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얘기 하나 하겠다.
때는 바야흐로 1910년, 일본행 사비 유학이 붐을 이루고 김동인, 현진건, 전영택을 비롯한 신세대 작가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취향과 고급 기호를 작품 안에 경쟁적으로 쏟아내던 시대였다. 어디 그뿐이던가. 지적 허영을 신앙으로 삼던 청년들의 옆구리, 그 꼿꼿한 갈빗대 사이엔 잡지 한 권씩이 자리했어야만 했던, 아~ 찬란했던 ‘활자 전성시대’였던 것이었던 것이다. 옆구리에 끼기만 해도 발광을 한다는 그 잡지들의 정체는 <창조>, <소년>, <학지광> 같은 종류였다. 지금 생각하면 고리한 문학 평론지라 오해하기 쉽겠다. 하지만! 그놈들이야말로 파격적인 유행과 선진화된 문화를 활자로 담은 오만한 라이프스타일 전문지였다. 이 무슨 아귀 안 맞는 소리냐?
그렇다면 나, 당시 잡지에 게재되었던 다음 글줄로 당신들께 증거하리라. 자, 읽어보시라.
‘영순은 금년 이십 사세의 꽃 같은 청년이다. 얼굴 윤곽은 걀족하고 살빛은 희며 이마가 훤하고 눈썹이 검으며 눈이 파랗고 뺨이 도톰하여 일반 친구는 그를 ‘미소년’이라고 별명한다. 세루 양복을 입고 분홍 와이셔츠에 파란 넥타이를 맨 후 새까만 캡을 쓰고 어디로 나아갈 때는 ‘청춘의 미’를 발휘한 참말 미소년이라는 별명에 부끄럽지 아니하리만치 어여쁘다.’ -노자영, 표박 중-
‘S는 커다란 무테 안경을 끼고 황갈색 낙타 목테를 휘휘 둘러 감은 채로, 외투에도 손을 찌르고 유리창에 기대어 앉았다. 은마구리한 지팡이를 가지고 슬슬 굴리기도 하고 칼포를 퍽퍽 피우면서 버얼건 스토브를 들여다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영택, k와 그의 어머니의 죽음 중-
이건 뭐, 작금의 패션 기사 농칠 수준 아니더냐 말이다.
당대의 패션 리더였던 작가의 글 안에선 당시 일반인들이 상상도 못할 브랜드명, 신상에 대한 묘사가 선연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글이 파격이라 여겼고, 유행을 선도한다 여겼으며, 트렌드라 확신했다. 지금의 패션지처럼 실사 사진이 없었을 뿐, 대중에게 인지되는 역할은 같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자. 그건 바로 당시 잡지에도 광고가 실렸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광고란 소비의 주체를 찾아다니는 것이니까. 1910년도, 당시 잡지에 가장 많이 실렸던 광고는 다름 아닌 안경, 수제 양복, 시계, 모자, 만년필, 맥주 그리고 연초였다. 그 품목들이 중요한 건 그 광고들을 통해 소비와 미의 기준이 정형화되었다는 거다. 어디 그뿐인가. 그 광고 비주얼을 통해 당대 꽃청년들의 신체적인 이상 또한 결정되었다는 거다.
당시 남자들은 새빌로 양복과 챙이 넓은 중절모, 그리고 정성껏 끈을 묶는 옥스퍼드화를 갖추는 것으로 근대적 청년임을 증거했다. 여기에 고급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김동인처럼 칼표 궐련을 피우고 겨울이 되면 러시아풍 외투 루바슈카를 입고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집 안에 피아노를 들이고 트럼프와 침대도 갖추었다. 이런 모든 유행은 잡지의 글을 통해 이미지화되었고 광고 비주얼로 인해 현실화되었다. 광고를 통해 사람들은 꿈에 그리던 이상이 생활에 접목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근대 청년의 이상적 외모를 두뇌에 입력하고 몸소 실천하였다. 과거에도 광고 속에 묘사된 꽃청년들은 ‘당대의 롤모델, 당대의 사이즈, 당대의 트렌드세터’가 되었던 것이다.
역시 ‘근대화는 외양의 변화로부터 왔다(소영현의 <부랑청년 전성시대> 중)’는 명제는 허튼 소리가 아니다. 맞다. 그 말이 맞다. ‘유학을 떠난 팔봉 김기진이 1923년 5월에 러시아풍 외투 루바슈나를 걸치고 부산항에 나타났다’는 이 짧은 문장은 그가 번지르르하게 멋을 냈다, 정도의 얕은 수로 치부될 차원이 절대 아니다. 신분의 벽과 사조의 벽을 허물고 조선의 항구에 발을 디뎠다는 의미, 즉 머릿속이 달라졌다는 걸 상징하는 비장함이 함축돼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조의 변화는 외양의 변화로부터 온다는 말은 근본적으로 맞다. 이건 곧 외양의 변화를 초광속으로 묘사하는 잡지 기사와 광고가 사조의 변화를 가장 먼저 반영한다는 말씀되겠다.
그렇다. 잡지의 내용물(기사와 광고)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방식으로 독자에게 작용한다. 그 영향력을 독자들은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광고 역시 잡지의 일부로 여겨 찬찬히 학습하고 어여삐 살피는 것이 돈 주고 산 자의 보람이라는 거다. 같은 돈 주고 생선을 사도 살코기만 발라 요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은 기본이고 껍질은 데쳐 초무침을 하고 뼈까지 튀겨서 요리 재료로 쓰는 자도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이여!
광고가 잡지의 콘텐츠를 저해한다는 편견은 코 푼 휴지짝처럼 날려버려도 좋다.
잡지를 볼 때 기사와 광고를 여유롭게 음미하라, 망고잼이 든 마카롱과 홍차를 한입씩 천천히 맛보듯 말이다.
그게 바로 잡지 보기의 올바른 방편이라 할 것이다.
아레나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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