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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UCC

온라인 세상에 UCC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나 역시 지루한 삶을 바꿔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일생일대 첫 번째 UCC를 이렇게 완성했다.<br><br>[2007년 2월호]

UpdatedOn January 18, 2007

Photography 우정훈, 기성율, 박원태 Illustration 김창규
Cooperation 존 프랭클 주짓수 압구정, 다음 커뮤니케이션 Assistant 이지인 Editor 성범수

캐논 변주곡을 연주해 유명해진 임정현을 보고 UCC를 만들어야겠다고 맘먹은 건 절대 아니었다. UCC 사이트를 총 맞은 돼지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밤새는 건 일도 아니다. 참여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프리 허그(Free-Hug) 무브먼트처럼 작은 내가 큰 세상을 위로할 수 있다면 UCC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가치 있는 작업이라 하겠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했다. <타임>지는 유튜브 같은 영상파일 공유사이트, 마이스페이스 등 개인 블로그를 언급하며 디지털 민주화라는 새로운 현상의 틀을 만들고, 전 세계 미디어 영역을 확장하고 장악한 점이 불특정 다수인 ‘당신’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배경이라 전했다. 그리고 ‘당신’을 비춰주는 거울이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이 역시 정보화 시대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바로 ‘당신(You)’이라는 의미를 천하에 알리기 위한 목적의 발로였다. 난 거대한 UCC 세상에 뛰어들기로 작정했다.
UCC(User Created Contents)는 개인이 창조해 올리는 콘텐츠를 말한다. 음악, 영화, 사회고발, 사회운동, 어떤 분야든 상관없다. 산속에서 20년간 수련을 한 무도인이라면, 긴 수염 휘날리며 독립문을 뛰어넘을 수 있는 도인적 면모를 찍어 올릴 수도 있고,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면 제이미 올리버처럼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동영상을 올려도 좋다. 거창한 특기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사람들의 눈을 끌기 위해선 화려함이나 교육적인 콘텐츠는 기본이다. 나만 해도 레이싱 모델들을 찍어 올린 콘텐츠나 야마카시 같은 부류의 동영상을 즐겨 보는 편이니까.
UCC의 바다에 빠지고 싶지만 내겐 내로라할 만한 비장의 무기가 없다. 몸놀림이 가벼워 익스트림 마셜 아츠나 살사댄스 같은 걸로 사람들을 자극할 만한 재주가 없다는 거다. ‘타짱’같은 몸으로 웃기는 개그를 친구와 함께 선보일까도 했지만, 제 살 깎아먹는 꼴밖에 되지 않을 듯싶었다.
고민을 거듭하다 내가 찾아낸 건, 이 세상엔 나 같은 족속들이 넘쳐난다는 거였다. UCC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만, 특기가 없기에 아무것도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 말이다. 그들도 역시 나처럼 뭔가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들이 찾은 건 세계 각지의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재밌는 콘텐츠들을 모으는 거였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합법적인 경우보다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개인 블로그나 UCC 사이트에서 넘쳐나는 동영상 중 대부분은 불법이라는 걸 아는가? 알면서도 재미만 있으면 저작권과 상관없이 퍼나르는 건 정말 문제다. ‘퍼나르기’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방송사 로고가 있는 프로그램(종영 혹은 현재 방송 중인 프로그램)을 캡처한 동영상, 케이블을 통해 현재 방송되고 있거나 종영된 프로그램을 캡처한 동영상, 광고주와 홍보대행사의 허락을 받지 않은 광고 동영상, 공연기획사와 홍보대행사의 허락을 받지 않은 콘서트, 공연 및 행사 동영상 등을 원천적으로 블로그로 옮겨와선 안 되는 것이다.
법적인 문제와 멀리 떨어져 있고 싶다면, 역시 직접 UCC를 제작하는 게 최선이다.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바람직한 UCC 문화’라는 주제로 나만의 UCC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지만 내 첫 UCC로는 괜찮을 것 같다. 자료는 저작권협회 같은 곳에 요청하고, 뉴스데스크 형식으로 UCC를 만들면 될 것 같았다. 남의 것을 무단으로 퍼오는 행위는 인터넷에선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다. 법적인 대응도 거의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클릭만 하면 내 것이 되는 것을 어찌 멈출 수 있겠는가. 누군가가 그들을 교화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직접 나서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친구들은 내가 그런 걸 진행하면 뉴스데스크가 아닌 <웃찾사>에 나오는 ‘형님 뉴스’ 콘셉트로 하면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만화가게에서 범인으로 오해받아, 경찰에게 신분 조회를 당한 경험이 있는 에디터는 합법적인 일을 설파하는 데 있어 부적절한 외모를 지녔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 계획은 포기했다.
