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각 교수의 건축가 재정립
인생은 끝없는 공사의 시작이다. 우리는 자신만의 성을 지으며 살아가고, 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나서야 깨닫곤 한다. 더 나은 건축 방식이 있었다는 것을. 건축가 장순각이 유별난 성을 짓고 있는 건축가들을 만나 그들의 건축 인생을 구성하는 재료와 방법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진다.
원오원아키텍스 대표 최욱과의 인터뷰는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우리는 연대와 이대 사이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짧은(?) 1차 인터뷰를 마치고, 부암동 그의 자택에서 와인을 마시며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건축가의 작품을 주제로 한 정공법을 택하진 않았다. 우리는 건축가 최욱을 더 가까이서 관찰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취향을 파고들었다. 술과 장인, 여행과 조도 낮은 바, 빔 벤더스와 와인 컬렉터, 영화와 대학, 베니스와 건축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금씩 취해갈수록 건축가 최욱의 몽타주가 완성되었다.
원오원 아키텍스
한 건물의 4개 층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사실 좀 놀랐다.
본래 사무실은 삼청동과 광화문 근처에 있는 작은 건물이었다. 큰 작업실은 성북동에 있어 모형을 만들려면 성북동으로 가야 했다. 왔다 갔다 하려니 너무 불편했다. 이사하려고 구글 지도 보고 세 곳을 찍었다. 신문로의 옛 궁터, 한남동의 유엔빌리지 그리고 여기였다. 세 지역에 직원들을 보내서 쓸 만한 곳을 찾아보라 했다. 그때 이 건물을 발견했다.
그때 한남동으로 갔다면 돈 좀 벌었을 텐데. 하하.
이곳 위치가 좋다. 집이 부암동인데 10분 거리다. 생활 반경이 여기로 묶이니까 좋고, 또 희한하게도 건물 앞쪽은 이대고 뒤쪽은 연대다.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변하지 않는다. 교통도 나쁘지 않다. 연대 앞은 밀리는데, 이쪽은 안 밀리거든. 희한한 땅이다.
건축가들은 정보를 많이 얻고, 보는 눈도 있어서 부동산 투자를 잘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동네는 어떤가?
예전보다야 많이 죽었지. 본래 자취촌인데, 지금은 기숙사가 들어섰고, 교내에 식당도 늘고, 편의 시설도 좋아졌다. 대신 거리가 죽었다. 그래서 이 건물 1층을 모형실로 만들었다. 통유리 창을 통해 모형 작업하는 모습을 밖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조금 거리가 활발해지면 좋겠다는 희망에서다.
그런데 사무실을 둘러봐도 대표님 자리가 어딘지 모르겠다.
사무실에 내 자리 없앤 지 오래됐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우선 내가 오래 앉아 있으면 직원들이 불편해한다. 또 나는 40대가 주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위아래 세대를 아우를 수 있도록 말이다. 사무실에 나보다 10년 젊은 친구가 있는데, 그가 주축이 되도록 사무실 구성을 바꿨다. 나는 사무실의 리더이긴 하지만 내가 사무실에 머무는 시간이 적어야 사무실이 잘 굴러간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주로 집에서 일하고, 여기에는 회의하러 온다.
베니스 건축대학
이탈리아에는 언제부터 있었나?
1985년부터다.
이탈리아는 학사 과정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이해하기 힘든 학제다. 그 당시 이탈리아에는 학위가 하나였다. 대학을 졸업하면 ‘닥터’ 학위를 받았다. 그 대신 대학 졸업이 불가능했다. 프랑스에서 ‘닥터’ 학위 따려고 많이들 왔는데, 너무 정체가 심하니까 요즘에는 대학원 과정으로 달라진 것 같다. 1980년대에는 학생들이 거의 졸업을 못했다.
그 당시 유럽으로 유학 갔던 사람들의 공통적인 아픔이다. 국내와 학제가 달라서, 기본 10년은 대학에서 지냈다. 1985년도에 이탈리아에 한국 유학생들이 더러 있었나?
