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개봉한 영화 <차이나타운> <살인의뢰> <베테랑> <오피스>, 그리고 올해 방영한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결혼계약> <동네의 영웅> 그리고 <38사기동대>까지. 위 작품들의 공통점 하나를 찾는다면 모두 오대환이라는 배우가 나쁜 놈 연기를 아주 실감나게 했다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욕이 튀어나올 것 같은 말투, 위협적인 눈빛과 가끔 보여주는 번뜩이는 미소까지.
오대환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믿고 보는 악역 배우’로 거듭났다. 건달과 사채업자 역할을 많이 했지만, 알고 보면 네 아이의 다정한 아빠이자 성실한 남편,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는 착하기 그지없는 남자다. 최근 OCN에서 방영한 드라마 <38사기동대>에서 세상 둘도 없는 나쁜 놈이 개과천선하는 모습을 보이며 인기에 날개를 달았다.
악역답지 않게 여성 시청자의 사랑도 한몸에 받았다. 하반기에 드라마 <쇼핑왕 루이>, 영화 <더 킹> 등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는 바쁜 남자, 오대환에게 나쁜 남자를 연기하는 즐거움에 대해 물었다.
쉬지 않고 계속 작품을 찍고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바빠졌나?
재작년에 영화만 5편을 찍었다. <베테랑> <오피스> <살인의뢰> <차이나타운> <4등>을 촬영하고 그다음 해에 줄줄이 개봉했다. 드라마 연출자가 이 영화들을 보고 캐스팅 제안을 했다. 올 초에 출연한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같은 경우에는 영화 <차이나타운>에 나온 딱 한 장면 때문에 캐스팅됐다.
김고은이 나에게 재떨이를 던지고 때리는 장면을 인상 깊게 보셨다고 하더라. 그러고 나서 <결혼계약> <동네의 영웅> <38사기동대> 그리고 <쇼핑왕 루이>까지 캐스팅된 거다. 영화 <더 킹>도 12월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적응이 좀 됐나?
아직까지는 적응이 안 된다. 사실 거절한 작품도 꽤 많다. <38사기동대> 끝나고 세 작품이나 거절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내가 많이 노출되면 좋으니까 <쇼핑왕 루이>랑 다른 작품을 병행하자고 했는데 내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고사했다.
사실 체력이 문제가 아니라, 대사 암기가 문제다. 올해 초에 거의 세 작품을 동시에 출연했는데 정말 힘들었다. 뭐, 똑같이 나쁜 놈이라 크게 헷갈릴 건 없었다. 하하. 그렇지만 대사가 잘 외워지지 않더라. 웬만하면 한 번에 한 작품에만 집중하고 싶다.
지금 나열한 작품 중 가장 나쁜 역할은 뭐였나?
영화 <더 킹>에서 연기한 악역이 진짜 쓰레기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보고 안 하겠다고 했다. 몇 신 나오지는 않는데, 주인공 조인성과 주고받는 대사가 아주 기가 막힌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는 입에 담기 싫을 정도로 나쁜 놈이다.
그런데 한재림 감독님이 적극적으로 캐스팅을 원하셨고 생각해보니 이미 악역을 많이 해왔으니까. 하하. 또 이런 극악한 존재가 있어야 극이 더 추진력을 얻어 잘 흘러갈 수 있다. 캐릭터를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되니까 자세히는 말 못하지만 그간 해온 악역과는 차원이 다르다. 극장에서 보시면 다들 욕 엄청 할 거다.
<38사기동대>에서 ‘마진석’ 역할로 여성에게 인기를 얻었다. ‘마진석’은 불법으로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세금을 체납하는 나쁜 놈이지만, 처자식 안 굶기고 술과 여자를 멀리하며 돈에만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여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감독님이 드라마가 방송되면 아마 얼굴 못 들고 다닐 거라고, 진짜 욕 많이 먹을 텐데 미리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방송 이후 작가님조차 놀랐다고 한다. ‘마진석’은 분명 나쁜 놈이고 연기도 아주 나쁘게 잘했는데 왜 다들 좋아하지? 나도 의아했다. 내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1백 명 남짓이었는데 드라마 이후 3천 명을 돌파했다. 게다가 대부분이 여성이다. ‘보면 볼수록 끌린다’는 반응이 많다. 하하.
요즘엔 다들 착하고 정의로운 주인공보다 하고 싶은 대로 할 말 다 하는 ‘나쁜 캐릭터’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연기하면서도 시원한 지점이 있지 않았나?
물론이다. 나는 한번도 갑의 입장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약간의 희열과 재미를 느꼈다. 내가 언제 이런 삶을 살아보겠나. 허구의 세상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을 담아 연기했다. 그동안 어렵게 살아서 아쉬운 소리 한 적이 많았는데, 악역을 연기하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한 대사들을 직접 하니까 되게 후련했다. 스트레스도 많이 풀렸다.
