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이지영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커다란 고민거리를 안고 출장길에 올랐다. “있잖아, 나한테 이러이러한 일이 있는데,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전날 밤, 고민과 한숨을 번갈아 털어놓는 내게 맞은편에 앉아 (내 고민 대신) 땅콩을 주워 먹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틱낫한의 책을 읽어보는 건 어때?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된다는 말이 와 닿을지도 몰라. 오히려 두려움 때문에 뭔가 피해를 볼까봐 전전긍긍하는 면도 있으니까. 결국 서리가 가시면 피지 않을 줄 알았던 꽃은 다시 피고 그러니 잃었다 당했다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이런 책은 펼 때만 수치스럽지, 읽고 나면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어.” 허나 틱낫한이 도움이 되기는 할까. 활자가 주는 위로는 결국 잠시 잠깐의 위안일 뿐이라고 여기며 나는 (친구의 말에 공감하기는커녕) 한숨이 배 이상 담긴 술잔을 들이켰다. 펼칠 때도 비참하고, 책장을 덮는 순간 더욱 더 공허해지는 책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공간으로 도피? 시공간을 바꿔보는 것? 이런저런 고민과 기대를 안고서, 도피 아닌 도피처로 출장지 호시노야 가리자와 리조트를 삼았다.
“자, 여기서부터는 전용차로 갈아타시고 이동하겠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호시노야 리조트의 콘셉트는 ‘비일상적인 연출’이었다.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반기를 들고, 되도록이면 외부와 차단이 된 상태. TV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룸에선 정말로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다!), 번쩍이는 도시와는 달리 최대한 어두운 조명으로 꾸민 곳. 그게 호시노야 리조트였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입구에서 내린 뒤, 다시 전용차를 타고서 굽이굽이 객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했으며, 캄캄한 어둠 속에서 플래시를 들고서 더듬더듬 제 방을 찾아 들어가야 했다. “도쿄는 밝아서 별을 볼 수가 없을 텐데요. 이곳에서는 하늘을 올려다보셔도 좋습니다.” 정말로 그랬다. 별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는 게 뭔지 나이 서른이 넘어 처음 알았다. 지금 내 머리 위엔 별이 쏟아져 내릴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었으며,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멜로디처럼 들려오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밤공기가 맑고 차가웠다.
“오늘 저녁은 가이세키 정식 코스입니다. 기모노로 갈아입고 나오십시오.” 그러니까 나는 정말로 산신령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까지 갖춰 신고서, 가이세키를 맛보러 가는 길은 앞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깜깜했고, 조용했고, 입을 벌리면 차가운 입김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여긴 분명 ‘깊은 산골 옹달샘’ 근처가 아닐까. 도시와 동떨어진 곳에서 느끼는 감정은 이렇게 색다르기만 했다. 식사 후 몸을 담갔던 온천물은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 워워 소리를 낼 정도로 뜨끈한 탕에 익숙해 있던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물이 왜 이리 미지근하죠?” 무조건 뜨거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과는 달리, 이곳의 온천물은 ‘오랜 시간 명상을 할 수 있게끔’ 미지근한 것이라 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기껏해야 탕 속에서 10분을 못 넘기는 내가 근 30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내 몸이 노곤노곤해져왔다.
정확히 2박 3일을 이곳 호시노야 리조트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채’ 보냈다. 걸려오는 전화 한 통 없이, 그렇게 좋아하는 TV도 없이, 원고를 내라는 쪼임도 없이, 그리고 이러저러한 개인적인 스트레스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별장지인 가리자와 지역에 자리 잡은 이곳은, 황족들의 피서지로, 문인들의 학습회 자리로 애용되어 왔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족들이야 극진한 최고급 서비스와 시설을 이용하고 싶었을 것이며, 문인들이야 세상과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머리를 흔들어 씻기를 바랐을 것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아, 이곳 호시노야 리조트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작가들과 기업의 총수들, 의원들의 휴식처로 애용된다고 한다. 깨끗한 글귀를 옮겨야 하는 작가도 아니면서, 극진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의원도 아니면서 2박 3일이나 이곳에 머무른 나는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는 걸, 그제야 잊고 있었던 현실이 떠올랐다. 그토록 나를 괴롭혔던 문제들을, 이렇게 완벽하게 잊고 있었다니! 과연 이곳의 위력은 대단했던 것이다.
다시 내 자리, 내 방, 내 책상으로 돌아오니, 오정희 산문집 <내 마음의 무늬>에서 읽었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여행의 끝은 늘 그렇다. 나를 가두고 있던 모든 것을 훌훌 떨쳐버리고자 떠나지만 여행이 중반을 지나 반환점에 접어들게 되면 두고 온 것들이 슬며시 끼어들어 함께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모처럼 휴가지의 풍광과 한담을 즐기던 사람들은 귀로에서 조금은 시무룩하고 우울한 표정이고 저마다 생각에 빠져 말수와 웃음이 줄어든다. 일상으로 복귀, 비워두었던 자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정확히 호시노야 리조트에서의 호사는 현실을 잊게 해주었고, 고마웠다. 그러나 다시 책상에 앉으니 그 문제는 그대로 놓여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던 별빛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다시 책상에 쭈그리고 앉은 현실이 그다지 답답하지만은 않다. 일본의 작가 소노 아야코는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맞이하며 목욕을 하게 해주고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주는 것, 그것이 부모이고 가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중국 작가 야딩은 “자기 집이란 잠을 잘 수 있는 침대이고 냉장고에서 약간의 소시지를 발견하는 부엌이며 마음대로 구두를 벗어 힘껏 바닥에 내던지기도 하고 멋대로 소파에 드러눕기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나 역시 그랬다. 또다시 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서울로 돌아왔지만, 아무렇게나 양말을 벗어던질 수 있는 내 공간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다르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곳 호시노야 리조트가 이끌어내고자 했던 건, ‘일상 탈피’가 아니라, ‘더 나은 일상 복귀’가 아니었을까. 두 발을 쭉 뻗고 침대에 누우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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