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우정훈 Editor 정석헌
롤스로이스 팬텀의 코치 도어에서 내려 레드 카펫을 밟는 ‘그분’은 전생에도 대청마루와 연못이 있는 뜰 앞을 지나 솟을대문으로 유유히 나오는 고관대작이었을까? 그런 끔찍한 상상보다는 하루빨리 입신양명해 코치 도어의 열쇠를 손에 쥘 그날을 떠올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내가 타는 차가 0→100km/h 가속 시간이 몇 초인지, 트립 컴퓨터에 내비게이션이 포함돼 있는지, 트렁크에 골프백 4개가 들어가는지 따위는 별로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그 차는 이제 너무 흔해 감흥이 덜한 럭셔리 세단이 아닌 거다. 권좌라 불러도 좋을 초호화 뒷좌석이 마련된 프레스티지 세단인 거다. 그 이름은 L(Long Wheelbase)이나 E(Extended Wheelbase) 혹은 리무진 등이 붙어 전장만큼이나 길고 편의 장비는 가격만큼이나 손이 커서 비행기 일등석이나 거실의 천연가죽 쇼퍼 주변에 비견된다. 지구에서 가장 좋다는 소를 잡고 원목을 베어 의자와 바닥과 벽을 꾸민 ‘수공예품’이니 평수나 착좌감을 따지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앞좌석과 무관하게 에어컨 세기를 조절하거나 DVD 타이틀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전동식 마사지를 받거나 시트백 테이블 위에 결재서류를 올려놓고 살피는 일도 대수로울 게 없다. 옵션에 따라 어지간한 차 한두 대 값인 프리미엄 오디오 사운드로 실내를 수놓거나 센터 암레스트의 소형 냉장고에 샴페인이나 와인을 키핑하는 것도 그리 낯설지 않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고급 기능에서는 자동차 메이커의 숨은 내공을 볼 수 있다. 마이바흐 57S의 뒷좌석에서는 지금 내가 시속 몇 킬로미터로 달리는지를 점잖게 가늠해볼 수 있고, 롤스로이스 팬텀이라면 코치 도어 사이에 숨겨진 우산으로 자선을 베풀 수도 있다. 아우디 A8L의 뒷좌석에서는 뱅앤올룹슨 오디오 시스템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특권도 얻을 수 있다. 흔히 프레스티지 세단은 두 부류로 나뉜다. 뒷좌석에 앉는 걸로 족한 전형적인 쇼퍼 드리븐카와 주중에 한두 번쯤 운전석에 앉아도 좋을, 그러니까 오너 드리븐카를 겸하는 변형된 쇼퍼 드리븐카가 바로 그것. 롤스로이스 팬텀을 필두로 하는 전자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S600L, BMW 760Li, 벤틀리 아니지 리무진, 렉서스 LS460L, 쌍용 체어맨 CM700L 등이 속한다. 후자의 예로는 마이바흐 57S를 비롯해 아우디 A8L, 폭스바겐 페이톤 4.2 LWB, 재규어 XJ8L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프레스티지 카를 나누는 최후의 분류는 그 ‘용상’의 주인한테 달려 있다. 주인 될 자격이 있는 자에게 허락되는 뒷좌석일 때 비로소 프레스티지 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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