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이지영 illustration 이우식
남성 2인조 쇼핑단 | |
그들의 과거 여럿이서 족발집에 간다거나, 감자탕을 먹으러 간다거나 하는 행위를 유달리 싫어했다. 다 먹은 후 거나하게 취해 노래방 가는 행위는 더 이해 못했다. 현재 그들의 상태 서로 알아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쇼핑에 취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바로 의기투합해버린 스타일. 그렇다고 게이는 아니다. 단지 취미가 잘 맞는 친구일 뿐. 혼자도 쇼핑을 하러 다니긴 하지만, 둘이 다닐 때 (자칫 어색할 수 있는) 단골이 아닌 집에도 들를 수 있다. 주로 검은 뿔테 선글라스와 스키니 진 팬츠를 즐겨 착용하며, 둘이 붙어 다니면 남들이 자주 쳐다본다. 그들의 미래 남들처럼 돈을 모으지 못했다. 여전히 쇼핑을 즐기나, 예전 그 친구(쇼핑을 함께하던)와는 자주 만나진 못한다. 요즘엔 근사한 수트와 넥타이에 필이 꽂혔다. |
연애만 하고 싶은 이혼남 | |
그의 과거 스물여덟에 동갑내기 여자와 결혼했다. CC였던 그녀가 나이가 찼다며 보채기에 취업과 동시에 결혼에 골인했다. 현재 그의 상태 서른둘에 이혼하고 돌싱이 된 지 3년 됐다. 집안에 돈이 좀 있어서 의외로 여자를 만나기 어렵지 않다. 최근엔 열두 살 어린 여자도 사귀었다. 돌싱이라고 밝히는 게 쑥스럽진 않다. 요즘엔 여자들이 오히려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현재 역시 연애 중. 그러나 당분간은 결혼 생각 없다. 정말, 없다. 그의 미래 서른여덟에 두 살 어린 이혼녀와 결혼했다. 둘 다 한 번씩 갔다 온 경험이 있어 조심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은 연애보다 피곤하고 재미없다고 느낀다. |
업뎃에 미친 남자 | |
그의 과거 뚱뚱했다. 초등학교 때 이미 60kg을 너끈히 돌파했다. 고3 때 몸무게는 100kg이 넘어 공개하기 힘들다. 현재 그의 상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다이어트 실패를 밥 먹듯 하다가, 사회생활 시작하고부터 조금 나아졌다. 남들보다 육중하긴 하지만, 비호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옷 입는 센스가 있어서 뚱뚱한 외모도 개성으로 잘 소화해낸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컬러풀한 옷으로 포인트를 준다. 옷 잘 입고 활발해서 주변에 사람들은 늘 많다. 사진 찍는 것 좋아하고, 잘 나오는 각도를 꽤 잘 알아서 매일 블로그 업뎃에 바쁘다. 새로 올린 사진에 댓글이 많이 달릴수록 쾌감을 느낀다. 블로그 스타가 되고 싶다. 그의 미래 사람들이 하나 둘 블로그에서 떠나면서 조금 심드렁해졌다. 동시에 블로그 스타의 삶을 마감하고, 현재의 삶을 살게 됐다. 서른이 넘어 처음으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
1인 사업가 혹은 아티스트 | |
그의 과거 모 지방대학 미대를 나왔다. 특별히 좋은 대학을 나오진 못했지만 친구도 많고, 이것저것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많다. 현재 그의 상태 꼴랑 한 달에 1백50만원 주는 회사가 답답해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오라는 곳도 없지만, 다시 직장 생활을 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요즘은 혼자 일하고 있다.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팔기도 하고, 앨범 재킷 디자인도 하고, 가끔 포스터 디자인도 맡는다. 혼자서 홍보도 하고, 일 따와서 작업도 하고, 사람들도 만난다. 정신없이 바쁘다. 그의 미래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다. 벌어들이는 돈도 많았지만, 나가는 돈도 수월찮았으니까. 예전만큼 열정에 불타오르진 않지만 근근이 먹고 살 만은 하다. 사람이 그리워서 이 친구, 저 친구에게 술 한잔 하자는 전화를 자주 한다. |
고학력 찌질이 | |
그의 과거 딱 보통이라고 할 수 있는 집안의 장남. 아버지는 유순하신 데 비해, 어머니는 앙칼지다. 뭔가 더 있을 것 같아 서강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현재 그의 상태 어느덧 서른여섯. 그의 미래 전셋값 빼서 스페인으로 떠나야지 떠나야지 하면서 아직도 못 떠나고 있다. 프로그램을 옮긴 적도 없으니, 일하는 동안 함께 일하는 PD가 벌써 다섯 번도 넘게 바뀌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PD가 본인의 눈치를 본다. 결혼은 안 하고 싶었는데, 못하게 됐다. |
연봉을 나눌 수 없어 혼자인 남자 | |
