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역사에서 커피 맛이 주인공인 시대는 없었다. 커피 맛을 구현하는 바리스타나 로스터가 주인공인 시절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가? 우리는 여전히 커피가 가진 수만 갈래의 풍미와 그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나? 변화는 진행 중이다.
시작은 ‘제3의 물결’이라 불리는, 스페셜티 커피가 보편화되면서부터다. 스페셜티 커피 신에서 커피는 식재료다. 생두를 로스팅해 한 잔의 커피로 만드는 일은 요리와도 같다. 지금 우리는 미묘하거나 거대한 맛의 차이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잘하는 커피 뒤에 선 사람들을 궁금해한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카페를, 그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를 찾기 위한 탐험에 나선다.
누가, 어떻게 만드는 커피인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커피맨 4개 팀을 만났다. 커피 그 자체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 팽창하는 서울의 커피 업계에서 서로 다른 기준을 세워 동시대 대중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한 이들이다. 그렇게 지금, 서울 커피의 목소리를 들었다.
Coffee Man 1 프릳츠 커피 컴퍼니
이름은?
김병기 a.k.a. BK. 로스터이자 생두 감별사. 프릳츠 커피 컴퍼니의 공동 대표다. 커피 맛을 보고 품질을 확인하는 일이 주된 업무다.
커피를 업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커피가 내 삶의 지향점을 구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학생 때부터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책을 통해서 커피 공정무역에 대해 알게 됐고, 이를 통해 커피 농장 농부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바에 서 있으면 멋있을 것 같기도 했고. 너무 1차원적인 생각이었다.
커피를 시작한 때와 지금, 추구하는 바는 어떻게 달라졌나?
예전에는 팬시하고 트렌디한 것, 빠르고 앞선 것, 한국에 가장 먼저 소개할 것들이 중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관계나 지속성처럼, 시간이 지나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지금, 어떤 커피를 추구하는가?
우리는 스페셜티 커피를 다룬다. 시작이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스페셜티 커피는 커피를 식재료로 보고, 생두가 지닌 본연의 성질, 그리고 커피 맛에 집중한다. 우리는 중미의 4~5개 국가와 인도의 몇몇 작은 농장과 직접 거래한다. 1년에 한두 차례 농장을 방문해 생두를 고르고, 구입한다. 오랫동안 같은 농장과 일하는 것이 목표다.
프릳츠 커피 컴퍼니의 명성만큼 사업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수익을 거두고 있는가?
얼마 전 작년도 결산이 나왔다. 고스톱을 밤새 쳤는데 2백~3백원 딴 기분이었다. 다리는 아프고 허리도 저려오고 눈도 침침한데. 차라리 속 시원하게 잃었으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않을까, 하며 우리끼리 웃었다.
현재 한국 커피 업계를 어떻게 보는가?
양적 팽창의 시기다. 스페셜티 커피도 마찬가지다. 6~7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카페를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아졌다. 해외에서 자신들이 경험한 카페의 분위기와 문화를 한국에도 구현해보고 싶어 거의 그대로 옮겨오다시피 한 카페들도 많다. 사회 전반에 ‘안정된 직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면서, 멋진 카페로 일을 시작하려는 젊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폭발하는 시기인 것 같다.
그렇다면 가장 안타까운 일은?
역사가 짧은 만큼 아직 맛의 변별력이 없다. 떡볶이만큼도 커피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커피 맛에 집중하는, 스페셜티 커피 시대가 열린 지는 채 30년이 안 됐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무엇을 고민하는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한다. 같이 잘 벌고 잘 나눠 쓰는 체제를 구축하려고 한다. 최근에는 육아 휴직이 필요한 직원이 생겨 몇 개월간 유급 휴가를 주기로 다 함께 결정했다. 임금피크제도 시행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구성원 전체 회의를 통해서 결정했다. 대표인 나와 지금 막 입사한 직원의 월급이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는 시스템이지만, 그 결과 더욱 유대감을 강화하고 함께 오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의 커피 업계에 바라는 점이 있나?
