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정재환 Editor 김영진
왜 안 할까?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소위 말해 잘 나가는 직장에 다녔고 젊었고 예뻤다. 섹스에 거부감을 가진 여자도 아니었다. 연애 경험도 상당했고 막연하게 지내는 나와도 섹스의 ‘참맛’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정도의 개방형 여성이다. 말하자면 알 만큼 아는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뜻밖에도 1년 가까이 섹스를 못했다고 한다. 그녀의 얼굴에 괴로워하는 표정이 엿보였다. 그녀의 괴로움을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그녀의 목마름을 달래려다가는 쪽쪽 빨린 아이스팩이 될 것만 같아 포기하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고백을 하는 그녀의 속내에 대한 의구심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지만 독 오른 암컷 사마귀는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머리채 뜯겨 먹힐 수 있으니까.
어쨌거나 그녀의 하소연은 투정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당장이라도 옆 테이블의 남자를 데리고 나갈 수 있는 매력을 지닌 여자였다. 언젠가 TV 다큐 프로에서 보여준 것처럼 함께 집으로 가자는 여자의 제안을 70퍼센트 이상의 남자들이 ‘이게 웬 떡이냐’하며 수락했다. 물론 그녀가 누구고, 왜 당신과 자고 싶은지 적절한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미녀가 함께 자자는 제안, 고맙다. 그녀가 1년 가까이 ‘굶고 지낼’ 이유, 그리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 보였던 것이다.
내가 물었다. “너 참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고민하는 척한다. 내가 보기에 너는 얼마든지 가능해. 그렇게 말하는 나도 지금 너랑 하고 싶어지는데!”
그녀가 답했다. “내가 짐승이니, 아무나하고 하게? 여자는 말야, 남자처럼 사정만 하는 것이 섹스의 전부가 아니거든. 따뜻함 같은 것이 있어야 해, 사랑받고 있다는 그런 느낌. 모르겠니? 이 말 같은 인간아.”
흥, 나라도 괜찮다면 하자는 내 의도는 보기 좋게 묵살당했지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에 대한 그녀의 입장은 이해가 됐다. 감정을 공유하는 섹스는 남녀를 떠나 모두가 원하는 사랑 행위다. 어떤 감정의 공유도 없는 섹스는 중추신경을 뜨겁게 타고 오르는 짜릿함이 아니라 성기에 아릿한 통증밖에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펴는 것보다 못한 섹스라도 안 하다 보면 미치겠는 때가 있다. 섹스라이프 사이클이 일정한 사람은 그 기간, 그 시간이 되면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몸이 먼저 반응한다. 점점 그 기간이 길어지면 신체 반응이 무뎌지기도 하지만 한 종류의 비타민이 결핍된 것처럼 몸이 먼저 어떤 과일을 찾듯이 섹스를 ‘먹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아마도 그녀는 ‘섹스비타민’ 결핍 상태였으리라. 결핍이 가중 될수록 그녀는 ‘육즙’ 많은 ‘과일’로 한 방에 ‘섹스비타민’을 보충하고 싶었을 것이다. 중추신경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전율하고 싶었겠지.
아무튼 허기진 사람이 볼 가득 과일을 베어 물듯이 벼락을 기다리는 굶은 여자들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러다 세월만 잡는 게 아닐까 싶다. 1년을 못하고 산 그녀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여인네들이 의외로 많다고 그녀는 귀띔해줬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굶은 여자들을 찾아 나서보기로 했다. 물론 한 손에 제우스의 벼락을 들고 말이다.
※ 지금부터 등장하는 여성이 굶은 여자들의 보편적인 통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기자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만남이었지만 어쨌거나 1년 안팎의 기간 동안 섹스를 못한 여자들이고, 연애 경험이 다수 있으며, 섹스에 대한 혐오감이 없는 여성으로 요즘 무척 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었다. 물론 내민 그녀의 손을 거부할 남자가 2할 미만으로 없어 보이는 여자들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들을 찾아가 왜 못했냐고 추궁했다. 죄지은 어린 양처럼 괴로워하는 그녀들의 마음 상처를 치유해주려는 배려와 함께.
