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정석헌
사람들은 차를 고를 때 무엇을 제일 먼저 따질까? 클수록 대접을 받는 차체 사이즈나 엔진 배기량? 아니면 선호하는 브랜드나 디자인? 물론 연비나 가격도 중요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차를 말할 때에는 이런 기준들이 다소 무색해진다. 뺑소니 사고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에는 흔히 ‘검은색 그랜저’나 ‘은색 BMW 5시리즈’라는 호소 문구가 포함돼 있다. 새 차를 산 친구에게 던지는 질문에도 “무슨 색인데?”가 빠지는 법이 없다. 그렇다. 차체 컬러는 우리의 본성에 관한 문제인 거다.
본성을 감추고 차를 고르기는 이내 몸도 마찬가지. 난 오너드라이브가 된 뒤로 3대의 차를 법적으로 점유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여지없이 은색이었고, 지금은 흰색 차를 타고 있다. (잠시 변명을 하자면) 달랑 은색, 모래색, 빨간색, 흰색뿐인 라인업에서 흰색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내 본능에 가장 가까운 색깔은 무얼까? 웨딩 카로 선택했던 네이비 블루일 수도, 한눈에 반한 유일한 색인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나의 네 번째 차가 은색이나 흰색, 검은색이 아닐 확률이 아주 높다는 점이다.
사실 블랙 앤 화이트, 그리고 실버는 일 년 내내 시크한 색이다. 하지만 그것이 차에 관한 이야기라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은색 아니면 흰색, 검은색 차체는 무난하고 때도 잘 타지 않아 중고차 거래 시 유리하다. 물론 이건 딜러들의 말이다(국내 딜러들을 대상으로 한 컬러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분명하다). 은색과 흰색, 검은색 차가 거리를 뒤덮은 회색 도시는 무료하다. 내가 그 차 안의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 중국집에서 허구한 날 자장면과 짬뽕, 아니면 볶음밥만 시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가끔 탕수육도 먹고 샥스핀도 먹어야 중국집 가는 재미를 배가할 수 있는데 말이다.
몇몇 ‘컬러 킹’들이 주도하는 변화의 징후는 뚜렷하다. BMW 인디비주얼 7시리즈의 경우, 오팔 블랙과 루비 블랙을 비롯해 블루 오닉스, 문스톤, 다이아몬드 등 일곱 빛깔의 인디비주얼 전용 차체 컬러와 블루, 폴라 그레이, 샴페인 등 9가지 색깔의 메리노 가죽 시트, 색깔과 소재가 다른 6가지 인테리어 트림, 3가지 실내 천장 색을 조합한 다양한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GM대우 마티즈나 랜드로버 뉴 프리랜더는 컬러 네이밍을 선보였다. 마티즈는 오션 블루, 블랙 커피, 레드 카펫 등으로 관심을 유도했고, 뉴 프리랜더는 13가지 차체 컬러에 헬싱키, 오슬로 등의 지명을 더해 일상 탈출의 욕구를 자극했다. 폭스바겐 뉴 비틀에서 재규어 XJ까지, 이제 컬러는 차체 사이즈나 등급과 무관한 별도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뉴 비틀의 아틱 블루 실버는 클래식 비틀로의 드라마틱한 복원을 의미하고 재규어나 미니 쿠퍼의 레이싱 그린은 자동차 경주 명문세가인 영국의 상징 색이다. 또한 포르쉐의 스피드 옐로에는 페라리의 이탤리언 레드에 필적하는 환희가 있다.
차 고르는 기준 서너 번째에는 컬러가 있어야 마땅하다. 딜러의 유도 질문과 아스팔트에 만연해 있는 편견을 물리치고 본성이 원하는 컬러를 그냥 따라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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