스페셜티 커피가 각광받으면서 젊은 바리스타들 사이에서 강하게 볶은 커피, 강배전 커피는 배척하는 흐름이 생기고 있다. 그런 커피는 안 좋은 커피, 오래된 커피, 낡은 커피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배님이 그런 단계를 거쳐왔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걸 할 수 있는 거다. 그게 역사 아닌가. 존경하고 존중했으면 좋겠다.
Coffee Man 2 헬카페
이름은?
임성은. 이태원 보광동 지옥다방의 바리스타다. 바리스타 권요섭과 공동 대표다.
헬카페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권요섭 바리스타와 나, 둘 다 커피를 나름 10년 넘게 취급해 콘텐츠를 제대로 채울 자신은 있었다. 대신 이름만큼은 뇌리에 남는 것으로 짓고 싶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우리 두 사람과 어울리는 이름이어야 했다는 거다. 시커먼 남자 둘이 하는데 커피 프린스 같은 이름이 가당키나 했겠나. 헬이 아니라 헤븐 카페였어도 지금과 같은 파급력이 없었을 거다. 여러 후보가 있었고 지난한 과정 끝에 결정한 이름이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커피는 기본적으로 어떤 맛인가?
나와 권요섭 바리스타는 보디감이 좋고 씁쓸한 커피를 좋아하는 편이다. 우리의 시그너처 블렌드도 그런 맛을 담고 있다. 블렌드 이름도 카페 이름처럼 우리의 이미지와 어울리게 짓는다. 초창기에 지은 블렌드 이름으로 (좀 세긴 하지만) ‘고추밥’ ‘목구멍 깊숙이’가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 스위트 어쩌고 하는 블렌드를 만들어 내놓으면 어울리겠나.
그런 식으로 이미지의 확장성에 중요한 의미를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카페를 차렸다는 것은 하나의 브랜드를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또 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아이를 하나 낳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는 점차 자라겠지. 우리도 잘 키우려고 열심히 하겠지. 그런데 잘 크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우리는 어떤 유형의 확장성으로 이 아이를 키울 것인가를 중시했다. 철저한 의도 아래 이미지의 확장성에 집중했다.
매일 어떤 순간에 카페를 방문하느냐에 따라 음악의 종류나 볼륨, 조명이 달라지기도 하던데.
컴플레인도 많이 받는다. 볼륨이 너무 크니, 너무 작니, 너무 어둡니. 당연하다. 우리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조절하는 거니까. 하지만 손님의 요청대로 분위기를 만들어줄 때도 많다. 요청이 들어오면 즉각 조율해준다. 오늘 아침에 찾아온 손님은 음악을 크게 듣고 싶다고 해서 볼륨을 최대한 키웠다.
헬카페는 임성은 바리스타의 클래식 카푸치노와 권요섭 바리스타의 융드립 커피로 유명하다. 특히 임성은의 클래식 카푸치노는 손님 눈앞에서 카푸치노 푸어링을 하는데, 매번 그렇게 하는가?
그렇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나는 바리스타 대회에 정말 많이 나가봤다. 대회에서는 보통 바리스타가 심사위원 바로 앞에서 카푸치노 푸어링을 해준다. 그래야 맛있으니까. 카푸치노는 거품이 있는 음료다. 가벼운 거품이 위에 있고, 상대적으로 묵직한 커피가 아래에 있다. 이 둘의 일체감을 느끼려면 최대한 푸어링을 하자마자 마셔야 한다. 무조건적인 조건이다.
헬카페를 열며 세운 목표는 무엇이었나?
헬카페를 열면서 나에게 제일 중요한 목표는 떳떳하게 해내는 것이었다. 헬카페는 나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오픈한 것이었고, 나는 필드에서 나름 10년 이상 뛴 사람이었으니까. 큰일이 없는 한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할 것 같은데, 창피하지 않게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시작했다. 심사위원한테는 잘 보이려고 눈앞에서 카푸치노 푸어링을 하는데 손님한테는 때에 따라 해주면, 나 스스로 떳떳하지 않은 일이 되니까. 손 한번 가면 더 맛있어지는 메뉴들이 있다. 그걸 장사가 잘된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거다. 그건 배신이다.
커피를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지금 당신은 무엇을 꿈꾸나?
