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RATION 김창규 COOPERATION KBL 홍보국 EDITOR 이기원
그 도전, 응원한다
방성윤은 이미 미국 프로 무대에서 뛴 경험이 있다. 2004~2005 시즌 NBA의 마이너리그 NBDL(D리그) 로어노크 대즐에서 41경기에 출전해 경기당 평균 12.5득점을 기록했고 3점 슛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방성윤은 NBA 진출에 실패했다. 2005년 한국에 돌아온 방성윤은 지금까지 국내 코트에서 자신의 기량을 아낌없이 선보였다. 소속팀인 SK가 플레이오프에 계속 나가지 못해 ‘이기적인 선수’ ‘팀 성적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선수’라는 비난이 나왔지만 SK가 지난 시즌 6강 PO 진출에 성공해 그 짐을 어느 정도 벗었다.
방성윤은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말을 했다. 본인도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고
운동 능력이 뛰어난 유망주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SK와의 계약 시 ‘3시즌을 뛴 뒤 NBA 진출을 허용한다’는 옵션 조항을 넣었다. 그만큼 그의 꿈은 확실했다. 하지만 NBA 한 스카우터는 “외국의 나이 많은 선수에게 관심을 두는 팀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26세의 방성윤은 “후배 선수들에게 해외 진출의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무모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지만 방성윤의 ‘도전 정신’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방성윤은 6월 30일(현지 시간)부터 열린 NBA 서머리그에 등록하지 않아 NBA 스카우터의 눈에 들 수 있는 기회를 날렸다. 이유는 부상 때문이다. 하지만 NBA 팀들이 자체적으로 여는 트라이아웃이나 훈련 캠프에 참가해 빅리그 진출을 노릴 수 있다. 혹시라도 다시 D리그에서 뛰게 되더라도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미국에서
뛸 팀은 한국 최초의 NBA 선수였던 하승진이 잠시 몸담았던 D리그 애너하임 아스널이다. 애너하임은 NBA 올랜도 매직, 애틀랜타 호크스 등과 선수 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방성윤이 4년 전 로어노크에서 뛸 때보다 NBA 진출을 위한 문은 조금 더 넓어졌다.
방성윤의 도전에는 대한농구협회, KBL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일본 최초의
NBA 선수였던 유타 타부세의 경우처럼 말이다. 방성윤의 도전은 개인적 욕심만은 아니다. 결과를 떠나서 큰 무대에 도전하는 선수들은 앞으로 계속 나와야 한다.
방성윤의 행보가 그 나침반이 될 것이다.
류한준(<스포츠 2.0> 기자)
그 도전, 무모하다
방성윤의 NBA 도전을 두고 ‘포기를 모르는 아름다운 도전’이라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모한 도전’이라 생각한다. 전혀 도전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질서만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인 NBA 선수가 탄생하는 것은 한국 농구의 경사다. 그리고 지난 시즌 KBL에서 평균 20득점을 기록한 유일한 국내 선수인
그를 제외하면 NBA에 도전장을 내밀 만한 기량을 지닌 우리나라 선수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과 NBA에서 뛸 자격은 별개다. 과연 그는 NBA에 도전하기 위해 얼마나 준비를 한 것일까? 본인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그 꿈을 위해 KBL로 돌아온 후 얼마나 노력해서 기량을 발전시켰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방성윤은 미국에 건너간 후 NBA는커녕 하부 리그인 D리그에서조차 출전 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뛰어난 외곽 슈터로 이미지를 굳혔지만, 수비와 드리블, 패싱 게임에서는 낙제점이었다. D리그에서 그를 지도했거나 지켜본 코치들은 “방(Bang)은 드리블을 이용해 스스로 찬스를 만들고 동료들을 살려줄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KBL에서조차 동료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또 압도적인 하드웨어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수비는 KBL에서도 평범한 수준이다. D리그에서 돌아온 2년 전이나, 지난 시즌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큰 발전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 외국인 선수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딘 발전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또 그가 미국에 가겠다고 밝힌 시점은 7월 중순이다. 마침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이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을 치르는 시기와 겹친다. 부상이 회복될 시점이 7월 중순이라면 우선 대표팀에 합류에 ‘해외 스타’로 NBA에 초청받는 것이 훨씬 나은 수순이다. 비슷한 루트로 30대 가까운 나이에 NBA에 간 선수도 많다. 게다가
기약 없는 진출 선언으로 소속팀은 5억에 가까운 샐러리캡을 남겨놔야 했다.
이는 곧 새 시즌 계획을 수립하거나, 다른 선수들의 연봉을 협상하는 데 혼선만 줄 뿐이다. 코트 위에서나 밖에서나 개인 플레이를 일삼는 그가 과연 ‘팀 플레이’로 대변되는 농구에서 얼마나 더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손대범(<점프볼>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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