그의 과거 네 것 내 것 따지기를 좋아했다. 친구들끼리 만나도 한 턱 쏘는 일은 절대 없는 스타일. 현재 그의 상태 서른일곱. 신문사 기자로 일하고 있다. 직업상 접대받을 일이 많기 때문에 자기 돈을 써본 기억은 거의 없다. 주식과 펀드를 꾸준히 한다. 1억을 모은 지는 꽤 됐고, 이미 강북에 23평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그냥 하는 말로 ‘여자만 들어오면 돼! 다른 건 다 준비됐어!’라고 하지만, 사실 몸만 들어올 여자는 원치 않는다. 집안에 돈도 좀 있고,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는 여자를 원한다. 내 연봉을 함께 나눠야 할 기생충 같은 여자는 딱 질색이다. 잠깐씩 사귀어본 여자는 있지만, 사랑을 해본 적은 없다. 그의 미래 마흔인데, 아직 결혼하지 못했다. 남들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은 지 꽤 됐고, 동안이었던 얼굴도 조금은 늙었다. 하지만 아직 서른 중반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있다. 여자에 대한 기준이 조금 변했다. 내가 먹여 살려야 할 여자라도 어리다면 오케이. |
아줌마만 필요한 남자 | |
그의 과거 전형적인 ‘강남 어린이’로 자랐다.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전공과는 상관없이 변호사가 됐다. 현재 그의 상태 7년째 로펌에서 특허 관련 업무를 주로 맡고 있다. 급여는 남들보다 한참 높은 수준. 솔직히 얘기하면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안’ 한 거지, ‘못’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부끄럽거나 하진 않다. 서른 초반 즈음 선을 꽤 보기도 했는데, 크게 꽂히는 여자는 없었다. 어느덧 서른아홉. 파출부 아줌마가 1주일에 한 번 오셔서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깨끗하게 청소해주신다. 덕분에 집은 언제나 깔끔하다. 업무도 많고, 여자가 진짜로 필요하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는다. 아줌마만 있으면 된다. 그의 미래 마흔둘에 여섯 살 차이 나는 여의사와 결혼했다. 그녀도 본인도 초혼이긴 마찬가지. 늦은 나이에 연애랄 것도 없이 만난 지 석 달 만에 결혼했다. 그러나 아줌마는 여전히 필요하다. |
무성의 경지에 오른 남자 | |
그의 과거 남들과 다르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다. 스포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대신 옷 입는 데 관심이 많았다. 현재 그의 상태 주변에 여자친구들이 참 많다. 연인은 아니지만 굉장히 자주 만나는 사이. 주로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거나, 쇼핑을 함께 다니거나 한다. 연애는 최근 7년 동안 해본 적이 없다. 멀쩡하게 생겼는데 늘 애인이 없으니, ‘혹시 게이 아냐?’ 하는 의심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도 모른다. 본인이 게이인지, 이성애자인지, 바이인지. 주변 사람조차 판단하기 힘들다. 그의 미래 서른아홉.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촉하는 사람도 없고, 본인 역시 급하지 않다. 아무래도 그 상태로 오래 살게 될 것 같다. |
카페남(일명 토이남) | |
그의 과거 음악 듣기를 좋아하고, 비 오는 날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하고, 계절이 바뀌는 날이면 혼자 있기를 즐겨 왔다. 현재 그의 상태 카페에 앉아 홀로 노트북을 켜고 무언가를 끄적이곤 한다. 만화를 그릴 때도 있고, 영화를 다운받아 볼 때도 있고, 아이팟에 음악을 담을 때도 있다. ‘토이’ 노래에 어울리는 감성을 지녀, 연애를 한 번 하면 푹 빠지는 스타일. 헤어진 여자 역시 쉽게 잊지는 못한다. 가끔 혼자 꽃을 사다 병에 꽂아두곤 한다. 최근엔 스케치북을 한번 사봤다. 그의 미래 서른여섯 나이에 스물넷 하얗고 어린 그녀와 결혼했다. 그는 그녀를 일명 ‘강아지’라 부른다. 그 ‘강아지’를 위해 가끔 피아노를 연주해주기도 하고, |
헬스클럽에서 인맥 만드는 남자 | |
그의 과거 부지런한 타입이다. 승부욕이 강해서 뭐든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 친구가 많은데, 속을 나누는 친구는 사실 없다. 현재 그의 상태 세무사로 일하고 있다. 원래는 사법고시를 준비했는데, 연이은 실패로 꿈을 접고 세무사가 됐다. 이제 겨우 2년차이지만, 벌써부터 나중에 개업했을 때를 대비해 준비하고 있다. 유달리 인맥 관리에 집착한다. 능력보다는 인간관계에서 승부가 난다고 믿기 때문에 매일 밤 약속을 만든다. 최근에는 인맥을 넓히기 위해 회사 근처(테헤란로)에 위치한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었다. 여기서 만나는 중년 아저씨들이 나중에 꽤 굵직한 고객이 되어줄 거라 굳게 믿으며 오늘도 한마디 건네고 있다. 그의 미래 그럭저럭 40대 초반에 개업을 하긴 했다. 욕심만큼 좋은 동네에 얻진 못했다. 강남에서 조금 벗어난 사당에 그의 사무실이 있다. 벌이가 아직 대단치는 못해서 다시 한 번 다이어리를 꺼내 전화를 돌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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