커피 만들면서 밥 먹고 사는 걸 보여주고 싶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또 나는 커피를 매개로 커피업을 하는 게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카페에서, 필드에서 직접 접객하며 일하고 싶다.
헬카페가 어떤 사람들을 위한 곳으로 자리 잡길 원하나?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 예민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갈 데가 없거든.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커피가 맛없거나 음악이 별로이거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참기 어렵다. 그런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란다.
Coffee Man 3 펠트 커피
이름은?
김영현, 송대웅.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펠트 커피의 공동 대표다. 김영현은 로스터리 공장이 있는 여의도에 주로 머물고, 송대웅은 펠트 커피에서 생산한 커피 영업이 주 업무다. 강변북로 위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펠트 커피를 오픈한 지 이제 9개월이 넘었다.
펠트 커피 이전에는 무엇을 했나?
김영현은 여의도의 로스터리 카페 매드 커피의 대표였다. 송대웅은 국가대표 바리스타인 김사홍이 이끄는 커피 템플에서 바리스타를 하다 매드 커피가 로스터리 공장을 설립할 때 김영현과 함께 일하게 됐다. 매드 커피는 카페 공간으로 여의도에 그대로 있다. 이곳에 펠트 커피를 오픈하면서 매드 커피 로스터리에서 제조하던 커피 브랜드의 이름을 모두 펠트로 바꿨다. 펠트 커피의 오픈과 함께 리브랜딩한 셈이다.
왜 매드에서 펠트로 이름을 바꾸었나?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펠트라는 이름은 ‘Feel’의 과거형인 ‘Felt’를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름이 필요했고 마침 친한 친구가 한 단어를 던졌을 뿐이다. 처음부터 이름이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리브랜딩을 한 이유가 있었나?
거창한 사업을 꿈꿨던 것은 아니지만 원두 판매를 하는 카페 브랜드로서 우리 원두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마실 수 있기를 바랐다. 좀 더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공간, 이름, 브랜드가 필요했다. 펠트 커피의 오픈은 펠트라는 커피 브랜드를 보여주기 위한 쇼룸 개념도 있었다.
카페 안에는 테이블도 없다. 간이 벤치가 전부다. 심지어는 펠트 커피라는 간판도 없다. 이전의 간판이었던 ‘은파피아노’가 펠트 커피의 입간판을 대신한다.
벤치도 옆 가게에서 빌려온 것이다. 반납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미니멀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정확한 콘셉트를 정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한여름에 직접 페인트칠해가며 만든 공간인데, 만드는 내내 충돌이 많았다. 서로 마음에 안 드는 걸 빼다 보니,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됐다.
명색이 공동대표인데, 함께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두 사람이 의견이 일치한 부분은 없나?
일을 하면서 친분을 쌓은 관계다. 그런 가운데, 새로운 걸 하고 싶고 주변 여건이 잘 맞았다. 무엇보다 추구하는 커피 맛의 방향이 같았다. 그것만 같았다. 커피를 좋다, 나쁘다 구분하는 기준이 비슷했다.
두 사람은 어떤 커피를 좋고, 맛있다고 느끼나?
우리도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다. 하지만 스페셜티 커피로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성질의 맛 중에 편안하고 균형 잡힌 맛을 추구한다. 어떤 사람들은 커피에서 화사한 과일 맛이 날 때 맛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특별한 향이 나는 걸 좋아할 수도 있다. 우리는 편안함이 먼저다. 밸런스.
펠트 커피로서 그리는 큰 그림은 무엇인가?
좋은 매체가 생겨나고 인스타그램 등 SNS가 발달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랑을 받게 됐다. 감사하다. 그런데 지금이야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 인기를 얻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앞으로 30년은 더 커피를 만들고 싶다. 트렌디한 카페로 30년을 갈 수는 없다. 펠트 커피가 좀 더 커피 그 자체로 알려졌으면 한다. 잔으로 파는 커피 가게로서 존재하는 것과 커피 원두를 발굴하고 생산하고 제조하는 커피 업체로서 양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목표다. 펠트라는 하나의 회사로서 메인 사업은 원두 납품이니, 이를 증진할 계획이다. 프릳츠 커피 컴퍼니와 함께 커피 원산지에 가서 커피를 구입한다. 작년에도 가고 올해도 다녀왔다. 돈이 더 들면 들었지 이윤 남는 일이 절대 아니다. 그래도 계속 해볼 계획이다.
