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주거 청년을 위한 23㎡ 가변 주택 Free-sequence House
밤늦게 돌아와 잠시 눈 붙이는 곳. 그러다 아침이면 분주히 떠나는 공간이 되어버린 이 시대 청년의 집.
청년이 사는 공간은 대부분 원룸 형태다. 작은 방에 기본적인 삶을 위한 최소한의 것만 갖추고 있다. 문제는 ‘원룸’이고, 상상은 여기서 시작했다. 자고, 먹고, 쉬고, 일하는 모든 행위가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집은 원시시대 움막과 다를 바 없다. 같은 면적일지라도 방이 아닌 집에서 살 수는 없을까? 침대를 의자 삼아 대충 때우는 한 끼가 아닌, 나만의 소박한 부엌에서 식사를 차려 먹을 순 없을까?
공간을 벽으로 막지 않고, 심리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물리적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좁고 기다란 집을 상상해보자. 폭은 2,500mm고, 깊이는 700mm와 400mm, 길이는 1,800mm다. 모듈 가구들을 통해 2.5m 폭은 복도가 되기도 하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테이블이나 소파는 접어서 사용 및 보관 가능하도록 했다. (그림 1) 한 줄로 늘어선 공간은 기능별로 모듈화해 산술적으로 6!(6×5×4×3×2×1)개의 다양한 경우의 수가 가능한 가변형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림 2)
프리 시퀀스 하우스
공간과 가구를 모듈화해 자유롭게 교환 및 재배치가 가능한 원룸을 상상했다. 이 원룸에는 학기 중에는 적은 월급으로 생활하고, 방학 중에는 과외, ‘Airbnb’로 삶을 꾸려가는 비정규 교사 B가 살고 있다.
비정규직 교사 B
더 구체적인 상상을 해보자.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 바로 비정규직 교사로 취업한 B가 있다. B는 적은 월급과 방학 중 무급여로 생활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했다. 방학 때는 다른 돈벌이를 찾아야 한다. 그의 23㎡짜리 주택은 학기 중과 방학 때 각각 다른 형태로 변형할 수 있다. 학기 중에는 안식처가 되는 1인 가구 형태로, 방학 중에는 과외를 위한 공부방 공간 혹은 ‘Airbnb’로 활용하도록 변형할 수 있는 가변형 주택이 된다. 가변형의 핵심은 모듈화된 가구와 공간의 사이즈다.
학기 중 B를 위한 집은 입구 - 주방 - 거실 - 드레싱룸 - 화장실 - 침실 순서로 구성하였다. 주방을 입구에 둠으로써 원룸에서는 어려웠던 지인 초대가 가능하다. 침실과는 가장 먼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침실의 사생활이 보장되며, 주방의 잡다한 냄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무빙월을 이용해 주방과 거실 혹은 거실과 드레싱룸 사이를 분리할 수도 있다. 접이식 테이블을 펼치면 4인 식사도 가능하다. 드레싱룸은 두 겹 행어를 두었는데 계절별로 옷을 교체할 필요 없이 행어 자체를 회전하여 쓸 수 있다. (그림 3-1)
방학 중 첫 번째 옵션은 공부방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과외 시 불필요한 행어는 책장으로 가리고 필요 없는 주방 가구는 뒤집어 뒤편의 화이트보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소파는 접어 침실에 보관하고 주방에 있던 무빙월을 화장실 앞 복도로 배치해 가림막으로 활용했다. (그림 3-2)
방학 중 두 번째 옵션은 ‘Airbnb’ 활용이다. 방학 중에 집을 장기간 비울 경우 여행객에게 단기로 임대할 수 있다. 무거운 짐을 모두 치우기는 힘들므로 두 개의 행어 중 하나는 B씨 옷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구석에 배치하고, 책장을 뒤집어 행어를 가리도록 고정한 뒤 단기 사용자용 행어는 노출한다. 그리고 주방 가구를 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두어 주방을 개방한다. 단기 사용자는 감춘 행어 외에 모든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주방의 급배수 시스템은 미리 배치가 가능한 몇 군데 위치를 선정한다. 바닥에 파이프를 연결할 수 있는 급배수 트랩을 설치한 후 캠핑카 시스템과 같이 모듈 주방 가구를 이동해 해당 위치에 호스를 연결하여 쓸 수 있도록 한다. (그림 3-3)
