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에 도착했다고 들었다. 다행히 요즘 날씨가 좋다. 차창 밖으로 본 서울은 어땠나?
참 대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출신이다. 늘 큰 도시에 가면 모든 게 신기한 아이가 된 기분이다.
서울은 어쩐 일인가?
볼리올리에게 아시아 시장이 매우 중요해졌고, 특히 한국이 궁금했다. 한국 문화와 시장을 이해하는 것, 이런 것들을 건너 듣기보단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
당신은 볼리올리의 첫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기분이 어땠나?
전화를 받고 믿기지 않았다. 볼리올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찾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괜스레 어떤 옷을 만들까 상상도 할 정도였으니까.
상상한 옷이 궁금하다.
볼리올리와 평소 나의 스타일은 제법 비슷하다. 나 같은 옷을 만들면 되겠다 생각했다. 패션은 개인적이어야 한다. 나의 특성, 성향, 문화적 배경, 비전 등을 반영하고 싶었다.
당신이 부임한 뒤, 볼리올리는 눈에 띄게 모던해졌다.
테일러링 브랜드는 지나치게 올드해질 우려가 있다. 현재 그런 브랜드들 대부분이 젊고 현대적으로 변화하려 한다. 볼리올리도 신선함을 원했고, 젊은 층에게 다가서고 싶어 했다. 나는 젊은 감성을 쉽게 부여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구찌나 아르마니 등 아카이브가 훌륭한 브랜드에서 일한 경력 때문인지, 아카이브를 재료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작업에 흥미 있다. 원단을 처리하는 방법이라든지 재킷의 구조를 새롭게 정립하는 등 테일러링에 현대적 감성을 많이 접목했다.
볼리올리의 옷은 굉장히 시적이다. 나긋하지만 그 이면에는 탄탄한 기술력이 감춰져 있는 것도 그렇고.
정말?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그런 거다. 예를 들면 우린 소재에 많은 투자를 한다. 가먼트 다잉이나 원단을 부드럽게 만드는 공법에선 원단이 수축하거나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정확한 수치 계산이 필요하다. 볼리올리에는 이러한 매뉴얼이 매우 철저하게 정립되어 있다. 테일러링에 관해선 두말할 것 없이 탄탄한 노하우를 지니고 있고. 나 역시 재단사였던 할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테일러링을 접해왔다. 회사가 축적한 노하우와 아름다움에 관한 시각, 나의 경험을 합쳐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한다.
옷을 만들 때 무얼 떠올릴지 궁금하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인 예술이나 건축이 될 수도 있고, 밀라노의 낡은 철제 문,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 벽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시즌 볼리올리 매장에서 무얼 가장 먼저 보면 될까?
코트. 나는 코트를 정말 사랑한다. 옷장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코트가 많다. 심지어 입지 않은 것도 있을 정도니까. 이번 컬렉션 중에서는 나이트가운 형식의 벨티드 코트를 추천한다. 피크트라펠에 캐멀색이고, 저지와 앙고라 혼방이라 따뜻하지만 또 가볍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가운을 걸치고 커피를 만들러 주방으로 가는 느낌을 생각하며 디자인했다.
무엇보다도 컬렉션의 스타일링이 훌륭하다. 평소의 당신 같기도 하고.
평소 내가 입는 방식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 스웨터엔 어떤 팬츠와 어떤 이너를 입을까 하는 매일 아침의 심정으로. 하지만 일관적이고 흥미롭게.
당신이 선택하는 색들도 정말 아름답다. 도시의 낡은 부분 같은 색이 있는가 하면 젖은 흙 같은 색도 있다.
볼리올리와 나는 색의 취향이 거의 일치한다. 어떤 색이라 규정할 수 없는 색과 색 사이에 있는 듯한 색을 좋아한달까. 원단을 처리하다 보면 어떤 색인지 모호할 때가 있는데 오히려 그런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건 푸른색에 가까운 녹색의 다양한 농담, 그리고 가을다운 색상이다. 이 색들을 어떻게 하면 은은하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한다. 아주 밝은색을 불쑥 쓰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절차니까. 너무 여성스럽지 않으면서 예측 가능한 조합도 아니지만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는 색을 항상 찾는다.
볼리올리는 밀라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고 당신도 밀라노에 살고 있다. 밀라노는 당신에게 어떤 도시인가?
밀라노엔 18세 때 이사 왔고, 공부도 이곳에서 했다. 친구들도 대부분 밀라노에 있고 한마디로 마음속 고향 같은 도시다. 종종 밀라노의 에너지와 연결되었다 느낄 만큼. 피렌체와 로마를 오가며 10년을 살기도 했지만 고향이 그리울 땐 늘 밀라노로 왔다. 옷을 만들 땐 어쩔 수 없이 밀라노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벽의 색, 빈티지 숍에서 느낀 감정, 도시 자체의 부르주아적인 느낌 등을 디자인에 활용한다.
밀라노 다음으로 살고 싶은 도시는 어딘가?
파리. 아파트 한 채를 구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의 오랜 꿈이다.
밀라노에 정통한 당신이라면 괜찮은 식당을 추천해줄 수 있을 거 같다. 물론 관광객이 들끓지 않는 곳으로.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론 폰(Lon Fon)이라는 중식당이다. 소박한 맛이지만 그게 또 훌륭한 곳이다. 오스테리아 델 비나리(Osteria del Binari)도 추천한다. 좁은 입구를 지나면 나오는 정원에서의 식사는 마치 휴양을 온 듯한 느낌이다. 근처 기차역에서 들리는 기차 소리가 괜히 낭만적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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