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배우 있다. 이름은 무척 익숙한데 얼굴은 가물거리는 배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얼굴이 다른 배우와 겹쳐 보여 헛갈리는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는 그런 배우의 적절한 예다. ‘라이언’이라는 친근한 이름 탓도 있으려나. 아, 거기 나온 배우 아냐? 하고 찾아보면 벤 애플렉인 경우도 있다. 잘못 찾을 때마다 미안해진다. 그렇다고 그가 띄엄띄엄 영화 찍는 것도 아니다. 꾸준히 개봉작에 이름을 올린다. 반면 대표작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할리우드 가십을 보면 또, 부동의 주연 배우처럼 이름이 오르내린다. 묘하다. 맞다. 괜히 트집 잡는 거다. 이름과 얼굴을 헛갈리든 말든 그는 남자들에겐 ‘영웅’이다. 영웅은 미인을 얻는다고 했다. 라이언 레이놀즈의 연인들을 살펴보면… 모두 한쪽 무릎 꿇게 된다. 약혼한 첫 번째 연인 앨러니스 모리셋은 차치하더라도, 두 번째 연인 이름 앞에서 숨이 멎는다. 스칼렛 요한슨.
얼굴 안 보고 목소리만 들어도 괜히 야릇해지는 그 배우. 얼굴 보면 표정에서 생각을 읽느라 뇌세포가 집단 폐사하는 그 배우(마돈나 이후로 이런 요염한 표정은 전무후무하다). 게다가 전신까지 보면… 왜 자꾸 한숨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2008년 5월 5일 라이언 레이놀즈와 스칼렛 요한슨은 결혼을 발표했다. 그리고 약 4개월 후 캐나다에서 결혼했다. 스칼렛 요한슨 같은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는 누구일까, 그녀를 볼 때마다 탄식했다. 굳이 찾아보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라이언 레이놀즈였다. 어떤 영화보다 강렬하게 그를 각인시켰다. 그때 감정은 경외감이 8할이요, 질투가 나머지였다. 하지만 둘은 2년 남짓 신혼을 보내고 헤어졌다. 2010년 일이었다. 결혼한 것만큼 이혼한 것도 놀라웠다. 스칼렛 요한슨 곁을 떠난 남자라니.
연인들이라고 앞서 말했다. 그러니까 스칼렛 요한슨 이후로 또 숨이 멎는 여인이 등장한다. 현재 진행형인 블레이크 라이블리다. 영화 <청바지 돌려입기>로 주목받은 신선한 배우다. 설명이 부족했다. 미국 드라마 <가십걸>의 세리나 반더 우드슨이라 하는 게 정확한 설명일 거다. 미국 상류층 셀러브리티를 메소드 연기로 선보였다.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를 런웨이 삼아 그녀가 걸어갈 때면, 카메라 플래시 없이도 눈이 부셨다. 단지 화려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빛나면서 소박한, 불가해한 이미지까지 품었다. 물론 극 역할이었지만, 역할로만 보이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귀를 자극하는 허스키한 음색이 매력적이었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이하 <그린 랜턴>)에서 블레이크 라이블리와 만나 결혼했다. 라이언 레이놀즈에게 <그린 랜턴>은 참혹한 성적을 안겼다. 지우고 싶은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린 랜턴> 촬영 시간은 그에게 축복이었을 거다. 그녀는 누구와 결혼할까, 했는데 또 그 대상은 라이언 레이놀즈였다. 음모론처럼 반복됐다. 도대체 라이언 레이놀즈란 남자는….
배우는 작품으로 설명하는 게 옳다. 그가 누굴 사귀든 배우로서 영향력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배우 영향력보다 그의 연인들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이런 경우, 드물다. 설사 그가 영화를 침몰시키는 특출한 재능이 있는 배우였더라도, 그에 대한 평가는 칭송 일색이었을 거다. 그의 연인들은 그만큼 압도적이다.