조니 뎁은 그간 아이들이 볼 수 없는 19금 영화만 찍어서,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캐리비안의 해적>에 출연했다고 한다. 네 아이의 아빠인 오대환 역시 아이들을 위한 작품도 한번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미 딸을 위한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다. 지금 큰딸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6년 전쯤 아빠가 배우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아동극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우리 딸이 보기엔 어려운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직접 연출가를 찾아가서 아동극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비틀깨비>라는 작품이었는데, 한여름에 털옷 입고 도깨비 역할을 했다. 온몸에 땀띠가 나서 고생했지만 보람이 있었다. 딸아이가 아직도 비틀깨비 노래를 흥얼거리고 도깨비였던 아빠를 기억한다. 그렇지만 줄줄이 3명의 아이들이 있어서 더는 못할 거 같다. 나머지 아이들은 그냥 나중에 아빠 작품을 챙겨 보길 바란다. 하하.
혹시 큰딸이 “아빠 이제 착한 역할 좀 하면 안 돼?”라고 건의하지는 않던가?
고맙게도 그런 이야기는 안 했다. 그런데 “왜 아빠는 만날 나쁜 사람 역할만 해?”라고 물어본 적은 있다. 그래서 대답해줬다. “세상에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조화라는 거야. 착한 사람만 있으면 여기가 천국이지. 그런데 분명 나쁜 사람이 존재하고, 누군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 사람을 표현해야 돼. 아빠는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지?”라고. 이제 큰딸은 촬영하러 가는 나에게 다치지 말라고 응원해준다.
괜히 감동적이다. 작품 속에선 늘 못됐지만, 촬영 현장에선 인기가 좋다고 들었다. 여배우들이 팬클럽도 만든다고?
의외로 여배우들이 나를 좋아해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편안함 때문이겠지. 그냥 아저씨고 동네 오빠 같으니까. 다른 배우들 보면 가리는 것도, 조심하는 것도 많은데 나는 그런 게 몸에 배어 있지 않다. 솔직하고 가감 없이 대하니까 다들 편안해하는 거 같다.
사실 나쁜 놈들도 각자 이유가 있지 않나?
드라마 <결혼계약>에서는 사채업자를 연기했다. 내 돈을 빌려 쓰고 갚지 않은 여주인공 유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러게 왜 우리 돈을 빌렸냐? 누구는 땅 파서 그 돈 만드는 줄 아나. 우리도 힘들게 돈 버는 거다.” 사실 부당하긴 하지만 이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가 받을 돈을 받는 거다.
<38사기동대>의 마진석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자기가 불법으로 유흥업소 운영하면서 아내와 딸을 돌본다. 나중에 그렇게 모아놓은 돈을 잃었을 때 서인국과 마동석 형에게 무릎 꿇고 빌지 않나. “나 그거 진짜 어렵게 모은 돈이야. 나 좀 살려줘.” 다들 각자의 방식대로 생존하려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연기했다.
새 드라마 <쇼핑왕 루이>에서 맡은 배역도 나쁜 놈인가?
착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동네 백수 형인데, 부유하게 살던 서인국이 기억을 잃고 서민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다. 그 서민 생활의 길잡이가 되는 형 역할이다. 서인국에게 이런저런 카운슬링을 해주고 대신 2천원, 3천원씩 뺏어서 어묵을 사 먹고 그런다. 기억상실증 걸린 불쌍한 애를 등쳐먹긴 하지만 나쁜 놈은 아니다.
비슷한 종류의 악역이라 하더라도, 영화와 드라마에서 표현의 차이가 있지 않나?
아무래도 드라마는 제한이 있다. 원래 악역의 기본은 욕이다.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누르는 데 욕이 가장 효과가 좋다. 물론 관람 등급에 따라 다르겠지만 비교적 영화에서는 그 표현 방식이 훨씬 자유롭다. 드라마에서는 더 세게 하고 싶은데 자제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 연출자들이 배우 오대환에게서 가장 원하는 건 어떤 연기일까?
나쁜 연기. 싸가지 없고 재수 없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그런 캐릭터일 거다.
앞으로 이런 이미지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진 않나?
나는 더 먼 미래를 계획하진 않는데, 우리 회사 대표님이 나 대신 늘 고민한다. 이번에 <아레나> 화보를 찍는다고 급하게 살을 뺐는데, 사실 체중 감량은 대표님이 계속 주문한 사항이다. 외적으로 변화를 주면 할 수 있는 역할이 늘어난다고 말이다.
대표님이 “대환아, 너 만날 사채업자나 건달 역할만 할래?”라고 묻길래 “어, 할래”라고 대답했다. 하하. 왜냐하면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역할이니까. 나는 캐릭터 하나를 확실히 잡아놓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 바닥에서 캐릭터 하나 굳히는 게 얼마나 힘든데! ‘나쁜 놈’ 하면 ‘오대환’ 이렇게 떠올리는 게 정말 쉽지 않은 거다. 어쨌거나 내가 살만 빼면 일은 대표님이 알아서 해준다니까 지켜보는 중이다. 하하.
요즘 흐름이 좋다. 더 가열하게 노를 저어야 하는 거 아닐까?
대표님이 늘 하는 얘기가 그거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자고. 그런데 나는 물 들어올 때 가만히 물의 흐름을 보자는 생각이다. 물이 들어오면 가만히 있어도 흘러간다. 그래서 늘 서로의 생각을 조율 중이다. 아직은 내가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배우는 아닌 거 같다. 하드 용량이 커져서 대본을 더 잘 외우게 되면 도전하겠다. 지금도 충분히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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