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W시즌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클래식’이란 단어를 자판으로 몇 번을 두드렸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이번 시즌 트렌드를 관통하는 모든 것이 이 안에 다 들어 있다는 말이다. 모스키노 컬렉션에서 보인 더블브레스트 수트와 코트의 전형적 만남, 알렉산더 맥퀸의 스리피스 룩,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터틀넥 니트와 매치한 옅은 미색 수트를 보면 무슨 말인지 단박에 알아들을 것이다. 그건 클래식 수트 룩의 교과서와도 같은 차림이었다. 1920년대 신사의 옷차림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번 시즌 재해석된 오리지널 클래식은 남자들의 비즈니스 룩에서 시작되었다. 격식 있는 자리에서 입는 턱시도 룩보다 어깨는 넓어지고 허리 절개선이 없어진 남성적인 실루엣이 등장한 것. 특히 (한때 에드워드 8세였던) 영국의 윈저 공이 입어 유명해진 윈저 칼라 셔츠와 윈저 노트의 볼륨감 넘치는 타이, 그리고 라펠이 넓은 더블브레스트 재킷은 새빌로의 번성과 함께 멋쟁이 남자라면 꼭 차려입어야 하는 워너비 스타일이었다. 또 한 명의 클래식 스타일러는 할리우드 배우 캐리 그랜트였다. 정중한 신사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는 늘 잘 갖춘 수트 차림으로 기억된다. 이번 시즌에는 더블브레스트 디테일이 오리지널 클래식을 대변하는 도구가 되었다. 코트와 재킷을 넘나들며 적용되었으니 말이다. 와이드 라펠의 박시한 재킷, 품이 넉넉한 바지는 남자의 수트가 지닌 역사와 전통을 되새기게 해줄 것이다.
글렌 체크의 더블브레스트 수트 3백45만5천원 에르메네질도 제냐, 모직 소재 회색 더비해트 33만3천원 안토니 페토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클래식한 갈색 슈즈 1백만원대 스테파노 베메르 by 일치르코 제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의 상처로 세상은 황폐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군인에 대한 로망이 일었다. 바로 1950년대의 이야기다. 몽고메리 장군이 군복 위에 입은 더플 코트는 당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를 끌었고 이번 시즌에도 트렌드 아이템으로 지목되어 알프레드 던힐, 장 폴 고티에, 폴 스미스 등에서 선보인다. 미국, 영국 등 패션 강국들마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모든 물적·인적 자원을 전쟁에 투입해 패션 산업은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남성복의 옷감, 바지통, 재킷의 길이 등은 갖은 규제를 당했고 주머니나 플리츠 요크 등의 화려한 장식은 금지되었다. 그러니 대부분 남성들은 몇 가지 종류의 제복을 입고 다닐 수밖에 없게 된 것. 그 결과 밀리터리 디테일은 당연스레 일상복에 적용됐다. 당시 실용적인 남성 패션을 이끌었던 에드워드 8세(윈저 공)도 공식석상에서 자주 입은 밀리터리 스타일은 이번 시즌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러워졌다. 에르메스, 겐조, 랑방 등은 회색, 카키 등의 밀리터리 컬러만을 차용한 채 복잡한 디테일은 생략한 트렌치코트, 보머 재킷, 피코트 등을 선보였다. 오랜 군생활로 ‘밀리터리’라면 치를 떠는 당신일지라도 이번 시즌 클래식 밀리터리는 떨쳐내기 힘들 것이다.
견장이 달린 회색 더블브레스트 코트 1백60만원 줄리아노 후지와라 by 10 꼬르소 꼬모, 군더더기 없는 검은색 롱부츠 1백80만원대 앤 드뮐미스터 by 무이, 갈색 레이스업 부츠 1백45만원 알렉산더 맥퀸 by 분더샵 맨 제품.
1930년대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대공황을 겪은 불운의 시대였다. 암울한 당시 시대상이 그대로 표현된 영화가 바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다. 기계 앞에 하루 종일 매달려 시계 바늘처럼 일해도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신사들의 말쑥한 수트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오래 입어 빛바랜 재킷, 추위를 덜어낼 두툼한 니트, 그리고 헤어스타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뉴스보이 캡, 팔뒤꿈치가 해져도 덧대어 입을 수 있는 패치워크 재킷, 옷감을 아낀 짧은 바지, 튼튼한 트위드 소재 등은 그 시절 노동자들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아이템이었다. 이 스타일이 보이시함을 더해 런웨이를 찾았다. 앤드류 맥켄지, 버버리 프로섬, 프랭키 모렐로 등은 거친 소재와 어두운 색상을 이용한 두툼한 니트, 재킷 등으로 빈티지함에 소년스러움을 더했다. 사진 속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노동자들의 뒷모습은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획일적이다. 그들만의 스타일이 존재한 것. 7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옷차림이 ‘트렌드’라는 명찰을 달고 부활하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가죽 단추가 달린 빈티지 재킷 1백71만원 ts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남색 뉴스보이 캡 가격미정 버버리 프로섬, 낡은 느낌의 갈색 슈즈 1백85만원 벨루티 제품.
런던 캐너비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일었던 모더니스트 운동의 줄임말인 모즈는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젊은이들의 일탈을 상징하며 새로운 패션을 제시했다. 비틀스를 생각하면 모즈 룩에 대한 단면이 그려질 것이다. 바가지를 얹어놓고 자른 듯 반듯한 헤어스타일뿐 아니라 몸에 피트되는 싱글브레스트 재킷, 양말이 보일 듯 말 듯한 길이의 바지로 대표되는 이들의 스타일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깨선과 바지통은 좁아져 전체적으로 몸에 맞는 실루엣을 유행시켰으니. 기성세대가 입었던 박시하고 보수적인 수트와 다른 점은 실루엣뿐 아니라 수트를 대하는 태도였다. 코트든 패딩 점퍼든 간에 무엇이든 덧입고 이 차림으로 스쿠터를 몰고 다니는 등 자유분방했던 것. 이번 시즌에는 이런 1960년대 모즈 룩이 프레피한 감성을 만났다. 톰 브라운은 입체적인 회색 수트를, 아네스 베는 좁은 라펠의 재킷과 폭이 좁은 바지를, 알프레드 던힐은 끝이 뭉툭한 슬림 타이를 통해 클래식에 바탕을 두되 자유로운 모즈 룩의 감성을 담아내었다. 작고 날씬한 몸매를 지녔다면 풍채 좋은 신사를 연상케 하는 오리지널 클래식보다는 모즈 룩에 기반을 둔 수트를 권하고 싶다.
회색 스리 버튼 베스트 58만원 코스믹 원더 by 에크루, 흰색 줄무늬가 장식된 회색 모직 수트 7백50만원 톰 브라운 by 10 꼬르소 꼬모, 끝단이 뭉툭한 니트 타이 15만원 알프레드 던힐 by 10 꼬르소 꼬모, 광택 있는 갈색 로퍼 59만8천원 be positive by 에크루, 갈색 스웨이드 로퍼 61만6천원 알프레드 사전트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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