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과시욕이 있는 나라다. 기름을 왕창 먹는 머스탱 자동차만 봐도 알 수 있다. 과시욕은 독립한 나라의 특징이다.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다행히 미국은 잘 살았다. 산업혁명을 이뤘으며, 남북전쟁을 겪긴 했지만, 이전보다 더 자원을 개발하고 교통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된다. 신기하게도 이 나라는 전쟁을 치를수록 부를 쌓는다. 1929년 대공황이 찾아오는데, 1932년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슈퍼맨 대통령은 뉴딜 정책으로 미국을 구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기록에 의하면 미국은 참전국 중 유일하게 전화를 입지 않는다. 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또 한 번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1900년대 미국의 여러 스타일, 예를 들어 옷차림, 헤어스타일, 컬러, 얼굴 표정까지 잘 살펴보면, 그들이 잘 산다는 것을 얼마나 드러내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다. 영화 <퍼스트 어벤져>에서 ‘캡틴’은 무대 위로 올라가 춤을 추며 젊은이에게 군에 지원하라고 권유한다. 무대 위는 축제 분위기다. 밟고 건강미 넘치는 여성 치어리더들이 춤을 춘다. 모두 글래머러스하다. 풍요롭다. 전쟁 이미지가 그런 것인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늘 승리했으니까. 이른바 1900년대를 관통하는 미국 스타일은 이런 왜곡과 과장, 뽐내고 싶은 마음 등을 기저에 두고 있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화려한 컬러들을 동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더 그렇다.
1946년도에 나온 코카콜라의 광고 이미지를 보면 여자는 하얀색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 앉아 있다. 요즘 수영복처럼 가릴 곳만 가까스로 가린 스타일이 아니다. 목에 감긴 수영복 끈은 넓다. 가슴 부분에 녹색 리본도 묶여 있다. 천을 꽤 많이 사용해서 만든 수영복이다. 흰 치아와 붉은 립 컬러도 눈에 들어온다. 머리카락도 풍성하고, 굵게 컬이 말려 있다. 붉은 바탕의 흰 코카콜라 로고도 여유로워 보인다.
1953년도에 나온 콜라콜라 광고도 이런 맥락 안에 있다. 여자는 나룻배를 타고 피크닉을 즐긴다. 나무로 엮어 만든 피크닉 상자에는 음식이 가득 들어 있는지, 하얀 수건이 밖으로 흘러 나와 있다. 여자는 노란색 원피스를 입었으며, 붉은 허리끈을 맸다. 가슴골이 보인다. 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신었는데 끈이 발목을 넘어 꽤 높이 올라와 있다. 여자는 날씬하지만 빼빼 마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머리카락의 컬은 굵다. 나룻배의 몸체를 이루는 부드러운 선도 풍요로움, 여유로운 분위기를 내뿜는다. 네모난 아이스박스에는 얼음과 코카콜라가 가득 들어 있는데, 그 모서리는 부드럽다.
1957년에 나온 코카콜라의 한 광고 이미지는 여유로운 가정의 파티 모습을 담고 있다. 여자의 금발은 여전히 웨이브가 굵고, 남자는 브룩스 브라더스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다. 아빠는 옐로 계열의 치노 팬츠와 하늘색 니트를 입었다. 아들은 붉은색 니트와 짙은 남색 계열의 체크무늬 팬츠를 입었다. 가득 넘치게 담긴 팝콘도 눈에 들어온다.
계량컵으로 유명한 주방용품 브랜드 파이렉스는 미국의 1900년대를 온전히 증명한다. 역사가 1백 년이 넘는 대중적인 브랜드니까. 1948년에 나온 광고 이미지를 보면 (영어로 ‘oven ware’라고 표기된) 그릇들이 그야말로 무지개다.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녹색 그릇들이 있다. 밑 부분이 볼록하게 둥글다. 마치 글래머러스한 여자의 가슴처럼. (여자들의 얼굴을 같이 인쇄했는데, 모두 꽃으로 형상화돼 있다. 꽃은 노랗고, 붉고, 파랗다.) 요즘은 이런 그릇이 흔치 않다. 원색 계열의 단조롭게 풍요로운 그릇들은 ‘빈티지’하게 느껴진다. 어릴 때 <코스비 가족>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즐겨 봤는데, 그 집 주방 풍경이 이 그릇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코스비 아저씨의 부인은 굵은 웨이브 머리였던 것 같고.
1950년대와 1960년대 파이렉스 광고 이미지를 몇 개 더 찾아보면 당시의 미국 스타일을 세밀하게 알 수 있다. 그릇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날카로운 부분이 없다. (단, 하나 예외가 있는데, 남자가 입은 셔츠의 칼라다. 하지만 이 칼라는 요즘 스타일보다 넓고 두툼하다.) 심지어 냉장고도 모서리가 둥글고, 몸체가 두툼해서 내부 음식들을, 이렇게 말하는 게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적군의 포화 속에서도 지켜줄 것 같다. 여자아이가 두른 에이프런은 과하게 미적이다 싶을 정도로 주름이 풍성하게 잡혀 있다. 경쾌한 주름이다. 분홍색 셔츠를 입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준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그야말로 넘쳐흐르는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아웃도어 브랜드 콜맨은 올 초부터 과거 인기 끈 제품을 다시 선보이고 있다. ‘2016 아메리칸 빈티지’ 시리즈를 출시했다. 아메리칸 빈티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아메리칸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명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틸 벨트 저그와 스틸 벨트 쿨러가 특히 인상적이다. 이름이 생소한데, 보온이 되는 대형 휴대용 물통과 아이스박스다. 어릴 때 아빠 엄마랑 놀러 갈 때 이런 게 집에 있었던 것 같다. 스틸 벨트 저그는 스트로베리 컬러와 튀르쿠아즈 색상 두 가지다. 쉽게 말하면 딸기색과 민트색이다. 머리 부분에 달린 하얀색 뚜껑을 돌려 열어서 물을 채워 넣는다. 뚜껑이 커서 물을 넣기가 쉽다. 통통한 몸통 실루엣은 귀여운 인상을 준다. 합리적인 디자인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특히 물을 따르는 부분은 뚜껑에 비해 너무 작다. 손가락으로 양쪽 레버를 꾸욱 눌러야 해서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데 2016년, 지금 새삼, 저런 디자인이 예뻐 보인다. 너무 개인적인가?
