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첫 전시가 열렸다. 지난 40년간 당신이 창조해온 이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정작 당신은 회고전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웃음) 사실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전시가 단지 회고전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그럼 어떻게 보이길 바라는가?
누군가는 이번 전시를 두고 회고전(Retrospective)이 아닌 ‘Future-spective’라고 말하더라. 이상한 말이지? 나는 ‘닉 나이트가 만든 작업’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영광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우리가 열어야 할, 열었으면 하는 인식에 관해 다루고 싶었다. 회고전에 기반을 두고는 있지만 사실은 미래를 이야길 하고 싶었다.
당신의 의도대로 된 것 같다. 프리뷰 세션을 통해 전시를 미리 보았는데, 당신이 10여 년 전에 완성한 작업들이 여전히 미래적으로 보이더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처럼 보였다.
그 말을 들으니 매우 기쁘다. 내가 전하려 한 감흥을 그대로 느낀 것 같다. 이건 어쩌면 사진전이 아닐 수 있다. 뉴 미디어와 미래의 이미지 메이킹에 관한 전시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이미지의 세계는 무한하다. 전시에 온 사람들이, 내가 뉴 미디어를 통해 완성한 이미지를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목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누군가 언급한 ‘Future-spective’가 아주 이상한 말은 아닌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주 좋은 말인 것 같다. 그렇게 아름다운 단어는 아닐지언정.
분명 과거이지만, 환상적인 과거다. 이 모든 이미지가 이미 지나온 현실이라는 사실에 누군가는 아주 흥분할 수도 있겠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로부터 미래의 어떤 것을 연상해볼 수도 있을 테니까. 전시를 통해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새롭게 다가오는 작업은 전시 도입부에 걸린 ‘스킨헤드’ 시리즈다. 닉 나이트의 작업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리즈다. 이번 전시로 처음 접하는 관객이 많을 테다.
‘스킨헤드’ 시리즈는 어디에도 전시한 적 없는 작업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첫 전시를 위해 나의 오래된 프로젝트를 꺼내 들었다. 스킨헤드는 1970년대 영국에서 주류를 이룬 하나의 문화다. 당시 청소년에게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몇 가지 상반된 방식이 있었다. 아주 긴 장발을 하고 히피 혹은 펑크족 같은 태도를 취하거나, 머릴 짧게 자르고 스킨헤드가 되거나. 펑크족은 패셔너블한 쪽이었고 스킨헤드족은 조금 더 정치적인 성향을 품었다. 머리를 짧게 깎고 스킨헤드가 되는 것은 저항의 표현이기도 했다. 누구도 나를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발상에서 시작된 자기 표현의 기제이기도 했다.
당신은 스킨헤드와 아주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던 것처럼 보인다. 틈 없이 밀착해 포착한 이미지가 많다.
열여덟 무렵, 그들과 어울리며 촬영한 사진들이다. 머리를 짧게 깎고, 스킨헤드 단체에 들어가 3년 정도 지냈다. 내가 스킨헤드가 되었던, 그들과 어울렸던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그들이 입은 옷, 그 무리에 있는 여자들이 좋았고 그들이 즐기는 음악도 멋졌다. 열여덟 살에 벌인 일인데, 뭐 그리 대단한 이유가 있었겠는가? 그 무렵 ‘내가 누구인가’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매우’ 중산층인 부모를 두었고, 감사하게도 부모님에게서 좋은 지원을 받아 제대로 교육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 나이대 청년이라면 주어진 상황을 거부하고 자신을 스스로 정의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서 더욱 흥미로운 것을 마주해야 한다고 말이다. 여러 시도를 하고 싶었다. 새로운 세계에 나를 던지고 싶었다. 그 나이대에 잃을 게 뭐가 있었겠나. 그때는 그런 시도야말로 어른이 되는 자연스러운 길이라고 생각했다.
펑크나 히피가 아닌 스킨헤드를 택한 이유가 있었나?
도전적인 마음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려서, 스킨헤드와 어울리는 상황까지 간 것 같다. 1970년대 말에 가장 부상한 것은 펑크족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보다 더 하드코어하고 어려운 무리에 속하고 싶었다. 당시 스킨헤드가 그랬다. 스킨헤드의 패션은 그들을 명확히 대변했다. 그들의 패션은 기이했다. 저 멀리서 스킨헤드가 걸어오면, 사람들이 길을 피할 정도의 기운이 있었다. 나는 당시 그것이 패션이 품을 수 있는 극단적인 파워라고 생각했고, 바로 그 점이 흥미롭기도 했다.
‘스킨헤드’ 시리즈를 거쳐 다음 섹션으로 넘어가면 바로 <i-D> 매거진과 작업한 포트레이트를 볼 수 있다. 그 사이에 닉 나이트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사진을 시작할 당시, 당신의 감성과 취향을 장악한 이미지는 무엇이었나?
러시아 정부에서 넘어온 선전 이미지들이었다. 러시아의 바우하우스 사진가들이 촬영한 사진이었고 그 위는 다양한 타이포그래피가 놓였다. 바우하우스 사진가들은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고민했다. 그들 중에는 타이포그래피를 삽입하는 것과 같이, 조작과 변형의 범주에 대해 고민한 이들이 많았다. 현대적이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시도를 한 사람들이었지. 나는 이미 그 시절부터 이미지를 완성하는 일에 쓰이는 여러 가지 조작과 변형에 관심이 많았다.