베니스는 내가 처음이었다. 그 당시에는 한국이 알려진 나라가 아니어서, 입학하는 데 3~4년 걸린 선배들도 있다.
베니스에 갔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한국 사람 하나 없고, 배 타고 다니고. 서울과는 전혀 다른 도시잖나.
당시 사촌 형님이 그곳에서 무대미술을 하셨는데, 원래 나는 독일에 가고 싶었다. 뮌헨 조형대학에 영화와 무대미술, 자동차디자인학과가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급히 외국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능한 곳은 사촌 형이 있는 이탈리아였다. 당시 밀라노 정도는 알았다. 디자인이 유명하고, 지오 폰티 책도 읽었으니까. 그런데 사촌 형님이 베니스로 가라고 하더라. 베니스 건축대학은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학교고, 알도 로시가 있다고 했다. 갑자기 내게 그런 말을 하는데, 문득 중학교 2학년 때 스포츠신문에서 본 기사가 떠올랐다. 세계 윈드서핑 우승자가 베니스 미술대학 학생이었는데, 그녀가 예술대학이 섬에 있어 배 타고 등교한다는 인터뷰 내용이었다. 섬에 예술학교가 있어서 배를 타고 학교를 간다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베니스 건축대학이 대단한 건 중요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가서 엄청 고생했지.
당시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 학부생이 알도 로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그들이 좌파여서 더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당시 한국 분위기에서 그들의 철학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했다. 윤곽만 대충 알았다.
베니스 건축대학에 가게 된 것은 운 아닌가? 사촌 형님이 계셨던 것도 그렇고.
운이다. 계획된 건 절대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동양인 학생이 수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래서 총장님이 자기 비서를 내게 붙여줬다. 도와주라고 말이다. 학과목도 많이 제외해주고, 어쨌든 나는 혜택을 받았다.
시각 연상 커뮤니 케이션
대학 시절 영화를 많이 봤다고 들었다.
사실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많이 봤다. 베니스가 영화를 중요시한다. 베니스에 있는 극장들에서 굉장히 좋은 영화를 많이 상영해줬다.
베니스 국제영화제도 열리니까. 그런 영향도 받았을 것 같다.
베니스 극장 중 고전 영화만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아카이브도 있는데, 영상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백남준, 마르셀 뒤샹 등 이런 모든 필름을 직접 볼 수 있다. 그 당시 영화를 참 많이 봤다.
때로는 철학적 기반이 되고, 삶을 담기도 하는 이야기가 건축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영화와 건축은 닮았다. 대표님이 작품 설명하는 걸 보면 공학적인 측면보다 철학적인 이야기가 많다. 삶을 담아내는 이야기가 영화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작업을 보여줄 때, 평면으로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 이미지만 보여준다. 영화라는 게 언어가 아니라 시각 연상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리고 시각 연상은 동양 언어다. 상형문자 말이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 몽타주 기법을 고안했을 때 중국 상형문자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으면 언어로 이야기하는 건 피하려고 한다. 시각 연상 작용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건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 한다. 논리를 구축해 결과를 내지만, 내게는 마치 영화가 콜라주, 몽타주를 통해 만들어지듯 연상을 통해 건축을 보길 원한다.
그럼 설계할 때 3차원적으로 보고, 스케치하는 편인가?
형태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곳에 살아야 하는 인물이 있고 그다음에 배경이 있다. 그 인물이 주인공은 아니되, 배경과 함께 이동하며 굉장히 중요한 무브먼트를 만들어낸다. 건축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영화를 찍을 때 어느 하나가 주제가 되어버리면 다 죽는다. 기차가 달려오거나, 사람이 달려오는 등 무브먼트 때문에 공간감이 생긴다. 그래서 공간을 떠올릴 때 인물의 움직임을 생각한다. 건축주들이 내가 만든 공간이 굉장히 편안하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보면 건축이 주인공이 아니라 인물, 배경 등 전체가 쓰윽 만나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영화가 관객을 의자에 고정시켜놓고 신을 움직인다면, 건축은 관객이 움직이고 신은 고정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다.
