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과
세상엔 배워서 되는 게 있고 아니 되는 게 있다.
배우고 익히면 아니 될 리 없다고 암만 악다구니를 써봐도 결국 안 되는 건 안 된다. 그중 하나가 옷 입기다. 돈 쓰고 백 쓰고 사람 부려서 비싼 옷 걸치면 누구나 멋져 보일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오히려 콧잔등이 터질 듯한 성형녀처럼 어딘가 어색하거나 돈을 쳐 발라 만든 인형 같다거나 하는 식이다. 재능이 충만한 스타들(옷 입기 능력만 빼고)의 곁엔 보필하는 걸 업으로 삼는 무리가 있다. 스타들은 의상 콘셉트를 잡고 무대의상을 제작하고 인터뷰 의상을 공수하는 충성스런 이들로부터 섬김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스타들의 옷차림은 어설픈 화공의 ‘모작’처럼 저렴해 보인다. 그걸 대부분 사람들은 스타일리스트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그건 일정 부분, 아니 많은 부분 오해다. 스타일리스트가 같은 옷을 들이밀어도 소화하는 포스는 제각각이라는 말이다. 옷 입기란 게 그렇다. 취향을 공유하는 문제다. 스타일리스트에게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어필할 만큼 잣대가 명확해야 한다. 여기에 사소한 부분을 챙길 줄 아는 잔 감각도 필수다. 같은 셔츠를 입어도 소매를 어느 정도 말아 올릴 것인지, 하이톱 스니커즈를 신었을 때 바지 밑단을 어느 정도 구겨 넣을 것인지, 그 미묘한 1mm를 챙길 줄 아는 이라야 누구나 인정하는 베스트 드레서가 된다. 여기에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캣워크를 연구하는 학구열까지도 필요하다. 해답을 푸는 원리를 모르면서 선생이 지시한 정답만을 달달 외우는 일차원적 스타일링은 바로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같은 사실에 모범답안이 되준 게 바로 그룹 ‘빅뱅’이다. 연말에 있었던 <아레나> 에이-어워즈 시상식에 참석한 빅뱅의 리더 G-드래곤의 변형된 턱시도 룩을 보면서 나는 흐뭇했다. ‘옷 입기’의 열정과 ‘노래 짓기’의 열정이 비례하는 듯 보이는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연미복을 연상시키는 꼬리가 긴 블랙 롱 재킷에 우아함과 화려함을 적절히 녹이고자 선택한 하이넥 셔츠는 지나치게 엄숙하지도, 지나치게 캐주얼하지도 않은 선에서 꽤 감각적이었다. 시상식에 대한 예를 갖추면서도 빅뱅이라는 청년 그룹의 경쾌함까지도 적절히 녹여낸, 칭찬받아 마땅한 그런 옷 입기였다는 것이다. 그래, 그래서 우린 G-드래곤에게 ‘스타일’ 부분의 상을 줄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의 감각적인 옷과 노래에 눈과 귀를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창완과
내가 김창완을 좋아하게 된 건 ‘글’솜씨 때문이다.
한동안 연기만 하는 바람에 살찌고 통통한 울음 같은(혹은 웃음 같은) 그의 가사나 글을 접한 지 꽤 오래. 그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나는 그의 자분자분한 음색에 얹힌 글을 듣는 것이 좋다. 그런 그가 이번에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고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지’라는 수필 같은 신곡을 내놓았다. 그 이유만으로 그이를 <아레나> 신년호에서 인터뷰한 것은 아니다. 그가 조합해내는 단어들이 불안과 가난이 불온하게 몸을 섞는 요즘 같은 시절에 훈기를 줄 거라 생각해서다. 기자 시절 유명인들의 에세이를 연재하는 칼럼을 담당한 적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영덕루의 자장면’이라는 그의 작품이었다. 그 글을 받아든 날, 김창완이란 이는 나에게 선선한 인생 스승이 되었다. 텔레비전 속의 가수도 연기자도 라디오 속의 디제이도 아닌.
그때 그 글의 일부를 전한다.
“요즘같이 입이 깔깔해 구미 당기는 게 하나 없어도, 그 옛날 학교 앞 중국집 영덕루의 자장면 생각만 하면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복’ 자를 써 붙인 시뻘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얼기설기 토끼장처럼 엮어놓은 철사망 안에 불구멍을 하도 막아놔서 연통에 손을 갖다 대봐야 난로라는 걸 알 정도의 십구공탄 연탄난로가 하나 있었고, 그 너머에는 식사부 요리부로 구분해서 메뉴를 걸어놨는데, 요리부 쪽은 입학식 때나 졸업식 정도 돼야 훑어보는 것이어서, 들어서면 보는 쪽은 언제나 식사부였다. 그나마도 짬뽕밥 이하에서 골라야 했기 때문에 봐봐야 몇 가지 안 되었는데, 그래도 주인이 성화를 해댈 때까지 읽고 또 읽은 다음에 신중하게 선택하곤 했다. …중략…
자장면의 맛, 그 맛을 묘사하기란 새벽이슬을 머금은 유월의 장미가 어느 정도로 예쁜가를 형언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그 당시 행복의 값은 단돈 30원이었다. 용돈이라는 게 따로 없던 시절. 어린 학생들이나 어른들이나 돈을 못 쓰기는 매한가지였다. 입학할 때 한 뼘 남짓 길었던 교복 상의 소매는 팔꿈치에 가 붙고, 세 번 접었던 바짓가랑이는 복사뼈 위로 올라붙어, 학년이 올라갈수록 허수아비 옷 입혀놓은 모양새들로 다녔다. …중략…
그러면 우리 기억 속에 가난에 찌든 퀴퀴한 냄새만 있는가? 그렇지 않다. 가난은 그런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가장 가난할 때 먹은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던 어떤 이의 말에 수긍이 간다. 용돈이 떨어지면 비 오는 날 붕어처럼 숨 막혀하는 요즈음 아이들을 보면서 가난의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의 새 책에 가까운 중고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자장면 한 그릇의 행복과 무스 안 바르고도 종로를 활보하던 그 자유를 주고 싶다. 용돈을 다 빼앗아 하늘에 뿌리고, 그들에게 다시 푸르고 넓은 하늘을 되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아레나
2009년에도 <아레나>는 이 두 남자를, 이 두 남자와 흡사한 남자들을, 혹은 이 두 남자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쫓을 예정이다. 이유는 이들이 <아레나>가 흠모하는 이상형에 가깝기 때문이다.
‘옷 입는 데 대한 근성이 일에 대한 철학과 정비례하는, 생의 꽃밭을 꿈꾸는 청년.
어떤 옷을 입어도 일에 대한 연륜이 세련되게 버무려지는, 생의 난장판을 지나온 청년 같은 중년.’
이 두 남자를 쫓아서 이상적인 미래를 꿈꿔볼 요량이다.
많은 이들이 불안함으로 착색된 2009년도의 첫 장을 앞에 두고 부들거린다. 단체 수전증이라도 걸린 듯 말이다. 이럴 때 우리가 쫓는 두 남자는 허허롭게 혹은 호기롭게 말할 것이다.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미리 알 수 있는 것 하나 없고 후회 없이 살 수 있지도 않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게 있지.”(김창완,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고…)
“돌아보지 말고 떠나가라 또 나를 찾지 말고 살아가라/ 너를 사랑했기에 후회 없기에 좋았던 기억만 가져가라/ 그럭저럭 참아볼 만해 그럭저럭 견뎌낼 만해.”(빅뱅, 하루하루)
살아지는 건 살아지도록.
2009년 1월 1일을 기(다)리는 안성현
아레나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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