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을 재킷 밖으로 빼서 입는 이유가 있나요? 사진을 찾아보니 늘 그렇게 입던데요.
이 스타일 별로예요?
음, 1990년대 유행했던 것 같아요.
허허. 지금 당신의 스타일은 영국에서 1950년대에 유행한 것 같은데요.
허허, 가장 동시대적인 스타일입니다!
제 스타일은 내년에 유행할 거예요. 제가 조금 빨랐네요. 허허.
어렸을 때 밴드를 하셨더라고요. 인터넷엔 ‘아이돌 가수’였다고 적혀 있던데요.
아이돌은 아니었어요.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했어요.
아이돌이 되려면 꽃미남이어야 하잖아요…?
저도 한때는… 하하하.
괜찮은 뮤지션이었나요?
좋은 음악을 했어요. 특이한 분위기가 있었어요.
예를 들면?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러니까 음악을 할 때도 그렇고 디자인을 할 때도 그렇고, 약간 러프한 느낌? 완성되지 않은 것 같은, 남들이 안 했던 것 같은 느낌? 이런 게 제 작품에 있어요. 초기에 디자인한 작품을 보면 이해할 거예요.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어요? 뮤지션이던 시절로요.
그리워요. 사실… 얼마 전부터 다시 음악을 하고 있어요. 5월에 로마에서 연주를 했어요. 디자인을 그만둘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음악을 다시 시작한 건 분명해요.
당신과 10 꼬르소 꼬모의 인연은 특별합니다. 1991년, S 체어를 10 꼬르소 꼬모 밀라노에서 처음 선보였어요. 역사적인 의자죠! 지금은 이렇게 10 꼬르소 꼬모 청담에서 전시를 하는 중이고요.
저와 10 꼬르소 꼬모는 태동 때부터 같이 했다고 봐야 할 거예요. 밀라노에 10 꼬르소 꼬모가 생기기 전에 그 터에서 전시했으니까요. 10 꼬르소 꼬모의 설립자 카를라 소차니가 제안했고, 마크 뉴슨도 함께 전시했어요. 1989년 즈음이에요. 그 후 그 자리에 10 꼬르소 꼬모가 생겼죠.
와, 전혀 몰랐던 내용이에요. 초창기 대표적 작품인 S 체어를 당신은 골풀과 고리버들로 만들었습니다. 쇠나 플라스틱이 아니고요. 이런 부분을 근거로 당신을 ‘친환경 디자이너’라고 판단한다면, 문제없을까요?
초창기에는 자연 소재나 재활용 소재를 사용해서 작품을 만들었어요. 한동안 그렇게 했죠. 앞으로도 다시 그렇게 할 거예요. 그러니까 ‘친환경 디자이너’라는 표현이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번에 전시한 프래임 컷 체어(Flame cut chair)는 철근으로 만들었어요. 1천 년 동안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튼튼해요. 친환경 의자라고 해도 무방해요.
다시 초기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나요? 미러볼 조명 시리즈 이후 당신의 작품은 계속 화려해지고 있잖아요. 눈부신 것도 좋지만, 파일론 체어(Pylon Chair) 같은 초기 작품이 지닌 놀라움이 저는 더 좋아요. ‘소울’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초기 작품들은 제가 직접 손으로 두드려서 만든 거라 ‘소울’이 들어간 게 맞아요. 개별 제작한 거니까요. 하지만 회사가 생긴 이후로는 대량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이제 회사가 많이 커졌고, 자체적으로 잘 굴러간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손으로 만들어볼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까…. 저에게도 초기 작품이 의미가 있어요. 다시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당신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몇 가지 있는데, 파일론 체어도 그중 하나예요. 초기 몇몇 위대한 작품 중 단연 꼽히죠. 철로 만들었잖아요. 구조도 굉장히 독특하죠. 보자마자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거예요. 이런 의자가 또 있을까? 실물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당신이 이 의자, 정확하게는 의자의 재료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구조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지 궁금해요.
두세 가지가 있는데 거창한 건 아니에요. 철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가벼운 의자를 제작하고 싶었어요. 그다음은… 당시 제 스튜디오에 리사이클링 재료들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용접봉이었어요. 두께가 일정하잖아요. 그걸로 뭔가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는, 삼각형 구조를 이용하고 싶었어요. 삼각형은 강해요. 그러니까 의자를 만들 때 응용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어요.
사람들이 그 의자를 보고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게 될지 알았어요?
음… 스마트폰에 저장해둔 사진을 하나 보여드릴게요. 이거예요. 파일론 체어의 초기 버전이에요. 전시 작품보다 가느다란 용접봉으로 만들었어요. 훨씬 가벼워요. 아, 그리고 저, 젊었을 때 예뻤던 거 맞죠? 하하. 아무튼 생각을 많이 하고, 의도를 많이 담아서 만들었다기보다는,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과정에서 탄생한 거라고 보는 게 맞아요. 재미로 한 거예요. 이것저것 하다가, 아, 이거 재밌다, 해서 계속 만들어본 거예요. 초기 작품은 다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 사진 속 의자는 앉으면 구부러지지 않아요? 삼각형 구조가 안정적이라고 해도.
하하. 첫 번째로 이 의자를 사가신 분이, 체격이 좋으셨어요. 앉자마자 무너지는 참사가 벌어졌죠. 그런 과정을 통해 재료의 특성을 살리되 강한 작품으로 거듭난 거죠.
파일론 체어에 오래 앉아본 적 있어요? 편한 의자는 아니죠.
오래 앉아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불편한 의자도 나름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맥도날드 같은 경우 일부러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를 만들어서 비치하잖아요.
