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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난 괜찮아

신종인플루엔자 A(H1N1)의 확산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면 조만간 이런 공간 속에 `갇혀` 지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UpdatedOn September 28, 2009

1 에탄올

신종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가 확산되면서 손 세정제 품귀 현상이 일고 있단다. 대형 마트에서는 손 세정제 사재기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 미처 사재기에 동참하지 못한 당신은 아쉽지만, 너무 늦었다. 이제 손 세정제보다 더 강한 것이 필요한 때다. 신종플루 바이러스는 물론 그 어떤 바이러스에도 강력한 소독 효과를 가진 에탄올을 준비하라. 조금 독하긴 하지만 물에 희석해 손을 씻으면 되니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다. 비록 당신의 피부에는 치명적일지도 모르겠지만, 명심하자. 지금은 그깟 피부 걱정할 때가 아니다. 당신은 뽀송뽀송한 신종플루 환자이고 싶은가, 아니면 비록 피부는 좀 거칠지라도 신체 건강한 대한의 건아이고 싶은가.

2 생활 계획표

최근 발표된 신종플루 예방 수칙에는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운동 항목이 포함되었다. 수면이 부족하면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 위험이 높아지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면역력이 좋아진다는 거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야행성 바이오리듬과 귀차니즘이 문제다. 생활 패턴을 단번에 바꿀 자신이 없다면 생활 계획표를 만들어 틈틈이 당신의 뇌 속에 잠을 자야 한다는 것과 운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야 한다. 맞다. 지금도 초등학생들이 방학식 날이면 꼭 만들어야만 집에 갈 수 있다는 그 생활 계획표를 말하는 거다.

3 방독면

정녕 아직도 그 얇디얇은 마스크 한 장에 당신의 생명을 맡길 셈인가. 아무리 신종플루가 감기와 같은 호흡기 질환이라지만 바이러스균은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미세하다. 게다가 바이러스는 피부를 통해 감염이 가능하다. 호흡기뿐 아니라 얼굴 전체를 가려야 한단 말이다. 화생방 훈련 때 쓰던 특A급 군용 방독면은 어떤가. 당신은 눈물, 콧물 쏙 빼며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릴 때, 군가를 더 크게 부르라며 남의 일 보듯 고함을 쳐대던 조교가 쓰고 있던 바로 그 방독면 말이다. “전방에 가스!” 아, 아니 “바이러스!” 역시 특A급 정도는 돼야 마음이 놓인다.

4 방역 보호복

앞서 말했듯, 본디 바이러스란 피부를 통한 감염이 가능하다. 아무리 특A급 방독면을 준비했을지라도 그대로 노출된 당신의 손, 팔목, 발등은 어찌할 것인가. 게다가 얼마 전까지 집밖 출입이 잦았던 옷 속에는 아직 당신에게 침투하지 못한 신종플루 바이러스균이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 옷을 벗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이 난제를 해결해줄 최적의 아이템을 공개하니, 바로 재난 영화 속에서 종종 보았을 방역 보호복 되겠다. 당신의 피부가 전혀 드러나지 않도록 완벽하게 디자인되었을 뿐 아니라 미세기공 필름 코팅 처리로 케미컬 방호력이 우수하다. 어디 그뿐인가. 손 부분은 장갑처럼 탈착이 가능하여 신종플루 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손 씻기가 하루 열두 번도 가능하다.

5 귓속형 체온계

귓속형 체온계를 이용해야 하는 곳은 공항 입국장만이 아니다. 천하의 불효막심한 놈이라 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라. 당신의 공간을 ‘침투’할 부모님, 동생, 친구들까지. 당신은 정녕 그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 그들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접촉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제 당신의 공간에 입장하는 모든 사람에게 체온 검사를 실시해야만 한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생명을 부지하고 싶진 않다고? 야속하지만 석가모니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명심하라. 신종플루의 감염 기준은 사람의 정상 체온보다 고작 1℃밖에 높지 않은 37.8℃. 그 이상은 모두 추방시키란 말이다. 아, 가까운 보건소에 신고하는 것도 잊지 말기를.

6 김치냉장고

그동안 전 세계를 강타했던 사스와 조류인플루엔자의 여파에도 대한민국은 그 위험을 쏙쏙들이 잘도 피해왔다. 면역력을 높여주는 황산화 물질을 지닌 김치 때문이다. 발효 식품인 김치가 저항력을 키워준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바. ‘벌써 감염자들이 속출하고 있으니, 신종플루에는 해당 사항이 없는것 같다’고? 천만에, 우리나라의 감염률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음식 전문가들은 감염자의 80%가 김치를 잘 먹지 않는 30대 이하 젊은 층이라는 것에 주목한다. 이제 시도 때도 없이 김치를 먹으라는 거다. 김치가 싫다면 ‘김치는 달다’라는 주문이라도 외워라. 아차, 겉절이는 효과가 약하다. 반드시 발효해서 먹을 것. 김치가 쉬어버릴 걱정은 김치냉장고에게 떠넘기면 된다. 김치를 만든 선조나 김치냉장고를 만든 후손이나, 우리는 참 똑똑한 민족이다.

7 종교 용품

얼마 전 접촉한 사람이 신종플루에 감염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을 때, 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도 잠시. 그 다음 당신을 지배할 생각은 바로 ‘설마, 나도?’라는 걱정일 터.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한 종교기관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이럴 때 사람들은 가장 먼저 종교에 기댄다고 한다. 당신이 붙들 것이 십자가이건, 염주이건 혹은 코란이건 간에 선택은 당신의 몫. 종교에 심취하면 설사 당신이 신종플루에 감염되었다 할지언정 그것 또한 모두 하늘의 뜻이라는 속 편한 생각까지 가질 수 있다. 당신에게는 곧 천국 혹은 극락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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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INTERSHIP EDITOR 이승률
ILLUSTRATION 차민수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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