동양인의 관점이 중요한 것 같다. 상형문자를 이야기했듯이 그런 측면에서 내가 관심 갖는 것은 스케일이다. 오즈 야스지로 영화는 시선의 높이가 낮다. 그리고 카메라가 주인공을 쫓지 않는다. 카메라는 고정된 앵글만 보여준다. 주인공이 화면 밖으로 나가면 소리만 들려온다. 보여주지 않고도 주변 관계가 파악되는 것이 굉장히 동양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만드는 공간들은 주변의 상황에 스며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바깥 풍경이 내부로 연장되어 풍경을 편하게 느끼게 하는 것. 그래서 공간을 내부, 외부, 내부, 바깥 외부 이런 식으로 이어지게 한다. 오즈 야스지로 공간처럼 이 공간이 완전히 폐쇄된 게 아니다. 그러면서 계속 실외 풍경과 실내가 연결되는 공간을 만든다.
영화 이야기를 더 해보자. 좋아하는 감독은 누군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를 좋아하고, 빔 벤더스 영화는 습작부터 거의 다 본 것 같다. 대학 때 만들었던 습작들부터 전부 말이다. 빔 벤더스가 오즈 야스지로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오즈 야스지로를 보게 되었고, 또 레오 카락스도 좋아한다. <나쁜 피>를 만들었을 때, 레오 카락스는 20대 중반이었다. 어떻게 스물세 살짜리 애가 이런 영화를 찍어낼 수 있는지 충격이었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영화 전공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부분에서 대표님과 느낌이 비슷하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영화를 지금 보라면 힘겨울 것 같다. 서울의 생활 리듬이 너무 빠르니까.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리듬은 좀 다르다. 근데 베니스의 시간 리듬도 느리다. 그래서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다. 베니스는 현대 문명이 많이 안 들어온 곳이니까.
요즘은 주로 어떤 영화를 보나?
대중없다. 닥치는 대로 본다. 집에 TV가 없다. 시간도 많지 않다. 다행히 강북에 씨네큐브가 있고, 이대 쪽에 아트하우스 모모도 있다. 사무실 밑에는 필름포럼이 있어서 옛날 영화와 요즘 영화들도 상영한다. 로맨틱한 영화는 안 좋아하고, 가벼운 컬트 무비를 좋아한다. 며칠 전에 1970년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순응자>를 보고 감동받았다. 그걸 보니까 이 감독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찍을 적의 상황, <마지막 황제> 찍었을 때가 이해되더라. 스물여덟 살밖에 안 된 사람이 <순응자>를 찍었다는 게 경이롭다.
여행과 장인
정말 쉬고 싶을 때 일본에 가는 건가?
친한 친구가 있어서 일 년에 대략 세 번 이상 간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친구로 30년지기다. 그 친구는 인간문화학부 교수로 문화적으로 굉장히 해박하다. 친구라는 게 내가 못 가진 인생을 열어준다. 이번에 옻칠 장인을 만나러 가나자와에 갔다. 옻칠 그릇 하나 만드는 데 12년이 걸리더라, 내가 만난 사람은 정교하게 자기가 만든 도구로 나무를 깎는 사람이다. 또 다른 사람은 아카키라고 철학과 출신으로 잡지 편집을 하다가 장인 세계에 들어왔다. 5년 동안 공방에서 무보수로 일했는데, 지금은 옻칠 장인이자 문화 아이콘이 됐다. 또 이 친구는 세계적인 와인 컬렉터다. 소유한 와인들이 너무 좋아서 전 세계에서 찾아온다고 하더라. 이 친구가 방을 하나 열어줬는데, 전부 다 한국 거다. 유대인 할아버지가 한꺼번에 줬다고 하더라. 재능 있는 친구라 눈을 키워준 거지. 아카키는 그 후로 이십몇 년 뒤 일본 최고가 됐다. 할아버지가 이 친구에게 물려준 이유는 딱 하나였다. “너도 후계자를 찾아라, 죽기 전에. 물려주어라.” 근데 아카키는 여기가 자기 무덤이라고 하더라. 죽었을 때 자신을 설명할 배경이라고. 삶의 의미를 만드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존재한다는 걸 느낀 여행이었다.