비단 당신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멋있는 걸 만들어요. 주변 사람들이 물어보죠. 어떻게 그런 걸 만들었어? 그러면 그 어떤 사람들은 대답합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라고.
잘 아시겠지만 저는 음악을 했어요.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그만두었고요. 그러고 나서 뭘 했는지 아세요? 나이트클럽을 운영했어요. 저를 포함해서 친구 5명이 같이한 거예요. 금요일 밤, 토요일 밤에만 열심히 일하면 됐죠. 시간이 남아서 재미로, 정말 순수하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걸 사람들이 사갔죠. 디자인은 매번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늘 재미있게 할 수 있어요. 진짜로 진짜 재미있어요.
당신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비트 시리즈와 미러볼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습니다. 두 작품 사이의 간격이 꽤 크다고 생각해요. 외관만 놓고 볼 때 비트 시리즈는 고요하고, 미러볼은 화려하잖아요.
철학이나 의미를 생각하며 만든 건 아니에요. 회사를 차리면서 더 열심히 일했어요. 하고 싶은 걸 다 해봤어요. 그런 과정에서 나온 작품이에요. 말씀하신 것처럼 외관은 상당히 달라요. 하지만 출발점은 같아요.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당시 청동에 관심이 있었어요. 여러 형태를 제작했고, 빛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실험했어요. 그렇게 비트 시리즈와 미러볼이 탄생한 거예요. 비트 시리즈는 빛을 반사하면서 음영을 만들어요. 미러볼은 빛을 모아서 집중시켜요.
한국에 복제품이 너무너무 많은 거 혹시 알아요?
네. 을지로와 종로3가 조명 가게에 갔어요. 1백 군데 중에서 30군데 정도에는 걸려 있더라고요. 중국은 더 심해요. 워낙 많이 봐서 별로 신경 안 쓰여요. 유명해서 그런 거겠지, 라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는 수용해야 하는 거겠죠.
회사도 경영하고 디자인도 하는데, 그 둘을 다 잘하는 게 가능해요?
뭐, 둘 다 하기는 하는데 제가 좋은 기업인이 아니라는 건 진작 깨달았어요. 다행스럽게도 경영을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고 있어요. 저는 그저 가구 산업이 어떻게 운영 되는지 정도만 관심을 가질 뿐이에요. 한편으로 경영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창의적이지 않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해요. 경영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디자이너나 예술가보다 창의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어요.
회사에서 당신에게 어떤 걸 디자인하면 좋겠다고 제안도 하나요? 예를 들면 세일즈의 관점에서요.
아… 판매를 담당하는 팀에선 작년에 많이 팔린 걸 올해도 많이 생산하기를 원해요. 제가 하는 일은, 이제 다른 거 하자고 말하며 싸우는 거죠. 이번 전시도 사실은, 물론 과거와 지금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뭘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네. 이제 ‘내일’에 대해 물을게요. 전시를 보면 과거와 현재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이해돼요. 그런데 이번 전시 작품만 놓고 보면 미래에 어떤 작업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이야기하는 걸 10 꼬르소 꼬모 측에 말하면 안 돼요. (옆자리에 10 꼬르소 꼬모 담당 직원이 앉아서 듣고 있었지만!) 저는 매해 4월 밀라노에서 열리는 가구 박람회에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 많은 걸 가져올 수 없었어요. ‘내일’에 대해 약간 설명을 드리면,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조 기법이에요. 지금은 대량생산 시대를 넘어서서 로봇이 전 과정에 관여하고 있어요.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오로지 로봇이 만들어내는 거죠. 완전한 자동화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컴퓨터로 디자인 파일을 보내기만 하면 3d 프린터가 알아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그걸 대량으로 생산해요. 이와 관련된 작품들이 ‘내일’에 있다고 보시면 돼요.
마지막으로 3개만 더 질문하겠습니다. 만들고 싶었으나 기술적 혹은 경제적 이유로 중단하거나 실패한 게 있나요?
저희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이 40개면 실패해서 버린 것들이 60개 있다고 보시면 돼요. 사실 음… 출시된 제품 중에서도 어떻게 보면 실패한 것이 있을 수도 있고요. 이건 아주 단순해요. 결국, 그냥, 끊임없이 해보는 과정에서 무엇인가 만들어지고 버려집니다. 늘 그렇게 작업해왔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도전해보고 싶은 재료가 있어요? 지금까지는 주로 단단한 소재를 많이 사용했죠.
네. 맞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부드러운 재료, 특히 섬유를 사용해보고 싶어요. 패션 분야에도 관심이 있고, 도자기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단단한 것에서 부드러운 것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나무도요! 나무를 사용해 무엇인가 해보고 싶기도 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뮤지션이었고, 나이트클럽 사장이었고, 지금은 세계적 디자이너예요. 버라이어티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와서 돌아보면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런 순간이 몇 번 있었어요. 아마 대표적인 건 이탈리아 회사에 들어가서 크리에이터 디자이너로 10년 정도 일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 시기에는 디자인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다양한 것들을 많이 봤어요. 그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디자인을 대하게 되었어요. 큰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순간은 계속 찾아올 거예요.
당시 복귀해서 만든 게 뭐였어요?
일단 미러볼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미러볼이 나오기까지 굉장히 많은 작품들이 깨지고 망가지고 실패했죠. 그러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사라진 것들이겠죠.
궁금한 게 더 있지만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네. 이미 질문을 하나 더 했어요.
저는 ‘내일’에 전시된 작품들이 눈부시도록 화려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이건 질문 아니에요.
‘내일’에서 빛나는 건 빼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의도한 거예요.
전시는 11월 20일까지 10 꼬르소 꼬모 청담 3층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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