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엘조는 아이돌 그룹 틴탑 멤버다. 열여덟에 데뷔해 이제는 스물넷이 됐다. 작곡에 비중을 뒀으나 최근 연기에 집중하면서 드라마 <딴따라>의 서재훈 역을 얻었다. 서울대학생. 다섯 살 때부터 엄마 손에 끌려 다니며 만들어진 우등생. 크게 웃지 않는 입. 작게 찡그리는 눈. 여느 청춘과는 거리가 먼 서재훈을 연기하는 동안, 엘조는 그와 무척 닮아 보였다. 컷과 컷 사이. 스튜디오에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높은 천장에 부딪히며 울렸다. 그러는 동안 엘조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태여 말을 더하는 일에 흥미가 없어 보였다. 말수가 적으면, 행동은 괜한 허울을 차려입을 필요가 없어진다. 엘조는 대신 필요한 순간에 정확히 움직였다. 카메라 앞에 선 엘조가 고개를 살짝 까딱일 때마다 소년의 얼굴에는 극히 다른 선이 그려졌다. 그때도 엘조는 말이 없었다. 서재훈처럼, 흔한 청춘과는 좀체 연결 짓기 어려웠다. 스물넷이라는 나이의 스테레오타입과 엘조가 맞아떨어지는 요소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원래 말수가 적나?
혼자 있으면 가라앉는 편이다. 친해지면 장난도 잘 치고 잘 노는데 처음 만난 사람들과는 서로 알고 있는 정보가 없으니 대화할 거리를 잘 찾지 못하기도 하고.
이유 한번 담백하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거지?
인터뷰할 때는 질문을 하니까 괜찮다. 평소에 대화할 땐 진심으로 궁금하지 않은 것은 굳이 물어볼 필요를 못 느낀다.
고요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세상 시끄러운 일들을 다 사그라뜨릴 호수 같다. 그런 청년이 아이돌이 되고자 한 것이 사실 조금 놀랍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해서 유명해지면 좋지 않을까?’ 데뷔까지의 과정이 힘들었는데, 데뷔 후는 더 힘들더라. 살아남아야 했다.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되더라. 그래야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그게 열여덟 나이에는 태연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요즘도 가요 방송을 보면 신인 아이돌이 많다. 후에 소리 없이 사라지는 팀도 많고. 그걸 보면 데뷔 초 생각이 난다. 만약 틴탑이 그런 운명에 처했다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래서 늘 마음에 여유가 없다. 계속 할 일을 만들고 싶고.
그래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뭔가를 지속하는 힘이 좋은 모양이다.
지구력도 아니고 정신력 싸움인 것 같다. 사실은 기운의 오르내림이 심한 편이다. 가끔 엄청나게 다운될 때가 있는데, 그때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루 힘들어하고 나면 괜찮아진다. 내일부터 ‘다시 잘하자!’ 하고 털고 일어난다.
드라마 <딴따라> 촬영이 곧 끝난다. 출연자 중에 또래가 많더라. 음악 방송 대기실 같은 분위기였겠다.
대기 시간이 긴 편이었다. <딴따라> 친구들과 친해지면서부터는 대기 시간에 함께 어울려 논다. 놀 게 전혀 없는 날도 있는데, 그럼 그냥 주변을 걸어 다닌다. 시답지 않은 얘기도 하고. 최근에는 우리 모두 볼링에 빠졌다. 볼링 치러 종종 다녔다. 볼링은 거의 칠 줄 몰랐는데 친구들 덕분에 얼마 전에 130포인트까지 찍었다. 열심히 쳤거든.
지기 싫어서?
게임할 때마다 내기를 한다. 진 사람이 볼링 값을 낸다. 이왕이면 공짜로 하는 게 더 기분 좋으니까 이 악물고 했다.
긴 호흡의 지상파 드라마에는 처음 도전했다. <딴따라>에서 맡은 밴드 드러머 서재훈은 여러모로 엘조에게 적합한 역할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외국에서 음악에 대한 꿈을 숨기고 공부에만 매달렸던 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당시 나는 가수의 꿈이 자꾸 커져서 무작정 한국에서 오디션을 봤다. 연기를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데, 캐릭터에 녹여낼 수 있는 것이 내 안에 꽤 있어서 좋았다. 서재훈에 대해선 대본에 다 쓰여 있어 어려울 것은 없었다. 그래도 간혹 어색한 부분이 있기는 했다.
