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개인전이 한창이다. 고요한 운하 위로 거대한 폭포가 장쾌하게 쏟아지고, 해와 달을 연상시키는 빛과 형상이 ‘태양왕’ 루이 14세의 집을 메운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공간과 인간 지각 사이의 관계를 파고들며 다양한 실험을 하는 설치 작가다. 시각 미술, 과학, 자연, 환경을 탐구하고 작업으로 치환한다. 사회운동으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그의 작업에는 유독 자연적 요소가 자주 등장한다. 폭포와 무지개, 해와 달, 안개와 구름, 우주와 성운. 어떤 프로젝트는 건축적 스케일을 넘나든다. 그렇게 펼쳐진 올라퍼 엘리아슨의 세계는 반드시 두 발로 걷고 움직여야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걸어야만 만날 수 있는 색채, 빛, 형상이 있다. 거대한 작업을 훑으며 걷다 보면 어둠, 빛, 형상, 반사 혹은 어떤 공기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을 처음 경험했다. 그는 테이트 모던의 거대한 터빈 홀 천장 가까이에 노란 빛을 뿜어내는 반원을 넣었다. 천장에는 거대한 거울을 설치했다. 가습기를 이용해 미세한 안개를 만들고, 아지랑이도 피웠다. 노란 반원은 태양처럼 보였다. 이 작업에는 ‘날씨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거대한 태양 앞에서 사람들은 서서히 그 공간을 자연스럽게 흡수했다. 일광욕하듯 눕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노란 원을 멍하니 바라봤다.
‘날씨 프로젝트’를 설명한 테드 강연에서 올라퍼 엘리아슨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프로젝트는 사실 굳이 도시에 자연을 끌어오자는 의도는 아니다. 내가 탐구하는 주제는 공간이 얼마나 더 손에 잡히는가 하는 것이다. 공간에 들어선 우리의 몸과 공간의 관계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인간이 특정한 공간 안에 가만히 있거나 한 발 내딛을 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안개처럼, 자연적인 요소를 넣음으로써 공간을 실체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관조적인 놀이가 아니다. 생각과 행동을 연결하려는 시도다.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개인성과 공동체성 모두에 호소력을 지닌 공간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실험이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전 시기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개인전이 서울에서 열린다. 아이슬란드의 이끼를 설치한 ‘이끼 벽’, 물이 솟구쳐 오르는 ‘뒤집힌 폭포’, 1천여 개의 유리 구슬로 만들어 거대한 성운처럼 보이는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 물과 빛으로 이루어진 ‘무지개 집합’ 등 신작들을 포함해 총 22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9월 28일부터 삼성미술관 리움.
READ & SEE 이달, 보거나 읽을 멋진 것들.
<군집한 구름들>
아니쉬 카푸어 | 국제갤러리
한국에서 네 번째 열리는 아니쉬 카푸어의 개인전. 아니쉬 카푸어는 단단한 금속 덩어리를 활용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회화처럼 푼다. 이번 전시 <군집한 구름들>에는 ‘트위스트’와 ‘군집한 구름들’을 비롯한 19점을 전시한다. ‘트위스트’ 시리즈는 금속성의 물성과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함께 보여준다. 금속 물질의 반사와 왜곡, 전환으로 물성과 공간 사이에 형성되는 상호 관계를 시각적으로 펼쳐낸다.
오목한 원형에 검은색을 입힌 작품 ‘군집한 구름들’에는 아니쉬 카푸어가 사용 독점권을 얻은 검은색 반타블랙(Vantablack)을 썼다. 빛을 99.96% 흡수하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검은색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든 작품에는 아젠다나 주제가 없다. 아니쉬 카푸어는 말한다. “나는 내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영적 신비감을 주는 것 자체가 바로 주제다. 물체에 적용한 힘이 절제된 형태의 움직임으로 어떻게 전환되었는지에만 집중한다.” 10월 30일까지.
<거침없이, 아름답게>
닉 나이트 | 대림미술관
포토그래퍼 닉 나이트의 아이덴티티는 그가 스스로 정의하는 단어에 분명히 담겼다. 그는 자신을 ‘이미지 메이커’라 말한다. 그는 ‘이미지’라 부를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대담하고 파괴적인 태도로 독창적인 시선과 스타일을 구축해왔다. 사진과 디지털 그래픽 기술의 결합을 시도한 1세대 포토그래퍼이며, 인종 및 동물보호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적 패션 캠페인 등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닉 나이트의 전시 <거침없이, 아름답게>에는 그의 사진과 영상 인스톨레이션 등 1백 여 점 이상이 전시된다. 1970년대 영국의 시대적 혼란 속에서 권력에 저항하는 청년 집단을 포착한 ‘스킨헤드’와 <아이디> 매거진의 의뢰로 셀러브리티 1백 명을 촬영한 초상 사진 시리즈, 요지 야마모토와 질 샌더 등 패션 디자이너와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한 ‘디자이너 모노그래프’ 등을 모두 만날 수 있다. 10월 6일부터.
<토일렛페이퍼 플래티늄 컬렉션>
10 꼬르소 꼬모
<토일렛페이퍼>는 이미지만으로 이루어진 매거진이다. 텍스트라고는 ‘화장실 휴지’라는 뜻의 이름만 적혀 있을 뿐, 칼럼도 광고도 없다. <토일렛페이퍼>를 집어 든 독자가 할 일은 단 하나. 모든 이미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깊이 생각하지 말 것. <토일렛페이퍼>를 만든 이탈리아의 두 크리에이터,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사진가 피에르파올로 페라리는 작은 시선마저 사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간단하고 사실적이며 자유로운 비주얼 콘텐츠에는 명확한 목적이나 메시지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시각적 만족을 위한 실험적인 이미지, 아이러니와 유머, 초현실적이고 아찔한 무드로 가득한 <토일렛페이퍼>는 그렇게 탄생했다. <토일렛페이퍼 플래티늄 컬렉션>은 이들의 과월호 화보들 중 하드커버의 아트북으로 재탄생시킨 특별판이다. 가격은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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