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하나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한다. 이번 영화를 결정할 때는 어떤 요소가 작용했나?
많은 시나리오를 받는 건 아니라서, 하하. 일단 한국에서 영화를 촬영할 때 흥행 공식에 따라야 한다는 법칙 같은 게 있다. 난 그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거 같다. 일부러 그 노선을 안 타는 건 아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 아무리 옆에서 흥행이니 상업성을 얘기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한다.
도전을 즐긴다는 뜻인가?
그런 점도 있고, 무엇보다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면 일하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어떻게 보면 이치에 밝지 않은 편이다. 흐름을 잘 타고 가다가도 시나리오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면 우선 성취감을 본다. 물론 이번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도 다 갖춘 영화긴 하다. 단지 상업적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고르진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집중해서 보는 게 있나? 한 요소에 꽂혀 다른 건 보지 못할 정도라든지?
이야기가 작위적이지 않은 걸 좋아한다.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인생 이야기라면 정말 감동적으로 흐르는 걸 좋아한다. 이번 영화에선 본의 아니게 편지 한 통을 받은 후 옛 감정과 얽혀 수사를 맡게 된다. 단순히 한 사람을 구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과정, 설정 자체가 재밌었다. 수사 과정이 작위적이지 이야기가 작위적이지 않은 걸 좋아한다.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인생 이야기라면 정말 감동적으로 흐르는 걸 좋아한다. 이번 영화에선 본의 아니게 편지 한 통을 받은 후 옛 감정과 얽혀 수사를 맡게 된다. 단순히 한 사람을 구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과정, 설정 자체가 재밌었다. 수사 과정이 작위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 속 인물이 다 살아 있고 개성 있다. 웃기거나 울리는 부분도 강요하지 않는 시나리오다. 상업 영화를 표방하면서도, 한편으론 흥행 공식을 따르지 않아 좀 독특했다.
무엇보다 도전하고픈 인물에 재미를 많이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전체적인 걸 더 본다.
물론 내가 연기할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지 않으면 못하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원맨쇼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도전하는 역할이 많이 오긴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이건 김명민 씨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하는 작품들이 주로 들어온다. 그 말이 칭찬처럼 들리는데, 한편으론 나쁘게도 들린다, 하하. 장단점이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칭찬으로 들리는데….
남자 배우가 진짜 많잖나. 연기 잘하는 분들도 너무 많고. 그런 말을 들으면 다들 고생스러워서 안 한다고 그랬나? 이런 생각이 든다, 하하하. 난 아직까지 그렇게 약지는 않다. 어떤 배우는 시나리오 읽으면서 겨울에 물에 빠지면 추워서 안 되고, 액션 신만 쭉 나오면 힘들고 팔 부러지면 어떡하느냐며 안 된다고 하고, 하하. 그런 부분이 보인다고 하는데, 난 아직까지 그렇진 않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이건 내가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로 읽을 때에야 물에 빠지고 고생하는 장면이 보인다. 그땐 이미 늦은 거다, 하하.
얻어갈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보이는 역할과 영화를 선택한다고 했는데, 이번 영화는 어땠나?
얻어간다기보다 일단 재밌어야 한다. 마음을 움직일 수 있거나. 밋밋한 건 하기 싫다. 한 세 가지 요리 재료 정도가 있으면 뭐가 나올지 딱 보면 알잖나. 반면 재료가 한 열댓 가지 이상 되면, 이거 어떻게 만들지, 하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긴다. 그 안에서 녹아드는 감정의 폭이 있잖나. 노래로 따지면 도레미만으로 계속 부르는 것보다 한 옥타브 넘나드는 노래를 연습해서 부를 때 성취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김명민이라는 배우를 보면 드라마에서 잘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영화 쪽에서 보여주려 한다고 느껴진다. 영화라는 매체의 자유도를 활용한달까?
솔직히 배우가 변신해봤자 얼마나 하겠나. 내 얼굴, 내 목소리, 내 눈빛으로 하는 건데. 그런데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변화하고 싶다. 그래서 전에 했던 것과는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나중에 밑천이 다 떨어져서 못하게 될 때 다시 하더라도 지금은 좀 힘들게 도전하고 싶다. 아무래도 영화 쪽에 그런 부분이 더 있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준비할 시간도 많으니까.
<조선 명탐정> 시리즈는 영화라는 매체를 활용한 좋은 예였다. 유머러스한 연기로 또 다른 김명민을 보여줬다.