방송사 수석작가
끊임없이 괜찮은 남자 좀 소개시켜달라는 여자후배가 있다. 모 방송사 교양예능프로 작가인 그녀가 나에게 그런 부탁을 할 때 약간 황당했다. 대학 후배였던 그녀는 학창 시절 스캔들의 중심에 있던 후배였다. 동기는 물론 선후배 가리지 않고 사귀면서 남자들 사이를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이간질시키던 장본인이다. 그녀가 모든 남자를 단박에 홀릴 수 있는 미모를 가진 여자는 아니었지만 그녀와 앉아 눈을 마주보며 술이라도 한잔 할라치면 자고 싶어 미치게 만드는 여자였다. 이런 여자를 가리켜 좋은 말로는 ‘색기’라고 하고, 어머니 세대에서는 ‘여시 같은 년’이라고 했던가? 그녀를 다시 술자리에서 단둘이 만났다.
‘너에게 남자가 없다니 믿기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그녀의 근황을 물었다. 뜻밖에도 그녀는 1년 6개월 넘도록 사귄 남자도 없고 짧게라도 만난 남자도 없다고 했다. 남자가 지겨워져 당분간 만나지 말아야지 했던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이제와서 다시 남자를 만나려 하니 예전의 ‘감’이 살아나지 않는다 했다. 그녀의 눈빛은 예전의 그 여시 눈빛이 아니긴 했다. 윤기 나던 피부도 예전만 못했다. 그녀의 참 안된 모습을 보며 ‘무슨 고민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남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자기의 에너지 원천은 남자인데(남자라기보다는 섹스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남자를 만나지 않으니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고 했다. 남자를 만날 생각을 안 하니까 관리에 소홀해졌고, 마음의 여유도 없으니까 다급한 마음에 매사에 신경질과 짜증이 늘더란다. 당시에는 자신이 그런 줄 몰랐는데 최근에 와서야 자기가 못된 노처녀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남자를 꼬일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다시 남자들이 예전처럼 자신 앞에서 발기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발광하길 고대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맘에 들어 하는 남자를 통해 자신의 색기를 확인하게 될 때 예전 같은 섹스라이프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어쩌나? ‘비타민’이 부족한 그녀의 생기 없는 모습은 나조차 발기시키지 못했다. 그녀를 위해 내가 연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당분간 더 굶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그녀가 해온 짓도 있으니 말이다.
엔터테이먼트사 차장
친형보다 더 따랐고 친동생보다 더 살뜰하게 챙겨주던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가 어느 날 여자 친구라며 한 여자를 내 앞에 소개할 때 난 눈을 두 번 깜박거렸다. 그녀는 바로 그 순간 내 동공을 파고들어 목뼈를 스쳐 쇄골을 휘감고 늑골을 헤집으며 자리 잡더니 심장 바로 옆에서 같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음…. 선배에게 자주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행여 나에게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던 여자다. 남자의 심장 옆에서 같이 박동하는 여자. 어쨌거나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때의 삼각관계를 이야기하기로 하고, 그녀와 난 지금도 종종 연락을 한다. 그녀는 1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여자와 결혼한 그 선배를 계속 만나며 구렁텅이에서 살아왔다. 선배와 완전히 결별한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어딘가로 떠나 있다가 최근 다시 사회에 복귀했다. 애틋해진 마음으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다시 사랑을 갈구했다.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해줄 남자를 만나겠노라고 다짐하는 그녀. 그녀가 상처를 떨쳐내지 못했다. 1년으로 될 일이 아니긴 했다. 그녀 나름의 복수란, 더 젊고 나은 남자를 만나 늙어가는 선배의 주위에 머물며 그를 옥죄는 것인 듯싶었다. 그녀는 나에게 특명을 내렸다. 일단 영계를 공급하라는 것이었다. 한동안 남자를 바꿔가며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내겠다고 했다. “누나, 그냥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 아니면 더 쉬던가. 제발 그러지 말고.” 우린 술에 ‘떡’이 되어갔다. 그녀가 똑바로 날 보며 말했다. 커피 자판기의 커피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다. “그 새끼보다 그 자식이랑 함께 있던 순간의 감촉들을 더 견디지 못하겠어. 날 따뜻하게 안아줄 남자라면 아무라도 좋아. 난 절대적인 사랑을 원해.” 난 다시 눈을 두 번 깜박거렸다. 그날의 그녀는 심장까지는 파고들지 못하고 좌뇌에 있던 그녀와 선배와의 추억이 간직된 뉴런을 지워냈다. 찌꺼기가 눈에서 흘러내렸다. 사랑은 그렇게 남는 자에게 육체의 기억만 남기고 떠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섭다. 아는 사람만 알겠지만.