스틸 벨트 쿨러 역시 그렇다. 커다란 사각형 디자인이다. 요즘은 저렇게 부피를 차지하는 아이스 쿨러가 흔치 않다. 가볍고 날씬하고 수납이 용이한 제품이 많기 때문이다. 곡선은 보기에는 우아하지만, 실용적이진 않다. 미세한 틈 사이로 ‘바람(물론 상징적인 의미의 바람이다)’이 통하지 않도록 디자인해야 자동차 트렁크에 짐을 꽉 채울 수 있다.
여태까지 범박하게 1900년대, 특히 전후 미국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실은 북유럽 스타일 때문이다. 요즘은 모든 게 북유럽 스타일이다. 집에 인테리어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면, 일단 생각나는 게 북유럽 스타일이고, 패션은… 실용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북유럽 스타일의 특성을 안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게 다 경제가 어려워서인가?
북유럽 스타일은 북유럽의 혹독한 기후에서 비롯되었다. 거기, 일단 춥다. 바람, 많이 분다. 북유럽 사람은 견뎌야만 했다. 그래서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했다. 인테리어 측면에서 보자면 전반적으로 밝은 회색 계열을 많이 사용하고, 세부보다 큰 부분, 넓은 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북유럽 하면 무늬 없는 흰 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마치 미술관 같은. 차갑다. 여유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북유럽 스타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담요와 카펫이다. 통칭 ‘러그’라고 부르던데. 체온을 지키기 위해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튼튼한 나무 가구도 북유럽 스타일, 하면 떠오른다. 습한 북유럽 기후를 거뜬히 이겨낼 내구성을 갖춰야 한다. 이런 것들의 일부분을 소위 ‘모던 앤 심플’이란 단어로 축약하는 게 지금 대한민국에서 유행하는 북유럽 스타일이다. 그런데 축약되다 못해 왜곡됐다.
북유럽 스타일의 본질은 실용성, 내구성 그리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인데 그게 잘 표현되고 있나? ‘빛’도 중요하다. 북유럽은 낮이 짧다. 그래서 태양빛을 어떻게 하면 더 깊이, 오래, 많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벽과 바닥, 즉 큰 면을 이루는 곳은 차가운 느낌이 나는 단색을 사용하고, 공간의 각 부분은 따뜻한 색, 복잡한 패턴의 직물을 사용해 채워나가는 것이 북유럽 스타일의 특징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북유럽 스타일은 ‘모던 앤 심플’ ‘블랙 앤 화이트’라는 엉뚱한 정의만 남았다. 전혀 북유럽 스타일 같지 않은 북유럽 스타일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여과 없이 받아들인다. 가구도, 그릇이랑 접시도, 패션의 일부도 ‘엉뚱한’ 북유럽화되어간다. 열기가 과한 탓이다. 세상에 스타일이 ‘북유럽’밖에 없나?
물론 북유럽 스타일, 나도 좋아한다. 특히 볼보자동차의 센터페시아와 콘솔 박스를 사랑한다. 어떤 경쾌함 그리고 ‘시크함’이 묻어 있고, 내 오른팔이 쓸데없는 노동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길에 머스탱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그냥 머저리 같은 애가 세상 물정 모르고 기름을 바닥에 버리는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뭐든 너무 실용, 합리라는 개념을 앞세워 판단하니까, 실용이랑 합리가 꼭 옳기만 한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이러니 작은 실수도 하면 안 될 거 같다. 디자인은 당연히 인식을 제어하니까. 공간을 합리적으로 분할하고, 용도에 맞는 가구를 정확하게 배치하는 것은 물론 올바른 거겠지? 지금 나는 북유럽 스타일의 테이블 위에 삼성 노트북을 올려두고 이 글을 쓴다. 얇고 가벼워서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노트북이다. 회색이다. 딱, 모던 앤 심플이다.
그리고 아주 불편하고, 과시욕이 넘치며, 색색이 화려한 1900년대 미국 스타일을 생각한다. 이제 ‘아메리칸 빈티지’라고 불러도 될 만큼 낡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요란한 의상과 메릴린 먼로의 금발이 떠오른다. 팝콘을 흘러넘치도록 가득 담아두는 것은 음식을 낭비하는 행동이겠지? 어깨에 커다란 뽕을 넣은 재킷을 입고 가로수길에 나가면 사람들이 도대체 저건 뭔 패션이야, 하는 눈으로 쳐다보겠지? 아마 뭘 모르는 어설픈 ‘패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동차 트렁크에 커다랗고, 곡선의 볼륨이 꽤 느껴지는 아이스박스를 넣는 건 어리석은 짓이겠지? 그래서 결국 우아함은 합리성이라는 단어한테 지는 거겠지? 그런데 왜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일까? 너무 개인적인가? 대한민국이 온통 북유럽 열풍에 빠져 있는 게 나는 마뜩찮다. 한 가지만 너무 사랑받는 건 이상하잖아? 그래서 내가 뭘 제안하고 싶냐면… 여기까지 읽었으니까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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