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을 자주 찾는다면서요.
네. 최근에는 <스포트라이트>를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헤일, 시저!>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봤고요. 아, <아노말리사>와 <트윈시스터즈>도 좋았어요. 어제도 봤어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제목이 되게 길죠? 에단 호크가 감독한 영화예요.
다큐멘터리 영화죠?
네. 사실 다큐멘터리인 줄 모르고 봤어요. 히힛. 저는 영화관에 그냥 정보 없이 가는 걸 좋아해서요. 어제 일 끝나고 바로 영화 검색해보다 ‘에단 호크 감독이네?’ 하면서 예매했죠. 배우인 그가 연출에 관심 많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궁금했어요. 저는 에단 호크 연기가 좋아요. 그렇지 않나요?
어떤 영화에 출연한 에단 호크를 좋아하나요?
아무래도 <비포 선셋> <비포 선라이즈> <비포 미드나잇> 시리즈요. 너무 대표적인가? 세 작품에서 시간 차에 따라 그의 연기도 변하잖아요. 그걸 보는 게 좋더라고요. 저는 개봉하는 영화는 거의 다 영화관 가서 봐요. 물론 영화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극장 자체를 좋아해요.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영화 티켓을 모으고 있어요. 아직도 하나하나 집에서 코팅해 보관해요. 영화 티켓 때문에 코팅하는 기계를 샀어요.
멋지네요! 티켓을 코팅하는 이유가 있어요?
티켓 위의 글자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더라고요. 그게 싫었어요. 언제 어디에서 무슨 영화를 봤는지, 오래오래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시작했죠. 초반에 코팅했던 몇십 장은 태워 먹었어요. 코팅을 잘 못해서. 너무 많아서 전부 몇 장인지는 못 세어봤어요. 작년 것만 세었는데 80~90장 정도 되더라고요. 근래에는 보통 1년에 그 정도 보는 것 같아요.
그 많은 영화 중에서 반복해서 본 작품도 있어요?
제가 예전에는 한 번 본 영화는 거의 다시 안 봤거든요. 새로운 영화가 계속 나오니까요. 본 걸 또 보고 싶어지는 경우가 없었는데, 요즘은 반복해서 보기를 즐겨요. 레오 카락스를 좋아하거든요. 그의 영화는 몇 번이고 다시 봤어요. 최근에도 봤고요. 좋아하는 장르, 감독, 배우가 생기면서부터는 기분에 따라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어요.
영화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장르를 찾아나가는 중이네요.
최근에는 단편 애니메이션 하나를 소개받아 봤는데 무척 좋았어요. <하르피아(Harpya)>라는 영화예요. 1979년작이고요. 아트 애니메이션인데 무척 장르적이고 충격적이에요.
충격적이고 날 선 영화도 즐겨요?
네. 장르적으로 강한 영화도 무척 좋아해요. 그리고 완전히 생활에 가까운 영화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처럼요. 특히 편애하는 영화는 보통 이 두 부류에 해당하더라고요. 최근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에세이도 읽었어요. 제가 이 감독의 영화를 다 봤는데, 그런 사람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더라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 자신만의 확고한 방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그런 인물에게 매료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매력을 느끼는 인물이 배우 중에도 있나요?
요즘 케이트 블란쳇에 빠졌어요. 그녀가 선택하고 보여주는 캐릭터는 하나같이 매력적이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사실 여자 배우가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케이트 블란쳇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여자 배우가 자신의 장르를 선택하고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케이트 블란쳇은 그렇게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여성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파워풀하게 드러내면서도 입체적이죠.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이솜은 어떤 때 가장 ‘내 옷을 입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드나요?
일단은 메이크업 안 할 때요. 화보도 간혹 메이크업하지 않고 촬영하는데 좀 더 편하고 자연스러워요. 저를 더 보여줄 수 있고요. 메이크업을 하면 가면 쓰는 느낌이 들어요. 완전한 저 자신이 아니라, 한 꺼풀 덮은 느낌.
다작을 하고 싶다고 말한 걸 어느 인터뷰에서 봤어요. 일단은 많이 경험하고 싶다고요. 의욕적이구나, 생각이 들면서 배우로서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제가 줄리엣 비노시를 좋아하는데요. 그 배우가 특히 사랑에 대한 표현을 많이 하더라고요.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모양의 사랑을 그리는 작품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연기했어요. 가족애, 모성애, 동성애부터 연인과의 사랑까지 다양했죠.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양하게 그려보는 것도 배우의 목표이자 길이 될 수 있겠네요.
그것도 자신의 장르를 찾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 되더라고요. 저는 일단 많은 작품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크고 그래야 하는 상태이지만요. 줄리엣 비노시의 방식과 행적이 제게는 무척 흥미롭고 매력적이에요.
케이트 블란쳇과 줄리엣 비노시 모두 중년 반열에 들기 시작한 여배우들이네요.
멋있어요. 그 나이에도 여자가 무척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배우들이잖아요. 그들은 세월이 빚어낸 오라와 아름다움을 알고 드러내요. 아름답게 나이 드는 일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들은 젊어 보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아요. 당당하고, 강인해요. 그래서 아름답죠. 자신이 원하는 바와 생각하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요.
영화 <좋아해줘>에서 이솜 씨가 맡은 나연 역도 그렇지 않나요? 영화에서는 흔히 돌아서는 여자의 손목을 남자가 탁 잡고 돌려 세우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좋아해줘>에서는 그 반대였어요.
저는 그런 나연이 마음에 들었어요. <좋아해줘>를 홍보하던 당시에 나연과 저의 비슷한 부분들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었어요. 저도 연애만이 아니라 생활에서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뭔가를 결정하고 행동하기를 좋아해요. 좋은 것과 싫은 것이 분명하고요. 해야 할 이야기는 명확하게 하고요.
영화 <마담 뺑덕>에 합류한 것도 전적으로 혼자 결정했다면서요.
제가 작품 선택할 때는 겁이 없어요.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니까요. 요즘은 배우로서 욕심이 한창 커져가요. 잘하고 싶어요. 촬영 현장을 워낙 좋아해서, 빨리 현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살아요. 요즘 날씨가 무척 좋잖아요. 그럼 저는 ‘와, 날이 너무 좋구나. 지금 촬영하면 멋지겠다’ 해요.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절대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의 감성이요.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도 감성이 메마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랑의 감정. 무엇을 온전히 사랑하는 감정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이 두 가지가 저는 정말 중요하다고 느껴요. 이걸 잃으면 재미없을 것 같아요.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가 오거나 날씨가 좋을 때, ‘아, 좋다’ 하는 감정의 크기가 지금과 같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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