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우정훈 illustration 장재훈 Editor 정석헌
믿을 수 없는 일이다. 30대 중반을 앞둔 나는 1번 우드로 완벽한 티샷을 날릴 때의 맑고 마찰음, 공이 홀컵을 한 바퀴 돌아 그야말로 빨려 들어갈 때의 통렬한 사운드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제껏 골프를 칼라 달린 옷을 입고 점잔을 빼는 아저씨들이 모여 징그러운 홈(딤플이라 불리는 것으로 공기 저항을 최소화해준다)이 파인 공을 값비싼 막대기로 툭툭 쳐가면서 ‘홀컵’이라 부르는 구멍에 넣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한심한 행위로 알았던 내가 말이다.
골프에 눈을 돌린 건, 30대 초반 목숨 걸고 다니던 조기축구회가 시들해지면서부터였다. 공격형 미드필더인 내 머릿속의 그림대로 몸이 따라줄 때의 희열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게 실종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출전 시간이 줄고, 노쇠한 팀원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나니 축구는 90분 내내 러닝머신 위를 걷는 것만큼이나 지루했다. 축구가 지루하다니. 결국 난 고무신, 아니 축구화를 꺾어 신기로 했다. 한번 꺾인 축구화는 다시 회복하기 힘들 텐데….
틈틈이 한게임 ‘당골왕’으로 시뮬레이션을 거듭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친구의 일침에 마음이 동했다. 과감히 골프연습장의 문을 두드린 것. 강남 신사동의 사무실에서 가까운 A골프연습장과 강북 신당동 집 옆에 있는 B스포츠센터를 놓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다만 얼마라도 더 싸고 주차 형편도 좋으며, 퇴근 후보다는 출근 전 시간에 운동을 하는 편이 내게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토요일 오후, 처음 간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나이대를 찾기는 힘들었다. 하긴 그들은 그 시간 TV 앞에서 죽치고 있거나 아이와 아내 등살에 못 이겨 주말 나들이를 떠났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골프를 치는 적령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학교 교양과목으로 골프를 선택해 일찌감치 초보 딱지를 떼어버리라고 충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금을 받는 나이가 지나서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골프는 중년의 스포츠라는 주장도 많다. 그것은 골프가 종종 인생에 비유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지난 날의 코스가 너무 광범위하고 복잡하며, 변덕스러운 규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점에서 골프와 인생은 비슷하다. 내 일과 가족, 퍼팅, 피치샷 모든 것이 완벽해지려는 순간에 여지없이 문제가 터지는 점에서도,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내가 그토록 열망했던 테니스나 축구, 스노보드를 인생에 비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화끈한 섹스라면 모를까.
아직도 많은 20, 30대 한국 남자들에게 골프는 누구 말처럼 ‘시간이 남아돈다’의 다른 표현이다. 실제로 나의 대학교 92학번 모임에서도 그 4분의 1만이 골프에 입문했다. 차고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던 시절, 우리에게 가만히 있는 공을 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젠 우리의 ‘마지막 스포츠’를 찾아야 한다. 다행히 30대 중반으로 치닫는 내 나이는 골프에 입문한 시점으로 그리 늦은 나이는 아닌 것이다.
그나저나 골프란 무엇일까? 대체 골프가 무엇이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골프에 미치는 걸까? 골프는 다른 운동과 무엇이 다를까? 골프를 정의해보려는 수많은 대답이 있다. 골프는 나 자신과의 특별한 싸움이다, 정확한 파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골프는 끝없는 도전이다, 그런 점들 때문에 골프와 마라톤이 좀 비슷하다, 골프는 초원 위에서 사교를 벌이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다, 등등. 언제나 그렇듯이, 진실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접대든 사교든 로비든, 자신과의 싸움에 도전하기 위해서든, 나처럼 난생 처음 버디를 잡고 90타 벽을 깬 주말 골퍼로서 늙기 위해서든 간에 말이다.
당구와 볼링, 골프를 차례로 섭렵한 친구와 선배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충고는 다소 의외였다. 일단 골프를 시작하기 전에 골프가 내게 맞는 스포츠인지 자문해야 한다는 것. 엄청난 돈을 들여 클럽과 기타 일체를 풀세트로 샀는데, 몇 달 뒤에 내 적성에 맞는 스포츠가 스킨스쿠버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제아무리 운동 신경이 뛰어난 사람도 많은 기술을 요하는 스포츠인 골프 앞에서 무릎 꿇을 확률이 아주 높으니까.
장비만 해도 그렇다. 클럽에는 모두 14가지가 있지만, 그중 8개는 거의 비슷하게 생겨서 처음에는 구분이 어렵다. 드라이버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감나무로 만든 것, 흑연으로 만든 것, 티타늄으로 만든 것, 버블 샤프트를 장착한 것, 아닌 것, 헤드가 큰 것, 아주 큰 것, 클럽 샤프트가 딱딱한 것, 아주 딱딱한 것 등등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 외에도 가방, 장갑, 티, 타월 그리고 볼마커 등을 일일이 다 챙겨야 한다. 일단 싼 것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골프에 빠져들면 문득 계속 새 드라이버를 구입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 내가 공이 10야드 더 나가는 드라이버가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돌부처처럼 참고 견딜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장비를 갖춘 다음에는 강사가 필요하다.
너무 가까운 사람보다는 프로 골퍼나 전문 강사에게 사사 받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학교 앞 당구장에서 곁눈질로 보고 배운 펌프질이나 동네 물가에서 익힌 개헤엄으로 완벽한 스리 쿠션이나 컴퓨터 같은 영법을 구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많고 많은 강사 중에서 누구를 만날지는 운에 맡겨야겠지. 이제 골프를 치는 데 필요한 기술은 장비와 강사에게 맡기면 될 것이다. 문제는 항상 이쯤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로 유명한 잭 캔필드 등이 엮은 <하느님, 내게 골프를 주셔서 감사합니다>에 이런 일화가 소개돼 있다. ‘어느 변호사와 의사가 수년 동안 정기적으로 골프를 쳐왔다. 그들의 실력은 거의 비슷했고,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변호사의 실력이 갑자기 향상되었고 의사는 연패하기 시작했다. 의사는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그는 서점에 가서 골프 실력을 향상시키는 법에 관한 책을 사서 변호사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다. 머지않아 그들의 실력은 다시 비슷해졌다. - <최고의 잡동사니> 중에서’ 그렇다! 머릿속이 온갖 기술과 전략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서 골프가 되는 게 아니다. 그립이나 허리의 회전, 손목의 각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편안한 마음으로 골프 자체를 즐기느냐가 관건인 거다.
어찌되었든 난 멀고 험난하지만, 기꺼이 가고 싶은 길을 떠나기로 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손이 아니라 어깨로 다운스윙을 해라”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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