청년의 보금자리
2,500mm 폭의 기다란 23㎡ ‘원룸’에서 시작된 청년의 집에 대한 상상은 기능에 따라 공간과 가구를 모듈화해 자유롭게 교환 및 재배치가 가능한 ‘프리-시퀀스 하우스(Free-sequence House)’로 콘셉추얼하게 끝이 났다. 비좁은 한 칸 방이 전부인 요즘 청년의 집을 보면 참된 의미가 망각되는 걸 느낀다. 청년이 쉼과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인 집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는 생각이 일반화됐으면 한다. 청년에게 삶의 질을 논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시대이지만 집을 진정한 ‘보금자리’로 만들어주는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와 건축가, 디자이너가 가장 고민해야 할 부분임은 틀림없다. 의사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자에게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힐링의 옥탑방
옥탑방은 물탱크를 보관하기 위한 공간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서 삶을 위로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삶의 공간은 불편할 수 있다. 형편이 반듯하지 않으면 그럴 수 있다. 나름 여건을 갖춰야 살 만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살기 어려운 극한의 장소라면, 삶에 대한 후회와 좌절을 맛보며 삶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 옥탑방이 그런 공간이다. 온전한 단열이 안 되고, 물탱크 보관함의 구조만 갖춘 외부 공간이나 다름없다. 사람에 충실한 층고는 배려하지 않았고, 가장 싼 문과 가장 얇은 창문으로 구색을 맞춘 공간이다. 그럴 때면 옥상 공간을 마당 삼아 위로해볼 수 있을 것이다. 빌딩 꼭대기층인 펜트 하우스를 조롱하듯 동네 사방을 둘러볼 수도 있다. 또 삼겹살 구워가며 그 허름한 툇마루에서 삶의 노고를 달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상경한 디자이너
청년은 지방에서 상경했다. 값비싼 주거 문제를 허름한 옥탑방으로 해결했다. 대학로에 위치한 디자인 회사로 출퇴근하는 30대 초반 디자이너다. 주거지는 홍대 문화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홍대 변두리에 자리한 단독 2층 주택의 옥탑방이다. 나름 디자인에 대한 꿈을 품고 상경한 지 3년 차로, 고향의 자연을 마음에 품고 산다. 그에게 옥탑방은 꿈만 꾸는 장소가 아닌 꿈이 소멸되는 현실과의 타협점에서 찾아낸 장소다. 청년의 고민은 현실 장벽을 뛰어넘는 꿈을 꾸는 것. 무한대로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꾸리는 작업이다. 불편한 삶 에서는 불편함을 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옥상층 옥탑방에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 한다.
노랑 키오스크
정서적으로 보다 풍요로울 수 있는 공간을 담아내는 계획안이다. 8㎡ 공간에 사색의 공간을 꾸린다. 옥상층 옥탑방 위 노랑 다락을 하나 얹는다. 피곤한 현실과 가난, 불편을 느낄 수 없는 작은 키오스크(2.4×2.4m)를 그 위에 얹는다. 이곳은 자연과 소통하면서 사색할 수 있는 힐링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 부용정 누각에서 영감을 얻어 사방을 열고 닫음으로써 외부와 최소한의 관계를 맺는다. 옥상 자투리 공간에는 살구나무 하나를 심었다. 사계의 변화와 밤낮의 추위를 살피면서, 살아가는 재미를 찾기 위해서다. 가능성보다는 현실의 꿈을 그 공간에 되돌려 최소한의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공간 제안이다. 노랑 키오스크는 단지 물탱크처럼 쓸데없는 허구체가 아닌 그 노랑 공간에 무한의 꿈을 담아낼 수 있는 30대 청년의 작은 비밀 다락방이기도 하다. 보물섬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다락방을 오르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출발점처럼.
