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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십시오, 일부多처

우리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어화둥둥` 꽃 같은 새색시들이 참 많기도 했다. 물론 들소들이 접붙고 밀개떡 굽던 시절이지만 자연이 선택한 인간답게 살던 시절이었다. 남자의 본성을 잊고 산 지 채 5천 년도 되지 않았다. 다시 그 본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모르는, 아니 여자들의 본성일지도 모르는 일부다처에 대한 지지! 맞아 죽을 각오로 보내온 <몽정기> 정초신 감독의 전언이다.<br><br>[2006년 9월호]

UpdatedOn August 22, 2006

photography 기성율 ILLUSTRATION 장재훈 Editor 김영진

이미 오래전에 잊혀진, 그래서 남자들의 유전자 깊숙한 곳에서만 본능처럼 스멀거리던 화두가 갑자기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일부다처제. 선술집 안쪽 어두컴컴한 곳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소망하던 남자들의 욕망이다. 실현 가능성 제로에 도전하는 회색빛 열망이던 일부다처제가 21세기를 갓 넘긴 지금 대한민국 땅에서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일부다처주의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일부다처제를 유지할 만한 능력이 없다.

일부다처제는 근대 이후 거의 모든 국가에서 법으로 금지된 제도다. 그러나 좀 더 깊숙이 들어가보면 인간이 직립한 이후부터 남자들에 의해 점진적으로 폐기된 안타까운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일부다처제의 정반대편에서 존재하는 일부일처제는 지극히 합리적인 인간관계론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일부일처제는 불행하게도 약자의 법칙이며 강자들이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여야만 했던 인류 발전 사상 가장 비극적인 약속이다.

인간은 동물이다. 이 당연한 명제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짝짓기는 동물의 본능이며 인간도 같은 본능을 가진다. 동물의 왕국에서는 일부일처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원앙이나 잉꼬, 기러기와 기타 극소수의 동물들이 일부일처를 유지하고 있다는 학계의 연구가 있지만 대부분의 동물은 일부다처를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가장 강한 개체를 탄생시켜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컷들은 자신이 최강자로 선정되기 위해 죽음을 불사르는 전쟁을 치른다. 전쟁에서 승리한 수컷은 모든 암컷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전이할 자격을 얻는다. 이것이 최강자의 법칙이다. 물론 인간도 예전에는 같은 전쟁을 치러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인간은 일어나 걷게 되었다. 단순한 직립의 차원을 넘어 인간은 손을 사용하게 되었다. 손의 사용은 인류 문명 발달의 위대한 단초였지만, 일부다처라는 기존의 개념이 붕괴되는 엄청난 전환의 시작이기도 했다. 동물의 수컷들은 단순한 몸싸움을 통해 최강자를 선정한다. 인간도 같은 방법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직립과 손의 사용은 무기 사용을 가능케 하고, 이는 단순한 몸싸움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거듭된 훈련의 결과로 인간은 자신보다 더 큰 동물을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인간과 인간의 최강자 겨루기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이제 인간은 신체적 우월만으로 최강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다. 더욱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인지의 발달로 인해 나약한 자들조차 독극물을 사용해 강자를 제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암컷을 독점하는 최강자 수컷의 개념은 상실되고 생명 보전의 대명제를 유지하기 위해 남자들 간의 나약한 협약이 체결되었다. 일부일처제의 도입이 바로 그것이다. 일부일처제는 명백히 약자를 위한 제도이며, 인간의 유전적 발전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일대 도발적 사건이다. 강자들이 약자들에게 암살되고 싶지 않아서 포기한 일부다처제는 결국 남자들의 유전자 속에 깊숙이 고립되었다. 고립되긴 했지만 사라지지 않은 본능은 호시탐탐 육체를 뚫고 나온다. 남자들은 최강자가 되려는 본질적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발산하기 위해 야음을 틈타 자신의 유전자를 배포하기 위해 밤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남자들의 본능적인 바람기는 바로 최강자 신드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물론 최강자 개념은 수컷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암컷들에게도 존재한다. 보다 강한 개체를 생산해 양육하고 번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그것이다. 이는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처음에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 여자는 자신이 선택한 남자가 최강자일 거라는 최면에 빠진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조사하면 다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보기만 해도 알게 되는 것이다. 여자는 자신에게 적용되어야 할 최강자의 법칙이 깨졌다는 것을 직시한다. 그렇게 되면 여자는 본능에 의거해 다른 최강자를 갈구하게 마련이다. 최강자가 아닌 남자는 이제 여자의 본능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의처증은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나 드라마는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다.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모든 것에 대한 대리만족이다. 연일 상종가를 기록하는 드라마는 예외 없이 신데렐라 신드롬과 피터팬 증후군, 백만장자의 꿈을 다룬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일부다처의 향수를 만나게 된다. 최근 들어 방송 3사는 일제히 사극을 황금시간대에 배치했다. 사극이야말로 남자들의 가슴을 자극하는 영웅 담론이다. 신체적으로 강하며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리는 주체적 명확성은 잊혀진 최강자의 본능을 되살리는 최고의 자극제다. 영상매체가 갖는 본질적 최면 효과는 감정이입에 있다.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신적 폐인 상태로의 돌입이 그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은 너무나 먼 곳에 있다. 현대사회는 유전적으로 우위를 확보하는 개체적 특징을 최강자로 분류하지 않는다. 신체적으로 강건하고 정신적으로 총명한 남자를 최강자로 분류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안타까운 분류 기준으로 현대사회는 경제적 우위를 차지하는 자를 최강자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서, 2006년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최강자는 최상의 부를 축적한 자여야 한다. 여기에서 개체적 불행이 촉발된다. 돈을 버는 능력은 신체적·정신적 우월과는 전혀 별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돈을 잘 버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열등한 개체적 특징을 보인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인간, 특히 대부분의 여자들이 인정하는 바대로 돈이 많은 사람은 대부분 신체적·정신적으로 열악하다. 여자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명품을 미친 듯이 사주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남자들은 돈밖에 가진 게 없다. 돈 많은 남자들은 대개 자신의 신체적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정신으로 돈을 번 사람이다. 키 크고 잘생기고 똑똑한데 돈까지 잘 버는 경우는 약에 쓰려도 찾기 어렵다. 만일 그런 남자가 발에 채이듯 많다면 우리는 일부다처의 항진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남자들이 대량생산되지 않는 현실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모든 부자가 다 그렇다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대개의 부자들은 신체적 열등뿐만 아니라 정신적 황폐까지 겸비하고 있다. 돈을 잘 벌기 위한 요소 중에는 교활함과 치사함, 그리고 야비함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남자들은 자신의 열등한 요소를 극복하기 위한 도구로 돈을 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포악한 성격을 덤으로 가지고 있다. 부를 축적한 남자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남자들이 생존할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신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돈을 못 버는 것이 자랑은 아니다.

