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나 메이저리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 프로야구로 돌아온 선수는 여럿 있다. 하지만 바로 일본 프로야구로 직행한 선수는 이대은이 처음이다. 이대은은 신일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시카고 커브스에 입단했다. 기대주였지만 부상당해 수술을 받았다. 그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싱글 A, 더블 A, 트리플 A에서 뛰었다. 2014년 12월 일본 지바 롯데에 입단했다. 그의 꿈은 여전히 메이저리거다.
놀랐다. 화보 찍는데 포즈를 잘 취해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건데 못할 게 있나?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으면 누구나 모델 하겠지.
아, 못하는 거구나. 나는 센스가 있다. 운동할 때도 한번 알려주면 금방 배운다.
부럽다.
부럽긴. 나는 대충 안 한다. 진지하게 집중하지.
지난 시즌 일본에서 성적도 괜찮았고, 프리미어 12에서도 호투했다. 한국 돌아와서 인터뷰를 여러 차례 했을 텐데 어떤 질문을 많이 받았나?
글쎄, 기억이…. 뭐 있지? 아, 일본 야구와 미국 야구의 차이점이 뭔지.
차이점이 뭔가?
미국은 힘 있는 야구를 하고 일본은 섬세한 야구를 한다.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
나는 일본 타자가 평균적으로 미국 타자보다 잘 친다고 생각한다.
콘택트 능력이 좋으니까, 일본 선수들이. 투수 입장에서는 짜증난다. 홈런 칠 생각을 아예 안 한다.
그 정도라고?
공을 배트에 맞춘다는 생각만 한다. 그러니까 콘택트 능력이 좋을 수밖에.
지난 시즌 전반기에만 9승을 거뒀다. 그런데 시즌 전체 승수가 9승이다. 후반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그래도 본인 입으로 들으려고 묻는다.
부담이 많이 됐다. 9승이 그렇다. 1승만 더 하면 10승이니까.
아홉수네.
10승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너무 잘하려다 보니 원하는 데로 공이 안 갔다.
흰색 셔츠는 브루넬로 쿠치넬리 제품.
그래도 이해하기 힘들다. 전반기에 9승을 거둔 선수가 후반기에 단 1승도 못 거두다니. 솔직히 이렇게 캐묻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다. 진심으로.
하하. 이길 경기를 못 이겨서 더 꼬였나? 소프트뱅크랑 경기할 때 7이닝 동안 1실점 했는데 패했다. 또 한 번은 5회에 비가 왔다. 5회까지는 마쳐야 게임이 인정되는데.
라쿠텐과의 경기였다. 4이닝까지 하고 경기가 취소됐다. 불운이었다.
점수가 1대0이었는데… 1회만 더 던졌으면 이기는 거였는데.
프리미어 12 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김인식 감독님이 한 인터뷰를 찾아보니 당신에 대해 평가하면서 말끝을 흐리시는 것 같았다. “볼 스피드는 좋은데…” 이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거겠지. 그분이 그렇다면 그런 거 아닌가? (옆에 앉아 있던 에이전트가 말했다.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중용해주셨잖아요. 대회 끝나고 인터뷰할 때도 숨은 MVP는 이대은이라고 말씀해주셨고요.”)
대표팀 소집하기 전해 미리 뵈었나?
한국 들어와서 인사드렸다. 감사하다고.
그랬더니 감독님이 뭐라고 하셨나?
잘해보자고. 열심히 하라고.
정말 그 말씀밖에 안 하셨나?
그렇다.
프리미어 12에서 4강에 올라갔을 때부터 언론이 ‘김인식 리더십’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긴 한데, 경기를 보면 더그아웃에서도 별 말씀 없이 경기만 보시는 것 같았다. 리더십은 언제 발휘하신 거지?
그런 것 같지만 아니다. 감독님이 다 지시를 내린다. 코치님이 이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감독님이 생각해보시고 응, 그러자라고 하신다.
맞다, 이번 프리미어 12 경기를 보고 그런 판단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우리는 그 덕에 우승했으니까.
굉장했지, 굉장했어.
그런데 일본과의 4강전을 본 대한민국 국민은… 8회 끝나고 TV를 껐다. 다행히 나는 전부 보고 있었는데, 그 경기에서 카메라가 계속 당신을 비췄다. 선발로 나와서 잘 던졌지만, 약간 이른 시점에 교체되어야 했던 투수를.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역전했을 때는 정말 좋았다. 물론 그전에는 아쉬웠지. 3이닝밖에 못 던졌으니까.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불운이었다. 야수 실책도 있었고.
