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헌의 스툴, ‘Crack’
갈라진 땅, 메마른 골. 수십 년 동안 비라고는 없었을 아프리카의 잿빛 대지가 보인다. 김성헌의 ‘Crack’은 한 덩이의 낯선 땅이다. 18개의 스툴로 만들어진 땅을 위에서 보면 거대한 물방울을 이룬다. 물에 대한 경각심에서 시작한 작업인 것이다. 김성헌은 ‘Crack’의 수익금 전액을 물이 부족한 나라에 우물을 만들어주는 기관에 기부할 참이다.
김성헌은 쉽고 분명한 ‘메시지’를 담아 아트 퍼니처를 만든다. 작가로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갈증과 불특정 다수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단순한 철학으로 작업한다. 답습하지 않은 형태를 일구기 위해 그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미지화한다. 김성헌은 지금 자연이 품은 무늬를 2차원적 패턴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3차원의 가구로 형상화하는 연속 작업을 하고 있다. ‘Crack’으로 시작해 ‘Bubble’ ‘Wave’ 등으로 이어지는 연작이다.
강우림의 의자, ‘Black But Beauty’
강우림의 작품 ‘Black But Beauty’는 ‘검으나 아름다운’ 여자다. 구약 성경의 아가서에 등장하는 문장에서 따왔다.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솔로몬 왕에게 사랑받던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표현한 한 줄의 글. ‘Black But Beauty’의 곡선은 강우림의 모든 작업을 관통한다. 강우림이 극도로 아름답게 여기는 형태인 것. 한편으로 가늘고 긴 형태는 강우림이 꿈꾸는 이상형의 여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한국 무용수 혹은 여러 개의 가느다란 다리가 교차되는 군무, 바람 혹은 구름. 강우림은 거대한 나무 덩어리를 아찔하고 아름답게 깎아나가며 유연하고 유려한 형태를 완성한다. 그의 작업은 조각의 여정이다. 섬세하고 이지적인 유선형은 그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아름다움일 테다. 그리고 간혹 강우림은 여기에 검은 칠을 한다. ‘Black But Beauty’도 마찬가지다. 그냥 두기에 나무는 너무 예쁘니까. 강우림은 나무가 간직한 본연의 아름다움을 검은 칠로 가려둔다. 검으나 아름다운 여자는 그렇게 완성됐다.
김윤관의 서랍장 ‘서랍장B’
한 가구가 한 점의 허튼 선도 없이 ‘스스로 그러하던’ 본래의 형태로 구현되기를. 목수 김윤관이 만든 가구는 이 한 줄의 염원을 품는다. 김윤관은 이를 ‘8할의 아름다움’이라 명명한다. 모자람도 넘침도 없는 아름다움 말이다. 김윤관은 8할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몇 번이고 같은 서랍장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목수의 제작자적인 위치를 뜨겁게 지킨다. 디자인이 새로움의 문제라면, 공예는 완성도의 문제니까.
최근 김윤관은 <남자의 서재>전을 열어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묵직한 서재를 만들어 보였다. 오십 세를 훌쩍 넘은 남자들, 뒤돌아볼 틈 없이 열심히 산 남자들을 위한 서재다. 서재는 단단하게 익은 남자의 오라를 받쳐줄 만큼 정중하고 힘 있는 나무 가구들로 채워졌다. 작품 길이는 대개 2m. 물건의 본래적인 형태에 가깝도록 묵직하고 간결하게 완성된, 남자를 위한 소파와 책상, 책장과 서랍장이 그곳에 놓였다.
‘서랍장B’ 역시 ‘남자의 서재’를 장식했던 작품이다. 써야 할 모든 목재를 측면에만 썼다. 직선의 결만 따서 서랍장의 면면을 만든 것이다. 나뭇결이 드러나면서 형태를 덮어버리는 것을 피한 것처럼 보인다. 본래적인 형태의 극한이다.
한성재의 스피커, ‘Golden Bug’
지금의 스피커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음향을 표현해낸다. 하지만 1900년도 초·중반, 스피커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기에는 달랐다. 고음 발산이 탁월해 현악기 표현에 좋은 스피커가 있는가 하면 베이스가 좋아 콘트라베이스 표현이 훌륭한 스피커도 있었다. 한성재는 이 시기의 스피커들에 매력을 느꼈다.
그는 나무로 스피커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조형 작가다. 한성재의 스피커는 소리가 가진 개성 있는 느낌을 눈으로 보여준다. 소리와 형태로 공간을 장악해 스피커도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디자인, 음향 설계, 제작까지 한성재는 모든 작품에 직접 개입한다. “태슬 로퍼에 조끼를 입는 사람이면 어떨까.” 자신의 작업과 어울릴 가상의 남자에 관해 한성재는 이렇게 묘사했다.
그런 사람은 한 가지라도 더 섬세하게 신경을 쓸 테다. 한성재는 작품을 3개 혹은 7개 정도로 소량 생산한다. 그리고 작품의 80% 이상에 고유의 에디션을 매긴다. 소수를 위한 디자인이다. 에디션이 한두 점 남으면 한성재는 판매에 신중을 기한다. 원하는 공간에 원하는 성품의 컬렉터가 작품을 소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작 ‘Golden Bug’는 한성재가 처음으로 ‘소량 생산’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준대량생산’을 목표로 제작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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