Coffee Man 4 커피가게 동경
이름은?
이재우. 망원동에 위치한 커피가게 동경의 오너 바리스타이자 로스터다. 망원동은 나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학교도 여기에서 나왔다.
커피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가?
첫 경험은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근무했던 홍대 앞 카페, ‘상파울루’에서다. 그러고 보니 상파울루도 커피가게 동경처럼 창문 없는 지하 1층이었고 조금 어둡고, 핸드 드립 커피 전문점이었다. 나름 엄격한 규율이 있던 곳이어서 일한 지 1년이 넘기 전에는 주전자도 못 잡고, 서빙만 해야 했다. 그곳에서 처음 커피를 접했다.
카페의 로스터와 바리스타는 당신뿐인가?
커피를 볶고 내리는 일은 혼자 한다. 분배해서 일하는 것이 어떠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내 손으로 다 해드리고 싶다. 지금까지는 할 만하다. 효율성은 좀 떨어진다. 혼자 하기 때문에 손님들도 많이 기다린다. 그게 가장 죄송스럽다.
핸드 드립 커피만 고집하는데, 이유가 있나?
처음 커피를 시작할 때는 보통 카페처럼 에스프레소도 하고 핸드 드립 커피도 하고 샌드위치도 팔았다. 커피가게 동경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다 덜어내고 핸드 드립만 한다. 다 해봤지만, 핸드 드립이 나의 성향과 가장 잘 맞는다. 나에겐 이 방식이 편하다. 지금은 에스프레소 커피도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넓어졌다. 바리스타의 역량이 중요해졌다. 기계로 어떻게 추출하느냐에 따라 맛이 크게 좌우된다. 그런데 드립은 변수가 훨씬 더 많다. 커피를 가는 일 말고는 기계의 힘을 전혀 빌리지 않으니까. 커피 맛의 90% 이상이 사람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이 매력 있다. 그렇게 대상에 맞춰 접근할 수 있고, 손님의 취향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추출법이라 나와는 잘 맞다.
커피가게 동경이 보여주고자 하는 커피는 무엇인가?
맛에 대한 지향점은 계속 변화한다. 지금의 키워드는 균형감, 밸런스다. 스페셜티 커피만 사서 로스팅한 때가 있었다. 또 산미에 심취하기도 했다. 약배전(생두를 약하게 볶는 일)의 끝까지 가서, 어디까지가 정말 안 익은 커피이며 어디부터가 익은 커피인지를 보고자 하는 일에 깊이 빠진 적도 있었다. 어리석게도 고객에게 커피 맛을 강요한 때도 있었다. 이게 정답이라고, 이게 진짜 커피라고. 그런 오류를 범하면서 지나왔다.
커피에 대한 당신만의 철학이 있다면?
완벽한 커피는 없다는 것. 나는 그걸 인정하고 수긍하는 커피를 하고 싶다. 완벽한 커피를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편안한 커피를 추구해야 그 맛이 고객에게도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커피 만드는 사람의 스트레스도 커피 안에 묻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점 없는 커피를 만들겠다는 지향도, 본인이 스스로 설정한 자신만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제 생각에는 이 커피가 좋은 것 같은데, 한번 드셔보세요. 어떤가요?’ 하는 마음가짐으로 일한다.
아인슈페너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매일 가게 앞에 긴 줄을 선다.
스스로도 무척 신기하다. 커피가게를 11년째 하고 있다. 11년 전에도 아인슈페너를 했다. 그때는 하루에 한두 잔 팔렸다. 지금은 하루에 판매되는 커피의 90%가 아인슈페너다. 어디에서, 언제 유행이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호황이니, 기쁘지만 오너 입장이 아닌 바리스타와 로스터 입장에서는 다른 메뉴들도 다양하게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아무 정보 없이 지나가다 처음 커피가게 동경을 찾은 손님이 있다면?
취향을 묻고, 드립 커피부터 한 잔 드리고 싶다. 나는 가게의 첫 커피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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