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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거리며 정유미가 웃었다. 화면 밖 정유미는 화면 속보다 열 배는 더 예뻤다. 그걸 더 많은 사람이 몰라봐서 아쉬웠다. 정유미도 그렇다고 했다.

UpdatedOn September 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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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색 니트는 코스 제품.

베이지색 니트는 코스 제품.

유리창 너머 정유미를 바라봤다. 온전히 봤을까? 다 보이는 듯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유리창은 투명했지만, 다 보여주진 않았다. 아니, 여러 가지가 첨가됐다. 창에 비친 사물이라든가, 창에 부서지는 햇살이라든가. 지금 숱한 작품에서 드러나는 정유미의 모습일지 모른다.

정유미는 정유미지만, 여러 가지 첨가된 정유미. 혹은 창틀로 나뉜 공간 속 정유미. 충분히 빛나는 건 맞다. 그 모습만으로도 정유미를 좋아할 이유로 충분했다. 하지만 에디터와 정유미 사이를 가린 창을 치우고 마주했을 때 그 너머 정유미가 드러났다. 몽환적인 빛도, 일렁이는 상(像)도 없었다. 대신 지금 감정에 충실한 쾌활한 정유미가 말을 건넸다. 흔쾌히 들어줬다. 듣고 싶었다.

 

카키색 셔츠 원피스는 에어론 by 비이커 제품.

얼마 전에 푸껫 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많은 곳 중 왜 푸껫을 선택했나?
드디어 휴가다운 휴가를 다녀왔다.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지금까지 여행 가면 바쁜 데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홍콩, 일본 같은 아시아 쪽으로 간다고 치면 쇼핑하거나 먹거리 찾아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수영장이나 바닷가에서 마냥 쉬고 싶었다. 그렇다고 너무 외진 곳은 신혼여행 간 듯해서 좀. 푸껫이 먹거리, 볼거리가 있다고 해서 여자친구와 둘이 갔다.

편안한 느낌의 화보를 찍고 싶다고 시안을 보내왔다. 그렇게 의사를 표현하는 거 좋다.
내가 보낸 시안은 오늘보다 더 내추럴한 분위기였다. 푸껫에 갈 무렵이어서 그 기분에 젖었던 거 같다. 요 근래 화보를 찍으면서, 연기할 때도 그렇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연기할 때도 캐릭터 변화를 막 주고 싶다. 내 성격도 그렇고.

그동안 바쁘게 일해서 쉬고 싶다는 마음이 편한 화보로 연결된 건가?
그런 점도 있다. 이번 작품 끝내면서 쉼 없이 달려온 듯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 <육룡이 나르샤> 보고 나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는 분도 있지만, 아무튼 나는 2004년부터 쉬지 않고 계속 연기해왔다. 역할이 크든 작든. 그래서 그런지 이번 작품 끝났을 때 쉬고 싶다거나, 뭔가 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커홀릭이란 얘기를 들었다. 그런 사람이 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면 정말 열심히 일했나 보다.
나는 일개미처럼 일한다, 하하. 이번에 쉬고 싶다는 느낌이 든 것도 사실 잠시였다. 쉰다는 개념보다는, 여유를 갖고 나를 한번 돌아봐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하고 싶었다. 결국 다 연기자로서 뭐가 필요한지 돌아보려는 거다.

어떻게 보면 일의 연장으로 쉬는 건데, 여태까지 계속 일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왔지만 이제는 연기 공부도 하면서 크게 한 걸음 내딛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쉬고 싶다기보다는 조금 다른 의미의 일거리를 찾는 느낌이다.

한 달 정도 쉬는 동안 지금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해봤나?
일단 기본기다. 이제 현장이나 카메라가 많이 익숙해졌지만, 그 익숙함을 다시 한 번 떨쳐버리고 진짜 기본기부터 탄탄히 채우고 싶다. 다시 두려움, 낯선 감정으로 다가서야 진짜가 나올 거 같은 느낌이다. <하녀들>이란 작품을 할 땐 정말 부담감이 엄청났다. 역할에 몰입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조금씩 나태해질 때 그때처럼 기본기를 다시 다지고 싶다.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역시 사람은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괜찮게 온 편이라고 생각하나?
너무 감사할 정도로 잘 왔다. 나 자신에게는 엄한 편이지만, 평소에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 내 위치는, 어떻게 보면 예전에는 절대 꿈꾸지 못하던 자리거든. 연이어 화보를 찍는다든가, 작품 타이틀롤 윗줄에 내 이름이 있다든가 하는 건 꿈도 못 꿨다.

오디션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선 운 좋게 지금 자리에 있는 거다. 배우들과 소통하는 점이나 현장에서 감독님과 스태프와 연결된 면을 봤을 때, 그래도 내가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내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주고받는다든가 유연하게 대처하는 거라든가. 잘 쌓아왔다.

얘기하다 보니 의외로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일 거 같다.

이제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나보다 점점 어려지잖나. 옛날에는 힘들 때는 매니저 오빠나 코디 언니 찾아서 투덜거리기도 했는데, 이젠 현장에서 스태프 챙기는 게 내 몫이라는 걸 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 태도는 누구한테 배운 건가?
현장에 있다 보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다. 닮고 싶은 분들이 많다. 고두심 선생님이나 김혜숙 선생님 같은 분들. 이 바닥에서 착하게 하면 안 돼, 하는 분들도 많다. 독해져야 해, 하는 얘기라든가.

근데 착한 끝은 있다고, 한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 착한 끝은 언젠간 있다고, 그러니까 변하지 말라고. 정말 맞는 말이다. 연기할 때 나 자신에게 독해지는 건 괜찮은데, 현장에서 기싸움 하듯이 독해지는 건 별로 나와 안 맞는다.
 