어떤 연기를 할 때 어색하던가?
갑자기 확 밝아져야 할 때. 아직까지는 좀 어렵다. 점차 밝아지는 건 할 수 있는데.
아이돌이 연기 생활을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가 잘하건 못하건 궁금해한다. 왜 연기를 할까?
나는 연기 역시 데뷔 전부터 하고 싶었다. 틴탑 멤버 모두 1년 정도 연기 레슨을 받았는데 그 와중에 끝까지 생존한 사람이 나였다. 할수록,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더라. 요즘 제일 재미 붙인 게 연기다.
어떤 매력이 있던가?
연기는 대개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호흡을 맞춘다는 것. 그게 정말 재미있다. 감독님 지시를 따라 촬영에 딱 들어가는 순간, 조용한 공기가 흐른다. 따뜻한 느낌이다. 그래서 여럿이서 합을 맞추는 신을 좋아한다. 연기자들 사이의 호흡이 생동할 때 기분이 좋다.
드라마를 통해서 스스로 발견한 의외의 재능도 있나?
재능이라기보다 나는 관찰을 많이 한다. 연기를 막 시작한 지금 단계에 나의 관찰력이 꽤 잘 쓰인 것 같다. 이번 드라마 시작하기 전에도 여러 작품들을 공부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좋아하는 작품만 본 것 같다. 아, 이건 좀 문제였네.
하하. 어떤 걸 봤기에?
<싸인> <펀치> <비밀>… 원래 이런 드라마를 즐겨 본다. 시트콤이나 로맨틱 코미디는 아예 안 본다. 그런 재미는 잘 모르겠다. 유일하게 본 드라마가 <그녀는 예뻤다>와 <최고의 사랑>이다. 장르물을 좋아하고, 할리우드 영화로는 마블 작품들을 다 본다.
얼마 전 일본에서 영화도 한 편 촬영한 것으로 안다. 아직 개봉 전이지?
맞다. 한일 합작 영화다. 제목은 <절벽 위의 트럼펫>. 나는 재일교포인 남자 주인공 지오 역이다. 지오는 신비로운 소년이다. 미스터리가 많은 아이다. 영화에서도 지오에 대한 정보는 이름뿐이다.
평소 본인과 팀에 대한 반응을 빠짐없이 모니터링하더라. 그 많은 말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나?
진짜 괜찮으려면, 인터넷이나 SNS는 아예 안 하는 게 낫다. 그런데 나는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자주 들여다본다. 좋은 반응이야 기쁘지만, 안 좋은 코멘트를 보고 괜찮을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 나 역시 마찬가지다. 자존감이 굉장히 높은데, 좋지 않은 말을 듣더라도 그냥 흘리지 않는다. 별로였다고 하면 왜 별로였는지 계속 생각하고 파고든다. 우선은 그냥 맥주나 마신다.
혼자 이겨내야 하는 순간이니까.
다른 사람들 눈에 나는 피곤한 사람일 것이다. 항상 불안해하고 걱정하거든. 뭔가를 해내고 싶다는 열망이 있는데, 현실은 아직 만족스럽지 않으니까. 그래서 바쁘지 않을 때에도 혼자 늘 시간에 쫓긴다.
<딴따라> 촬영이 끝나고 나면 당분간 휴식할 예정이라고 하더라. 촬영이 끝난 날에는 당장 무엇을 하고 싶은가?
쉬는 걸 좋아하지 않아 또 다른 할 일을 찾아낼 것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 이루지 않은 상태에서 쉬면 불편하다. 그래서 여행도 늘 짧게 간다. 길어봐야 3일이다. 해외여행은 홍콩만 한 번 가봤다. 쉬는 것에 대한 갈망이 없다.
얼마만큼 이루어야 쉬고 싶어질까?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결국엔 자기만족이니까. 만족할 때까지 달리고 싶은데, 요즘은 과연 다 달리고 멈출 날이 올까 싶다.
족하는 순간이 정말 오래도록 오지 않으면?
그냥 계속 가봐야지. 순간에 충실하면서. 그런데 어쩌면 평생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 나는 그냥 지금을 탄탄하게 유지하면서 가고 싶다. 이곳에서는 한 번의 실수가 그간 쌓아온 걸 끝내버리기도 하니까.
끝내 얻고 싶은 것은 대체 뭔가?
무엇으로든 인정받는 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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