의외로 단초는 라이언 레이놀즈의 필모그래피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랬다. 그가 할리우드에서 안착한 이미지는 로맨틱 코미디 상대역이었다. 그 역할을 해내기 위해선 무엇보다 외모가 반듯해야 한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했다. 잘생긴 외모와 더 잘생긴 몸. 라이언 레이놀즈는 두 가지 밑천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40kg 무게의 특수분장으로 뚱보와 매끈한 플레이보이를 오간 영화 <저스트 프렌드>는 그의 방향성을 정해줬다. 그리고 4년 후 영화 <프로포즈>에선 그 방향성을 더욱 선명하게 했다. 그는 샌드라 블록의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파트너로 출연했다. 마녀로 통하는 커리어우먼 마가렛(샌드라 블록) 밑에서 일하는 자상하면서도 잘생긴 남자 직원. 여성 관객의 취향을 확실히 사로잡았다. 덕분에 그는 <피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10년에는 ‘살아 있는 가장 섹시한 남자’, 2011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우’로 뽑혔다. ‘살아 있는’과 ‘세계에서’라는 독보적 조건에서 라이언 레이놀즈는 자기 위치를 확실히 뽐냈다. 휴 그랜트의 바통을 이을 남자 배우. 그에게 새로운 수식도 붙었다. 그 수식만으로도 그는 할리우드에서 1군으로 활동할 자격을 획득했다.
그럼에도 결정적 장면이 부족했다. 앞서 언급한 헛갈리는 배우는 그래서 나온 말이다. 휴 그랜트의 바통은 여성 관객이나 인식했을 거다. 남자를 흥분시키는 역할이 드물었다. 그게 문제 아닌 문제였다. 세상의 반은 여성이지만, 나머지 반은 남성이다. 반쪽짜리 인상으론 만족할 수 없다. 전 세계가 시장인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려면 더욱.
기회가 왔다. <저스트 프렌드>가 여성 관객을 집중시켰다면, <데드풀>은 나머지 반을 흥분시켰다. 독설과 성적 농담, 대수롭지 않게 드러내는 폭력성은 통쾌했다. 먼지 하나 없는 수트를 입고 입꼬리 올리던 그가 모든 걸 내려놨다. 때론 다 버렸을 때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법이다. 그는 <데드풀>에서 기존 이미지의 정반대로 뛰어갔다. 원 없이 한바탕 칼부림의 향연도 펼쳤다. “라이언 레이놀즈가 잘생긴 얼굴이 없었다면 성공했겠어?” 같은 블랙 코미디 대사도 툭툭, 뱉으면서 허물을 벗었다. 그가 배우 경력 초반을 코믹한 조연으로 보낸 것이 새삼 떠오를 정도로.
관객은 환호했다. 데드풀이란 원작 캐릭터의 호방함이 그에게 겹친 거다.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반전 같은 재미로 적중했다. 라이언 레이놀즈의 농담에 관객은 함께 키득거렸다. 단순히 주연 영화 한 편이 성공한 의미는 아니다. 영화 외적인 효과가 크다. 그의 틀을 깼다는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요즘 상종가 배우라면 누구나 하나씩 맡은 슈퍼히어로 역할에 안착한 점이다. <그린 랜턴>의 악몽에서 이제야 풀려나려나.
<데드풀>은 라이언 레이놀즈에게 도전이었을지 모른다. 물론 그에게 짧은 경험은 있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서 데드풀로 잠깐 나오긴 했다. 하지만 그때 데드풀은 진중하기만 했다. 원작 느낌을 온전히 살린 데드풀은 7년이나 흘러 선보였다. 도전이라고 썼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딱히 도전도 아니다. 사실 그는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왔다. <베리드>에서 관에 갇힌 기막힌 상황에 처했다. <반딧불이 정원>에선 묵직한 드라마를 이끌었다. 심지어 〈R.I.P.D〉에선 유령도 잡아봤다. 그런데도 그가 달콤한 눈웃음만 지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데드풀> 이후 그의 다음 개봉작은 <크리미널>이다. 이번에는 농담 한마디 던질 여유 없는 CIA 요원을 맡았다. SF 요소를 첨가했지만 묵직한 스릴러. 그는 수염이 덥수룩한 채로 처진 눈초리에 근심을 담는다. <데드풀> 같은 모습을 한두 번 더 보여줘도 될 법한데, 금세 그는 다른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쉽게 안주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우린 라이언 레이놀즈의 본모습을 아직 못 봤는지도 모른다. 그의 선택은 꽤 다채롭다. 영화의 장르와 규모에 일관성을 찾기 힘들다. 그만큼 그는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일 수 있다. 단지 한 장면이 없을 뿐 아닐까. 그의 필모그래피를 뒤질수록 그 뒤편에 많은 이야기가 있을 듯하다. 그 이야기를 알아갈수록 그가 <아레나>의 얼굴로 등극할 일이 늘어날 거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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