민소매 폴라 니트 원피스는 질 스튜어트, 골드 링은 페르페 제품.

민소매 폴라 니트 원피스는 질 스튜어트, 골드 링은 페르페 제품.

민소매 폴라 니트 원피스는 질 스튜어트, 골드 링은 페르페 제품.

회색 앙고라 니트는 올세인츠 제품.

회색 앙고라 니트는 올세인츠 제품.

회색 앙고라 니트는 올세인츠 제품.

주변 남자들에게 물어보면 다 좋아한다. TV 속 깔끔한 이미지를 좋아하는 거겠지?
하하하. 연기자로 살면서도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편안한 배우, 그런 사람으로 다가가고 싶다. 실제 내 성격이 편하고 털털하다. 긍정적이기도 하고. 하지만 맡은 역할로밖에 만나지 못하니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래서 라디오 디제이도 해보고 싶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가고 싶다. 별로 거부감이 없다. 그냥 편하게 재밌게 하는 게 좋다. 그런 사람이고 싶고.

그런 면에서 배역에 아쉬움이 슬슬 생기지 않을까?

난 아직 보여줄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아무래도 하나가 잘 풀리면 계속 근래에 맡은 역할과 연결되더라. 그러면서 이미지화하는 거 같다. 특히 연기적으로는 고정되는 게 싫다. 딱히 내 성격을 보여주고 싶다기보다는, 요 근래 비슷한 역할을 반복해서 걱정스럽기도 한다. 그런 부분에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다.

여러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다음 작품을 고르겠지만, 그런 거 다 떠나서 지금 어떤 역할이 필요하고, 하고 싶나?

정말, 정말 풀어진 역할을 해보고 싶다. 편안한 느낌의 화보나 쉬고 싶다는 마음이 다 이 지점과 연결된다. 여태까지 막 ‘잡고 가는’ 역할을 많이 해서 흩어놓고 내려놓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다.

<정글의 법칙>이나 <출발 드림팀> 등도 어울리겠다.

하하하, <출발 드림팀>! 오랜만이다, 하하. 그런 것도 좋다. 솔직히 하고 싶은 캐릭터가 그렇다는 거다. 진짜 좋은 작품인데 또 진중한 역할을 맡아야 하면, 나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하겠지만. 예전에 김명민 선배님과 새로운 캐릭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나를 확 펼쳐놓고 내 그릇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때 선배님이 영화에 출연해보라고 하더라. 꼭 큰 영화가 아니더라도 내가 시도하고 모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저예산 영화에는 관심 없나?
관심 엄청 많다. 회사에도 늘 얘기한다. 내가 막 해볼 수 있는, 다양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진짜 하고 싶다. 왜 회사에서 나한테 얘기해주지 않지? 하하.

역할 얘기가 나와서 더 물어본다. 하고 싶은 역할은 알았으니, 시켜줘도 아직은 힘들다고 생각하는 역할이 궁금하다.

편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사실 역할의 테두리는 정하고 싶지 않다. 어떤 역할을 제일 하고 싶으세요? 어떤 역할은 조금 그러세요? 앞으로는 어떤 배역 맡고 싶어요? 이런 게 나한테는 어려운 질문이다. 해보고 싶은 역할이 너무 많아서 굳이 재단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단지 이런 건 있겠다. <디어 마이 프렌드>에 나오는 선생님들 연기는 내가 아무리 해도 지금으로선 절대 불가능하겠지.

한 인터뷰에서 일탈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 정유미라는 여배우의 일탈은 뭘까, 하고 무척 궁금했다.
예전에는 배우라면 일탈해봐야 한다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니까 배우를 하려면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일탈을 꿈꿔야 해, 하는 말들. 그때 들은 일탈은 뭔가 비도덕적이고, 완벽하게 나쁜 느낌이 들었다.

어둡고 눅눅하고 칙칙하고.

맞다. 그런 게 일탈이라고 생각해 좀…. 하지만 지금 생각하는 일탈은 진짜 경험하지 못한 걸 과감하게 시도하는 거 자체다. 일상에서, 내가 지금 30년이란 시간을 살면서 해보지 않은 걸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일탈인 거다. 그런 의미에서 일탈은 혼자 여행해보는 거다. 아직까지 혼자 여행한 적이 없다. 혼자 배낭 메고 게스트 하우스 같은 데 묵으면서, 그냥.

만약 혼자 떠난다면 연기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거다. 혼자 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일탈이라는 의미를 넓히면, 스쿠버다이빙이나 서핑처럼 살면서 소소하게 도전하는 것도 나름 일탈이라고 생각한다. 일상 탈출! 하하하.

쉬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바뀌니 이후로 얼마 남을지 모를 시간에 뭘 하며 보내고 싶나?
뭘 할 때 계획을 세우는 편이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이렇게 빡빡하게는 아니지만,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일단 쉬는 기간에 도자기 빚는 것도 배우고 싶고, 서핑이나 다이빙도 해야 한다. 아, 건강검진도 받아야 한다.

소소한 것일수록 빨리 해야 한다. 그러다 일 잡히면 못한다.
맞다. 일단 건강검진부터 한 다음, 최상의 컨디션으로 서핑 하고 다이빙 해야겠다.

서핑은 어디서 하나?
양양 죽도에서 한다.

거기 가면 볼 수 있는 건가?
아마 돌고래처럼 어딘가 떠 있지 않을까, 하하. 죽도에서 만나면 SPF 100짜리 선크림 허옇게 바르고 아는 척하겠다. 아, 못 알아볼지도 모르겠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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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종훈
Photographer 김태선
STYLIST 조보민
HAIR 아름
MAKE-UP 박지혜
ASSISTANT 김민수

2016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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