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S/S 남성 컬렉션을 2주 앞둔 지금 시점에서 뜬금없게 많이 받은 이메일 중 하나는 예정된 쇼를 취소한다든가 새로운 도시에서 쇼가 열릴 거라는 통보다. 밀라노와 파리라는 패션 도시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계획된 연례 행사처럼 쇼를 치를 거 같던 브랜드들에게 대체 어떤 감정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가장 큰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급진적으로 변화하는 패션 캘린더 이슈라든지, 현장 즉구(See Now, Buy Now) 시스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교체로 인한 브랜드 재정비 등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슈를 포괄하는 꼭대기는 즉각적이고 실질적으로 변해가는 패션계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2016년적 현상으로 묶이게 된다. 하이 패션은 여러모로 예전만큼 성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어떤 현대 대중문화보다 능동적으로 변화한다는 것.
패션 캘린더에 대한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도시에 관한 입장이 변화한다는 건 꽤 놀라운 부분이다. 전통적 패션 도시에서 시작된 오래된 하우스들은 1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적지 않은 변화를 겪으면서도 근본이 되는 도시에서 쇼를 열어왔다. 그것은 도시와의 유대였고 존중이었다. 어찌 보면 하이 패션의 보수적 기질을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안 중 하나이기도 했고.
하지만 이런 개념도 팝 문화처럼 되어가는 업계 상황에서 점점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최근의 경우라면 대표적 하우스들의 크루즈 컬렉션들. 물론 크루즈 컬렉션이라는 유별난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샤넬 매장 하나 없는 쿠바 아바나에서 쇼를 연 샤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니테로이 현대 미술관에서 쇼를 연 루이 비통,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구찌, 런던 블레넘 궁전의 디올은 ‘도시와 패션쇼’ 이슈에 가장 현재적인 대답을 내놓은 모습이다.
근원의 도시를 벗어난 또 다른 도시, 정형화되지 않은 장소, 컬렉션을 효율적으로 설명해줄 공간적 뉘앙스, 기존 도시에 구속되지 않고 스스로 벗어났다. 한편 며칠 전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패션 허브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LA로 ‘스톱오버’했다. 음악, 예술, 패션을 다방면으로 다루는 에이전시 ‘메이드’가 개최하는 ‘메이드 LA’ 이벤트의 일환으로 모스키노, 후드 바이 에어,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골프 왕이 패션쇼와 프레젠테이션을 연 것. 일반인에게 티켓을 판매해 ‘민주적’ 참여를 유도한 이 이벤트에서 모스키노의 4백 달러짜리 VIP 패키지는 티켓 오픈과 함께 매진됐다. 동시에 패션쇼를 몇 차례 거른 톰 포드도 9월 성대한 쇼를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물론 LA였다.
헬싱키에서도 흥미로운 패션쇼가 열렸다. 핀란드 국영 항공사 핀에어와 헬싱키 공항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항공사 및 허브 공항임을 홍보하고자 활주로에서 패션쇼를 진행한 것. 서혜인을 비롯한 전 세계 신진 디자이너들의 옷을 입은 모델은 비행기와 활주로를 런웨이 삼아 워킹했고, 초청된 프레스들이 착석한 활주로는 곧 프런트 로였다.
항공사가 패션과 유대를 맺으려는 움직임은 이뿐만이 아니다. 에티하드 항공은 시드니 패션위크를 시작으로 뉴욕, 런던, 밀라노, 베를린의 패션위크를 포함한 여러 패션 이벤트를 후원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마치 패션계의 공식 항공사가 되려는 움직임처럼 보인다.
이 선택의 이유는 꽤 명쾌하다. 일 년에 몇 번씩 열리는 패션 이벤트를 위해 갖가지 도시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디자이너, 패션 에디터, 모델, 포토그래퍼, 스타일리스트 등 패션 업계 관계자와 유대를 맺기 위한 것. ‘패션 플라이트’를 위한 계획은 다소 구체적이다. 이를테면 피레네 산맥 상공에서 버버리 쇼를 생중계로 보게 될지도 모를 일. 또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허브 공항으로서 두바이를 유용하게 활용할 움직임도 보인다.
에티하드 항공을 타고 두바이로 모여든 전 세계 프레스들을 대상으로 서울 디자이너들이 패션쇼를 선보이는 것?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통적인 절차와 가치, 방식을 고수하며 근본을 중요시하는 것과 시대적 요구에 화답하며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의 가치 우위를 결론짓기는 힘들다. 하지만 현재 패션계를 둘러싼 환경과 공기를 감지했을 때, 도시 이슈만큼은 전환점으로 작용하고도 남을 만큼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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