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으로
카페 ‘비하인드’의 시작은 친구들과의 모임이었다.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과 음악 감상회 같은 걸 했다. 1개월에 1번. 장소가 마땅치 않아 이곳저곳 빌리다가 차라리 조금씩 모은 돈으로 5, 6평 정도 되는 공간을 마련해 음악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꾸린 거다. 처음에는 인원이 8~9명으로 많아서 10만원씩만 내면 적당한 공간을 구할 수 있었다. 벌써 15년 전 얘기니까. 그러다 음악만 듣고 비워놓는 것보다 우리가 이용하지 않을 때 커피라도 팔아볼까 한 거다.
초반에는 고생 좀 했는데 1년 정도 지나니 손님들이 많아졌다. 비하인드 관련 책을 썼을 때, 제목이 ‘우리 카페나 할까?’였다. 그 안에 담긴 속뜻은 그냥 투잡에 대한 얘기였다. 그게 꼭 카페일 필요는 없고, 책방이나 음식점이어도 상관없었다. 그냥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 좋은 친구들끼리 두 번째로 뭔가 만들면 재밌는 삶을 살지 않을까가 주제였는데, 본의 아니게 카페 붐에 일조한 거다.
계산보단 행동
생각하면 일단 해보는 스타일이다. 치밀하게 계산해 움직이는 스타일은 아니다. 정해진 길은 없다고 생각하고, 일단 해봤는데 아니면 조금 방향을 바꿔서 다시 해보는 식으로 작업한다. 생각한 걸 담아두지 않고 그냥 막 얘기한다. 이런 거 해보면 어때, 하면서. 그러면 열에 아홉은 도대체 무슨 소리야, 하는데 그중 1~2명은 이런 방법이 있네, 하고 알아듣고서 나중에 현실적으로 연결해주기도 한다. 물론 아무에게나 막 얘기하는 건 아니다. 계속 관계를 쌓다 보면 나와 태도나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얘기한다. 다음에 이거 하려고 하는데, 하고 그냥 얘기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시점에 그때 한 얘기와 관련된 현실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서 일이 계속 파생되는 거 같다.
함께하는 공간들
‘막다른’은 집주인이 같이 쓰고 나눠 쓰고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비쳐 구성할 수 있었다. 3층으로 집을 옮기고, 1, 2층은 셰어 하우스로 구성하려고 했다. 그런데 셰어 하우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팀과 얘기하다 셰어 오피스가 더 어울려 구성을 바꿨다. 작업실이나 사무실로 만들고 싶었다. 목적을 정하고 공간을 구성했다. 창문을 통해 마당과 집 안을 연결하고, 내부 수요도 있을 테니 작게 커피 스탠드를 놓기로 했다. 연희동에 ‘막다른’ 같은 공간을 또 구성하려고 한다.
연희동은 집도 정원도 훨씬 크다. 그래서 테마라기에는 거창하고 키워드를 식물로 잡았다. 식물을 협소한 의미로 잡으면 꽃 다루는 가드닝하는 친구들밖에 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범위를 확장했다. 커피도 식물에서 나오는 거고 차도, 빵도 결국 식물에서 나오는 거니까. 옷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확대해 구성하면 재밌는 뭔가를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전체적 그림을 생각하며 팀을 수소문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좁아서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니까. 다행스럽게도 내가 ‘어쩌다 가게’를 구성한 걸 사람들이 아니까 접근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기본적 틀이 있으니까.
네트워크의 힘
예전에는, 쉽게 말해서 건축사 사무소 ‘사이’에서 근무할 땐 거기서 할 수 있는 일만 했는데, 이제 여러 분야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건축 일은 내가 하고 인테리어 일은 허치, 커피 관련 일은 그래피티, 그래픽은 미래 물산과 함께 진행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 함께 있는 각 분야 사람들이 전부 다 그런 상태라서 네트워크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이런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다음 게 파생되고 읽혔으면 좋겠다.
‘어쩌다 가게’가 처음 생겼을 때, 날 오랫동안 봐오며 같이한 사람들이 이건 나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이걸 만들어낸 목적과 목표, 관계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거 아닐까 생각한다. 비하인드의 네트워크가 ‘어쩌다 가게’로 이어졌고, 그 경험이 또 ‘막다른’을 만들어낸 거다. SNS에서 예전 ‘비하인드’ 단골이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어쩌다 가게’에 갔더니 그 사람들이 다시 모여 뭔가 재밌는 걸 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고. 각각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변화하면서 상황에 맞춰 형태가 생긴 거다.
사람과 사람
솔직히 돈 버는 일은 설계나 디자인이다. 이거는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다. 이 일이 직접적으로 수익과 연결되지는 않지만, 이 일을 통해서 형성된 네트워크에서 다른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비하인드’ 할 때도 그랬다. 카페 운영한다고 떼돈 버는 건 아니다. 결국 카페에 오신 분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다른 누군가를 소개받고 일로 확장되기도 한 거다. 본업은 여전히 건축이다. 그렇지만 시스템이냐 사람이냐 놓고 물어보면 나는 무조건 사람이다. 이런 내 성향 때문에 이런저런 일을 벌일 수 있었다. 내 생각을 실현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같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때가 많다. 운이 좋게도 그런 분들이 함께해서 뭐라도 작게 시작해볼 수 있어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다. 나 혼자 한 건 아니다.
건축가의 관점으로
장기적으로 결국, 사람들은 조직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뭔가 만들어내고 본인을 위해서 일하는 작은 개인이 모이는 식으로 새로운 집단을 형성할 거 같다. 이런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는데, 이제 가시화되는 거 같다. 내가 하는 이런 활동도 나는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지도 모르지만. 제대로 된 신축이나 남들 눈에 건축가가 하는 일이라고 할 만한 건물을 짓기 전에 3평짜리 인테리어를 할 때도, 그걸 인테리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남들은 다 인테리어지만 나는 철저하게 건축적으로 했다고 생각한다. 그게 확장하면 건물이 되는 거다. 건물 자체가 확장되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관계나 프로그램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까지 건축가 영역에 포함되는 거다. 전체 과정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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