의류회사 패션 디자이너
친구의 여자친구로부터 사귀는 당사자보다 더 많이 전화를 받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녀가 애인의 친구를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애인을 감시·관찰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자꾸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후자였다. 친구 녀석의 바람기는 내가 봐도 화려했다. 녀석은 여자를 가리지 않았다. 사파리의 망나니 사자처럼 자기영역 표시가 삶의 전부인 양 살아가는 백수의 킹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녀석을 사랑했다. 그녀는, 싸구려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최상급 품질이었다. 예술적인 S라인 몸매와 매력적인 미소를 가진 얼굴, 성 프란체스코적 순종을 몸소 실천하는 심성 등 어떤 남자도 거부하기 힘든 지·덕·체를 겸비한 여자였다. 그녀가 날 찾아와 녀석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며 내 앞에서 울먹거렸다.
내 입장에서는 친구는 좋은 녀석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솔직히 헤어지고 나랑 사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다. 또 날 찾아왔기에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지 말고 헤어져. 이제 지겹지도 않니? 너 혹시 신파 마니아니?” 그녀가 거짓말처럼 울기를 멈추고 날 똑바로 보며 얘기했다. “오빠, 내가 그렇게 한심해 보여요? 저도 한심한 거 알아요. 친구의 여자친구가 그 친구 때문에 속상해하면 친구가 좀 달래주는 게 그렇게 귀찮아요?” 호~! 성 프란체스코 수녀회의 수녀 같더니만 내숭이었나? “그렇게 똑바른 소릴 하는 아이가 왜 징징대니? 그렇고 그런 놈을 왜 만나. 만날 다른 여자랑 자고 다니는 녀석이 뭐가 그렇게 좋아. 널 달래주는 건 아무 일도 아니니까 그럼 날 이해시킬 만한 이유를 말해보든가.” 화가 난 그녀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급하게 말했다. “오빤, 자, 잘한단 말예요. 오, 오빠랑 할 때가 제일 좋은데 어떡해요.” 그렇게 말하던 그녀가 남자 없이 지내왔다. 그녀의 문제는 잘하는 남자를 못 만났기 때문이다. 해봐야 해결되는 문제라니. 속궁합 맞는 남자를 찾기 위해 아무 남자랑 잘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몇 번 시도는 해봤다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속궁합’이 아닐 것이다. 실패를 거듭한 ‘육감적인 성 프란체스코적 수녀’의 고통! 그녀 앞에 종마 한 마리를 대령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아니면 종마 감별법이라도 말해줘야 할까?
그 밖에도 홈쇼핑 패션모델인 25세의 여자와 29세의 아티스트도 만나 섹스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남자 없이 지낸 지난 1년여 간의 시간을 다독여줬다. 세기적인 사랑을 꿈꾸는 여자부터 자신의 열정을 배설할 통로가 필요한 여자, 그리고 사랑 받고 싶어 하는 여자까지. 그녀들이 못하고 지낸 시간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그 사연에 대해 그녀들은 어떤 숙명처럼 받아들이기도 했고, 나름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그녀들을 그렇게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들, 아니 여자들이 사랑(그것이 증오라 할지라도)과 섹스를 하나로 보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다. 물론 아닌 여자들도 있다. 섹스는 섹스고 감정의 문제는 다른 것이라고. 그런 여자들에게 ‘굶는 고통’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여자와 자는 남자에게 남는 것은 성기의 아릿한 통증뿐이다. 나에게 굶은 사연을 털어놓은 그녀들의 이야기는 막상 듣고 있으면 측은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녀들의 그 안은 뜨겁다. 섹스와 감정을 분리하는 여자들에게는 없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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