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ong Coat
아우터가 길면 일단 버겁다. 모델처럼 키가 크지 않아서가 첫 번째 이유일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코트는 일상에서 불편하기 짝이 없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견해라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길이가 긴 코트는 특유의 분위기를 풍긴다. 액션 영화와 누아르 영화의 차이처럼 실질적이진 않지만 어떤 이상향 같은 게 존재한다. 어쩌면 우린 옷을 입을 때 너무 실용성만을 따지는지도 모르겠다. 옷에는 감성이 담겨 있고, 그 또한 어떤 디테일보다 매력이 될 수 있다.
2. Duffle Bag
가방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순수한 목적으로서의 가방은 이제 종적을 감춘 것일까? 이번 시즌 몇 안 되는 가방들 중 ‘이건 어때?’ 하고 등장한 것이 바로 질 샌더의 더플백이다.
질 샌더의 맑고 깨끗한 DNA를 이어받아 탄생한 이 가방은 왠지 무언가를 넣어 다니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더플백이 주는 의외성도 한몫했다. 백팩은 왠지 오글거리고 크로스백은 진부하다. 한쪽 어깨에 툭 하고 걸친 더플백은 그 모양새나 분위기가 무심해서 좋다
3. Washing Leather Coat
한동안 디자이너들은 워싱이 들어간 가죽 아우터를 허락하지 않았다. 공정 자체에 어려움도 있겠지만 현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에서 이번 시즌 이런 우려를 극복하고 현대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워싱이 가미된 가죽 코트를 선보였다.
칭찬받아 마땅한 선택이다. 이너로 입은 수트와 카디건을 같은 톤으로 최대한 현대적으로 스타일링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조심스럽게 빈티지 무드의 바람을 예상해본다. 물론 전체가 아닌 부분이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4. Heavy Outsole Shoes
남성 슈즈의 볼륨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자동차 바퀴가 그 위를 지나가도 끄떡없을 정도로 우악스럽기까지 하다. 밑창을 포함한 아웃솔 역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남성 슈즈의 이런 흐름은 예전 클래식 의복에서 타이의 매듭을 높여 남성성을 강조한 것과 비슷한 이치처럼 보인다. 의도치 않게 키 높이 구두를 신게 된 남성들은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젠더리스가 남성복을 지배하는 요즘, 남성성이 강조된 슈즈들이 그 대항마로 등극할 예정이다.
5. High-end Jogger Pants
조거 팬츠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활용 범위가 커지고 있다. 나이키가 수트를 만들었을 때보다 파격적인 모습의 조거 팬츠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보테가 베네타가 으뜸인데 함께 입은 다른 아이템의 소재를 최대한 고전적으로 맞춰 조거 팬츠의 이미지를 격상시켰다. 포근하고 격조 있는 소재들의 조합은 조거 팬츠가 클래식 영역에까지도 다가갈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조거 팬츠를 마냥 편하게만 입는 이들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기도 하다.
6. Short Knit Muffler
다들 한번쯤 긴 니트 머플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한 적이 있을 거다. 그리고 머플러는 재킷이나 코트에 묻히게 매치하는 것을 정석으로 여겼다.
에르메스의 이번 시즌 컬렉션 중 깡총하게 둘러맨 니트 머플러가 유녹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길이는 짧고 컬러는 톡톡 튀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을 붕괴시켰다. 그러면서도 에르메스 특유의 우아함까지 묻어났으니 오죽하겠는가. 당분간 이 매치는 두고 두고 회자될 전망이다.
7. Camel Suit
캐멀색은 이제 더 이상 남성복에서 ‘별색’이 아니다. 당신의 빤한 컬러 팔레트에 당장 추가해야 할 색이다. 캐멀색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요즘 캐멀색 수트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띤다. 수트로 입었을 때 혹은 전체 룩을 캐멀색으로 매치했을 때 그 힘은 더 강렬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시기적으로도 잘 맞아떨어진다. 캐멀색 특유의 포근함과 시각적 편안함은 가을의 대표 소재인 울과 코듀로이와 단짝을 이룬다. 캐멀색을 좀 더 과감하게 입어볼 절호의 기회가 왔다.
8. Shirring Blouson
디자이너 킴 존스가 지난 시즌부터 강력하게 밀고 있는 아이템이 있다. 바로 블루종이다. 일반적으로 블루종은 밑단을 밴드로 처리해 실루엣이 짧게 떨어진다. 킴 존스는 그렇지 않아도 짧은 블루종의 밴드 길이를 길게 해 더 깡총하게 만들었다. 그가 이렇게 블루종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의미로 분석할 수 있다. 블루종이라는 남성성 강한 아이템을 좀 더 중화시키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전체 룩의 균형을 파괴함으로써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움에 매료됐을 가능성이다.
9. Small V Zone
수트의 흐름을 말할 때 버튼 개수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버튼 개수의 차이가 수트 전체 실루엣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 이번 시즌 수트들의 경향을 살펴보면 스리 버튼이 강세다. 그만큼 V존이 좁아지고 라펠도 작아진다.
이번 시즌 프라다에서 이런 수트들이 대거 출몰했는데 한 가지 독특한 것은 스리 버튼의 실루엣을 강조하기 위해 더블브레스트로 처리했다는 거다. 스리 버튼은 몸판이 좁아 보여 날씬해 보이는 효과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동양인에게는 취약한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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