솔직히 드라마에서는 대중이 나에게 원하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 이미지를 너무 많이 탈피하고자 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지점이 있다. 기대하는 모습과 너무 다르면 시청자는 배신감을 느낀다고 하더라. 그런 점 때문에 드라마에선 폭을 과하게 움직이지 않는 편이긴 하다. 또 그럴 수 있는 드라마가 솔직히 나한테 들어오지도 않는다. 대신 영화에서는 그런 쪽으로 많이 들어온다. 정신지체아라든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이라든가 골고루 들어오는 편이라서 선택할 때 재밌긴 하다. 그리고 이제 구미에 맞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하하.
주로 드라마에서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영화에 출연할 땐 마음 자세가 달라지나?
그런 건 없다. 솔직히 두 가지 다 해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드라마와 영화를 병행한다. 터진다는 게 내가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천만 영화는 정말 하늘이 점지해주는 거다. 비록 한 해에 두세 편 나온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힘은 아니다. 다들 천만에 대한 욕망은 있겠지만, 난 그런 욕망은 없다. 나 스스로 지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시장도 크지만, 드라마 시장이 더 크기 때문에. 대우도 훨씬 좋고, 하하. 난 그냥 지금처럼 할 일을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큰 욕망은 없다.
데뷔한 지 20년 됐다. 드라마와 영화 양쪽에서 자기 몫의 균형도 잘 이뤘다. 본인 말대로 잘하고 있는 거다.
경주마 같은 성향 때문에 가능한 거 같다. 무조건 앞만 보고 옆을 잘 안 돌아본다, 내가. 옆이라면 얘가 나보다 앞서가고, 혹은 뒤처진다고 해도 크게 신경 안 쓴다는 거다. 내 가장 큰 경쟁자는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는 점을 많이 신경 쓰더라. 그러다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안 된다. 조급증도 생기면서, 결국 자기가 하고자 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한다.
배역을 보면 무리든 단체든 리더 역할을 많이 맡았다. 실제 그런 성향이 반영된 걸까?
실제로 나도 그런 성향이다.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내 성향이 그래서 그런 역할을 맡은 걸까, 아니면 그런 역할을 맡아서 더 그렇게 된 걸까? 하고. 어릴 때부터 그런 걸 좋아했다. 예전에는 무대에서 연기 잘하고 춤 잘 추면 반장 시켜주고 그랬다. 그래서 반장도 많이 했다.
춤?
아무도 안 믿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난 마이클 잭슨이었다. 진짜 마이클 잭슨 춤을 똑같이 잘 추는 재용이라는 친구가 있었다면, 난 변형해서 한국적으로 추는 마이클 잭슨이었다. 춤사위가 좀 남달랐다, 하하. 월요일 아침 조회 때 교장 선생님 훈화가 끝나면 갑자기 음악 틀어놓고 둘이 교단에 나가서 춤추게 했다. 좀 웃긴 학교였다. 소풍 가면 놀지 못했다. 이 반, 저 반 다니면서 원형으로 둘러앉은 곳에서 춤춰야 했으니까. 그 능력으로 반장을 많이 맡았다. 그러다 중학교 때부터 몸이 굳어서 춤을 끊었다, 하하.
그런 성향이 배역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치겠지?
아무래도. 그래서 그런 역할을 맡았을 때 시청자에게 와 닿았을 거다. 단상 올라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고. 쾌감이 있다. 나이 든 선배 연기자한테 소리 지를 때 기분 좋거든, 하하. 내가 언제 소리 질러보겠나. 한눈에 쫙 내려다보니 좋더라. 그때 ‘단상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금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그럼에도 꺼리는 역할은 뭐가 있나?
조폭 역할은 안 들어온다. 그리고 사투리 쓰는 역할. 내가 사투리 쓰면서 욕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잘하지도 못하고. 또 원래 고향이 그쪽인 분들이 많으니까 못 따라간다. 그런 역할은 솔직히 나보다도 더 잘할 수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굳이 내가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했다가 완전히 망가지는 거지, 하하. 그건 내 영역이 아니다.
선거관리위원회나 헌법재판소, 약간 공명정대해야 하는 곳에서 홍보대사를 하면 기분이 어떤가?
좋다, 하하. 아무나 못하는 걸 하니까. 그래서 홍보대사는 가려서 하는 편이다.
홍보대사까지 하니 실생활에서 그런 사람처럼 살아야 할 거 같다.
그럴 필요는 없다. 위촉식 한 번만 가면 되니까. 큰 영향은 없는데, 어쨌든 위촉될 때 배우로서 책임감이 막중해지는 느낌은 있다. 그래도 그 이미지로 많이 덕 보고 있다. 남들은 좋게 이미지를 바꾸려고 해도 잘 안 되는데, 난 여차저차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잖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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