UCC를 만들려 하니 또 다른 아이디어들이 용솟음쳤다. 최근 DSLR 카메라가 인기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유저들이 늘고 있는 추세니까. ‘똑딱이’ 카메라에 익숙한 내겐 DSLR 카메라를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UCC가 절실했다. 난 이런 개념의 동영상은 잘 만들 수 있다. 잡지 에디터의 특성상 주변에 넘쳐나는 게 내로라하는 프로 사진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들 중 몇 명에게 부탁만 하면 초보적인 UCC가 아닌 고차원의 PCC(Proteur Created Contents)까지도 완성할 수 있을 테니까. 난 초보 DSLR 유저의 역할을 맡고, 그들은 선생 역할을 담당하면 문제될 건 없었다. 내가 꿈꾸는 교육용 PCC는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밥도 사고, 차도 샀건만 나와 친한 사진가들이 모두 거절했기 때문이다. 야인으로 살겠다는 그들을 인터넷 세상으로 억지로 끌어내고 싶진 않았다. 독자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요즘 오프라인에서 차와 밥을 산 걸 미끼로 촬영에 대한 기술을 나 혼자 배우고 있다.
2월호 마감이 내 목을 조르고 있었기에, 즉답을 얻어내 바로 진행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물론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한다는 건 기본이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잊어버리긴 했지만, 난 유도를 1년 정도 배웠다. 그 경험을 살려 이종격투기와 함께 주목받고 있는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배우기로 했다. 주짓수를 선택한 배경은 화려한 그라운드 기술을 촬영해 올릴 수 있다는 것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도장이 <아레나> 사무실과 아주 가까웠기 때문이다. 더불어, 운동하는 사람들은 배우고 싶어 찾아온 사람들에게 언제나 아량 있는 무도가의 모습을 보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압구정에 위치한 존 프랭클 주짓수 도장은 한국에 주짓수를 처음 전파한 블랙벨트 존 프랭클 사범이 운영하는 도장이다. 예상대로 그들은 흔쾌히 내 체험을 허락하는 답신을 보냈다. 존 프랭클 사범은 길거리 싸움을 포함해 4백50전 무패 전설의 주짓떼로 힉슨 그레이시에게 사사했다. 1시간 반 동안의 체험에서 그의 몸놀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의 실력만큼이나 맘에 들었던 건 그가 연세대 언더우드 인터내셔널 칼리지의 공통과정 책임교수라는 사실이었다. 국내 현존하는 주짓수 최고수이자 가르치는 방법을 아는 교수라는 직함은 내가 만들고 싶어 하는 주짓수 PCC를 위한 최적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한국 말도 굉장히 잘했다. 물론 그와 첫 대면이었던 관계로 PCC를 만드는 데 도움을 달라는 말을 하진 못했다. 그렇다고 주짓수를 배우는 과정만으로 UCC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짓수는 그렇게 만만한 운동이 아니다.
난 또 포기라는 두 글자를 어깨에 짊어지고 도장을 물러나왔다. 망가진 계획으로 최종 목표를 재설정해야 했다. 하지만 몇 번의 도전과 실패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노란 벽돌길같이 내 길을 인도해주었다. 어떤 작업을 해야 성공할지,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는 거다.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통계에 따르면 동영상의 업로드 비율은 CF·TV·영화·애니메이션 등 엔터테인먼트가 40%, 콘서트·뮤지컬 등의 공연이 20%, 요리·여행·댄스·동물·사람 등의 셀프 동영상 30%, 기타가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업로드 비율이 높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라는 거다. 하지만 난 40%를 차지하는 교육방송 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실패했고, 20%를 점유하는 공연예술도 저작권 문제로 피해야 했다. 결국 셀프 동영상을 찍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요리, 댄스 같은 셀프 동영상에 도전한다면 실패는 불 보듯 뻔했다. 얼굴 팔리는 건 싫었지만 프리-허그(Free-Hug) 같은 무브먼트를 하는 게 UCC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는 최종 결론을 도출해냈다. 그렇다고 홍대와 명동에선 이미 한물간 이벤트 같은 프리-허그를 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아까 말했듯, 프리-허그를 외치며 여자들을 끌어안을 용기가 없다. 물론 그들도 반갑게 안기지는 않겠지만. 신체적 접촉 없이, 프리-허그가 담고 있는 의미만큼 멋진 상상이 필요했다. 그건 거울을 들고 명동 거리로 나가는 거였다. <타임>지가 선정한 2006년 올해의 인물이 ‘당신(you)’이라는 걸, 그리고 그게 어떤 큰 뜻을 함축하고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며, 이 세상을 움직이는 전초기지라는 걸 거울을 통해 보여주는 프리-쇼잉(Free-Showing) 무브먼트를 완성하고 싶었다. 먼저, 나와 함께할 팀을 구성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전문적으로 벽화를 그리는 친구로 사람들이 그림만 봐도 프리-쇼잉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동영상을 찍을 친구도 정했다. 