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안경
생각해보니 그렇다. 여자가 외모 변신을 꾀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안경을 벗는 것이지만, 남자는 오히려 안경으로 멋을 더한다. 단정한 시계, 깔끔한 신발 그리고 근사한 안경 정도면 누구든 쉽게 미남 유전자를 불어넣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얼굴형과 스타일에 맞는 안경을 찾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식당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안경잡이’ 틈에서 ‘시력이 좋지 않은 남자’가 아니라 ‘멋을 아는 남자’로 차별화를 꾀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예술 창작촌이 형성된 문래동 골목에 로코 안경 공방이 있다. 2012년 태릉에서 안경을 좋아하는 사람 7명이 모여 만든 공방이다. 2014년 문래에도 문을 열면서 ‘나만의 안경’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 특히 남성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공방에서 직접 만든,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핸드메이드 안경을 얼굴에 ‘이식’하고 대부분 ‘훈남’으로 거듭난다고 한다. 안경 브랜드가 만드는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내 개성과 취향을 100% 반영한 안경이 탄생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STEP 1 내 머릿속의 안경
머릿속에 그려둔 ‘꿈의 안경’을 이제 손으로 그려낼 때다. 만들고 싶은 안경을 사진으로 찾아봐도 좋고, 대강 손으로 그려 가도 좋다. 공방 디자이너가 상상 속 안경을 실현 가능하게 수정해주고, 일러스트 도안 작업 역시 도와주기 때문이다. 사슴벌레를 형상화한 안경부터 꽤 오래전에 단종된 모델까지 다양한 모양의 안경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 안경 디자인을 구체적으로 완성했다면, 테의 색상과 소재를 고른다. 시중의 안경이 검은색, 갈색 외에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에 비해 공방에서 직접 만드는 안경은 고를 것이 너무 많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세세하게 주문할수록 완성도 높은 안경이 탄생하므로 주저하지 말고 원하는 것을 다 이야기해보자.
총천연색 안경테 중 채도와 감도, 그리고 플라스틱과 금속 등 소재를 선택하고 나면 일러스트로 작업한 도안을 프린트한다. 안경알 부분과 다리로 나누어 설계한 도안을 가위로 오리고, 테를 만들 소재에 붙인다. 아세테이트로 된 일명 ‘뿔테’를 만들고 싶다면, 선택한 패턴과 색상의 네모난 아세테이트 판에 안경전면부와 다리 모양대로 오린 종이를 딱풀로 붙이는 것. 실톱으로 안경 렌즈가 들어갈 부분을 잘라내고, 안경다리도 모양대로 자른다. 사포로 잘라낸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고 나면 안경전면부, 안경다리 두 개가 완성된다. 본격적으로 조립을 하기 전에는 내구성을 강화하는 작업이 필수다. 기계에 안경알 부분과 다리를 넣고 ‘연마’시켜야 하는데, 보통 4~5일이 소요되는 이 작업을 거치면 말랑말랑했던 테가 단단해진다.
STEP 2 디테일의 재구성
안경전면부 옆 끝부분에 경첩을 끼워 다리와 이어주는 경첩 부분을 만들기 위한 밑 작업을 한다. 그리고 렌즈를 넣기 위해 테 안에 홈을 파는 작업, 일명 ‘홈선 만들기’도 빼놓을 수 없다. 안경알 부분과 다리를 각각 연결하고 얼굴에 맞게 조절하면 완성된다. 너무 쉽다고? 하지만 이때의 아주 세심한 작업이 기성 안경과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먼저, 자신의 콧대와 모양 등을 고려해 코받침 간격을 조정한다. 경사각이 심한 레이밴 2140은 조금만 웃어도 광대와 안경이 맞닿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동양인을 위한 아시안 핏, 경사각에 따라 다양한 모델 등을 출시했다.
안경잡이가 겪는 불편한 상황을 최소화하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은 수제 안경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중독될 수밖에 없는 매력이다. 자신의 얼굴에 착 감기는 안경은 너무 편안해 안경을 쓴 채로 잠들 정도라고. 얼굴 면적이 조금 커서 맘에 드는 안경을 찾아도 관자놀이에 안경다리 자국을 문신처럼 남겨야 했던 경험이나, 반대로 얼굴 면적이 너무 좁아 무리하게 안경다리를 조절해 안경 전체의 모양이 망가지는 불상사도 줄어든다. 이런 디테일을 살리는 작업 때문에 과정은 간단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꽤 소요된다. 적어도 3, 4회 정도 최소 2주부터 대략 한 달 정도 예상하고 공방을 방문해야 여유 있게 ‘내 안경’을 완성할 수 있다.
INTERVIEW 안경 디자이너 이중호
언제부터 안경을 디자인했나?
일본에서 본 수제 안경점이 무척 인상적이라 생각만 하고 있다가, 마침 이곳에서 전문적으로 안경과 디자인을 배우면서 일하고 있다. 공방에 전문 교육과정도 있는데 아직까지는 안경사가 그 대상이라 다양한 이들을 위한 커리큘럼을 만들 계획이다. 디자인 자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초보자에게 가장 어려운 작업은 무엇인가?
실톱으로 잘라낸 안경테 부분을 줄과 사포로 다듬는 작업이 가장 오래 걸리고, 또 많이 힘들다. 하지만 이런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 나만의 안경을 만들 수 있다.
공방에서 탄생한 안경 중 디자이너를 놀라게 한 작품도 있나?
물론이다. 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안경들이 탄생해 자극을 준다. 아주 작고 동그란 프레임과 독특한 색감의 렌즈를 결합한 안경을 시리즈로 만들어 자신만의 컬렉션을 완성한 분도 기억에 남는다. 자동차나 곤충, 동물 등에서 모티브를 얻어 안경 프레임을 그려오는 분도 있고, 안경 프레임에 빗을 얹어 디자인한 분도 있다.
수제 안경에 대한 관심은 계속 될까?
외국 안경 모델을 카피해 공장에서 찍어내던 과거에 비해 요즘엔 하우스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남자들의 관심이 폭발적이다. 기성 제품과 달리 자신만의 개성과 취향을 담아낼 수 있기에 수제 안경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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