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PERATION 아우디 코리아(테크니컬 트레이너 최원석, 프로덕트&세일즈 트레이닝 세일즈 공현상),
메르세데스 벤츠(트레이닝 매니저/세일즈& 테크니컬 서비스 김영준) Editor 성범수
홀대받는 입장에 있다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일하는 잡지계에선 배당받은 일을 마감 때까지 완성해내지 못하거나, 일의 진행이 지나치게 느리면 편집장에게 미움을 받는다. 한국 시장에서 디젤 엔진이 서자의 입장에 놓였던 건 이런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디젤 엔진 자체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시커먼 배기가스와 덜덜거리는 소리는 안락한 차를 지향하는 한국인의 정서와는 어울리지 않는 궁합이다. 선입견을 변화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자동차 기사를 담당하는 나도 디젤 자동차를 시승할 땐 무의식적으로 정숙성부터 먼저 살피곤 하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디젤 엔진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걸 눈치 챘다. 그건 아우디 A6 TDi, BMW X3 3.0d, 푸조 607HDi를 타본 다음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타본 디젤 차들이 지닌 공통점은 모두 유럽 브랜드였다는 거다. 미국과 유럽은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풍부한 자원과 소비를 바탕으로 경제 성장을 일궈온 미국은 낮은 연비와는 무관하게 가솔린 엔진을 선호했다. 기술 수준도 디젤 엔진보다 가솔린 엔진이 앞선 상태였고, 큰 차에 큰 배기량을 선호하는 사람들로 집단을 이룬 대륙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일본 자동차는 미국 시장 개척을 지상 최대 과제로 삼고 있었다. 당연히 가솔린 엔진을 담은 자동차를 활기차게 개발해야 했다. 이와 반대로, 유럽 시장은 디젤 엔진을 미래형 엔진으로 규정지었다. 환경친화적이지 않았던 디젤 엔진은 보쉬에서 커먼레일 시스템을 개발해낸 덕분에 더러운 연기를 뿜어내는 내연기관이라는 불명예를 훌쩍 넘어버렸다. 그리고 가솔린 엔진이 보였던 성장 속도를 능가하며 혁혁히 발전하고 있다. 현재의 가솔린 엔진은 개발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디젤 엔진에 대해선 대부분 호의적이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것처럼 무한한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아남은 디젤 엔진을 모두들 치켜세우는 분위기다.
고연비를 창출할 수 없는 가솔린 엔진을 위해 일본에선 직분사 엔진을 만들어 연비 상승을 노렸지만, 디젤의 선천적 장기인 고연비를 추월할 순 없었다. 결국 생존을 위해 일본에서도 디젤 엔진 개발에 혼을 다하게 됐다. 디젤 엔진에 무지했던 혼다가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택할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방법은 푸조의 디젤 엔진을 탑재하는 것이었다. ‘엔진의 혼다’가 짊어질 수밖에 없는 ‘굴욕’으로 기억될 일이다. 하지만 혼다의 노력은 2003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결실을 맺었다. 월등한 토크를 자랑하는 엔진을 자체 기술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가솔린에 익숙했던 혼다가 디젤을 만들었다는 건 미국과 유럽이라는 자동차 양대 산맥의 구도가 어느 정도 디젤 엔진의 유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다. 현재 토요타를 제외하고 순수한 일본 자동차 브랜드는 없다. 그 원인을,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디젤 엔진을 도외시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디젤이 대세라는 건 차를 타보지 않은 사람도 차츰 피부로 느끼고 있을 거다. 출시하는 신차들이 디젤 일색인 경우가 많기 때문. 앞서 말한 디젤 엔진 자동차를 타면서 내가 검증할 목표는 과연 가솔린 엔진을 디젤 엔진이 능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정숙성의 측면을 볼 때 가솔린 차보다 디젤 차에서 소음이 많다는 건 정설이다. 하지만 소음이 전혀 없다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다. 운전하는 재미는 엔진에서 울리는 저소음에 있음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LPG 자동차는 조용하다. 그렇다고 LPG를 최고의 엔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부족한 힘 덕분에 조용한 것뿐이니까. 역도 선수들은 역기를 들어올릴 때 소리를 내지른다. 디젤 엔진은 힘이 좋은 차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디젤 엔진은 압축 압력도 다르고 터지는 방식도 다르다. 소음은 이런 이유 때문에 생기지만 느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저속에서만 약간 소음이 있을 뿐 고속에선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차라리 힘이 좋다는 생각에 겁도 없이 내달리기만 했다.
