 작은 굴다리.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야 하는 주요 건널목 아래로는 굴다리가 있었다. 10세 때까지 이곳에 살았고, 그때의 기억이라고는 1단지 전체와 초등학교 가는 길 정도다. 근린주구라는 도시 계획 지침이, 그렇게만 살아도 충분히 좋은 곳을 만들겠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과천주공아파트는 어떤 곳이었나?
정부 청사가 있는 도시여서 뭐든지 시범적으로 하는 일들이 많았다. 과천주공아파트는 1980년대에 지었다. 1단지 안에는 5층짜리 건물과 3층짜리 연립 아파트가 있고 태양열 아파트도 있다. 1980년대에 태양열 아파트라니 얼마나 신식인가? 1단지 안에 18개 동밖에 없는 주택형 아파트였다. 넝쿨이 외벽을 타고 자라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처럼 덮인 건물도 있다. 이번에 진행될 재건축에 이 주택들도 모두 포함된다고 하더라.

이 아파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따뜻한 자리. 과천에 아파트라고는 주공아파트뿐이었고 그런 풍경이 불과 7년 전까지도 남아 있었다. 나에게 아파트란 곧 과천이고, 과천에 있던 5층짜리 건물이다. 지금도 고층 아파트는 싫어한다. 과천주공아파트는 내 생애 유일한 아파트가 될 것이다. 주공아파트가 아니라면 아파트에는 다시 살고 싶지 않다. 지금 돌아와 거주하는 1단지가 없어지고 나면, 나에게 아파트는 없다. 지금은 재건축으로 사라진 3단지와 11단지의 사진을 찍어두지 못한 게 아쉽다. 그 두 단지의 재건축 소식을 20대에 들었는데, 그때는 그저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선다고만 생각했다. 30대에 들어서며 생기는 또 다른 감수성의 레이어가 있나 보다.

재건축은 현재 어떤 단계에 와 있는가?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조율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정상인데 최근 과천 1단지 조합장이 바뀌면서 급속도로 진행되는 중이다. 단지 모서리에 자리하는 상가를 제외하고 추진하게 됐다. 상가랑 계속 부딪히니까. 나무는 다 베었고 펜스를 쳐둔 상태다. 1단지에는 5층 아파트와 3층 아파트, 태양열 주택이 있는데 5층 아파트 주위로는 모두 펜스가 서 있다. 그 이후의 과정은 모르겠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아서, 보지 못했다.

이곳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
혼자 기억하기보다 함께 기억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과천주공아파트 1단지에 관해 말했지만 비단 이곳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책 발간을 위해 텀블벅 모금을 했다. 메시지로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누군가는 이 프로젝트를 보고 6단지를 기록하겠다고 하더라. 이거야말로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다. 올해는 과천주공아파트 내 3개 단지를 허물 거다. 누군가 또 기록해주었으면 좋겠다.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책에 이런 챕터가 있다.

‘몇 동 몇 호 살았어요?’ 이 물음이 핵심이다. 그저 사람들의 기억을 건드리고 싶었다. 그들이 살았던, 잊고 있었던 삶에 대한 기억 말이다. 순수한 기록물로 남기고 싶었다. 그 기록물이 담을 힘을 생각했다.

<과천주공아파트 101동 102호> 

2016년 하반기에 재건축이 시작된 과천주공아파트 1단지에 관한 기록물. 과천 신도시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과천주공아파트의 역사와 5층짜리 낮은 아파트를 보고 만지며 자란 기억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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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라야×김기수(둔촌주공아파트), 이한진(과천주공아파트)

201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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