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반갑다. 서울이 처음은 아닐 것 같다.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이다. 서울을 좋아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아니지만 쿨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람들.
편집숍 비이커에 대해 어떤 의견인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를 제외하면 매번 들렀다. 활기차고, 발랄하며 변화가 빠른 한국의 패션을 잘 보여주고 있는 매장이다. 랙앤본은 비이커 초창기부터 입점한 브랜드다. 우리 브랜드와 비이커 모두 4년간 진화해왔지만 캐주얼하고 실용적이며 쿨하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면에서 둘(랙앤본과 비이커)은 잘 어울린다. 이곳에서 우리의 브랜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 기쁘다.
비이커의 4주년을 맞아 함께 캡슐 컬렉션을 만들었다. 마치 비이커에게 주는 선물 같다.
맞다. 이 캡슐 컬렉션은 패션이나 트렌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 블루종, 스웨트 셔츠, 데님 팬츠 등 비이커의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구성했으니까. 여기에 랙앤본의 정체성을 더했다. 예를 들어볼까? 보는 바와 같이 거의 모든 옷이 인디고 컬러다. 비이커가 추구하는 ‘실용, 베이식’과 맞아떨어진다. 또 트렌드와 상관없이 언제든 멋진 색이다. 랙앤본 역시 인디고 컬러를 주로 활용한다. 브랜드의 큰 축이 데님 컬렉션이기도 하고.
랙앤본이란 브랜드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무엇일까?
진정성. 랙앤본은 트렌드를 1순위로 여기는 브랜드가 아니다. 우선 옷의 만듦새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옷은 최대한 미국 내에서 생산한다. 런웨이에 오르는 모든 의상은 뉴욕에서 만들고, 데님 라인은 LA에서 제작한다. 스웨터나 슈즈 등 몇몇 아이템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만들지만 다른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미국에서 생산하는 비율이 꽤나 높을 것이다. 그렇게 잘 만든 옷에 랙앤본만의 쿨한 이미지를 입히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당신의 브랜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셀러브리티가 있다면 누굴까?
2016년에 선보인 ‘맨즈 프로젝트’가 그에 대한 답이 되겠다. 배우 하비 케이틀, 존 터투로, 마크 해밀, 래퍼 위즈 칼리파, 아티스티이자 모델인 데이비드 알렉산더 플린 등이 바로 그들이다. 모두 각자의 시선이 있고, 스타일이 있다. 랙앤본이 존경하는 인물이자 친구들이다. 개성과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랙앤본의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맨즈 프로젝트’에 대해 물을 참이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쉽게 말하면 사진에 초점을 맞춘 장기 프로젝트다. 시즌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일회성 캠페인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디지털 매체에 등장하지만 아날로그 감성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었다. 그래서 패션 사진가 대신 포트레이트 전문 사진가를 섭외했고, 필름 카메라로 작업했다. 또 모델이 될 인물들에게 각자의 방식대로 사진을 꾸미도록 했다. 일례로, 위즈 칼리파의 사진은 그가 랙앤본 컬렉션 중에서 고른 옷을 입고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찍은 것이다. 멋진 사진이 여럿 나왔고, 모두 자연스럽다. 그들이 사진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아주 흥미로웠다.
비이커와 랙앤본
비이커는 4주년 생일을 맞아 랙앤본과 손을 잡고 협업 컬렉션을 발표했다. 스웨트 셔츠와 데님 팬츠, 블루종 점퍼 등 실용적이고도 세련된 아이템 위주로 구성되었다.
문화적인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이를테면 ‘휴스턴 프로젝트(The Houston Project)’ 같은 것.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꽤나 오래된 프로젝트다. 시작한 지 5년 정도 됐다. 휴스턴 가에 있는 랙앤본 매장의 빈 벽을 활용해 스트리트 아티스트를 후원하는 내용이다. 이미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매장의 벽을 통해 작품 활동을 했다. 꼭 그래피티 같은 스트리트 아트가 아니더라도 예술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고, 호응을 해주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아티스트를 직접 고르나?
그런 셈이다. 애초엔 페이스북으로 정했다. 랙앤본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아티스트를 초대해 그들의 아이디어를 제출하도록 했고, 그 결과물을 방문자들이 보고 직접 투표하는 방식으로 아티스트를 선정했다. 그런데 페이스북에서 이런 방식을 불법으로 선언하는 바람에 지금은 직접 모집한다. 오랫동안 진행하다 보니 요즘엔 많은 제안서가 모인다. 직원과 상의해 그중 좋은 것을 고른다. 사진, 음악, 영화, 아트 등 문화적인 부분도 우리에겐 중요하다. 패션에만 치중하면 얼마나 지겹겠나.
요즘 가장 관심이 가는 문화적 코드는 무엇인가?
음. 문화적 코드라고 말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현재 가장 흥미로운 건 SNS와 아날로그 세계의 관계다. SNS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아날로그적 경험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더 늘어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SNS 활동을 아예 하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는 편이 훨씬 좋다. 많은 이들이 소셜 미디어에 몰입하지만 그만큼 실제 세상과의 연결고리도 필요하다는 걸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요리나 여행, 캠핑처럼 전형적인 아날로그적 행위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그 예다.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점점 더 짙어질 거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맨즈 프로젝트’ 등을 나중에 책으로 낼 수도 있겠다.
언젠간 꼭 만들고 싶다. 자랑하고 싶은 이미지들이 지난 몇 년간 많이 쌓였다. 브랜드를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는 이미지 자체에 집중했다. 옷이 잘 보이는 건 그다음 문제였다.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랙앤본의 특정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면 성공이다. 우리가 임의로 스타일링하고, 조명을 맞추고, 모델에게 과한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을 입혀 완성한 이미지는 진정성이 없다. 적어도 내 기준엔.
내년에 준비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나?
아직 특별한 건 없다. 정해진 건 곳곳에 매장을 연다는 것. 아까 언급한 아날로그 경험을 위한 오프라인 숍들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 뉴욕 트라이베카에 있는 남성 전용 매장이 대표적인 예다. ‘휴스턴 프로젝트’에 참여한 세 명의 아티스트가 디자인한 공간인데 아주 멋지다. 한쪽엔 위스키 바가 있고,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레코드 플레이어같이 남자들이 좋아하는 장비도 갖추고 있다. <스타워즈>의 스톰 트루퍼 수트도 있는데, 그건 내 컬렉션 중 하나다. 어쨌든 이러한 흥미로운 매장들이 곧 런던에 생긴다. 그것도 두 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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