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현재를 살지만, 누구도 김민준처럼 살지는 않는다. ‘특이하다’는 말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면 김민준은 그런 의미에서 분명 특이한 남자다. 운동부였던 고등학교 시절, 트레이닝을 위해 비탈진 언덕길을 뛰며 손에는 줄넘기 대신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들고 있었다거나, 인터뷰 중 데카르트의 실존철학에 대해 심각하게 얘기하는 모습은 그가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한참 벗어난 사람이라는 걸 알려준다.
물론 의심이나 폄하도 가능하다. 남자들이 흔히 근육 자랑만큼이나 자주 하는 ‘지적 가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김민준은 지적 허영과 진짜 자기가 추구하는 삶을 구분할 정도의 의식은 가진 남자다. 재미있는 건 자신의 세련된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그가 사실은 근대적인 가부장 의식마저 슬쩍슬쩍 드러낸다는 거다. 즐거운 불협화음을 빚어내는 외계인 김민준과 이야기를 시작한다.
얼마 전 <패밀리가 떴다> 촬영 중에 사고가 있었다며, 괜찮나.
정말 아찔했다. 삶과 죽음이 눈앞에서 분리되는 순간이었으니까. 사고 전날 운명이란 무엇일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런데 패러글라이딩 중 기상 악화로 예기치 못한 일을 겪고 나니까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
밤에 잠도 잘 못 잤겠다.
그날 친구들과 초자아에 대해 밤새 토론도 했다.
초자아? 프로이트 말하는 건가?
요즘 영혼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영혼이라는 존재는 뭘까, 에너지일까 하는 것들. 사후 세계가 너무 궁금한 사람이다, 나는.
초자연적인 것에 관심이 많나?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 정체가 너무 궁금하다. 사실은 그것보다 나 자신의 자아가 더 궁금하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에너지의 충돌들을 어떻게 하면 캐치할 수 있을까, 많이 궁리한다.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니 부럽다. 당신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글쎄… 어떻게 보면 정말 수컷 같기도 하고, 한없이 순수한 면도 있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물론 잘 안 되지만 말이다. 장난 삼아 언제든 하는 일을 버려놓고 떠나버리자고 하지만, 사실 모두 워커홀릭이다. 모든 부귀영화는 다 부질없는 거라고 만날 서로 맞장구치지만 잘 안 된다. 아이러니지.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한가?
정말, 너무 궁금하다, 나 자신이. 말도 안 되는 확률로 내가 태어난 것부터 시작해서, 외계에 다른 생명이 있다면 왜 나는 지구에 태어났나, 어떻게 이런 인연이 생겨서 당신과 내가 만났는가 같은 것들. 그런 수많은 우연들에 내가 놓여 있다는 게 참 놀랍다.
대학 시절, 소설 <금각사>를 한 손에 끼고 러닝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상상하면 좀 코믹한 장면이기도 한데, 웃으면 안 되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때 난 항상 뭔가 충족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 것들, 좀 더 근원적인 것을 찾고 싶었다. 그때는 인터넷도 없었으니까, 항상 내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책은 그런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편한 방편이었다. <금각사>는 그때 흥미롭게 본 책 중 하나였고.
<금각사>는 탐미적인 시각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작품이다. 미학적인 것에 관심이 많나?
많다. 세상 모든 일에는 사이클이 있지 않나. 행복하다고 해도 그게 언제까지 계속 되진 않을 거다. 곧 불행이 찾아오겠지. 그런 우연,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가 너무 궁금했다. 그러다 보니 절대적인 가치나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았지. 하지만 그런 걸 드러내는 게 창피해서 의식적으로 유쾌해 보이려고 애썼다.
물건을 보는 눈도 남다를 것 같다.
자동차나 기계를 너무 좋아한다. 특히 자동차 메커니즘을 보면 경탄한다. 인간은 어떻게 내연기관을 발명했을까부터 시작해서, 그 부속품들이 상호작용하면서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과정들을 상상해보면 너무 대단하지 않나. 그 모든 것들에 경외감을 가지고 있다.
그 모든 내연기관의 움직임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스피드’다.