‘쩜오’의 공간
방과 주방이 분리된, 일반적인 원룸 형식인 1.5룸 공간을 재구성했다.
옥탑방이 청년에게 인기 있는 이유, 그리고 테라스가 있는 집이 인기 있는 이유를 보면 청년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임대료와는 별도로 자신의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또 비용이 더 들더라도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소비할 수 있다는 반증이다.
한국의 주거 특성상 1, 2인 가구뿐만 아니라 빌라라고 불리는 다가구·다세대 주택들도 오로지 내부 면적에만 힘을 쏟을 뿐 그 누구도 삶의 질과 관련된 집 본연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는다. 중간 소비 계층을 위한 공간은 사라지고 극단적으로 약 16.5㎡에서 약 33㎡ 사이 원룸, 그리고 좁은 면적에 방만 2개, 3개 구겨 넣은 투룸, 스리룸. 이것이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주거 형태다. 그 사이 계층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1, 2인 주거가 20대 초·중반이 거주하는 형태라 인식된 것이 이유이다. 그러나 지금은 30대 중반에서 후반, 대한민국 소비의 중심인 이들까지도 1, 2인 주거에 살면서 새로운 형태의 거주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대기업 싱글남 대리 A
A는 대학가 근처 실면적 약 16.5㎡ 원룸에 살고 있다. 월세는 50만원 그 외 공과금 포함해 월 60만원을 집과 관련된 비용으로 지출한다. 휴일엔 카페로, 서점으로… 대부분 시간을 외부에서 보내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온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크나, 마땅한 크기의 집이 없다.
공간 구분이 되는 원룸 형태, 흔히 말하는 1.5룸 형태 집을 찾아봤으나 면적이 약 23㎡를 넘지 않아서 포기했다. 임대료 싼 화장실 달린 상가 3층에 들어가 고쳐 살까도 생각해봤으나 투자 비용이 너무 크다는 생각에 또 포기했다. 약 33㎡에서 약 49.6㎡ 사이 원룸은 찾을 수 없다. 투룸은 거실과 방이 어중간한 크기라 만족스럽지 못하다. 닭장 같은 원룸에서는 뭔가를 해소할 공간이 필요하다. 비용은 월 80만원 이하를 기대한다. 과연 이런 형태 주거는 생길 수 없는 것일까?
여기서 많은 이익이 충돌한다. 하지만 임차인 입장에서 가장 안전하게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공실률을 방지하는 것이다. 비용과 실크기의 상관관계와는 별개로 대부분 원룸이 약 16.5㎡에서 23㎡에 머무르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약 39.6㎡ 정도 되는 중간 크기 싱글 주거를 늘려간다면 일단 건물 관리 측면에서도 수월하고 월세 역시 기존 소규모 원룸 형태와 별 차이 없이 받을 수 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문화 소비의 중심에 있는 30대 초·중반 미혼자에게 새로운 공간을 제시하고자 한다.우선, 침실 공간은 최소화하여 분리한다. 두 번째로는 거실은 최대한 넓게 확보하고 주방과 어느 정도 분리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오픈형 테라스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크기는 약 39.6㎡에서 약 42.9㎡를 넘지 않는다.
평면 설명
보편적인 평면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현관을 들어서서 욕실과 주방 공간의 분리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붙박이장까지 실용적으로 배치해 기능적인 공간 배분을 앞쪽에서 마친다. 거실로 들어오면 조그만 정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테라스가 있다. 한쪽에는 킹 사이즈 침대가 들어갈 만한 침실이 있다. 이 침실은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공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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