유교적 전통에 입각한 남존여비사상의 만연으로 대한민국은 비극적인 남녀 비율에 시달리고 있다. 자연은 수컷과 암컷의 비율을 100대 108로 규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남녀의 성비가 130대 100에 육박하는 처절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월등한 지적능력과 여권신장 운동에 힘입은 여자들은 맹렬한 사회 진출을 통해 남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은 여자들의 몫이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남자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무기력해지고 무능력해지고 있다. 남자들의 가슴속에 웅혼하게 살아 숨쉬는 일부다처제는 법적으로는 물론이고 꿈속에서조차도 실현 가능성 제로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리만족이라도 느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남자들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꿈을 꾸게 된다. 남자들의 유전자 속에 숨어 있지만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남자만의 욕망, 최강자가 되고자 하는 치열한 욕구가 매일매일 불타오르고 있다. 강건한 신체와 총명한 두뇌, 우월한 정신을 보유하지도 못하고, 남달리 돈을 잘 버는 교활한 지혜와 야비한 품성도 지니지 못했으며,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엄청난 부(富)도 없다면 이제 일부다처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킬 방법은 로또밖에 없다. 남자들이 습관적으로, 본능적으로 로또에 심취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몰락하고 있다. 신체적으로 점점 열악해지는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표류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에 탐닉함으로써 현실에서 불가능한 꿈을 맛보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상매체는 일부다처를 화두로 선정한 것이다. 우리가 꿈꾸지만 도달할 수 없는 그곳에 우리의 병든 영혼을 안착시키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이제 좀 더 강인해질 필요가 있다. 봄날 따뜻한 햇볕 아래 졸고 있는 병아리의 신세에서 감연히 벗어나 정신과 육체를 단련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남자들이 일생을 통해 목적하는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최강자를 원한다.
여자들은 정신적으로 강한 남자를 원하고 있다. 확고한 결정력을 지닌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여자들은 이미 경제적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남자에게는 강인한 품성을 요구하고 있다. 매일 TV 앞에 도사리고 앉아 영원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일부다처를 꿈꾸는 남자보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전사를 바란다. 대한민국의 남성들이여, 일부다처를 포기하지 마라. 그래야 한 명의 여자라도 얻을 수 있다. 꿈은 높은 곳에 있어야 근처에라도 도달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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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기성율
ILLUSTRATION 장재훈
Editor 김영진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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