그렇지. 난 누구 못지않게 스피드홀릭이다. 석기시대에 매머드를 잡기 위해 돌진하는 원시인들을 생각해봐라. 그들의 뇌에서는 전투적인 아드레날린이 나오지 않았겠나? 그게 사는 거고, 그런 것들이 있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요즘은 초식남이니 뭐니 해서 그런 본능을 거세하고, 얌전하게 사는 걸 강요한다. 도덕적 틀이 너무 견고한 거지. 그런 본능을 억누르려면 스피드나 스포츠, 섹스 같은 것들을 통해서 배출구를 찾아야 한다.
스피드홀릭이라면 얼마까지 밟아봤나.
시속 307km까지 밟아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듯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는 건가?
난 정말 그렇게 위험한 순간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고 느슨해진 모든 나사를 바짝 조이는 느낌이 있다. 그런 위험부담을 다 감수할 만큼 긴장감을 가지는 게 너무 좋다.
무모하다고 생각지는 않나?
생각 없이 마냥 위험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만의 프로페셔널함을 가지고 싶었다. 속도를 즐기는 것도 과속을 위한 과속이 아니라 이 차의 엔진을 극한으로 내몰았을 때, 어떤 느낌인지가 궁금했던 거다.
차도 꽤나 많이 바꿨겠다.
가장 과격했던 차는 아우디의 RS4. 요즘 RS4가 아니라 이전 세대 RS4 왜건이었다. MTM 500마력 컴플리트 엔진을 단 차였다. 그리고 폭스바겐의 R32 4세대, BMW 246 M3, 4세대 GTI. 바이크도 꽤 많이 탔다. 두카티 몬스터도 탔었고, 지금 가장 아끼는 건 MV Agusta F4 SPR이다.
마니아 수준이다.
자동차의 연혁이라면 웬만한 건 다 읊을 수 있다. 헤드라이트 불빛만 봐도 어떤 차인지 거의 구분할 수 있다. 소리만 들어도 어떤 계열의 엔진인지 알 수 있다. 터보인지, 슈퍼차저인지, 혹은 4기통인지 뭔지.
라이선스도 있나? 어떤 연예인들은 연예인 카레이싱단 같은 것도 만들잖나.
그런 건 없다. 난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 분류되는 게 싫다. 연예인 레이싱팀도 마찬가지다. 난 스피드를 즐기고 연습하고 생각하지만 외부에 노출되는 건 별로다. 스피드나 기계에 대한 나만의 철학이 있는데, 차를 좋아하는 연예인 같은 타이틀로 한데 묶이는 게 너무 싫다.
당신처럼 살면 인생이 너무 짧게 느껴지겠다.
맞다. 너무 짧다. 그래서 흐르는 시간을 잡고 싶어진다. 요즘은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 과학 전문 잡지들을 정기구독했었다. 그런 과학 이론들이 너무 궁금한 거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스티븐 호킹의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모른다. 시간의 영속성에 호기심이 많았다.
당신은 인생의 절반 정도는 이미 살았다. 못해봐서 아쉬운 게 있나.
살아 있는 세계의 석학들과 실제로 커뮤니케이션을 해보고 싶었는데 어학을 미처 공부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사실은 아직 못 본 모든 것이 다 아쉽다. 그래서 요즘 어린 동생들이 너무 부럽지. 인터넷이 있으니 컴퓨터에만 접속하면 뭐든지 알 수 있고. 난 어릴 때 <컬러 대백과사전>이랑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집 같은 것들을 5백 번은 읽었다. 아직도 활자 하나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스펀지처럼 모든 지식을 흡수할 수 있었던 시절에 다양한 것들을 접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그때 인터넷이 있었다면 아마 내 길도 달라졌겠지.
“석기시대에 매머드를 잡기 위해 돌진하는 원시인들을 생각해봐라. 그들의 뇌에서는
전투적인 아드레날린이 나오지 않았겠나? 그게 사는 거고, 그런 것들이 있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요즘은 초식남이니 뭐니 해서 그런 본능을 거세하고, 얌전하게 사는 걸 강요한다.”
그러고 보니 당신의 모델 데뷔 과정이 드라마틱했다는 얘기는 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톱 모델이 된 경우가 예전에는 없었다던데.