전체적인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숙지하고 디데이를 정했다. 세계 최초로 진행하는 신개념의 무브먼트인 만큼 걱정과 긴장감이 번갈아가며 나를 자극했다. 사람이 붐비는 토요일 오후 우리는 명동 거리로 나섰다. 사실 난 이런 일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의외로 수줍음이 많은 편이라 거리에서 이런 운동을 할 위인은 아니었던 거다. 우리가 완성도 있는 거대한 그림과 거울을 들고 거리로 나서자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프리-허그에만 익숙했던 사람들은 “이건 뭐지?” 하며 궁금증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을 파악하고 먼저 와서 거울을 보고 가는 사람은 없었다. 한동안 우리는 여행 온 외국 사람들의 사진 촬영을 위한 모델일 뿐이었다. 준비한 것이 그들에게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부분에서는 아쉬웠지만, 그래도 주목받는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프리-허그는 ‘프리-허그’라고 크게 쓴 보드판만 들고 있으면,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행위가 됐다. 너무나 잘 알려진 덕분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행한 ‘프리-쇼잉’은 우리가 최초인 1세대였다. 어떤 여학생은 여기는 누가 안아주느냐는 질문까지 했을 정도로 우리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거울을 등장시킨 <타임>지 표지 - 뉴스와 인터넷을 장식했던 - 를 사람들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은 판단 착오였다. 명동에 나온 지 한 시간이 지날 무렵 몇몇 사람들이 지나가며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의 행위를 이해하고 있는 듯 생각되는 사람은 “이렇게 하면 되는 거죠?”라고 물어보며 거울을 봤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스쳐지나가듯 은근슬쩍 거울을 쳐다봤다. 의미를 모르더라도 그들이 거울을 바라본 행위는 ‘당신(You)’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건 우리의 의도와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다. ‘아레나 프리-쇼잉’ 1차 명동 진출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동영상 촬영을 진행한 관계로 조만간 내 개인 블로그에 올릴 계획이다.
판도라 TV에서는 동영상 UCC를 올리면 받을 수 있는 사이버 머니 ‘큐피’를 현금으로 바꿔준다고 한다. 동영상 UCC 광고의 수익 일부를, 해당 영상을 제작한 이용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거다.
인기 UCC 서비스인 유튜브에 유명 인사의 섹스 비디오가 유포됐다. 브라질에선 이 일로 사이트 폐쇄 명령을 받았다. JYP엔터테인먼트에서는 포털 다음 커뮤니케이션, 케이블 음악 채널 MTV와 함께 그룹 ‘원더걸스`’의 마지막 멤버 뽑기에 나섰다. 그들을 시작으로 많은 UCC 사이트들이 매니지먼트사와 함께 신인 연예인 발굴에 일조하고 있다.
최근 UCC 관련 기사들이 신문과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다. UCC를 통해 돈을 벌 수도 있고, 개념 없는 동영상 유포로 사이트가 폐쇄되기도 하며, 선망의 대상인 스타가 될 수도 있다. UCC의 파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급상승하고 있다. 이 물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전망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 UCC는 내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UCC를 만들고 잃어버린 건강을 찾기 위해 현재 주짓수를 배울 계획이며, 또 다른 특기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활동을 살피고 다니는 중이다. 내 떨어져가는 기억력과 지식은 최근 포화 상태에 다다랐지만, 입수되는 정보는 복리로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를 위해 신문도 빠지지 않고 읽는다. 요즘 내가 계획 중인 것이 있다. 10년 프로젝트로 셀프 카메라를 찍는 거다. 일요일에 한 번씩 같은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동영상으로 찍어 모아둘 계획이다. 10년 뒤의 내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어렵지 않게 텔레비전과 소파에서 뒹구는 카우치 포테이토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UCC 덕분에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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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우정훈, 기성율, 박원태
Illustration 김창규
Cooperation 존 프랭클 주짓수 압구정, 다음 커뮤니케이션
Assistant 이지인
Editor 성범수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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