당신의 능력과 정신 중 가장 닮고 싶은 것은 새로운 작업에 대한 자유로운 마인드다. 거침없이, 매혹적인 이미지를 완성할 수 있는 정신 말이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처럼 비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내 작업이 사람들이 닮고 싶은 작업으로 손꼽히길 바라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니까. 나는 그저 모든 에너지를 미래에 쏟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물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 용기를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 사실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전시장 곳곳에 당신이 지난날 언급한 말들이 적혀 있다.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아름다움을 정의 내리지 않는다.”
이제 사진은 매체로서 생명을 다 한 것일까? 당신에게 지금, 사진은 무엇인가?
패션을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이제 사진은 끝났다고 말한다. 나도 크게는 이 주장에 동의한다. 하나의 결정적 순간, 사진으로 피사체를 포착하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는 작업의 생명은 이제 다 했으니까. 사진으로 이미지를 담는 일에 주력하던 시절, 우리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전반적인 과정에는 크게 관여하지 못했다. 게다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사진가의 눈에 맺히는 장면은 까맣다. 사진가는 장면이 담기는 바로 그 순간을 절대 볼 수 없었다. 이제는 다르다. 다양한 방식을 이용해 이미지를 실현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중요해졌고 피사체와 작업자 등 모든 인물이 모든 작업 과정에 즉각 참여하면서 이미지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을 사진가라고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건 당신에게 너무 한정된 의미니까. 결정적인 사건은 쇼 스튜디오가 서머싯 하우스에서 개최한 ‘라이브 스튜디오’ 전시였다. 생방송된 스튜디오 퍼포먼스가 일으킨 반향은 엄청났다. 이 전시가 당신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나?
그 전시는 나와 쇼 스튜디오에게도 아주 흥미로운 프로젝트였다. 개념 예술이면서 퍼포먼스 아트이기도 했으니까. 우리는 <i-D> 매거진과 벌인 작업 중에 하나를 골라 ‘라이브 스튜디오’에서 보여주기로 했고 이 퍼포먼스에 레이디 가가를 초대했다. 그녀는 엄청난 팬을 지닌 스타니까. 우리는 스튜디오에 안쪽에서는 거울로 보이고, 바깥쪽에서는 유리창으로 보이는 장치를 설치했다.
유리의 바깥쪽으로는 굉장히 많은 관객이 모여들었다. 나는 유리 벽면의 안쪽에 있었는데 그 관객이 모두 느껴졌다. 관객은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레이디 가가는 3시간가량 헤어&메이크업을 하고서는 스튜디오로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거울 앞으로 와서 립스틱을 발랐다. 관객은 립스틱 바르는 레이디 가가를 코앞에서, 만질 수도 있을 것 같은 거리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매혹적이다.
그렇지? 아주 유명한 여성이 팬과 불과 몇 센티미터만 떨어진 상태에서 립스틱을 바르던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다. 레이디 가가의 얼굴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디지털카메라로 초점을 맞추느라 그녀의 얼굴에는 빨간 불빛이 맺혔다. 정말, 엄청났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확장해 나는 라이브 스트리밍 패션쇼에 관해 생각했다. 이제는 대중이 패션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도 달라졌다.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3개월이 지난 뒤, 잡지를 통해 볼 수 있는 시절은 끝났다. 패션쇼가 시작되는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라이브 스트리밍 패션쇼의 시대다.
뉴 미디어가 가져온 변화는 엄청나다. 앞으로 당신은 또 어떠한 혁명을 일으킬까?
나는 지금껏 어디까지는 패션 사진이고, 어디서부터는 예술이라는 경계를 짓지 않았다. 그 경계는 무의미한 것이라 여겼다. 예술이 오랫동안 고수하던 경계를 사실 좋아하지 않았다.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가르는 경계, 예술이거나 아닌 것을 구분 짓는 경계들 말이다. 혹은 대중을 예술이라는 단상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같은 것도. 뉴 미디어의 등장은 아예 이 경계를 논외의 것으로 보내버린다. 뉴 미디어는 기존의 예술을 전복하는 새로운 예술이다. 이제 우리는 바로바로 소통하는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앞으로 또 무엇을 하게 될까? 어떠한 이미지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겠지. 가능성은 무한하다. 우리는 선택하면 된다. 패션 필름과 뉴 미디어의 결합 등은 정말 환상적인 영역이다. 패션 사진은 패션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훌륭한 매체였다. 하지만 패션 필름이 가진 능력은 그보다 더하다. 디자이너에게 패션 필름이란 그들이 디자인한 패션을 훨씬 더 입체적이고 공감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다. 더욱 밀착된 이미지를 선사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들이 어떻게 창조되는지에 관해서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수용할 수 있다. 지금 성장하는 젊은 이미지 메이커들은 라이브 콘텐츠를 보며 자라온 세대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든 색채와 빛, 움직임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봐야 한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언젠가 당신이 이끄는 쇼 스튜디오가 서울에도 론칭할 수 있기를 고대하겠다.
오. 맞다. 지금은 런던에만 기반을 두고 있는 쇼 스튜디오를 LA와 서울에 오픈하고 싶은 것이 나의 꿈이다.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좋아하니까. 나는 이 도시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아주 낙관적인 관점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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