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포드는 2월에 계획한 2016 F/W 뉴욕 패션위크를 돌연 취소했다. 2016 S/S 컬렉션도 온라인 런웨이로 대체했고, LA 이후 선택한 도시가 뉴욕이었기 때문에 팬들이 성대한 이벤트를 기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그가 불쑥 꺼낸 건 2016 F/W 컬렉션을 시즌이 시작되는 9월 즈음에 선보이겠다는 당황스런 통보. 그의 생각은 이렇다. “우리는 현시대와 맞지 않는 패션 캘린더를 운용하고 있어요. 저는 더 이상 구식 시스템을 따르지 않을 겁니다…. 매장에 옷이 도착하는 시기에 맞춰 쇼를 연다면 소비자는 쇼에 등장한 옷을 즉각 살 수도 있고, 매출 향상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버버리 역시 같은 생각이다. 매년 4회 선보였던 남성과 여성 컬렉션을 통합해 연 2회(2월과 9월)로 변경하며, 더 이상 S/S, F/W로 구분하지 않고 ‘버버리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운용하기로 결정한 것. 런웨이에 오른 옷들은 즉각 쇼윈도에 걸리며, 시의성 있는 캠페인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론칭할 예정이다. 또한 브릿, 런던, 프로섬으로 나눈 라벨도 이젠 하나의 ‘버버리’로 통합한다.
버버리 CEO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이런 결정을 두고 ‘즉각적’ ‘개인화’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베트멍의 뎀나 바잘리아 역시 남성 컬렉션 기간과 이어지는 여성 쿠튀르 컬렉션 기간 사이, 남녀 컬렉션을 통합한 두 차례 컬렉션을 내년부터 선보일 거라 이야기했다. 그는 진작부터 전통적인 패션쇼의 비효율성과 비용 낭비에 대해 지적해왔다. 아직 검토 중이긴 하나, 4대 도시 중 가장 상업적인 뉴욕 패션위크를 개최하는 CFDA(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는 뉴욕 패션위크 형식을 다시 고려한다고 발표했다. 마이클 코어스나 타미 힐피거 같은 선배 디자이너들은 벌써 ‘인 시즌(in-season, 시즌과 연계한 컬렉션)’에 적극 동참하고 있지만 신진 디자이너들은 관망하는 상황. ‘See Now, Buy Now’가 어느덧 시류적인 슬로건이 돼버린 상황에서 모든 도시가 같은 의견을 보이는 건 아니다. ‘파리의상조합협회’는 일부 미국과 영국 브랜드들의 선포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파리를 대표하는 럭셔리 하우스들은 대책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반대표를 던진 것.
협회의 회장 랄프 톨레다노는 현명한 고객은 컬렉션 아이템의 출시를 기다리는 것에 이미 익숙하며, 기다림 역시 고객의 욕망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장인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하는 시스템 아래에선 시간상 변화가 불가능하며, SPA 브랜드와 모조품을 피하는 완벽한 방법도 아니라고 일축했다. ‘인 시즌 컬렉션’ 이슈 직후에 있었던 여성 파리 패션위크의 경우, 결국 두 방향으로 나뉘었다.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럭셔리 하우스의 입장은 보다 완강해지는 반면, 신진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시스템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이 같은 이슈는 패션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효율적인 소비 패턴이 될 수 있는 반면, 비평과 분석 대신 인스타그램 피드를 채울 단편적인 이미지로 끝나버릴 수도, 셀러브리티를 수단으로 삼는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패션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방금 카니예 웨스트는 ‘더 이상 패션 캘린더는 없다. 일 년에 여섯 번의 컬렉션을 내놓겠다’라는 트윗을 남겼다. 어찌됐든 모두에게 격동의 시기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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