나와 같은 경우는 전례가 없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길거리 캐스팅도 아니고 일일이 에이전시들을 찾아다니면서 모델을 하고 싶다고 졸랐다. 시행착오들, 버린 시간들이 너무 많았다. 요즘은 얼마나 좋나, 검색만 하면 가이드라인이 쫙 나오는데.
어쨌든 그렇게 상경해서는 결국 부산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까지 출연하게 됐다. 하지만 <친구>에 출연한 건 좀 무리수를 둔 것 아닌가? 이건 잘해야 본전 아닌가.
무슨 얘긴지 알겠다. 아마 곽경택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안 했을 거다.
곽경택 감독의 친화력이 대단한가 보다. 곽 감독과의 친분으로 출연을 결정한 배우가 많다고 들었다.
감독님은 뭐랄까… 배우의 자신감을 엄청나게 고양시키는 능력이 있는 분이다. 난 지금껏 인터뷰를 하면서 내 작품에 대해 고자세를 취해본 적이 없었다. 성취감이 부족했었다. 하지만 지금 <친구>를 끝내고 나서는 내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그걸 가능하게 해준 사람이 곽 감독이다.
얼마 전 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도복을 입고 나와 호신술을 시연하는 장면을 봤다. 도복 하나 걸쳤을 뿐인데, 너무 위압적인 느낌이어서 놀랐다. 싸움, 잘했나?
그렇게 물어보면… 지기는 싫었다. 내 주먹이 닿을 거리에 들어오는 것들에게 진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져본 적이 없나?
싸움을 많이 안 해봐서 그런지 진 적은 없다. 하지만 남자라면, 자기 품에 들어오는 것들을 지킬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라면 그래야 하는 건가?
그렇다. 방금 당신이 봤다는 그 프로그램에서 다소 장난스럽게 한 부분이 있다. 난 진지하게 유도를 배운 사람인데, 그게 우스꽝스러워지는 게 싫어서 인스턴트 호신술을 보여준 거다.
폭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속된 말로 ‘가오’를 위한 폭력은 절대 싫다. 차라리 내가 맞는 게 편하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허용되는 폭력의 범위는 있다. 내 가족, 연인이 폭력에 노출됐을 때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폭력은 어떤 경우건 정당하다. 내가 과잉 반응해서 법정에 출두한대도 반성할 생각은 없다. 같은 상황이 열 번 벌어지면 열 번 다 그렇게 행동할 거다.
하지만 불과 천 년 전만 해도 사람을 잘 때리고 잘 죽이면 영웅이 되는 시대였다.
그렇지. 타 종족을 배척하고 내 종족이 살아남아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사람의 폭력성이 억눌리는 시대다. 그런 식으로 본능을 억제하다 보니 불균형이 생기고 거기에 따른 사회적인 병폐가 생겨나는 것 같다. 과연 정신병이 과거에도 그렇게 많았을까? 내 생각엔 아닌 것 같다. 생각해봐라. 언젠가 지구상에서 소외된 소수민족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그렇게 본능적인 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슬프다’ 같은 표현이 없다.
당신과 친분이 두터웠던 이언의 1주기가 곧 다가온다. ‘슬프다’는 표현이 떠오른다.
친분이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안 된다. 정말 특별한 관계였다. (한참 침묵)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델을 너무 하고 싶다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무례할 정도로 나에게 들이댔던 기억이 난다. 동향 출신에 내가 어느 정도 모델로 자리 잡은 상태였으니까 일단 붙잡고 늘어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젠가 이 녀석이 성공했을 때 그 시작점이 내가 된다면 뿌듯할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특별한 관계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모든 화두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솔직히 좀 놀랐다.
좋은 건가?(웃음) 내가 제일 관심을 가지는 화두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미래가 실현 가능하니까.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는 얼마나 많이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대사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한다.
오타쿠 김민준이라니 상상이 안 되지만. 좋다. 집에서 휴가를 보내야 할 독자들에게 꼭 봐야 할 애니메이션을 추천해준다면.
건담을 추천하고 싶다. 2D가 아니라 3D로 구현된 건담인데 제목이 아마 <기동전사 건담 MS IGLOO>였던 것 같다. 기존 건담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집는 작품이다. 절대선과 절대악에 대한 철학적인 시선까지 엿보이는데 그런 것들이 산뜻한 충격이다. 열대야에 보면 더위도 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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