디젤 엔진의 매핑이 어느 정도 수준에 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중립에 기어를 두고 가스페달을 끝까지 밟아봤다. 내가 소유했던 고전적인 디젤 SUV는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떼면 RPM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천천히 떨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의 차이는 이런 식으로 드러났었다. 하지만 내가 시승한 차들은 가솔린과 차별 없이 빠른 속도로 RPM이 하강했다. 난 아우디 코리아의 테크니컬 트레이너인 최원석 과장에게 이런 디젤 엔진의 변화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그런 측정 방식은 옛날에나 시도했던 방법이라며 잘라 말했다. 최근에 선보이는 대부분의 디젤 차들은 가솔린 차와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건 디젤 엔진의 매핑 기술이 상향평준화됐다는 증거다. 그러면 어떤 방법이 디젤 엔진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냐고 물었다. 최원석 과장은 가솔린 엔진의 경우 얼마나 높은 RPM까지 사용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지만, 디젤 엔진은 고속으로 엔진 회전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얼마나 엔진 회전을 고속까지 끌고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며, 그 상태에서 충분한 힘을 낼 수 있는지를 느껴야 한다고 했다. RPM이 레드존까지 도달했을 때, 엔진이 차를 끌고 가고 있다는 그림이 그려지는지, 몸으로 느껴보라고 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트레이닝 매니저인 김영준은 디젤 엔진은 엔진의 저회전 영역에서 가솔린 대비 우수한 토크 특성을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가스 페달을 살짝만 밟아도 엔진의 힘을 충분히 빠르게 활용할 수 있는 거였다. 저회전에서의 맛은 가솔린 엔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디젤만의 전유물이다.
아우디 코리아 프로덕트&세일즈 트레이닝 세일즈 공현상 대리는 얼마나 최대 토크를 오래 유지하느냐도 디젤 엔진을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말했다. 가솔린 차의 경우 터보차저를 탑재한 차 이외에는 일반적으로 완벽한 세팅이 힘들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고속으로 진행하다 100km쯤에서 가스페달을 끝까지 밟고 킥다운 스위치를 누르면 가솔린 차의 경우 RPM이 끝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최대 토크가 될 때까지 ‘쭈욱’ 하고 올라가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디젤 엔진의 경우 킥다운 스위치를 누르자마자 폭발력이 바로 온몸에 전달된다. 그래서 몸은 뒤로 젖혀지고 차는 앞으로 즉각적으로 튀어나가는 것이다. 디젤 엔진은 계단을 두세 개씩 한달음에 뛰어오르듯 바로 반응한다.
그들의 말을 듣고 난 후 경부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향했다. 킥다운 스위치가 작동할 때까지 가스페달을 밟았다. 공현상 대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디젤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연비의 문제로만 얘기할 순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유럽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연비를 따지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토크에 대한 느낌을 뼛속 깊이 알고 있는 사람들인 거다. 운전을 할 때 묵직한 토크의 힘으로 차를 끌고 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을 땐, 가솔린 차와 내 LPG 차에 대한 기억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디젤 차의 느낌은 정말 달랐다. 동급 배기량의 가솔린 차량과 디젤의 토크를 비교하는 건 바보짓이다. 가솔린 엔진은 토크에 있어선 디젤 엔진을 절대 따라올 수 없으니까. 일반적으로 가솔린 엔진보다 디젤 엔진의 토크가 50%에서 60% 더 높다고 한다. 토크는 사람이 느끼는 거다. 자동차의 힘이 운전자에게 전달되고, 운전의 진정한 맛을 이렇게 배워간다. 토크가 빠른 속도로 위아래로 상승하는 느낌은 도로 위에서 레이서가 된 양 나를 들뜨게 했다.
디젤에 대한 편견은 환경을 파괴한다는 거다. 자신은 지구 환경 수호자라며, 디젤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계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건 당신의 패착이란 사실을 알려줄 아량은 있다. 검은 연기는 미세 먼지 때문에 생기는 거다. 디젤 자동차에 DPF(Diesel Particulate Filter)가 장착되면서 검은 매연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친환경적이란 얘기다. DPF가 달려 있지 않은 차는 미세 먼지가 나오기 때문에 그릴 부분이 검게 변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디젤 자동차의 배기구엔 크롬 처리가 돼 있지 않았다. 지금은 가솔린처럼 배기구에 크롬 처리를 한다. 그 말은 미세 먼지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디젤 엔진이 가솔린보다 탁월한 느낌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선뜻 디젤 엔진에 손을 뻗지 못한다. 약간의 소음이 있다는 단점을 제외하고는 강력한 힘, 높은 연비, 환경친화적 엔진이라는 우월함이 이렇게 뚜렷한데도 말이다. 현재 일본이 자랑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가솔린 하이브리드다. 이미 유럽에서는 산업용 차에 사용되던 디젤 하이브리드를 일반 승용차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제작비가 높은 게 단점이지만 그것도 디젤의 빠른 성장을 감안할 때 머지않아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디젤 엔진을 좋아하지 않는 미국 시장에도 현재 아우디, 폭스바겐, 벤츠, BMW의 디젤 엔진 자동차들이 강력한 환경 기준을 만족시키며 연착륙하고 있다. 가솔린 엔진 대국 미국에서도 디젤 엔진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거다. 이미 잘 알려진 아우디 R10이 ‘세브링 12시간’과 ‘르망 24시간’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한 것만 봐도, 디젤 엔진의 기술력은 이미 가솔린을 뛰어넘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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