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s 이영근(여행작가) Photography 박원태 Assistant 이승률 Editor 이지영
요리사 손지영의 핫토리 키친 HOTTORI KITCHEN
좁았다. 그게 좋았다. 테이블에 앉으면 맞은편에 오너 셰프가 있다. 다소 거칠어 보이는 헤어스타일에 서글서글한 눈매와 웃는 입술, 그리고 또렷한 발성이다. 오늘의 메뉴를 또박또박 설명해준다. 밝고 유쾌한 목소리가 즐겁다. 질문… 있는데요? 보충수업도 기꺼이 해준다. 핫토리 키친은 주문과 조리의 서비스 시스템이 아니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메뉴가 결정된다. 매칭 서비스도 척척 해준다. 소주를 마시겠다며 과일이 들어간 샐러드를 안주로 주문하면 단박에 입맛과 주종에 맞는 메뉴를 제안해준다. 음식을 맞은 손님이 캬캬캬 기뻐하면 기분이 찢어진다. 손지영과 손님들의 대화 내용은 주로 이 핫토리 키친의 히스토리와 음식 이야기지만, 노총각 처남의 명함을 슬그머니 올려놓고 가는 수줍은 중년도 있다.
손지영과 말이 잘 통하는 것은, 당연히 그가 말을 잘 받아주고, 대화를 즐기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미술과 사람 좋아하는 그는 결코 짧지 않았던 사회 생활을 접고, 2002년 월드컵 때 도쿄의 핫토리영양전문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고, 좋은 학교였고, 거리도 가까웠고, 어차피 배워야 할 일본어, 이왕이면 도쿄 표준어가 낫겠다는 게 선택 이유였다. 그리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돌아왔다. 스스로 월드컵 ’소녀’라 했다 측근들로부터 테러 위협을 받고 월드컵 ‘걸’로 후퇴했다. 귀국 후 모 기업 프랜차이즈 사업팀의 신메뉴 개발팀장으로 활동했던 그가 핫토리 키친을 이곳에 차린 것은 2008년 7월 23일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맛있고 좋은 짓’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후 얼마 뒤 실천에 옮긴 일이다. 연말쯤 손님이 줄을 서기 시작했으니 일찌감치 자리 잡은 셈이다.
핫토리 키친은 매일 메뉴가 바뀐다. 통영과 횡성에서 올라오는 식재의 종류와 양, 그날그날 시장에 가서 선택하는 재료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집의 메뉴판은 매일 새로 작성된다. 핫토리 키친을 찾아갔던 날도 그녀는 글씨를 휘날리는 중이었다. 한우안심스테이크, 자연산홍합탕, 통영생굴폰즈, 나가사키해물짬뽕, 칼조개찜, 새조개샤보, 도미뱃살데리야키….
핫토리 키친은 열 명쯤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맛 좋고, 소소한 수다도 즐길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이 늘어나기 시작, 멀리서 찾아왔다 헛걸음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음식 퇴짜를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그 애통과 비통과 좌절을. 그래서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문을 여는 오후 7시에서 8시쯤 올 사람에게만 받는 예약이다. 자정에 올 사람의 예약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시각 이후에는 아무 때고 15분쯤 후에 도착 가능한 사람은 전화로 좌석을 예약할 수 있다.
맛있고, 즐겁고, 어엿한 신장 개업 8개월차 핫토리 키친에 행복한 여자 손지영이 앉아 있다.
위치 남산 2~3호 터널 남쪽 경리단 앞 사거리에서 하얏트호텔 방향으로 280m 왼쪽
영업 시간 오후 7시~새벽 2시, 일요일 휴무
문의 02-792-1975
고양이시간 Cafe&Wine Bar
세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얌치, 깜치, 아수라. 듣자 하니 모두 ‘코숏’이다(뼈대 있는 묘문(猫門)이라면 실례). 인간을 만나지 않았다면 클럽 리듬에 맞춰 홍대 뒷골목을 사냥하는 낭만 고양이가 될 뻔도 했을 텐데. 고양이 세 마리의 엄마이자 카페 ‘고양이시간’의 주인은 방송 작가다. 고양이시간을 다른 말로 하면 묘(猫)한 시간이 된다는 게 이 집의 설명인데, 몽환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곳은 사장 외에 프로듀서 한 사람, 또 다른 작가 두 사람, 그리고 객원 멤버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섯 명의 여인네들이 돌보고 있다. 독립 프로덕션 바심미디어의 멤버이기도 한 그들은 4년 전 이 길 안쪽 골목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제작과 관련된 미팅이 많아지고, 그때마다 업무를 중단하거나 약속 장소를 오가느라 적잖은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 그래서 제2의 작업실 겸 응접실 겸 회의실 겸 카페로 만든 공간이 고양이시간이다. 메뉴는 단출하다. 커피, 차, 독일산 허브티, 위스키, 맥주, 와인… 그리고 직접 만들었다는 샹그리아 등이다.
