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엑시
시작은 보컬이었어요. 회사에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제가 목이 약한 편이라 성대 결절도 생겼죠. 그러다 보니 노래를 할 수가 없었어요. 또 노래 잘 부르는 친구들이 회사에 계속 들어왔죠. 그렇게 뒤로 밀려나다 보니까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겠더라고요. 그때부터 랩을 시작했어요. 일종의 생존법이었죠.
윤미래
보컬을 할 때도 랩이나 힙합 장르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어려서는 혼자 아무도 모르게 랩을 따라 부르기도 했고요. 윤미래 선배님의 랩을 처음 들었을 때 엄청 따라 불렀죠. 그렇다고 제가 나중에 래퍼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게다가 혼자서 따라 부르던 것뿐이라 남들에게 랩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요. 사람들이 비웃을까봐요. 그렇게 작아질 때도 가장 많이 부른 게 윤미래 선배님의 노래예요.
데뷔 무대
<언프리티 랩스타>에 출연했을 때는 멍했어요. 첫 녹화한 날 미션이 남자 래퍼들과 함께하는 배틀이었는데, 최하위 점수를 받으면 바로 집으로 가야 했어요. 영구 탈락이 무서웠어요. 저는 인지도도 없는 연습생인 데다 불리한 점이 너무 많았거든요. 관객 투표로 진행하니까 어떻게든 관객을 사로잡자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다행히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와서 살아남았죠. 처음 준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언프리티 랩스타>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빨리 출연할 줄은 몰랐거든요.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오히려 시작하니까 재미있었어요. 얻는 게 너무 많은 프로그램이었어요. 파이널까지 가고 싶었지만 너무 빨리 탈락해서 슬프기도 했어요.
언프리티 랩스타
랩으로 제대로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랩에 대한 자신감이 전혀 없었어요. 준비하면서 스스로 작아졌는데, 대중이 좋게 평가를 해주셔서 재미를 느꼈어요. 제 자신에게 믿음이 생겼다고 할까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계획을 세우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랩에 대한 욕심도 생겼고요. 그전에도 래퍼라는 포지션을 했지만, 래퍼로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는 없었거든요. 어떻게든 데뷔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런데 <언프리티 랩스타>에 출연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제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욕심이 더 생겼어요. 데뷔 무대가 인생의 방향을 잡아준 거죠.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에요.
영감은 어디서
영감은 사소한 것에서 얻는다고 생각해요. 사소한 것을 얼마나 깊이 생각할 수 있느냐의 차이죠.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는데, 캐릭터의 특징을 비유적으로 표현해요. 그런 것도 참고했고, 책도 많이 읽었어요. 학교 다닐 때 소설이나 시, 자기계발서 등 다양하게 찾아 읽었어요. 지하철에서도 생각나는 걸 적고, 소소한 일상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사랑 이야기
부산 출신이에요. 중학교 때 혼자 상경에서 자취를 했어요. 힘들게 연습생 생활을 이어갔어요. 또래와는 다른 경험을 했죠. 하지만 당시에는 특별히 힘들다고 느끼진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싶어요.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아이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시절에 힘들었던 기억을 가사로 많이 썼어요. 하지만 아직 사랑 이야기는 써본 적이 없어요. 혼자 끄적거리긴 했지만, 기회가 되면 달달한 사랑 이야기도 써보고 싶어요.
무대에서
세상이 다르게 느껴져요. 내 손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낸다는 기분이 어떤 건지 처음 느꼈어요. 그동안의 시간을 전부 보상받는 느낌이에요. 관객이 박수 쳐줄 때 의욕도 커지고, 행복했어요. 제가 <언프리티 랩스타>의 첫 화부터 참여했다면 힘들었을 텐데, 중간에 투입되면서 다른 참가자들보다 스트레스가 적었던 것이 사실이고, 저는 잃을 게 없는 연습생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무대를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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