주로 사람 만나러 일본에 가는 편인가?
일본의 칼 만드는 장인들은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다. 근데 그 작업이 중요해서 전시를 열어주면, 그분들은 세상을 보는 거다. 그러면서 안목이 넓어지는 거고. 내 일본인 친구가 그런 일을 한다.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에 작은 지역이 있는데, 세계적인 칼의 메카거든. 이 두 지역 사람들을 조율한다. 전시를 열고, 책도 만들고. 그럼 장인들이 자부심을 얻는다. 장인들이 자부심을 얻으면 그 지역 문화가 살아나거든.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교수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기획할 수 있고. 나도 도울 수가 있다.
일본에선 주로 뭘 먹나?
친구 덕분에 지역 요리 중에서도 특별한 걸 먹을 수 있다. 일본 사람 아니면 못 가는 곳이 꽤 많은데, 가나자와에서는 주방장 마음대로 주는, 형식이 자유로운 갓포 요리를 먹었다. 거기서 음식을 먹으면 옛날 일본 문화, 그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을 경험한다. 바도 갔다. 매우 어두운 바였다. 조도가 너무 낮아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게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섬세한 행동 정도만 보인다.
그 바에서는 어떤 술을 팔았나?
싱글 몰트위스키다. 내가 싱글 몰트위스키 바도 하나 갖고 있다. 지금은 문 닫았지만…. 그 친구 때문에 만들었다. 어느 날 구마모토에 갔는데 간판 없는 바가 있었다. 그 바는 술을 옛날 라리크 잔에 담아 준다. 굉장히 귀해서 사기도 어려운 잔이다. 처음으로 잔이 감동을 주는 걸 느꼈다. 마치 사람에게 공간이 있듯, 잔이 술의 배경을 만들어냈다. 그 컬렉션 때문에 만든 바다.
이탈리아에 가면 꼭 둘러봐야 하는 곳이 있을까?
노르치아. 움브리아도 좋다. 로마에서 피렌체 가는 중간쯤 동쪽으로 빠지면 움브리아가 있다. 움브리아 중에서도 맨 끝 작은 동네가 노르치아다. 그곳은 식재료의 메카다. 시골인데 굉장히 중요한 슬로 푸드 식자재 생산지이고, 음식도 매우 훌륭하다. 기본적으로 미슐랭 2스타 정도는 몇 군데 있을 정도다.
미슐랭은 음식만 보는 게 아니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그래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몬테팔코 사그란티노’라는 와인이 있는데, 옛날 교황에게 바치던 와인이다. 멸종된 걸 복원해냈다. 그곳에서는 비교적 저렴하게 마실 수 있다. 또 그 와인을 마시면 좋은 꿈을 꾼다. 황홀한 꿈 말이다. 귀한데다가 그 지역에서만 나오는 워낙 귀한 와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매일 마셨다.
마지막 질문이다. 독자들에게 가볼 만한 여행지를 추천한다면?
재작년에 시칠리아에서 이탈리아의 중심 아브루초에 갔다. 거기서 와이너리 투어를 쭉 했다. 시칠리아가 와인 생산량이 굉장히 많다. 워낙 덥거든. 그리고 아랍과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라 문화도 굉장히 전통적이고, 이탈리아 다른 지역과는 다르다. 시칠리아에서 과거 문화를 잃었던 세력들이 있는데, 그들이 다시 자기 가문의 와이너리를 복원하기 시작했다. 굉장히 좋다. 와이너리의 전통과 역사가 어마어마하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