그래도 잘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일본전에서 압도적인 피칭을 못 보여준 게 다음 시즌에도 영향을 끼칠까? 그 타자들을 다시 상대해야 하니까.
일본 타자들을 상대하는 게 특별히 부담되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나는 솔직히 그들이 편하다. 그들도 나에 대해 잘 알겠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보완해야 할 점은 역시 제구력이겠지?
아무래도 제구가 항상 문제였으니까. 그리고 내년에는 체인지업을 던져볼 생각이다. 내가 볼 스피드가 빠르고 직구를 많이 던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상대 선수들도 이런 부분에 대응할 거다. 그때 체인지업을 던지면 유용하지 않을까?
언젠가 다시 미국으로 갈 건가?
당연히 메이저리그에서 한 번은 뛰어봐야지. 한국에도 오고 싶다.
언제든 미국에 갈 수 있는 건가? 일본 진출할 때 계약서에 이상한 조항 같은 것은 없었겠지?
그런 건 없다. 다만….
다만, 뭐?
군대 가야지.
그 얘긴 여기까지. ‘2015 WBSC 프리미어 12’가 첫 대표팀이었다. 아는 선수가 있었나? 고등학생 때 미국에 갔으니까 아는 선수가 없을 것 같다.
현수 형.
아, 김현수 선수가 신일고 선배인가?
내가 1학년 때 3학년이었다. 다른 선수들하고는 좀 어색했다. 하지만 형들이 잘 챙겨줬다. 장난도 많이 쳐주고.
18세 때 미국에 갔다, 혼자. 엄마 안 보고 싶었나?
별로. 통화를 많이 했다. 어릴 때니까 뭣도 모르고 도전한 거다.
한국에서 프로 선수로 성장한 후 미국에 갈 수도 있는데….
꿈이 미국에 가는 거였다. 기회가 와서 간 거다.
고등학생이 그런 결심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워낙 어릴 때부터 아빠가 너는 메이저리그에 갈 거다, 라고 말씀해주셨다.
아빠가 굉장한 야구팬이라고 들었다.
아빠는 결혼 후 아들 낳으면 야구를 시키려고 했는데, 첫째가 딸, 둘째도 딸이었다. 내가 셋째다. 그렇게 야구를 하게 됐다.
미국에서 계속 고생하다가 지난 시즌 일본으로 갔다. 당연히 걱정을 많이 했겠지? 그동안 해온 것들이 아깝기도 했을 거고.
걱정 안 했다. 왜냐하면 단기 계약이고, 다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일단 제구가 계속 흔들렸기 때문에 일본에 가서 경험 쌓고, 야구를 더 폭넓게 배우고 싶었다.
많이 배웠나?
많이 배웠다. 일본 투수들이 훈련하는 방식이 미국과 많이 달랐다. 볼 배합도 다르고. 그런 것들을 배운 것은 정말 큰 소득이다.
자, 이제 다음 시즌 준비를 슬슬 해야 할 텐데 일본으로는 언제 가나?
1월 말쯤에 간다. 그전에는 개인 훈련하고.
내년 목표는 11승인가? 너무 적나?
더 이기면 좋겠다. 사실 팀에 미안하다. 나는 용병이니까. 팀에 더 도움이 돼야 한다.
오타니 쇼헤이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그런데 오타니의 문제는 공을 그렇게 던지면서 얼굴까지 잘생겼다는 것이다. 같은 남자로서 정말 별로다.
으음.
난 다르빗슈를 좋아한다. 공 던지는 폼도 시원시원하고.
나도! 다르빗슈가 더 멋있다. 터프하고!
맞다. 오타니는 너무 곱상하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얼굴은 누가 더 잘생겼나?
오타니랑 다르빗슈?
오타니랑 이대은!
내가 낫지.
얼굴로는 이겼다!
실력으로 이겨야지! 다음 시즌엔 운으로라도 이겨야겠다. 지고는 못 있지.
관상 좋다는 말 들어봤나?
관상도 보나?
못 봐도 좋은 건 알지. 귀가, 흔히 관상 좋다는 사람들 귀랑 비슷하다. 뭔가 해도 할 것 같다.
아, 그건 좋은 얘기네. 그럼 믿어봐야지.
눈빛도 ‘싸라 있네’ 하하. 투쟁심! 이대은은 지고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야. 안에서 부글부글 끓겠지.
맞다, 정말.
그래서 하는 말인데 불운은 끝났다. 그러니까 프리미어 12에서 우승했지. 걱정 말고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런가? 아,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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