이곳에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 방송, 예술 그리고 음악. 이것들은 고양이시간의 스태프 직업과 연관되어 있다. 현업 방송인들이 운영하는 곳이니 방송국 직원과 관련자들이 들락거리며 프로그램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당연하다. 객원 멤버인 미스파파의 일러스트레이터 이연희 씨를 만나거나, 카페 한쪽 벽을 빌려 전시회를 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찾아오면 자연히 작품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르바이트 직원은 홍대 앞 클럽에서 활동하는 밴드의 멤버다. 그의 친구들이 몰려오면 무수한 음악 언어가 천장을 두드리거나 창문 밖으로 날아가버린다. 그들은 고양이시간에서 서로 스치더라도 살갑게 인사하는 사이는 아니다. 그러나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여는 조촐한 파티 때 모이면 그들의 활동 분야가 이리저리 뒤섞이며 고양이시간은 정말 묘한 언어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곳에 출판인, 영화인 등이 자주 찾아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모두 이 공간에서 꿈틀거리고 살아 있는 언어 때문이 아닐까?
아, 잊을 뻔했는데, 얌치, 깜치, 아수라 세 마리의 고양이는 이곳에 없다. 낯 가리는 녀석들이란다.
위치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4번 출구에서 우회전, 걷고 싶은 길에서 좌회전, 산울림소극장 방향 다복길로 들어서서 30m 왼쪽 2층
영업 시간 오후 2시~새벽 2시, 일요일 휴무
문의 02-322-1305
머쉬룸 MUSHROOM
문자를 두루두루 날렸다. ‘머쉬룸배 파스타 만들기 대회! 참석 가능?’ 속속 답장이 도착했다. ‘오홋! 재밌겠는걸?’ ‘흑흑, 그날은 안 돼요….’ 그리고 신사동 칠보길과 가로수길 일대에서 일하는 머쉬룸 단골들이 1월 31일에 모였다. 대회 참가자들은 재료를 갖고 오고, 머쉬룸에서는 어차피 개방되어 있는 주방 도구들을 빌려준다. 일등은 스파클링 와인을 선물로 받았고, 즉시 축배를 돌렸다. 파스타 만들기 대회는 머쉬룸에서 단골들을 초청한 두 번째 파티였다. 밸런타인데이 때는 스피드데이트 이벤트를 열 생각이라고 했다(인터뷰 당시는 2월 14일 이전). 남녀가 2열 횡대로 마주 보고 앉아 5분 동안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시간이 되면 그 옆 사람으로 옮겨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고… 그러다 눈 맞으면 따로 놀든, 자리를 옮기든 그들 마음이다. 허탕 친 사람들은 밤 12시에 옆 중국집에 몰려가서 자장면 한 그릇 먹고 헤어진다는 계획이다. 또 한편으로는 3차 오픈키친데이의 아이템을 궁리한다.
이 집 주인은 두 명. 친구다. 김정은과 한정진 두 사람은 2007년에 친구 모임에서 만났는데, 오픈 마인드, 스스럼없음, 수다 공간 지향 등 몇 가지 일치하는 코드 덕에 빛의 속도로 친해졌고, 급기야 카페를 함께하자는 데까지 합의했다. 김정은은 직장을 그만두었고, 한정진은 약국 문을 닫고 이곳 칠보길로 들어왔다. 약국은 지금도 카페 안쪽에 별실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머쉬룸에 오는 손님들은 모두 이 동네에서 일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이다. 수시로 들락거리며 주인과 또는 자기들끼리 인사를 나누다 친구가 되고, 언니 누나가 되는 이곳은 초특급 커뮤니티 공간이다. 작년 9월에 문을 열었으니 초특급이 맞다. 장식장이 허전하다며 자신의 앤티크 카메라를 갖다 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골이라는 이유 하나로 즉석에서 손님들의 손금과 관상을 봐주는 사람도 있다. 두 사람은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계산하는 것도 잊고 ‘안녕~’ 하고 손을 흔들기도 한다. 사랑하는 단골을 위해 즐거운 시간을 만드는 것을 이벤트라 표현할 수는 없다. 그저 어울려 행복할 뿐.
