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
규격화, 표준화된 일상에서 집에서라도 달콤한 해방감을 맛보고자 하는 이가 많아지면서 단독주택이 큰 인기를 누렸다. 건축가 이현욱과 고 구본준 <한겨레> 기자가 함께 쓴 <두 남자의 집짓기>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AnL 스튜디오는 14.7평에 불과한 ‘몽당주택’으로 유명 건축사무소가 됐다. 서점가에는 집짓기와 단독주택 관련 책이 쏟아져 나왔다.
재생 건축
용도 폐기된 건물과 공간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재생 건축이 공공의 담론이 됐다. 서울시는 근현대 유산 1천 곳을 선정하고 보전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최초의 주상 복합 빌딩인 세운상가는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청운동 수도가압장은 윤동주문학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과거의 건축 양식과 미감은 그 자체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서울 아이콘 경쟁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을 좌표로 ‘서울 대표 건축물’이 경쟁하듯 올라간 10년이었다. 옛 국군 기무사령부 터에 미술계의 오랜 숙원이던 국립현대미술관이 들어섰고, 동대문운동장 쪽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비정형 건축물인 DDP가 우주선처럼 착륙했다.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한 광화문 트윈 트리 타워도 섬세한 미관으로 주목받았다.
젊은 건축가
김수근과 김중업의 위업을 이어갈 젊은 건축가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대치동의 크링 등 ‘기운생동’하는 일련의 작품들로 화제가 된 장윤규, 신창훈을 포함해 나은중, 유소래 커플의 네임리스, 이정훈 등 젊은 건축가들이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다. 조민석 건축가는 플라토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까지 열며 ‘젊은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거장의 한국 입성
최고의 건축을 향한 열망이 뜨거워지면서 유명 건축 거장들도 속속 한국에 들어왔다. 안도 다다오(재능문화센터, 페럼클럽 클럽 하우스), 알바로 시자(안양 파빌리온) 등이 설계한 건축물이 전국 곳곳에 세워졌다. 장 누벨은 갤러리아 포레의 디자인에 참여했고,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아모레퍼시픽의 신사옥 설계에 사인했다.
건축 전시
건축은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 안까지 들어왔다. 3차원이 2차원으로 바뀌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교한 드로잉과 모형, 건축 노트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며 관람객을 끌어 모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전시>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리움의 <한국 건축 예찬-땅의 깨달음>은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것이다.
한옥
20평 작은 규모라도 숲 속 평상에 누운 듯 시원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한옥이 지난 10년처럼 사랑받은 적은 없었다. 북촌과 서촌을 중심으로 작은 한옥 구매 붐이 일었고 안동 구름에, 경주 라궁 같은 한옥 숙소는 최고의 여행지로 사랑받았다. 전주 한옥마을, 경주 양동마을도 운치를 중시하는 ‘낭만 여행자’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지방 미술관
한국은 전 세계에서 수도권과 지방의 문화 편차가 가장 큰 곳이지만 이 역시 개선되는 분위기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 김인철 건축가가 참여한 바우지움 조각미술관 등이 전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중 최고는 경기도 양주의 장욱진미술관. 최페레이라 작품으로, 영국 BBC 방송도 “최고!”라고 평가했다.
플래그십 스토어
유명 브랜드가 집결하듯 둥지를 튼 신사동, 청담동에 플래그십 스토어가 잇달아 개장하면서 이 일대가 건축과 예술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건축은 그 자체로 섬세한 욕망의 결정체가 됐다. 디올과 버버리는 서울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으며 2개 건물을 구름다리로 연결한 분더샵 청담도 출사표를 던졌다.
대학 건축물
건축가에게 대학은 너른 부지와 막강 자본을 갖춘 슈퍼 건축주다. 외국 유명 대학에는 어김없이 최고의 건축물이 있는데 한국에도 이런 변화가 확산되고 있다.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이화여대 ECC, 렘 콜하스가 나선 서울대 미술관, 서울시 건축상 대상 수상작인 숭실대 학생회관을 위시해 많은 대학이 ‘건축의 전당’을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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