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박
카페 식물 대표
루이스 박은 한국에서 태어나 20년 넘게 살다가, 홀연히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영국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다가, 학교를 개조한 아파트에서 한철을 보냈다. 그곳에서 그는 공간이 주는 힘을 깨달았다고 한다. 외국에서 십수 년을 살다 다시 돌아온 그는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공간 디렉터 등 다양한 활동을 해나갔다. 최근에는 익선동에 카페 식물을 열고 익선동만의 문화를 가꾸고 있다.
빈티지 물건을 수집한 계기는 무엇인가?
나는 빈티지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다. 내게 빈티지란 시간을 뜻한다. 사람도 그렇지만 사물도 오래된 것에는 각기 역사가 담긴다. 여기 있는 가구, 접시, 잔, 심지어 시계에도 그것만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카페 식물도 그러한 빈티지 감성으로 시작했다.
루이스 박에게 빈티지를 수집한다는 것은 시간을 모으는 행위라고 봐야 할까?
그렇다. 역사가 가진 힘은 이런 것이다. 누군가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할머니가 착용한 목걸이에 묻은 생활의 때는 복원할 수 없다. 그걸 어머니를 거쳐 손녀에게 전하기까지 담긴 흔적은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그 목걸이를 착용함으로써 할머니와 어머니의 흔적까지 담고 살아간다.
세월이 만든 이야기는 모든 물건에 담긴다고 생각하나?
이야기가 숨어 있다. 빈티지의 위대함은 그런 지점에 있다. 빈티지 감성이 없는 사람들은 오래되고 낡은 물건이 왜 중요한지 모른다. 요즘 흔적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흔적은 사물에 적용할 수도 있고, 카페 식물과 같은 공간에 적용할 수도 있다.
공간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서울은 경제 논리에만 기울어져서 개발된 거대 도시다. 그리고 그 중심인 종로에는 익선동과 같이 오래된 한옥이 버려진 섬처럼 존재한다. 카페 식물은 그 섬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딛은 문화 공간이다.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안채에 벽지를 뜯어낸 흔적이 있다. 자세히 보면 벽지가 여러 겹이다. 처음 누군가 벽지를 바르고, 새로 그 위에 이사 온 사람이 벽지를 덧발랐다. 그렇게 벽지가 여러 겹 두껍게 층을 이뤘다. 1백 년 된 동네를 드나든 많은 사람들의 역사가 이 집의 벽지에 기록된 것이다. 익선동은 그런 동네다. 평범한 주민의 1백 년간 기록이 새겨져 있다. 나는 그걸 낡은 유물처럼 전시해두는 것이 아니라 나의 빈티지 감성을 바탕으로 재생하고, 그 역사가 계속 흘러가도록 유지하고 싶었다.
식물 카페는 총 4채의 한옥을 하나로 연결한 공간이다. 각 집의 특징을 고스란히 유지한 점이 독특하다.
빈티지를 좋아한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것, 즉 날것의 상태를 좋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으로 창조해내기보다는 시간의 흔적을 손대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 빈티지한 감성이다. 물론 4채를 한 공간으로 연결하느라 벽을 트고, 보수한 곳들은 있다. 그것은 내가 남긴 흔적이다.
있는 그대로의 것을 활용한다는 뜻인가?
인위적으로 개발하지 않고, 현재 보이는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다.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름 때문에 식물이 많을 거라고 기대한다.
영국에서 학교를 아파트로 바꾼 공간 같은 곳에서도 살아봤다. 당시 아침에 과연 이 공간에서 눈을 떴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했었다. 그때 느꼈다. 공간은 사람에게 많은 영향과 에너지를 준다는 것을. 그리고 식물 또한 공간처럼 내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는 시골에서 살았다.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길을 따라서 등하교를 했다. 코스모스는 가을꽃인데, 긴 줄기가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자연과 함께 보낸 유년 시절이 내 감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후 내 작업에서도 자연에 대한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럼 카페 식물은 본인이 좋아하는 것 두 가지를 합쳐서 만든 공간인가?
좋아서 만든 공간이다. 그래서 가장 나다운 단어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꽃과 나무, 자연을 아우를 수 있는 단어인 식물로 선택했다. 그동안 내가 좋아한 공간들을 살펴보면, 주인의 정체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주인의 정체성이 담긴 공간은 더 훌륭해 보인다. 카페 식물이라는 이름도 내 정체성을 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고집한 결과다.
공간 디렉팅도 한다. 익선동뿐만 아니라 충무로, 을지로 등 서울의 죽어 있는 지역을 되살리는 재생 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익선동도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죽어갔다. 사람들의 발길도 없고, 건물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곳을 어떻게 재생할 것인가였다. 어쩌면 다른 누군가는 이곳을 부수고 새로운 빌딩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숨을 불어넣고,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익선동만의 스토리를 보존하고 싶었던 건가?
이 마을의 역사를 보존하려는 노력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주민이 모임도 갖는다. 이 일대에 이와 비슷한 마을들이 11개나 된다. 그 마을들이 모여서 축제를 열기로 했다. 이름은 창덕궁 앞 열한동네 축제다.
축제 기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나?
플리마켓을 열고, 다양한 행사를 벌일 예정이다. 지금 이곳에는 빈 한옥이 꽤 있다. 그 한옥들을 비워두지 않고, 잘 활용하기 위해 아티스트들과 한옥을 연결하고 있다. 요즘 그 업무 때문에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전시 공간이 필요한 아티스트와 한옥을 활용하고자 하는 집주인을 잇는 일이다. 지금 도예가, 일러스트레이터, 텍스타일 디자이너 세 명을 연결해줬다. 일주일이 됐든 2주일이 됐든 일정 기간 아티스트가 한옥을 마음대로 재활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 공간이 가진 역사성을 절대 파괴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재생이니까.
빈 한옥 마을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독자적인 익선동만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다.
이제 시작이다.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한 지역이 발전해가는 과정을 많이 겪고 보았다. 익선동처럼 경제 논리에 의해 한 지역이 쇠퇴하고 정체되는 시점이 있다. 그다음에는 새로운 문화가 그 지역에 뿌리 내린다. 풍경이 바뀐 지역에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껴 다시 찾는다. 런던의 이스트 지역이나 뉴욕의 미트패킹 등이 그 예다.
카페 식물이 익선동에 뿌리 내린 지 2년 만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앞으로 2년도 기대된다.
2년 전 이곳을 찾은 아티스트는 내가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이야기한다. 이 동네를 먹자골목으로 만들지는 말아달라고. 지금 하는 마을 운동도 그런 심정으로 시작했다. 서촌이나 북촌, 경리단길, 가로수길처럼 소비하고 마는 동네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생산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아티스트들과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내 작은 목표다.
〈Live Amazing〉 시리즈 기사
자기 신념과 가치 있는 행동으로 큰 시작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Live Amazing - http://www.smlounge.co.kr/arena/article/32250
더 나은 삶을 위해 - http://www.smlounge.co.kr/arena/article/32252
공간의 힘을 믿다 - http://www.smlounge.co.kr/arena/article/3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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