머쉬룸은 이탤리언 에스프레소바를 표방하고, 거기에 필요한 키친을 마련했지만, 짧은 시간 안에 비슷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메뉴도 손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연스럽게 개발한다. 6천원짜리 브런치(~1만원)도 평소 수다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단골들이 원하는 양과 가격, 거기에 맞는 재료 구성 등 모든 박자가 맞으니 스스럼없이 내놓았고, 반응도 좋았다.
머쉬룸의 두 여인네들은 이제 가게 앞을 오가는 행인들만 보아도, 급히 달려가는 남자가 이 동네 사람인지, 선글라스가 멋진 여자가 이사온 신출인지, 주차 공간을 찾고 있는 아저씨가 뜨내기인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홈메이드 푸드가 단순히 음식 얘기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머쉬룸의 그들이 들려주고 있다.
위치 신사역에서 앙드레김 언덕 꼭대기 못 미처 왼쪽 청수복국 골목 150m 안쪽
영업 시간 오전 9시 30분~자정, 월요일 휴무
문의 02-511-9220
아이미마인 iMemiNe
임선영과 임지영 자매가 문을 연 DIY 카페다. 인테리어 기초 작업은 전문가가 했지만, 오브제, 가구, 마감재 등은 거의 그들이 선택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편집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언니의 꼼꼼함과, 공예를 전공하고 플로리스트 과정을 밟은 동생의 안목도 실용적으로 쓰였다. 여론에 민감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임선영 씨는 홀을 담당하고, 음식이 취미이자 특기이며 조리사 자격증도 갖고 있는 임지영 씨가 주방을 책임졌다. 메뉴의 콘셉트는 홈메이드. 인터뷰 섭외를 위해 찾았던 날도 실내는 피망 굽는 냄새로 가득했다. 로스티드 페퍼는 임지영 씨가 좋아하는 음식. 이것을 손님들과 나누려면 쉬는 날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로스티드 페퍼 외에 홈메이드 드링크, 파니니, 디저트 등도 모두 임지영 씨 손에서 만들어진다. 아이미마인 메뉴의 특징은 계속 변화해간다는 것.
시즌 또는 일년에 한 번씩 추가되거나 없어지는 일반 레스토랑을 생각하면 반갑기도, 부담스럽기도 한 일이다. 그러나 오너 셰프의 장점이 그런 게 아닐까?
아이미마인의 콘셉트가 DIY라는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 동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집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집은 독특한 소통 방법을 갖고 있다. 이 골목만 해도 클럽이 밀집되어 있는 피카소길과 달라서 그럴까? 주인이 손님에게 육성으로 말을 하면, 손님은 돌아가기 전에 포스트잇에 짧은 메모를 붙여놓는 수줍은 태도를 보인다는 것. 이들의 대화 내용은 자연스럽게 디자인과 요리 얘기로 펼쳐진다.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홀을 맡고 있는 임선영 씨. 그래서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임지영 씨는 간혹 여유 있는 시간에 손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라도 생기면 완전 봇물 터지듯 음식 이야기며, 꽃 이야기, 그리고 다른 카페 이야기들을 풀어놓곤 한다. DIY 카페답게 디자인과 오브제의 내용이 계속 달라지고 있는 것도 아이미마인만의 특징이다. 계절을 겨냥한 분위기 전환은 물론, 홍대 앞 손재주들의 관심을 얻기 위한 생각이기도 하다. 날씨 때문에 비워둔 예쁜 베란다에 꽃을 채우지 못해 벌써 안달이 난 것도 DIY 정신의 일단이다.
아미미마인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
위치 홍대 입구 산울림소극장 왼쪽 다복길 세븐일레븐 골목 안쪽
영업 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1시, 월요일 휴무
문의 02-337-1594
<아레나 2009년 3월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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